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테러 공포 와중에 가장 비판받는 정치인은 국제적으로는 메르켈, 영국 내적으로는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뱅인 것 같다.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유화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갈등이 첨예화되고 힘대힘의 정책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유화론, 이상론은 설 자리가 없다. 이렇다는 것은 이러한 국면에서 실제로 유화론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입맛에는 쓰지만...

영국의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뱅은 가장 진보적인 현실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리아 폭격을 반대하며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직후부터 매일 매일 군부의 비토를 당하고 있다. 코뱅같은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가 코뱅이라면 결국 현실론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에스가 대화가능한 상대인가? 아니다. 그러면 방치해도 될 상대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행동해야 한다. 행동은 일차적으로 군사적 대응일 수 밖에 없다. 가능한 짧은 시일 안에, 가능한 민간인 피해를 줄이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습과 지상군 투입을 동시에 고려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개입을 선언해야, 즉 손을 더럽혀야 민간인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려는 국가들(특히 러시아)을 견제할 수 있고, 문명 충돌론 등을 반박할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사태 종식 후 더 이상 근본주의 세력이 준동하지 않도록 국제 협력안을 짤 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나는 서방 세계가 무단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결집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것이 제레미 코뱅이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수 있으려면 권위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입해야 하고 손을 더럽혀야 한다... -이것이 이 사태에 대한 나의 결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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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스가 다음 테러를 기획한다면 그 대상 중 하나는 분명 런던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영국이 제국주의 시절부터 너무나 많은 나쁜 짓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현재 초비상 상태에 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을 테러로부터 지켜 낼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영국 정부의 능력을 믿는다.

영국 정부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고 영국 정보원들이 얼마나 책임감 있고 탁월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예를 들 수 있다. 딱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러시아 민항기 사태때 발칵 뒤집어 진 곳은 러시아도 이집트도 아니고 바로 영국 정부였다. 즉각 비상 회의가 소집되고 테러 첩보가 분석되고 해당 지역에 남아 있는 영국 국민들에게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조처가 내려졌다. 러시아는 2, 3일 후에나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해당 공항의 검문 강화를 위해 이집트 정부에 계속 압박을 가해 온 것도 영국이었다. 결과적으로 수하물을 통해 반입되는 폭탄을 막지는 못했지만...)

11월마다 런던에서는 현충일 행사가 열린다. 커먼웰스 국가들(영연방 국가들)에서 온 대표들과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내가 보기에 영국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식민지 시대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정말 미안해. 용서해 주면 안되겠니? 1차 대전때, 2차 대전때 우리 힘을 합쳐 전체주의와 싸우지 않았니? 그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마음 영원히 간직할테니 우리 앞으로는 사이 좋게 지내자."

영국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 관세 혜택을 주고, 교육, 환경 보호 등을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올해 영국이 국가적으로(비비씨의 기획인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에볼라 퇴치다. 그냥 무심코 보면 영국 국민들하고는 거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에볼라 퇴치를 위해 영국이 왜 저렇게 신경을 쓰나, 하고 생각될 정도다.

인종적 다양성 문제. 예를 들어 영국 테레비젼에서 흑인 앵커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앵커가 히잡을 쓰고 보도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인종주의자라는 말은 인간 쓰레기라는 말과 동급이다. 그래서 간혹 축구 경기 중에 일어나는 인종주의적 욕설 한 마디에도 난리가 난다. 비비씨는 파키스탄 커뮤니티에 관한 코메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한다. 크리켓 레전드인 인도 선수의 은퇴 소식이 거의 긴급 뉴스급이다. 넬슨 만델라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긴급 뉴스였다. 백인 경찰의 과잉 대처로 흑인 남성이 사망했을 때 영국 내무부 장관의 조처는, 인구 비율에 맞게 흑인 경찰 수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등등.

영국 의회는 영국군의 시리아 폭격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뱅은 중동의 테러 세력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뱅은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면 이라크 침공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겠다고 이미 선언한 상태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영국의 이라크 침공 참여에 책임이 있는 토니 블레어 전총리는 실제로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토니 블레어조차 이라크 침공이 아이에스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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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5-11-1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이 정책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만 보면 그렇지만 the sun 이나 다른 보수 언론의 커버기사나 거기에 달리는 덧글에 극명히 보이는 외국인/난민 혐오도 함께 염두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weekly 2015-11-18 01: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느 사회건 극우적인 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구가 20%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증폭시켜서 주도적인 여론으로 만들때 발생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잠재되어 있는 20% 정도의 극우적 성향은 그냥 정상적인, 건강한 사회의 일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도 유킵이 이 정도 지지를 받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영국은 극우적인 성향이 주도적 여론이 되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극우 세력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잉글랜드 백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러면 유나이티드 킹덤의 통일성이 깨져 버리죠. 더구나 현충일 행사에서 보듯 영국의 정체성은 여왕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인종까지 포괄합니다. 즉, 극우적 목소리는 여왕의 상징적 통일성마저 위태롭게 하는 셈이지요...

얼마 전 보수당이 가난한 가정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시키는 법안을 내었지만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하우스 오브 로드에서 이를 부결시켰다는 기사를 보셨는지요? 중도라지만 어쨌든 경제 전문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하우스 오브 로드를 지지하는 기사를 냈더라고요. 영국은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난한 서민 계층을 가능한 압박하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워킹 클라스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것도 극우의 준동을 막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퓌쉬앤칲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게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썬이나 데일리 메일을 보게 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이 신문들은 이민자/난민 혐오를 열심히 조장하고 있습니다. 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왜나하면... 얼마 전에 엄청난 일이 있었죠? 파키스탄 동네에서 백인 소녀들을 다년간 성폭행하고 매매춘시킨 것... 한국에서라면 원자폭탄급 이슈였을 텐데요... 영국은 조용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기사들을 썬이나 데일리 메일 등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제가 보지를 못했지만 이러한 엄청난 사건도 반-이민, 반-외국인 문제를 표면화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껏 이슈화되는 수준은, 루마니아나 시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베네핏을 갉아 먹는다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야 뭐~ (게다가 영국 언론에서 이민자들이 영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열심히 선전해 주고 있죠. 예를 들면 엔에치에스 인력의 10% 정도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것 등등.)

이제 새로 이슈화된 것이 테러 위협인데 이건 또 보수당이 잘 하고 있죠. 영국이 할당받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터키의 난민촌에 직접 가서 선별하여 데려온다든지 하는...

qualia 2015-11-18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라도 “대화”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차별/테러/폭력/전쟁 따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weekly 님 전언의 핵심으로 이해합니다.

weekly 2015-11-18 17:3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 사실은 제 의견도 계속 진동하고 있기 때문에...

Forgettable. 2015-11-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했지만 이 글은 약간 편파적인것 같아 덧글을 달았네요. 영국인의 각자 개개인의성향이 어떻든 국가에 대한 믿음은 완고한 것 같아요. 스페인이나 한국의 그것과는 대조적이어서 질투도 나고 뭐 그렇습니다. ㅎㅎ

weekly 2015-11-18 17: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현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원 글은 단지, 영국이 (원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선도적인 조치들을 하고 있는가를 두서없이 떠벌인 것 뿐이랍니다.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구요.

다 떠나서 포겟터블님이 말씀하신 대로 영국인 각자의 국가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 보여요. 저도 놀랍고 질투나고 그렇답니다. 그러나 공짜로 그렇게 된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이구요. 영국 왕실과 정부가 국민적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들을 평가해 주어야 하리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국인의 국가에 대한 믿음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국가의 노력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뜻이라고 저는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샤프심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신문 헤드라인에 눈이 꽉 박혀 버렸다. 이번 파리 테러범이 난민을 가장하여 유럽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젠장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시리아 난민에 동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이 시리아 난민에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아이에스가 난민들에 섞여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한 동정론자들의 주장은, 난민을 막아도 어짜피 들어온다, 그때는 불법으로 몰래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가 어떻게 들어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당국이 전혀 파악할 수도, 그러므로 관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 라는 것이었다. 이번 테러 사태로 이러한 주장이 무효화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도 답이 없던 난민 문제가 더 한층 꼬여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나는 파리 테러 소식을 어제 낮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비비씨와 씨엔엔을 번갈아 보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이토록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답을 듣기는 힘들었다. 어떤 분석가는 레스토랑, 바, 축구 경기장, 콘서트 홀 등이 타겟이 된 것으로 봤을 때 유럽적인 생활 양식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헛소리를 하더라. 어떤 기자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신성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유럽 사람들의 자기중심주의와 한심한 지성 수준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테레비젼을 껐다.

프랑스인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철학적 문제는 인간 현상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폭탄을 칭칭 동여맨 채 수십, 수백의 무고한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극단적 행위에도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방 언론들은 테러의 원인에 눈길을 주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프랑스인 사르트르에게서 배운 모든 것은, 인간의 행위는 자연 재해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인 것이다.

프랑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10% 가까이 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알제리 출신일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베트남에 대해서도, 시리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프랑스 사회의 배타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슬람계 시민들이 2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등등... 엡도 테러가 났을 당시 비비씨의 리포터가 프랑스에서 취재를 했다. 그 리포터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이었는데 프랑스의 극우 청년과 인터뷰를 했다.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 아닌 사람은 프랑스를 떠나라고 주장한다. 나는 종교가 이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당신만큼 프랑스말을 유창하게 한다. 그런데 나도 프랑스를 떠나야 하는가?" 그 청년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난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내가 프랑스를 떠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리포터가 반문했지만 그 청년은 눈길을 슬며시 피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필 파리에서, 이토록 극단적이고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난 것과 정녕 아무 상관도 없을까? 이번 테러 사태에 대한 프랑스 현지 취재 꼭지를 마무리하면서 비비씨의 기자는 이렇게 코멘트하였다. "엡도 테러가 벌어지고 난 후 사람들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두려워 했다. 그리고 이번 테러가 그 답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무자비게' 싸우는 것만이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최선이 될까?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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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1-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로 위클리님 글에 동감하고 공감하던 사람인데요, 이 글은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힘드네요.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몇 자 적습니다. 파리 한 복판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미디어가 앞장서서 테러가 일어난 이면을 밝혀야했을까요? 사르트트가 인간현상에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고 테러로 죽은 자식앞에서 울부짖고 있을 부모를 위해 테러의 이면을 지금 파헤친들 미친년놈 소리밖에 더 듣겠습니까? 락콘서트장 축구장등 테러가 일어난 곳이 주로 젊은층위주로 모이는 장소던데,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그 평범한 일상이 인생 즐거움이었던 사람들이었고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자식이나 부모가 죽었는데, 그들 앞에서 이슬람 테러의 원인 규명이 우리 서방 세계의 이슬람 착취와 탄압과 억압이었다라고 저 자리에서 누구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반성하자, 이런 말을 미디어나 지성인들이 티비나 라디오에 나와서 했어여 했나요? 위클리님께서 사르트르를 공부하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현상을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정말 위험한 자세입니다. 저도 한 때 평론가를 꿈 꿔 김현의 비평서적을 읽으면서 모든 문학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한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지 말라고 모든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텅빈 곳을 찾아 너의 사고체계로 만들라고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 말이 님의 페이퍼 보니 생각나네요.

테러가 끝난 후, 어떤 말들이 나오겠지요. 911테러 후 미국 지성계가 부시가 일으킨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요. 유럽의 아프리카나 아시아 착취에 대한 반성도 유럽지성계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프랑스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한 자성은 지금은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프랑스란 나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번 테러로 자식을 부모를 잃은 분들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weekly 2015-11-16 14: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프랑스가 행한 민간인 학살의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현대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가 날 때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는 샤를리 엡도다˝, ˝자유, 평등, 박애˝ 등의 표어를 내거는 것이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무자비한`이란 단어를 쓰는 것에 흠짓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에 흠짓함을 느낀다면 입을 열어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자, 그것이 흠짓하다고 말하자, 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민간인 학살`의 현대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시엔엔 뉴스를 보니 프랑스 공군이 아이에스의 수도격이랄 수 있는 라카에 커다란 공습을 감행했다고 하더군요. 시리아에서 오래 살다 온 기자가 말합니다. 라싸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가 별로 없다, 아이에스와 민간인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받은 프랑스 공군의 폭격은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란 말의 뜻은 민간인 피해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민간인들은 유럽인이 아닙니다. 뉴스 카메라도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잡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입니다. 무고하게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으며, 아직 살아있다면 곧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순간에 어떻게 프랑스 사람들의 죽음에만 우리가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프랑스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해주면 공감해 줄수록 프랑스의 폭격은 더욱 `무자비해질 것`을 우리는 이미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무자비한 보복이 프랑스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해줄까요? 위에서 말한 기자는 회의적이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사르트르를 언급한 이유는 꼭이 그를 추종해서는 아닙니다.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사르트르는 알제리 편에 섰습니다. 프랑스가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한편으로 알제리도 프랑스에 대해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프랑스는 억압자이고 알제리는 피억압자이기 때문에 알제리의 만행은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요.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두 번의 폭탄 테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르트르의 과격한 입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파리 테러 희생자에 대한 슬픔 때문에 시리아 민간인들이 처한 당장의 운명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종이 위에 적힌 숫자에 불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weekly 2015-11-16 17: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첨언하자면...

1). 테러범들 중 3명은 프랑스 국적인 것으로 나오고 있네요.
2). 위에서 이야기한 시엔엔 보도에 의하면 많은 고등 교육을 받은 튀니지 젊은이들이 아이에스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제게는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이 파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인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집단으로 패닉에 빠진 파리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이리 저리 내닫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더군요. 파리 시민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qualia 2015-11-17 09:28   좋아요 0 | URL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 같은 보복 공격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일 뿐이죠. weekly 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중동/아랍은 (먼 옛날엔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근대 이후 계속 영미권, 유럽권으로부터 계속 인종차별/민족차별/종교적 박해/문화적 음해/착취/수탈/무차별 공격/왕따 등등을 당해왔다고 볼 수 있죠.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에서 주장했다는데요.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폭력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지금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중동/아랍권 시각으로 본다면 스티븐 핑커 주장과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weekly 2015-11-17 17: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qualia님
예,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에 서방 열강들이 근원적인 책임이 있고, 이른바 대테러 전쟁이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 전쟁이기 때문에 저도 서방 세계의 지금과 같은 대응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스의 거점 도시 라카를 맹렬히 타격한들 새로운 대량 난민만 발생시켜 유럽을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리 테러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극우 세력의 준동을 야기하여 새로운 악순환의 강력한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겠죠? 저는 당분간 뉴스 안보기로 했답니다...-.-
 

얼마 전 이곳 영국 뉴스에 영국 100대 기업들이 이사진의 25%를 여성에 할당하는 목표를 채웠다는 기사가 났다. 영국에서 여성 이사 할당제는 법적인 강제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실질을 보면 25%의 대부분은 (상임이 아닌) 사외 이사였다. 숫자만 형식적으로 맞추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쨌든 다음 목표는 33%라고 한다.

영국 사람들이 이런 이슈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비비씨 사이트에서 이 뉴스의 댓글들을 몇 개 읽었다. 여성 할당제 때문에 능력 있는 남성이 오히려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댓글 등 부정적 의견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개 읽다가 그만 두었다. 비비씨 댓글들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 거의 언제나 보수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 여성 할당제를 양성 평등의 이념 위에서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자유냐 평등이냐 하는 시대착오적인 논쟁을 재연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 할당제는, 말하자면, 기업 경쟁력,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즉, 별 노력 들이지 않고(세금 쓰지 않고) 산업계에 이용가능한 인적 자원을 두 배로 확장해 주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행 초기에는 좁은 여성 인재 풀에서 임원급, 이사급을 골라 내느라 고생스러울 것이고 역차별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이런 정책을 한국도 도입해야 할까. 당연하다. 조사들을 보면 한국이 양성 평등 지수에서 세계 최하위권으로 나오는 것들이 있다. 지금이 여성 우위의 시대라고 착각하고 있는 몇몇 한국 사람들은 이런 기사들에 황당해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중 몇 %가 여성일까? 국무위원 중 몇 %가 여성일까? 기업 고위 임원 중 몇 %가 여성일까? 여성과 남성 사이 임금 격차 수준은 어떠할까? 등등. 이런 부분에서 한국은 세계 최하위 수준의 성평등 지수(아마 아랍 국가나 북한 등과 경쟁해야 할 수준)를 보일 것이다. 

(여성들이 사시나 행시,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또 두각을 타나내는 현상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이런 임용 제도(즉, 객관적 시험을 통하는)만이 성차별없는 공정한 경쟁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것, 둘째, 이런 공정한 경쟁 제도 아래에서 여성은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 아마 멍청한 사람들은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원래 여성이 시험에는 더 강하다.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사회를 주도하는 힘들에서 여성이 철저하게 소외된 결과를 우리는 매일 매일 어디서건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체주의적으로 획일화된 사회. 한국에서 남성-여성 관계의 원형은 전자가 후자를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관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남성 사이의 관계는 권력(지위, 나이, 돈 등)에 따라 철저하게 서열화된 형태를 보인다. 나는 한국 사회 특유의 경직성, 획일성, 피상성, 도착성 등의 근원은 결국 성 문제에 있다고 믿는다. 즉, 한국 사회는 여성을 끊임없이 소외시키며 대상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대상화시키는 것이다. 

(소외는 한 인간을 총체성이 아닌 성, 나이, 지위, 직업, 출신 지역, 기수 등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고, 대상화란 그런 특성에 따라 인간을 사회의 전체 가치 구조 안에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컨대 '김영미'는 제2의 성(여성)이므로 전체 가치 구조 안에서 주변적인 곳에 위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김영미는 여자라고 보호받고, 여자라고 지도받는다. 그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항상 주변부에 머물러야 한다.) 

(한국의 이런 가부장적인 구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의 고위직 여성 비율이 절대적으로 형편없게 된다. 다른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째는 박근혜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의 통치 구조는 철저한 획일성, 철저한 서열성에 기반하고 있다. 그 서열 구조에서 박근혜는 정점에 있고 그러므로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그러면 박근혜의 절대적인 힘의 근원은 어디일까? 물론 국민이다. 서열의 절대성을 내면화하고 있는 국민이다. 박근혜가 노령층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노령층이 서열의 절대성(이 경우는 나이와 성별)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근혜가 경북이라는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경북 지역이 서열의 절대성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쉽게, 그러므로 경북 지역이 매우 고령화된 지역이거나 매우 보수적인 지역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보수성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낮은 지위로 드러날 것이다. 서열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을 근원적 범주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김영미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으로, 인간이기에 앞서 '여성'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서열의 절대성이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는 서열이 가능하지 않다.)

(두 번째는 한국의 걸그룹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을 절대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성들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서의 '김영미'와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자신의 수컷성을 충족시켜 줄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것이 곧 걸그룹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걸그룹을 소비하면서 한국의 가부장적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결론. 한국은 어마 어마하게 남성 우월적인 사회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사람들이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의 근원에는 바로 성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믿는다. 문제의 근원 중 하나가 그것이라면 해답 중 하나도 거기서 나올 것이다. 거기서 나와야만 할 것이다.  

(솔직히 이 포스팅을 쓰게 된 계기는 메갈리안이라는 사이트였다. 나는 (일베에 들어가 보았던 것처럼) 메갈리안에 들어가 보았다. 쓰레기라면 쓰레기다. 주제는 한국 남성 혐오다. 주로 서양 남성의 성기와 한국 남성의 것을 비교하면서 한국 남성을 조롱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 한해 말하면 솔직히 두 가지 흐름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한국 남성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 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서양 남성을 선망하는 것이다. 전자가 운동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또다시 대상화하는 덫이다. 실제로 메갈리안 이용자들은 이 두 극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때로는 후자에 휩쓸리기도 하고, 또 그 모습에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수 많은 쓰레기 글들이 있고, 때로는 성기 잘린 사진과 같이 눈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들도 있고, 매우 불철저해 보이는 글들(스스로를 대상화의 덫에 빠뜨리는 글들)도 많았다. 이러한 한계의 많은 부분은 미러링이라는 방법론 탓이라고 생각한다(말하자면 일베가 여성 혐오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남성 혐오를 표출하는 것). 요컨대, 왜 항상 여성을 남성의 안티테제로 설정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미러링이 아니라면, 예컨대 단순히 논리나 도덕적 훈계를 이용한다면 한국 남성이 꼼짝이나 할까?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남성 우월적인 사회라면 극단적인 남성 혐오 담론이 튀어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메갈리안이 너무 늦게 등장했고, 방법론적으로도 너무 온건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메갈리안을 긍정적으로 본다. 메갈리안이라는 사이트의 모든 부작용을 안고서 나는 메갈리안을 긍정적으로 본다. 예를 들어 메갈리안은 한국 남성 혐오를 부추기면서 결과적으로 물질 지향, 외모 지향을 옹호하고 있지 않은가? 서양 남성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고 있지 않은가? 글쎄... 그것이 이미 우리 사회의 모습 아니던가? 서양 남성의 거대한 성기 사진에 대해 침을 질질 흘려대는, 메갈리안 여성들의 댓글이 좍 달리는 것이나 걸그룹들을 소비하는 우리 남성들의 모습이나 이 어마 어마한 가부장적인 구조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어느 쪽이든 돈과 능력이 되면 자신들의 환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메갈리안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는 반면, 한국 남성들은 추호도 그런 의식이 없다. 말하자면 한국 남성들은 자신을 비출 거울을 갖고 있지 않고, 그러므로 메갈리안의 미러링은 이 경우 아주 유효한 방법론인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도 메갈리안의 글들을 통해서 다른 옵션, 다른 시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블로그에 쓴 글들 중에 남성 중심주의를 드러내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이제 깨닫고 부끄러워 하고 있다. 관성은 도발에 의하지 않고는 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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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0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5-11-13 04:38   좋아요 1 | URL
하신 말씀에 한 점 유보 없이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마립간 2015-11-1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요를 누르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니까 한 점의 유보를 제외한 내용에 공감합니다만, 공감의 유보는)

미러링이 단순한 논리와 도덕적 훈계보다 (단기적 효과는 있겠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혹시 서로 상대에게 타당성을 제공하면서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까요?

weekly 2015-11-13 15:58   좋아요 0 | URL
제가 느끼기에 메갈리안이 `아직` 페미니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성혐오에 대해 남성혐오로 맞받아치고는 있지만, 그러면 여성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갖고 있지 못한 듯 합니다. 메갈리안들은 여전히 수컷성에 의해 정의된 암컷성을 내면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메갈리안의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몰아내자`라는 주장은 미러링이 아니라 순수하게 긍정적 주장입니다. 그러나 세계 어느 페미니스트도 이런 주장을 페미니스트적인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입니다.

메갈리안이 이 단계에 머무른다면, 말씀대로 혐오 세력 끼리의 끊임없는 혐오전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론의 주목을 받고, 새로운 회원들이 생기고, 기존 진영과의 연대가 모색되고 하다보면 새로운 운동 논리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오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즉, 여성 혐오 대 남성 혐오라는 구도가 아니라 여성 혐오의 근거 자체를 무화시키면서 혐오의 구조를 와해시키는 논리가 필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여성 혐오자들에게 여성 혐오를 정당화시켜주는 현실적 근거는 군대입니다. `남자들이 너희를 보호해 주었는데 너희들은 싸가지없게...`라는 논리겠지요. 이에 대해 아무리 `여자들은 아이 낳아 주잖아,` `그런 건 국방부에 가서 따져`를 외쳐도 그리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병역세를 자청하고 그것으로 사병들의 급여를 현실화시켜서 제대할 때 2000만원 적금 통장을 남성들 손에 쥐어 주면, 그러할 때에는 여성 혐오의 현실적 근거가 사라져서 여성 혐오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메갈리안 등의 여성 운동이 이렇게 구도 자체를 와해시키는 단계까지, 구조 자체를 초월하는 단계까지 전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전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분명 단순 대결 구도 이상이 아니지만요.

진생로얄 2015-11-21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하는 아닌데 아쉽지만 메갈리안 여성들에게는 그만한 지적 능력과 현명함은 없습니다 물론 개개인으로 봤을때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말이죠.. 악성 여혐남성들 역시 마찬가지구요 근데 대한민국이 아직 어마어마하게 남성우월주의 라고 하셨는데 주인장 연령대가 좀 있으신가보죠?

weekly 2015-11-22 07: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봤을 때 메갈리안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메갈리안이 지금의 상태를 지속하거나 더 악성의 사이트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메갈리안을 계기로 더 건강한 안목의 운동들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처럼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구요. 아마 그 운동들은 무엇보다도 진생로얄님처럼 한국이 어마어마하게 남성우월적인(이 말이 불편하시다면 남성중심적인) 사회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분들의 바로 그 인식과 싸워야 할 테지요. 메갈리안도 바로 이 인식과 싸우고 있는 것이구요.

진생로얄 2015-11-2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남성 우월주의라면 보통의 한국남성들은 꼴통 마초 X3배일텐데요.. 저는 지금 이 현상을 답답하게 바라보며 중재하는 의견을 달곤 하는 사람이죠 지금 이 현상은 좁은 의미로 보면 여혐 걸린 남성들을 훈계하는 메갈이지만 광의로 보면 사회현상 이라고 할수 있죠 그런데 의외로 고학력자들조차 협의로밖에 못 보고 있더군요

진생로얄 2015-11-2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도 방대해서 말로 해야 하는데 저는 글을 쓰기가 귀찮아서 대충 제가 타 웹에 올린 댓글이나 글만 띄워드릴테니 토론해봅시다 고학력자들조차도 대부분들 협의로, 감정적으로 보는 이 상황이 답답한 사람이거든요

http://pann.nate.com/talk/327688884#

http://pann.nate.com/talk/328112641

http://pann.nate.com/talk/321714026

http://lovewar.tistory.com/110 (펌글)

http://pann.nate.com/talk/328754772?page=8 (이 글의 댓글에 리드리스월 이란 닉넴이 제가 쓴 댓글입니다)

아 그리고 절 보고 남성중심적인 이라고 쓰셨는데 그렇게 쓰신 주인장님의 본문글에도 문제가 있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신다면 여성편향적입니다 힌트는 쌍방과실입니다


진생로얄 2015-11-2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온라인에서는 위와 같은식의 주장을 할 틈이 별로 없습니다 죄다 논리, 세밀함, 계산기 못 두드림 (플러스 요소가 있다면 마이너스 요소도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를 안함) 등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여혐 남혐의 문제가 지적 수준과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계산기를 못 두드리는 부분에 대해서 잠시 쓰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온라인에서 결혼하면 남자가 손해니 여자가 손해니 하며 따지죠 그런데 중재운동을 한다는 메갈여성들 조차도 계산기를 제대로 두드리질 못해요

결혼비용을 7:3으로 해도 여성이 다 불리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공감하겠지만 실제론 아닙니다
역으로 여성들에게 물어보죠 4년쯤 전에 한국남성 가정경제부담률 95%(대략) 이니 여성들 가사육아 안한단 얘기 하지마라 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이건 전 연령대의 수치죠 그 연령대에서는 사회적 평등은 커녕 교육의 평등조차 못 받은 여성들이 많습니다 제 어머니도 교대를 나왔지만 외할아버지에게 졸라서 나온거라더군요 외삼촌들은 한의대 나오고 영국 유학도 보냈는데 딸이라고 고졸만 하라는거 억지로 졸라서 교대 갔다더군요 그시절엔 이런일이 비일비재 했고 말 안해도 알다시피 남녀가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았었잖습니까 그러니 가정경제 부담률이 95%가량 나오죠 지금 결혼하는 연령대가 그런 수치가 나올리가 있겠습니까

결혼비용 7:3은 현재 결혼하는 연령의 통계를 내놓고선 가사분담육아는 전 연령의 통계를 들이대는건 문제가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통계는 통계란것입니다 남성이 100을 다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여성이 100 다 부담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통계가 그런 비율로 나온다는 것이죠
그러나 여성의 가사육아, 시댁 제사 등에서는 통계를 들이냈던가요? 요즘 젊은 부부는 명절에 가까운 국내나 시내 번화가에 남편과 데이트나 휴식을 즐기는 비율이 어느정도 있다는 기사도 본적이 있습니다 하는 경우 안 하는 경우 맞벌이일 경우는 남성의 총 경제활동 기간의 몇%를 행하였는지도 고려해봐야 할것입니다 무작정 요즘여성은 맞벌이니 다 불리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라서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는 집은 뭘까요 더 쓸말은 많은데 귀찮아서 줄이겠습니다
그런 경우의 수를 배제하고 남성에게만 통계를 들이대고 가사육아 제사 등 여성에게 불리한점에 대해서는 전 연령의 통계를 들이대는것은


ex) 남성 가정경제부담률 90%(전 연령 통계)가 넘으니 너희들 여성 불리한것 입 닫고 있어라 라는 식의 편파주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혹 그거 아십니까? 다음 같은 사이트는 닉넴 클릭하면 그 사람의 예전 댓글 전부 볼수있죠 여혐 댓글 단 남성들 정치관련글 댓글엔 진보성향입니다
메갈여성들도 남녀 문제에선 남성vs여성 구도지만 정치얘기할땐 상당수가 같은편이죠 그런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어쩔때는 내편, 어쩔땐 적, 그와 동시에 뼈속까지 같은편도 아닌.. 이익집단의 모임



weekly 2015-11-23 15:3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들 잘 읽어 보았습니다.

1).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진생로얄님을 남성우월주의자라고 말한 적은 없고요. 걸어주신 링크 마지막 것을 들어가 읽어 본 지금은 더더군다나 진생로얄님을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2). 진생로얄님은 메갈리아가 사회 현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지막 링크 거신 글에서 경기 불황을 예로 드셨지요? 한국이 경기 불황인 상황이니 채용할 때는 남성 우선, 해고할 때는 여성 우선, 남성 노동자의 가부장적 책임감을 이용하여 오이시디 최장 수준의 노동 강요, 이렇게 배제된 여성들의 자기 방어적 행동 패턴 등등... 한국 사회의 모순된 구조와 가부장적 구조가 어떻게 서로를 견고하게 하는지... 이런 점에서 진생로얄님과 제가 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3). 진생로얄님은 `여성 혐오/남성 혐오 문제`(표현은 이렇지만 사실은 여성 혐오의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현재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구요. 또 잘은 모르지만,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로 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여성 혐오가 만연한 가운데 메갈리안같은 반발 움직임이 없었다면 전화의 계기도 없었겠다 싶은 것이구요.

(메갈리안은 일베와 같은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운동적인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일베가 한국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철저하게 내화한 수동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메갈리안은 그 정반대입니다. 또, 메갈리안은 반박될 수 없는 대의를 가지고 대중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과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 차이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닌다든지 하는... 이런 점들이 제게는 메갈리안의 긍정적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쿵콰앙 2021-05-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ㅅㅂ 페미년이다

weekly 2021-08-02 04:45   좋아요 0 | URL
하하, 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실은, 인정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때 아닌 건국 시점 논란. 어쨌든 정리해 보자. 건국 시점에 대해, '말하자면' 기존에 두 가지 관점이 있었다.

1. 정통주의: 정통주의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한반도 유일의 정통성 있는 합법 정부다. 그러므로, 예컨대 북한은 불법 단체다.

2. 현실주의: 헌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는 입장이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미 남북 공동으로 유엔에도 가입했으니까.

아마 한국이 정상적인 나라라면 보수 세력들은 당연히 정통주의를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진보 정당은 정통주의가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고 대결주의적이고 이념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주의에 기울 것이다. 요컨대, 기존의 논란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봐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보수 진영을 자처하는 박근혜 정권이 난데 없이 수정주의를 표방하고 나선다.

3. 수정주의: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성립하고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은 1948년이니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1948년으로 보아야 한다.

무슨 말장난일까? 물론 말장난이 아니다. 수정주의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그러므로 1948년 정부 수립에 기여한 사람들만이 건국 유공자다. 그러므로 예컨대, 김구는 독립 유공자이지 건국 유공자는 아니다. 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들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아무 상관이 없다.
2). 대한민국은 무엇보다도 공산화의 위협에 저항하며 건립되었다. 그러므로 반공은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 이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3). 객관적으로 말해서 독립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독립 운동이 기여한 바는 사실상 미미하다.
4). 일제 시대를 산 거의 모든 사람은 사실상 일제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친일이라고 비판하는 인사들도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 일제의 기관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줘야 한다.  

수정주의는 하나의 관점이고 이념이다. 그러므로 토론을 통해 수정주의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은, 내 생각에는 거의 무의미한 것 같다.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이러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 뿐이다. (솔직히 한국에서라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물론, 수정주의가 먹혀 들리는 없다고 본다. 교과서를 어떻게 바꾸든 말든 말이다. 수정주의는 민족, 자주, 독립, 민주 등의 긍정적인 테제가 아니라 반공이라는 안티 테제에 기반하기 때문에 완전한 자가당착이다.

램브란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의 어떤 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미술관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램브란트의 거대한 작품 앞에 서는 순간까지 내내 충격이 빠졌었다. 왜냐하면 관객의 동선을 입구에서부터 램브란트의 그림까지 안내하는 동안 미술관의 의도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네덜란드는 이렇게 외세(스페인)와 싸워 독립을 챙취해 냈다! 라는 것이었다. 램브란트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할까? 자기 돈으로 산 군복을 입고, 자기 돈으로 산 무기를 들고, 그렇게 가지각색의 형상을 한 사람들이 민병대로 모여 서 있는 모습, 그것은 시민들의 '자발성'을,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기초가 시민의 자발성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 그림은, 나 같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의 시선 따위는 싹 무시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의 딸과 아들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네덜란드를 만들어 왔다!" 나는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노골적인 국가주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국가든 그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을 공동선의 체험, 즉 remembrance의 형태로 가공하여 그 구성원의 통합성을 유도한다. 미국의 독립 기념탑과 헌법이 그렇다. 독일의 런던 대공습 다음 날 새벽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돔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자태를 드러낸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이 그렇다, 등등.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수정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공동선의 이념은 반공이고 공동선의 체험은 한국전쟁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 반공? 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 한국 전쟁... 한국전쟁은 냉정하게 보면 동족 간에 벌인 내전이고, 냉전 시대 두 이념 진영 사이의 대리전이었을 뿐이다. 한국전쟁은 공동선의 체험이 될 수 없다.

한국도 다른 모든 나라와 똑같이 그 통합성은 시민적 자발성에서 출발한 공동선의 체험에서 올 수 밖에 없다.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그것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의 역사이고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다. 만약 이런 역사가 없다면, 또 이러한 역사를 remembrance의 형태로 사회가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단지 우연히 태어나 살게 된 땅 이상의 의미는 없게 될 것이다. 거기에 정서적 연대는 없게 될 것이다.

이른바 한국의 보수 진영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의 remembrance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Remembrance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자발성을 고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사회가 통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보수 진영들은 사회 통합의 기제로 가족주의, 가부장주의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한국의 청년들을 20만원도 안되는 급여로 착취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군복무는 공공선의 실현이 아니라 남자라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생긴 의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군복무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부모, 형제의 안녕을 책임진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국가는 단지 너가 그러한 일을 수행할 때 필요한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다치면? 그러므로, 다친 사람 책임. 끝. (독립 운동이나 민주주의 운동이 공동선의 추구라는 것은 그것이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에 오히려 역행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반한다.)

다행히도 이른바 보수 진영의 수정주의는 극소수파의 의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전히 낙관의 근거를 갖고 있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의 역사가,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가 우리에게 공동선의 체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낙관은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remembrance의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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