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어학원 수업을 받았다. 아무 준비도, 심지어는 책값이나 시간표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학원에 갔다가 그 댓가를 좀 치루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 기차표를 잘못 끊었고, 집에 올 때도 기차를 잘못 탔다. 완전히 엉망인 하루. 집에 돌아와서 밥 먹고 누웠다가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죽음과 같은 잠이었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먹은 건 샌드위치 두 조각뿐이었군...

수업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강사의 말이 그런대로 들린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꽤 많은 말을 떠듬 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어만 쓰려고 한다. 한국 사람들하고도.

예를 들어 신체의 성기 부분은 또 다른 '나'를 상징한다. 그 '나'는 나의 의지와 다른 독자적인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또한 분명히 나다. 또 예를 들어 왼손은 또 다른 '나'를 상징한다. 그것은 서툰 유아적인 세계의 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예를 들어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또 다른 '나'를 상징한다. 그것은 서툰 유아적인 나를 상징하는 동시에 원초적인 나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는 영어에 서툴기 때문에 짧은 단어와 문장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짧은 단어는 좀 더 원초적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사고가 좀 더 원초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I want to make love with you."라고 말하게 되지 않는다. "I want to fuck you."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fuck이라는 단어는 짧고 원초적이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그런 원초적 상태 안으로 나를 유인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던 것일 테다. 그 상태 안에서는 make love보다는 fuck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런 단어가 나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리고 fuck이란 단어가 달고 있는 금기에 대한 무시에 적극 호응하고 싶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피드백.

이런 식의 사색은 가치에 대한 그간의 나의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길게 쓰지는 않기로 한다. 한국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라는 나 자신의 압박을 심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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