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도피하는 사람은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그냥 도피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울면서 맞서는 사람들이 늘 도피를 열망한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차마 그것을 결행하지 못했다. 머물기의 괴로움. 이것이 내 삶의 핵심 주제였다. 발목을 붙잡는 것은 그때그때 달랐다. 물러서면 안 된다는 세상의 규칙, 그것을 납득하는 나의 오성. 넘쳐야 마땅한 책임감. 도피 이후의 대책 없음. 남겨지는 사람들의 슬픔 같은 것들. 그래서 늘 우물쭈물 맞섰고, 자주 패배했다.
누가 이 일 안하면 벌을 내린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내 발로 걸어들어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까,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들. 일은 많고, 힘은 달리고, 그렇다고 억만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는 새끼들이 악악거리고. 보람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그런 순간들.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이 미워 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걸. 완전히 처음으로는 아니더라도, 몇 걸음 정도는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걸. 그렇게 몇 걸음씩 되돌아 걷다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될 수가 없다는 걸.
미학의 정점에는 윤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윤리적이지 못한 존재들이 그래도 윤리적이고자 온 힘을 쥐어짤 때, 부끄럽기 싫어서, 차마 부끄러울 수 없어서, 눈질끈 감고 옳은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어떤 숭고의 순간들을나는 사랑한다.
어떤 곳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기 위해선 그곳에 한 번은 다녀와봐야 한다. 별것 없더라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 나는 베토벤에게 다녀와봤다. 좋았다. 내가 가여울 때, 이제 나는「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한다. 연주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능력 중 하나는 자신을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고정된 악인이 아니다.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는말이 맞는 말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꿀 결심을품지 않기 때문이고, 달라질 결심을 품지 않는 것은 굳이 힘들게 달라져봐야 얻을 실익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 좋은사람이 되는 일의 아름다움을 잠깐이라도 엿보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빚어내는 변화의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겪게 된다면, 생각을 고쳐먹게 될 것이다. 자기가 속한 작은 곳에서부터, 가정과 학교, 직장, 나 사는 마을에서부터 옳지 않은 것을 보면정색해보자. 뒤에서만 쑥덕공론하다가 한 번에 보내버리지 말고, 시시때때로 정색하면서도 서로에게 관대했으면 좋겠다. 더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서로가 서로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그 무한의 숭고,영겁의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알량한 도덕군자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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