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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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악마의 말이 너무 찰떡같이 들려 따라야 할듯 헷갈리고 말아 버립니다. 악마인주제에 조카인 웜우드를 사랑하고 세심하게 가르치는 스크류테이프에게서 인류애를 느길 뻔 할 정도이니까요.
악마가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되 무시해버리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인간의 선한면과 악한면을 속속들이 알고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는 악마의 가르침이야말로 따르기 쉬울뿐더러 벗어나기도 어렵겠지요. 늘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악마를 내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파악하고 이용한다면 인생이 더욱 즐거울 듯 합니다.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지요.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명백한 것을 무서워하며 소홀히 여기는 인간의 특성은 정말 쓸모가 있지.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그들은 악마가 자기네 마음 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불어넣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과업은 그들의 마음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냐.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서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열 가지도 넘게 가정해 놓은 서로 다른 운명들을 진짜로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그런 일을 하려고 덤비는 인간들에게는 원수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재 실제로 겪고 있는 고난이라면야 아무리 두렵다 해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뿐 아니라 대개는 원수도 직접 개입해서 도와 주지만 말이지.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불을 더 붙여야 한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 주마.

쾌락은 감소시키고 그에 대한 갈망은 증대시키는 게 우리가 쓰는 방식이야.

그렇게만 되면 내가 언젠가 맡았던 환자가 이 곳 지옥에 도착했을 때처럼 네 환자도 이렇게 말하게 될걸. "이제 보니 나는 해야 할 일도 하나 못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못 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 버렸구나."

인간은 달콤한 죄도 못 되는 것,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왜 하는지도 모를 것에 미적지근하니 관심을 보이다말다 하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어렴풋한 호기심을 채워 보다가, 손장난이나 발장난을 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곡조를 흥얼거리다가, 혹은 흥미로운 욕망이나 야망이 자극된 것이 아닌데도 일단 우연히라도 발을 디디고 나면 도저히 빠져 나오기 힘든, 그 길고도 어둑한 몽상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인생을 낭비한다. 인간이란 그만큼 혼미해지기 쉬운 약한 족속들이야.

사실 가장 안전한 지옥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경사도 완만하고 걷기도 쉬운데다가, 갈랫길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취향과 충동은 원수가 준 원재료이자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취향과 충동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로선 먼저 한 점을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를 제쳐놓은 채, 세상의 기준과 관습과 유행에 따르게 하는 편이 좋은 게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정말 중요한 건 어떤 자질에 대한 진실보다 평가를 더 중요시하게 함으로써, 미덕의 싹이 나타나는 족족 거짓과 가식의 요소를 그 중심에 주입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통해 수천 명에 이르는 인간들이 ‘겸손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못난이라고 믿으려고 애쓰며, 명석한 남자가 스스로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뻔히 사실과 다른 걸 믿으려고 애들을 쓰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가 있나. 게다가 우린 인간이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저 자신만 생각하도록 붙들어 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너는 환자가 겸손의 진정한 목적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특정한 형태의 의견(즉 낮은 평가)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라구. 환자도 물론 몇 가지 재능쯤은 가지고 있겠지. ‘겸손이란 내 재능의 가치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수준보다 낮게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꼭꼭 박아 주거라.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유럽 전체를 위아래로 아무리 훑어보아도 탐식에 대해 설교한다거나 탐식 때문에 가책을 느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지. 이게 다, 많이 먹는 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맛있는 걸 찾아먹는 데 욕심을 부리도록 총력을 집중한 결과다.

. 다른 전선에서도 물론 최선을 다해 똑바로 일해야겠지만, 탐식이라는 영역에 간간이 침투하는 것도 게을리하지는 말아라. 환자는 남자다 보니 ‘그저 내가 원하는 건’이라는 위장술에 걸려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에는 허영심의 도움을 받아 탐식가로 만드는 길이 있지. 스스로 음식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고 믿게 하고, 스테이크를 ‘제대로’ 만드는 유일한 식당을 발견했다고 으스대게 만들거라. 처음엔 허영심으로 시작했다 해도 결국에는 습관으로 굳어지는 법이다.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 ─ 샴페인이든 홍차든 생선요리든 담배든 아무거나 ─ 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의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조리 네 손 안에 들어올 게다.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자기 재산에서 억지로 떼어 주어야 하는 부담스런 세금으로 여기게 하고, 종교적 의무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너그러운 기부금으로 여기게 하거라. 단, 이런 차액들을 제하기 전의 전체 시간은 ‘어떤 불가해한 의미에서 내가 타고난 개인적 권리’라는 믿음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부추길 만한 가치가 있지. 인간들은 노상 제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천국에서 듣든 지옥에서 듣든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다. 인간이 그런 우스운 소릴 계속 떠들게 하는 게 우리 일이야.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라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수법이야.

우리는 먹는 즐거움만 따로 부풀려 탐식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변화가 주는 자연스런 즐거움만 따로 뒤틀어 완벽하게 새 것만 원하는 욕구로 바꾸고 있다.

명심하거라. 중요한 것은 공포 자체가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야. 공포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닐 뿐더러, 보기엔 즐거워도 소득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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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도피하는 사람은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그냥 도피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울면서 맞서는 사람들이 늘 도피를 열망한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차마 그것을 결행하지 못했다. 머물기의 괴로움. 이것이 내 삶의 핵심 주제였다.
발목을 붙잡는 것은 그때그때 달랐다. 물러서면 안 된다는 세상의 규칙, 그것을 납득하는 나의 오성. 넘쳐야 마땅한 책임감.
도피 이후의 대책 없음. 남겨지는 사람들의 슬픔 같은 것들. 그래서 늘 우물쭈물 맞섰고, 자주 패배했다.

누가 이 일 안하면 벌을 내린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내 발로 걸어들어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까,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들. 일은 많고, 힘은 달리고, 그렇다고 억만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는 새끼들이 악악거리고. 보람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그런 순간들.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이 미워 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걸. 완전히 처음으로는 아니더라도, 몇 걸음 정도는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걸. 그렇게 몇 걸음씩 되돌아 걷다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될 수가 없다는 걸.

미학의 정점에는 윤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윤리적이지 못한 존재들이 그래도 윤리적이고자 온 힘을 쥐어짤 때, 부끄럽기 싫어서, 차마 부끄러울 수 없어서, 눈질끈 감고 옳은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어떤 숭고의 순간들을나는 사랑한다.

어떤 곳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기 위해선 그곳에 한 번은 다녀와봐야 한다. 별것 없더라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 나는 베토벤에게 다녀와봤다. 좋았다. 내가 가여울 때, 이제 나는「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한다. 연주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능력 중 하나는 자신을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고정된 악인이 아니다.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는말이 맞는 말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꿀 결심을품지 않기 때문이고, 달라질 결심을 품지 않는 것은 굳이 힘들게 달라져봐야 얻을 실익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 좋은사람이 되는 일의 아름다움을 잠깐이라도 엿보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빚어내는 변화의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겪게 된다면, 생각을 고쳐먹게 될 것이다. 자기가 속한 작은 곳에서부터, 가정과 학교, 직장, 나 사는 마을에서부터 옳지 않은 것을 보면정색해보자. 뒤에서만 쑥덕공론하다가 한 번에 보내버리지 말고, 시시때때로 정색하면서도 서로에게 관대했으면 좋겠다. 더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서로가 서로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그 무한의 숭고,영겁의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알량한 도덕군자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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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란 거지. 뭐, 맞는 말이긴 해. 손잡이를 쥔 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처음엔 어떤 창이 자신을 파고든 건지 모호해.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특히나 여자는 더 그래.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 그래서 일단 전반적으로 좋거나 싫어지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 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꿈같은 사랑이란 것도 별다른 게 아니지.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 없는 서로를... 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지. 왜,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한 줌의 드라마도 없이... 어디 좋은 곳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어딜 가봐야 눈에 띄지도 않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이..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평균을 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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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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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어찌 할 줄 몰랐다.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들과 달리, 얼굴 특징이 훼손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은 연민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얼굴이 훼손된 사람은 거부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감정이나 의도를 담는 그릇으로써 얼굴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언어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면목이 있다>나<면목이 없다>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누군가가 믿음직하다면, <얼굴값>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거짓말쟁이는 <철면피>,
<뻔뻔한 얼굴>, <두 얼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워서 침 뱉기의 영어 표현은 <제 코를 잘라 자기 얼굴을 망가뜨리기cut off hisnose to spite his face〉인데 현실과 비유, 양쪽 차원에서 걸맞은 말이다.

처음부터 길리스는 병사의 얼굴 손상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능력을 드러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환자들을 그저 군번 숫자로만 보지 않는 <훌륭한 마음씨와 강철 같은 신경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했다. 33 올더숏에서 길리스의 치료를 받은 병사의 형제인 D. M. 콜더컷 스미스는 그 의사가 <친절한 인간적인 면모로가득하다고 기억했다. 34 레지널드 에번스 중사도 <평범한 병사가장교 못지않게 간호를 받았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길리스가 <내 상처에 직접 붕대를 감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내가 괜찮은지 밤에 보러 왔다>고 썼다. 에번스는 훗날 자신이 비교적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은 길리스의 재건 치료가 성공한 덕분이라고 했다. <내 행복의 많은 부분은 그 덕분이다.>

상처는 전쟁터에서만 입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길리스가 그렇게 깊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병원에서 회복 중인 병사들의 호감을 얻은 것은 그의 개구쟁이 같고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이었다. 그곳에 환자로 있었던 한 사람은 이렇게 회고했다. <길리스 소령 자신이 《소년 중 한명》이었다. 그는 그들의 언어로 말했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 길리스는 환자들이 몇 달, 몇 년을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사기를 잃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병사의 얼굴을 재건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부상으로 생긴 심리적 손상을 치료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신체 손상이 잠재의식에 입히는 손상은 언제나 치료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시도하지 않은 것은아니었다.

성형 수술의 기본 원리가 옳았음을보여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사라진 조직을 채우는 첫단계는 정상적인 위치에서 정상적인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는것이었다>라고 썼다. <벨 사병의 사례에서는………… 조직을 원래의 정상 위치로 돌려보내어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다.>그는 이것이 낯선 신기술의 주춧돌이라고 믿었다.

길리스는 이렇게 썼다. <좋은 양식을갖추면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술 양식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는 성격과 훈련의 표현이다. 능숙함과 부드러움의 지표다.> 해럴드 길리스가 시드컵에서 계속하여 보여 주었듯이 그 성형외과 의사는 단지 유능한 장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술가였다.

<재건 수술은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이고, 미용 수술은 정상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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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뾰족하고 거친 이야기를 어쩜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위악을 부리고 있으면서도 눈은 시옷자로 기울어져 애처로운 빛을 보일 듯 합니다. 나보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나 나보다 나을 듯한 사람에게서도 모두 나를 마주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금 필요한 이백원의 가치를 그가 여직껏 쓰거나 모아온 재산과 같은 단위로 헤아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 무렵엔 참으로 당당한 사람이 귀했다. 그녀가 거침없이 잘난 척하는 게 밉살스럽다가도 문득 부럽고 보배로워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일상의 바퀴에 기름을 치는 일은 하나도 표가 안 나서 남들은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여간 중요한 씀씀이가 아니고, 물론 안 아까워요

우리는 마치 새끼를 낳고는 탯덩이를 집어삼키고 구정물까지 싹싹 핥아먹는 짐승처럼 앙큼하고 태연하게 한 죽음을 꼴깍 삼킨 것이 었다.

사람이 죽으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한다. 눈물이 마르면 침을 몰래몰래 발라가며, 기운이 빠지면 박카스를 꼴깍꼴깍 마셔가며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고, 조상객을 치르고, 노름꾼을 치르고, 거지를 치르고, 복잡하고 복잡한 밑도 끝도 없는 여러 가지 절차를 치르고 복잡한 절차 때문에 웃어른과 아랫사람과 말다툼도 치르고, 차례에 제사에 또 제사를 치른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은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지고 진저리가 나고, 빈털터리가 되고 지긋지긋해지면서 죽은 사람에게서까지 정나미가 떨어진다. 비로소 산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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