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를 다 읽었다. 재미있다. 그 재미의 일단은 라이프니츠를 코메디언으로 만드는 데서 나온다. 저자가 묘사해준 라이프니츠에서 "깡디드"의 팡글러스 교수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저자는 라이프니츠의 외모를 여러 곳에서 우스갯 거리로 써먹는다. 나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결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어쩌면 라이프니츠 전공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든 저자의 결론에 따르면 라이프니츠의 철학이란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라는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서 벌인 한판 희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본질적으로 스피노자주의자인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태생을 거부하기 위해 벌인 자기 분열의 자취이거나.
스피노자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스피노자에 대한 좋은 입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스피노자가 3차원의 철학자라면 매튜 스튜어트는 그 중 1차원 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스피노자에게서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 외면한 부분에서 저자 역시 독자성을 고집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 부분 중 하나는 물론 "주체"다. 스피노자와 근대성에 대해 말하려면 그 상위 카테고리는 신이 아니라 주체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주체 개념은 근대성의 주체 개념과 융합될 수 없다. 아마 많은 저자들이 이 점에 대해 논하여 놓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내가 스피노자에게서 찾는 현대적 의의 중 하나도 이러한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저자의 결론 부분은 수사의 향연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은 재미있고 얻는 바도 많다. 나는 이곳 저곳에서 "끙" 소리를 내거나 "앗하!"하는 감탄을 하였다. 이런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한번 더 읽고 리뷰에 올릴 생각이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라는 제목에 딴지 하나 걸자면 몰래 만난 사람은 스피노자가 아니라 라이프니츠다.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날 이유가 없었다. 제목을 저렇게 뽑은 이유는 스피노자가 라이프니츠보다 브랜드 파워에서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데카르트보다 더. 어쩌면 다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