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날짜가 급히 잡히어, 전전날엔 12시까지, 그리고 전날엔 새벽 두 시까지 짐을 싸고, 다시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마저 짐을 싸야 했다. 이사 들어가는 곳에 미리 가서 이사짐을 실은 차가 오기를 기다리다 이사 나가는 이전 집주인 노부부와 맞닦뜨렸다. 동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참으로 오래 살던(할머니의 경우는 77년 동안, 그러니까 평생을 그 집에서 살았단다) 집과 작별하는 중이었다.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다. 할아버지한테 이 집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했더니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열쇠를 받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엌 탁자에 할머니가 집의 내력 등에 대해 쓴 편지가 있었다. 무거운 책 박스를 나르느라 고생한 이사짐 센터 사람 둘에게 돈을 조금 더 얹어 주었다. 동유럽 출신인 듯 하다. 옆 집 아줌마한테 쓰레기통 내놓는 요일을 물었는데, 음식 쓰레기통을 밤에 내놓으면 여우가 물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갈 때 가지고 온 음식 쓰레기 봉투를 가든에 놓아두어 보았다. 과연 담 날 사라져 버렸다. 누구네 마당에 음식 쓰레기들을 죄 흩뿌려 놓았을 것 같다. 민폐 죄송. 아침 무렵엔 가든에서 비둘기와 다람쥐가 와서 각자의 할 일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저녁 무렵 세상에 지친 듯한 표정의 여우 한 마리가 다리를 절며 가든을 가로질러 갔다.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라. 영국에서 여우 노릇을 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이사 다음 날 아침 이전 집에 쓰레기를 비워 치워 주러 갔다. 너무 급히 나오느라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쓰레기통도 꽉꽉 채운 채로 나왔던 것이다. 일반 쓰레기만 검은 비닐 봉투에 담아 인근 쓰레기장에 갖다 버렸다. 재활용 쓰레기통도 가득 찼는데 샴페인 병이 하나 낑겨져 있었다. 어제밤 샴페인을 터뜨렸다 부다. 우리는 포도주를 땄었다.

(사진은 내 방에서 바라 본 가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