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 B, u.1 ~ 7
@P1: H, p.1 ~ 26
@P2: M, ~l.6.2

1. 한국어로 포스팅을 하면 짧은 시간 안에 글을 마칠 수 있지만 생각이 생각을 부르나니 말이 너무 많아진다. 영어로 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 포스팅을 자제하자니 나의 발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2. 지난 포스팅이 추천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내가 생각한 바에 다들 공감한 결과인지 무척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얼마 전에 서광사판 에티카 번역에 대해 비판을 했었다. 그것은 역자에 대한 비판이었나?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차적으로는, 한국에서 스피노자 르네상스를 주도한 학자들이 20년 동안 에티카의 번역 수준을 그 상태로 놓아 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삼차적으로는, 그러한 학자들이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놓아둔 한국의 스피노자 애호가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나의 진짜 비판은 이차, 삼차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새로운 과학 정신"은 악역으로 이름 높다. 이제 어떤 사람이 나서서 그 책보다 더 두터운 분량으로 번역 비평 보고서를 냈다고 하자. 역서와 번역 비평서 중 어느 작업이 더 의미가 있는가? 절대적으로, 악역으로 이름 높은 "새로운 과학 정신"이라는 역서가 더 의미 있다! 이 역서에 대한 번역 비평서는 하등의 의미도 없다. 이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윤리라는 것이 있다. 힘든 일을 한 사람과 그에 편승한 사람을 동등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누가 힘든 일을 하겠는가? 어떤 책을 번역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책에서 오역, 악역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특정 개념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나는 후자의 두 사람은 사기꾼에 준한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그리고 유일하게 가능한 번역 비평은 자신이 직접 번역서를 내는 것 뿐이다. 자신을 비판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비평의 자격을 주는 사회는 비윤리적인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스피노자 저작의 서명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저작을 직접 번역한 사람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스피노자의 어떤 개념에 대한 한국어 단어를 제안하고 싶으면 직접 에티카를 번역하여 그 속에서 하라. 그럴 여유가 없으면 그냥 닥치고 있으라. 입을 열고 싶으면 해당 저작을 번역하라. 이게 공정한 게임이다. 남이 완성해 놓은 작업물 위에 기생하면서 우월한 척 하지 말자. 그런 식으로 한국의 문화가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에티카의 라틴어 원전에서의 번역이 20년 전에 나왔다. 그리고 최근에 스피노자 애호가 한 분이 영문에서 번역을 새로 내놓았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은 차라리 영문에서 번역한 것이 이해하기에 낫다고 그 책을 구해 보려 한다. 이것이 문화의 진전인가, 퇴행인가? 이것이 퇴행이라면 누구 책임일까? 스피노자를 팔아먹은 젊은 학자들 책임일까? 아니다. 그에 휘둘리고 있는 나와 같은 일반 독자들 책임이다. 이명박의 책임이 아니라 그를 뽑아준 국민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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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03 2012-07-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월 1일자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번역을 시도나마 해 본 사람입니다. 번역이 한 작품을 쓰는 것 보다 더 어렵단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축자역서에 질려 의역서를 선호했기에 님이 가독성을 보고 책을 고른다는 말 십 분 이해가 갔습니다. 예전에 번역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번역하시는 분들이 주로 축자역을 바탕으로 번역하시더라구요. 하지만 무조건 가독성을 선호하다 보면 본래의 뜻이 퇴색되고 번역서의 특색이 사라지는 것을 봤기에 축자역, 즉 원문의 뜻을 살려 번역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가독성과 축자번역의 밸런스를 이룰 때 님이 말한 박종현 교수님의 원문에도 충실하며 가독성도 있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번역서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영어본 철학서적은 한국어 번역서에 반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것에 대해 저는 단순히 독어와 영어의 문법의 유사함 때문인줄 알고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란 님의 의견이 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주 님 블로그에 들려 님의 철학적 사유 읽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글을 남겨 약간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네요. 그래도 님의 글에 많은 부분 동감하고 있기에 용기를 내 댓글 남기고 갑니다^^

weekly 2012-07-03 19:26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예전에 번역을 하셨었다니 제가 번역에 대해 첨언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인 듯 싶습니다. 철학 관련 쪽이시겠지요? 저도 다음 학기부터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전공인으로 윤리를 하나 걸머지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서광사판 에티카는 나쁜 번역이다, 라고 말할 자유를 잃겠지요. 그럴려면 그걸 번역해 내야 할테니까요. (이런 걸 의무라고 이름붙여야 할지 자유라고 이름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비전공인들은 제게, 그거 당신 아이디어인가? 출전이 정확한가? 그 책 전부 읽고 나서 하는 소리인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할 의무를 갖게 되겠지요. (이걸 의문을 제기할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제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전문가들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게 정말 불만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읽지도 않은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전문가들도 많다죠? 이건 치명적인 독자 모독인데...-.-) 저는 나름대로 의무감이 투철한 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영국의 어떤 교수님에게 메일을 써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진지한 답장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최대한 예의를 기울인 것인데, 저도 나중에 이런 예의바른 비전공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 don't think your paper works. First of all, comparing the relativity of colours to Einstein's special relativity theory is just nonsense... When you say "we are able to make primitive spatial and temporal judgements without a ruler or a clock", you just forget that when you feel hungry, you have your clock in your stomach.)

(댓글이랍시고 제 얘기만 했네요...-.-)

120703 2012-07-04 18:2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 또한 한국 전문가들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해 온 저에겐 표절행위에 민감한 서양문화가 당연시 되는데요. 가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 죄책감없이 모방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윤리가 전공이시군요. 스피노자 에티카에 대한 논문을 쓰실 예정인가봐요. 철학서적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수학하게 되시다니 철학도라면 부러워 할만한 공부를 시작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weekly 2012-07-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댓글을 너무 띄엄띄엄 썼나 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가 스피노자이긴 한데 대학원에서는 비트겐쉬타인으로 논문을 쓸 것 같습니다(1년 짜리 석사 과정에서 스피노자를 주제로 삼는 건 무모할 것 같아서요).

앞 댓글은 전문가 집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일반 대중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걸 지적한 것이랍니다. 알라딘에도 자신이 읽지도 않은 책을 한번에 십여권, 이십여권씩 죽 추천하는 교수님이 있더라구요. 이럴 때 가장 상식적인 반응은 "직접 읽어 보고 추천하시는 거예요?" 라는 댓글일 텐데요... 한국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네요...-.-

저는 이런 걸 전문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 대중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역 지적에 있어서도 공개적으로 직접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프랑스어 시제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인신공격 하는 경우까지 봤는데요. 한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의 역서에서 오역, 악역을 발견했다면 역자나 출판사에게 먼저 알려서 해당 역자나 출판사가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말입니다...-.- 이 분들이 이러는 건 물론, 공명심이고 독자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싶어서일 겁니다. 독자 대중들은 그렇게 계속 휘둘리고 있고요. 심지어는 제대로 된 역서 하나 안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번역을 비평하는 전문가 분도 계시는 데, "직접 번역은 해보셨어요?"라는 공박을 별로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자 대중이 너무 너그러운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휘둘리는 거구요...-.-

안타까운 건, 전문가 집단들이 무혈입성식으로 얻은 권력을 이용해 독자 대중을 가지고 논다는 걸 겁니다. 예전에 서광사판 에티카를 읽다가 놀라서 대학원 다니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첫 몇 페이지의 극악한 번역 상태에 대해서 얘기하다 제 풀에 제가 나가 떨어졌죠. 지적할 게 너무 너무 많아서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서광사판 에티카는 그야말로 테러야~" 이러더군요. 전공자들은 서광사판 에티카의 번역 상태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개적으로 지적하든, 혹은 역자나 출판사에게 알려서든 말이죠. 번역 비평을 하려면 이런 것을 해주어야 하는 데 말입니다. 역자의 학계 위치를 생각해서 문제 지적을 자제했다면 비겁한 거죠. 소장 학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시제 문제까지 집어 내는 분들이니까요... 저는 이 전문가 집단 사람들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어판 에티카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일반 독자에게 버젓이 서광사판 에티카를 추천하고 있으니까요(개념어 번역에 있어서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라틴어에서 직접 옮긴, 오역이 별로 없는 잘된 번역이라는 식으로). 저는 이런 걸 사기에 준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제가 앞선 댓글에서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 건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허다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으로 1년을 공부하던, 그 이상 공부를 계속할 기회를 갖게 되던, 이런 사기꾼은 절대 되지 말자는 자기 다짐을 한 것이고요. 전문가 집단은 지식 대중과 지식 사이의 간격을 좁혀 주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의 몇몇 지식 집단들은 그 사이의 골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미친 의사가 환자를 계속 받기 위해 환자에게 병균을 주사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암튼 건승하시구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얘기도 나누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축하 말씀 감사하구요~^^)

qualia 2013-05-2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eekly 님의 핵심적 진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weekly 님의 위 의견은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격론자들/쇼비니스트들도 그들 주장의 핵심적 진의는 올바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이 예외없이 비난 받는 까닭은 앞뒤 정황/컨텍스트/문맥 따위를 모두 거두절미하고 호전적으로 나대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만의 편협한 윤리도덕률에만 기대어 물불 안 가리고 함부로 첨벙대고 싸질러대기 때문입니다.

weekly 님의 논리대로라면, (극단적인 비유지만) 영화평론가 · 음악평론가 · 문학평론가는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겠습니다. 영화 제작자나 영화감독, 음악가, 소설가, 시인 등등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해야 될 판이니까요. 물론 이런 역비판은 (번역비평 자격 운운하는) weekly 님의 지나친 과격성을 상기시키고 자가당착적 모순성을 드러내기 위한 풍자일 뿐임을 아실 것입니다. 분석철학 혹은 심리철학 하시는 듯한데요. 잘 아시겠지만, 그쪽 동네는 치밀한 논증의 싸움판입니다. 자기 주장 · 논증에 앞뒤가 맞지 않는 뻔한 오류를 저지르는 논증 실력으로는 뜨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번역비평에서의 “개념어” 오역 비평은 단순한 자구상의 오류 지적과 교정에만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weekly 님이 탁월하게 지적했다시피) 애플(Apple)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외형적 꾸밈새와 조립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 소재의 속성/성질/물성에 대한 철저한 탐구에 기반해 혁신적 기능/성능을 구현하는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것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념어” 오역 비평은 대상 개념어(들)의 총체적 측면을 분석 · 검토하고 해당 학문분과나 특정 문맥에 맞게 재정의하는 심층적 작업입니다. 특히 한국 같이 인문학술용어, 철학용어, 과학기술용어, 의학용어 등등에서 학제간 공통용어들이 주먹구구식, 중구난방식으로 통일되지 않은 채 제각각 난립하고 있는 심각한 경우에는 개념어에 대한 오역 비평이 매우 시급한 실정입니다. 각 학문분과에서 드러나는 전문용어의 비통일성, 개념어의 난맥상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번역을 어럽게 하고, 번역서 읽기를 어럽게 하고, 학문간 소통/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거의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수들, 학계의 자칭타칭 지식인들 중 많은 수가 일단은 “밥먹구 합시다”가 기본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번역비평은 “원작의 번역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훨씬 더 힘들고 심층적인 작업입니다. 번역비평 직접 해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weekly 님은 번역비평자들을 비난하면서 “편승”, “기생”, “비평의 자격”, 심지어 “사기꾼” 운운하시는데요. 하지만 weekly 님의 저 과격성을 제거하고 핵심 요지만 새겨들으면 그런대로 이해할 만은 합니다. 그러나 weekly 님의 쇼비니스트적 분개/비난 때문에 선의의 번역비평가가 뒤집어쓰게 될 누명을 생각해본다면, weekly 님이 너무 지나친 오류성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이런 비판성 댓글을 써올립니다만, 살펴보건대, weekly 님과 많은 주제/논점/관심사에서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 적이 반가웠더랬습니다. 앞으로 어떤 더 많은 소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일입니다. 비판적 기질은 정말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기질입니다. 흔히 우리를 가리켜 단일민족이라고 하죠. 그래서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모두들 비판을 금기시하는 혈연사회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사돈의 팔촌 격으로 서너 다리만 건너면 혈연 · 지연 · 학연 따위로 연결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누가 오류를 저질러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고 미덕입니다. 이것이 때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비판 부재, 비평 부재 사회란 것입니다. “비난”은 난무합니다만...

영국에 나가 계시니 밖에서 조국을 한층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실 수 있겠습니다. 논문 쓰시고 학위 하시느라 매우 바쁘고 힘드실 텐데, 좋은 말씀 못 드리고 딴지만 걸었으니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성과 거두시고 건승 ·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2013-05-25 16:03)

weekly 2013-05-26 08:1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제 블로그 글을 읽어보게 되는군요. 예전 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역시나 곤혹스러운 일이구요...:)

말씀대로 제가 분명히 지나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번역비평이라는 분야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번역비평'이라는 말을 아예 언급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번역비평 일반에 대한 것은 절대 아니고, 번역에 대한 특정한 형태의 논의들 중 극소수 사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개념어 번역 비평을 매우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저는 개념어 번역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몫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 철학의 어떤 개념어에 대한 한국어 번역 제안이나 그에 대한 비평은 무엇보다도 하이데거 연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념어의 학제적 사용 추이 등에 대한 연구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 비평자가 피아노 연주자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가질 필요는 분명 없을 것입니다. 연주 능력과 그에 대한 비평 능력은 별개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를 들어 하이데거 철학 개념어에 대한 한국어 제안에 대한 비평은, 그 자체가 철학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평자가 번역 제안자와, 적어도 동일한 수준의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심도를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주목하는 것은 번역비평이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 즉 정치입니다. 메타담론은 '평가적'이기 때문에 매우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매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그 일부 연구자들 중엔 대중적으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분도 있고,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도 있죠. 그래서 특히나 문제가 된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예를 들어 로자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네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생산적인 분이잖아요?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저의 과격한 언사는 이런 분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 분 글 중 제 관심사인 '청갈색본' 번역비평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딱 문제 페이지만 읽고 쓴 인상비평이더군요. 저는 일반 독자들이 이런 비평글을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번역비평을 표제로 한 글이 이런 글이어서는 안된다고 느낍니다. 번역비평에 대한 저의 그릇된 인식은 아마도 이런 글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비판의 말씀 남겨 주신 것에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종종 말씀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