영국에 살면서 영국에 실망을 느끼는 경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정치나 언론 환경이 그리 선진적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많은데, 하나만 들자면, 매주 정례적으로 열리는 수상과 야당 의원들과의 토론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멋진 구경거리는 아니다.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보다는, 조롱 등의 기술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 사태와 같은 위중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영국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번 테러는 영국인 무슬림이 일으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국 사회의 다양성이 이번 테러 사태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결의를 보여준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송에서도, 현장에서 자원봉사하는, 터반을 쓰고 턱수염을 두텁게 기른 무슬림과, 사태 당시 시민들을 무료로 실어나른, 역시 비슷한 용모의 무슬림 택시 기사를 인터뷰한다.


마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테러리스트를 악마라고 지칭하는 메시지를 냈다. 21세기에도 '성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용납된다면, 나는 트럼프와 같은 사람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이번 테러 기획자가 서구 사회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악마', '복수', 등등일 것이고,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같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증오와 갈등일 것이다. 성숙은 이런 즉자적인 반응들을 넘어서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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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메갈리아를 지지한다고 말했었다. 마음 속으로 이런 지지를 철회한지는 이미 오래고, 이에 대해서 한 마디 써놔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간혹 들어가 봤다. 내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포스팅을 쓰고 나서 메갈리아에 들어갔었을 때는 사이트에서 난리가 난 이후였다.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놓고 난리가 난 것이었고, 과격파가 집단으로 탈퇴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단다. 그 전쟁 이후 이용자 한 둘이 간단한 설문을 하곤 했다. 메갈리아 사이트의 방향성에 대해서. 내 기억으로는 2/10 정도가 자신을 진지한 페미니스트로 생각했고, 5/10 정도가 남혐(남성에 대한 혐오자)으로, 3,4/10 정도가 여혐혐(여성 혐오에 대한 반대)으로 자신을 정리했던 것 같다. 여혐혐이라는 사람도 점차로 여혐혐에서 남혐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메갈리아 사이트를 혐오를 재생산하는 사이트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후 한참 있다가 다시 한번 메갈리아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또 난리가 난 뒤끝이었다. 이번에는 남성 장애인에 대한 비하가 문제였다. 나는 그 시점에서 메갈리아에 접속해 보는 것을 완전히 끊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메갈리아를 혐오의 재생산과 생산 공간으로 정의하는데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주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이고, 어떻게 운동을 표방할 수 있을까?


물론 애초부터 메갈리아는 운동은 아니었다. 예컨대, 이 사이트는 진지하게, 데이트 더치 페이를 신랄하게 비난했었다. 한 이용자가 이런 질문을 올린 것이 기억이 난다. 자기가 여성학 책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데이트 더치 페이를 거부하는 논리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거의 답이 없었다. 그러다 한 이용자가 이런 글을 올렸다. 인류가 진화하고 근대화되었지만, 인류 본원의 욕망이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 등은 그런 본질 중의 하나다... 진지하게 썼지만, 사실 이런 것이 안티-페미니즘이다. 여성이 결혼, 연애, 사업, 승진, 업무 등등에 있어서 여성성을 공공연하게 사용해도 될까? 이를 긍정하는 것이 바로 안티-페미니즘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봐서 메갈리아는 안티-페미니즘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데이트 더치 페이 반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예전에, 20세기 이후 여자와 남자의 행복지수가, 남자들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남자들만 군대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지만 이제는 여자도 군대에 간다. 예전에는 남자만 운동 경기를 했지만 이제는 여자도 그렇게 한다. 여자도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한다, 등등. 이러한 여권 향상의 결과로 여자들이 더 행복해졌는가? 바로 이 질문에 노,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 많던 존 웨인(여자들을 잘 도와주는 신사)은 다 어디에 갔는가?"


나는 페미니즘, 안티-페미니즘에 대해 별 의견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안티-페미니즘을 선택하는 것도 그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다시 페미니즘 이전으로 회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로 한정한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 고위층으로 진출하면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부과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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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다시 총선 정국에 들어갔다. 브렉싯을 관리할 강력한 리더십을 주장하면서 집권 보수당이 총선을 제안했고, 노동당은,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의 뻔한 참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이를 망설임없이 받아들였다.


메이 수상은 토론회 참석을 거부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이슈, 브렉싯 협상에 자신이 적임자냐, 노동당 당수 코벵이 적임자냐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것이 보수당의 이번 선거 전략인 것이다. 노동당은 브렉싯 뿐 아니라 교육, 환경 등 집권 보수당이 방기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이슈화하고 대안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결국 영국 국민들의 선택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메이가 이길 것 같다. 노년의 사람들이 메이 수상을 너무 좋아한다. 아마 그에게서 대처를 보나보다.


트럼프가 되고 나서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화의 퇴조에 대해 썼다. 자유무역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인 이코노미스트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미 흐름은 바꼈고 트럼프의 등장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다국적 기업은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별 우위를 보이지 못한다. 자유무역이 꼭이 선진국에게 이득이 되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국들은 문을 닫아 걸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국가주의적 테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바로 이 흐름 위에 있다. 서구 국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그들은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을까? 나는 이 점을 못미덥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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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런던 한국 영사관에 가서 투표를 했다. 대선, 총선 등 영국에 온 뒤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선거에 참여했었는데, 입구서부터 줄을 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20, 30, 4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면 무조건 민주당일 거라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문재인에, 아내는 심상정에 표를 주었다. 나는 애초 심상정을 뽑으려 했었다. 대통령은 어짜피 문재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진보 세력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철수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면서 문재인을 찍기로 마음을 바꿨다. BW 논란 등은 안철수에게, 법적인 논란거리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치명적인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재인의 아들 논란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서, 나는 문제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문재인이 그동안 이만큼이나 자기 관리를 잘 해왔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게 표를 주기로 했다. 아내는 그동안 나에게 문재인을 뽑으라고 강력하게 협박을 했었다. 그런데, 토론을 보면서 문재인이 토론을 너무 못하고, 동성애 관련 발언 등에서 보듯 너무 보수적이라는 점에 답답해 했다. 특히, JTBC 토론에서인가, 문재인이 너무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서, 지난 대선 토론회 때 이정희가 사퇴하고나서 긴장이 풀린 박근혜가 의자에 기대앉아 얼빠진 소리를 하는 것이 연상된다면서, 그 꼴을 보고도 문재인을 찍으면 그때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토론을 가장 잘한 심상정에 표를 주기로 한 것이다. 혹시 정권 교체가 되지 않을까 지금 두려워 하고 있다...:)


지난 해부터 올해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경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전진의 한 단계를 5월9일날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하고 강력하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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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영국은 지금 저녁이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탄핵 심판 결과가 나와 있을 것 같다. 탄핵 사유도 많고 관련 증거들도 많기 때문에 재판관들이 그 모든 사실 확인에도 불구하고 기각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들 한다. 게다가 국민의 80% 가까이가 꾸준히 탄핵 인용을 요구하고 있으니...

국외에서 바라봤을 때 이번 탄핵 사태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국민의 수가 고정적으로 80%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고영태 녹취 파일 문제도 있었고, 한 재판관의 퇴임 날 전에 선고 기일을 잡느라 일정상 무리한다는 주장이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도 놀라운 규모의 반 탄핵 시위가 연일 벌어졌었기 때문에 탄핵 찬성의 세가 어느 정도는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었다. 아내의 말로는 친박 세력들이 워낙 진상 짓을 해서 사람들이 아주 질려 버렸을 것이란다. 좀 진솔한 척, 좀 죄송한 척, 좀 불쌍한 척을 했었더라면, 탄핵 인용이야 피할 수 없을지라도 어느 정도 동정심을 살 수는 있었을 텐데 박근혜는 끝까지 바보짓을 하고 만 셈이다.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과목을 더 철저하게 공부할 기회가 된 것 같다. 

(여기 살고 있는 어떤 분의, 한국 사는 부모님도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고 해서, 그 분이 "집회 가는 건 좋은데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적어도 한국의 노인 세대의 반은 반 탄핵 입장일 줄 알았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60대 이상에서도 탄핵 찬성이 과반 이상이라고 하더라. 20, 30대의 90% 이상의 찬성률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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