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저녁 시간마다 한국 뉴스를 챙겨 본다. 지난 토요일에는 새벽 한 시에 일어나 남북의 정상들이 손을 잡고 분단선을 넘는 장면을 지켜 보기도 했었다. 한국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홍준표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며, 김정은이 미소를 한번 지어주자 신뢰도가 77%가 되었다고 흥분하는 뉴스를 보았다. 한참을 웃었다.
남북 정상 회담 전 김정은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도는 0%에 가까왔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몇 칠 사이에 77%가 되었다면 이는 홍준표의 말대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곧 지나갈 유행에 불과할 것이다. 홍준표의 비판은 나름 합리적인 것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다.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의 거의 대부분은 문재인이 벌어다 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문재인에 대한 신뢰는 그를 오래 지켜보며 굳건해져 온 것이다. 일시적인 변덕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그렇더라도 김정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은 한국의 국민들에게, 그리고 트럼프에게 김정은이 믿을만 한 사람이라고 역설하고 있는데, 문재인의 이 확신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 회담 전후의 김정은에게서 불연속성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사람들에게 김정은은 언제나 연속성의 존재, 즉 인격의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 혹은 인격이라는 범주는 어떤 사람의 행위를 그의 동기, 목적 등을 통해서 파악하고자 할 때 그에게 적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은 김정은에게 이런 범주를 적용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에게 김정은은 악마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 말할 것도 없이 악마 등등의 표딱지는 상대를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단절의 몸짓일 뿐이다.
사실 그동안의 북한의 행태에 이해못할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반도에서의 체제 경쟁은 남한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고, 현실 사회주의는 붕괴해 버렸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방을 추구하고자 했지만(고립은 선택지가 아니다), 미국 등은 북한의 체제 유지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북한은 핵개발로 판을 크게 키운 후 미국과 일괄타결을 하려고 했고, 지금 성공적으로 그 과정에 들어서 있다. (의문인 것은 트럼프가 동북아에 통일 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는 것이 미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는 계산을 끝내 놓고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일이라도 판이 엎어질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홍준표가 옳은지, 문재인이 옳은지 결정할 궁극적인 기준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현실의 정의 그 자체이므로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이론이 곧 실천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관점이, 이론이, 혹은 실천이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선험적으로 확신할 수는 있다. 즉,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인 현실에 접근해 있는가를 돌아봄으로써. 예컨대 홍준표는 김정은에게 악마라는 범주를 부여하여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러므로 홍준표는 모든 합리적 비판들, 예컨대 북한이 정말 자신보다 국력이 50 배 이상 큰 나라를 적화 통일하려고 할까 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원래 비합리적인 나라라면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무의미하므로. 그러나 홍준표가 관념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는 현실의 구체성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선험적으로 틀렸다고 본다. (그래도 홍준표를 비웃지는 말자. 관념론을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