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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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악마의 말이 너무 찰떡같이 들려 따라야 할듯 헷갈리고 말아 버립니다. 악마인주제에 조카인 웜우드를 사랑하고 세심하게 가르치는 스크류테이프에게서 인류애를 느길 뻔 할 정도이니까요.
악마가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되 무시해버리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인간의 선한면과 악한면을 속속들이 알고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는 악마의 가르침이야말로 따르기 쉬울뿐더러 벗어나기도 어렵겠지요. 늘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악마를 내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파악하고 이용한다면 인생이 더욱 즐거울 듯 합니다.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지요.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명백한 것을 무서워하며 소홀히 여기는 인간의 특성은 정말 쓸모가 있지.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그들은 악마가 자기네 마음 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불어넣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과업은 그들의 마음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냐.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서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열 가지도 넘게 가정해 놓은 서로 다른 운명들을 진짜로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그런 일을 하려고 덤비는 인간들에게는 원수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재 실제로 겪고 있는 고난이라면야 아무리 두렵다 해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뿐 아니라 대개는 원수도 직접 개입해서 도와 주지만 말이지.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불을 더 붙여야 한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 주마.

쾌락은 감소시키고 그에 대한 갈망은 증대시키는 게 우리가 쓰는 방식이야.

그렇게만 되면 내가 언젠가 맡았던 환자가 이 곳 지옥에 도착했을 때처럼 네 환자도 이렇게 말하게 될걸. "이제 보니 나는 해야 할 일도 하나 못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못 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 버렸구나."

인간은 달콤한 죄도 못 되는 것,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왜 하는지도 모를 것에 미적지근하니 관심을 보이다말다 하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어렴풋한 호기심을 채워 보다가, 손장난이나 발장난을 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곡조를 흥얼거리다가, 혹은 흥미로운 욕망이나 야망이 자극된 것이 아닌데도 일단 우연히라도 발을 디디고 나면 도저히 빠져 나오기 힘든, 그 길고도 어둑한 몽상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인생을 낭비한다. 인간이란 그만큼 혼미해지기 쉬운 약한 족속들이야.

사실 가장 안전한 지옥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경사도 완만하고 걷기도 쉬운데다가, 갈랫길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취향과 충동은 원수가 준 원재료이자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취향과 충동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로선 먼저 한 점을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를 제쳐놓은 채, 세상의 기준과 관습과 유행에 따르게 하는 편이 좋은 게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정말 중요한 건 어떤 자질에 대한 진실보다 평가를 더 중요시하게 함으로써, 미덕의 싹이 나타나는 족족 거짓과 가식의 요소를 그 중심에 주입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통해 수천 명에 이르는 인간들이 ‘겸손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못난이라고 믿으려고 애쓰며, 명석한 남자가 스스로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뻔히 사실과 다른 걸 믿으려고 애들을 쓰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가 있나. 게다가 우린 인간이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저 자신만 생각하도록 붙들어 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너는 환자가 겸손의 진정한 목적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특정한 형태의 의견(즉 낮은 평가)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라구. 환자도 물론 몇 가지 재능쯤은 가지고 있겠지. ‘겸손이란 내 재능의 가치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수준보다 낮게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꼭꼭 박아 주거라.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유럽 전체를 위아래로 아무리 훑어보아도 탐식에 대해 설교한다거나 탐식 때문에 가책을 느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지. 이게 다, 많이 먹는 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맛있는 걸 찾아먹는 데 욕심을 부리도록 총력을 집중한 결과다.

. 다른 전선에서도 물론 최선을 다해 똑바로 일해야겠지만, 탐식이라는 영역에 간간이 침투하는 것도 게을리하지는 말아라. 환자는 남자다 보니 ‘그저 내가 원하는 건’이라는 위장술에 걸려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에는 허영심의 도움을 받아 탐식가로 만드는 길이 있지. 스스로 음식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고 믿게 하고, 스테이크를 ‘제대로’ 만드는 유일한 식당을 발견했다고 으스대게 만들거라. 처음엔 허영심으로 시작했다 해도 결국에는 습관으로 굳어지는 법이다.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 ─ 샴페인이든 홍차든 생선요리든 담배든 아무거나 ─ 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의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조리 네 손 안에 들어올 게다.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자기 재산에서 억지로 떼어 주어야 하는 부담스런 세금으로 여기게 하고, 종교적 의무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너그러운 기부금으로 여기게 하거라. 단, 이런 차액들을 제하기 전의 전체 시간은 ‘어떤 불가해한 의미에서 내가 타고난 개인적 권리’라는 믿음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부추길 만한 가치가 있지. 인간들은 노상 제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천국에서 듣든 지옥에서 듣든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다. 인간이 그런 우스운 소릴 계속 떠들게 하는 게 우리 일이야.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라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수법이야.

우리는 먹는 즐거움만 따로 부풀려 탐식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변화가 주는 자연스런 즐거움만 따로 뒤틀어 완벽하게 새 것만 원하는 욕구로 바꾸고 있다.

명심하거라. 중요한 것은 공포 자체가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야. 공포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닐 뿐더러, 보기엔 즐거워도 소득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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