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 뮤진트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뒤에서 이러고 있어요? 애디가 말했다.

사람들 눈에 덜 띌 것 같아서요.

나는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어차피 다 알게 될 거고요. 누군가가 보겠죠. 앞쪽 보도를 걸어 앞문으로 오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오면 마치 우리가 몹쓸 짓이나 망신스럽고 남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 아빠는 사실 애디 무어를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네 말이 맞다.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바로 그게 내가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는 요인이란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스스로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 봤더니 온통 말라죽은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그 작가가 우리 둘에 대한 책도 쓸 수 있겠네요. 그럼 어쩔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책에도 나오고 싶지 않아요. 루이스가 말했다.

그래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죠. 우리 나이에 이런 게 아직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 변화도 흥분도 없이 모든 게 막을 내려버린 게 아니었다는, 몸도 영혼도 말라비틀어져버린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호수 난간에 날계란만한 전구를 줄에 끼워 굼틀굼틀 꾸며놓았다. 그것이 검은 호수에 비쳐 흔들리는 야경이 말할 수 없이 좋아 보였다.

대체 스위스 철도는 빙빙 돌든지, 언덕을 오르든 지, 10분 20분씩 굴속으로 들어가든지, 경색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문인 묵객을 상대로 하는 만큼 산촌이고 수변 마을이고 이르는 곳마다 호텔이 무수하고, 등산 열차가 곳곳에 보인다. 기차선로의 좌우 언덕은 솔로 씻은 듯이 잔디가 고르고, 군데군데 목초지는 말뚝 박고 목재를 좌우로 아무렇게나 걸쳐서 지은 것이 향촌의 흥취를 풍긴다. 붉은 수건을 쓰고 조선치마같이 긴 치마를 입은 농가 부녀들이 나무 위에 올라 앉아 과일을 따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좁은 길의 돌과 흙이 햇빛에 비쳐 부서지는 흰빛도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하던 진경이었다.

베를린은 전차, 버스, 택시, 지하철이 쉼 없이 왕래하여 대도시의 기운이 농후하였다. 교통경찰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통행을 안내하는데, 4거리에는 반드시 공중이나 지하에 전기 신호등을 달아놓아 붉은 불이 나오면 진행하고 푸른 불이 나오면 정지하게 되어 있다. 매우 합리적이고 바라보기에도 경쾌하였다. 모든 것이 과학 냄새가 난다.

흥겹게 노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데 알 수 없는 적막과 슬픔이 머릿속을 채운다. 눈을 감고 먼 고국의 풍경을 그려보노라니 소리 없는 한숨이 목구멍을 감돈다.

그 외에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지금까지는 중성 같았던 것이). 그러고 여성은 위대한 것이요, 행복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물정이 여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보았고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큰 것이 존귀한 동시에 작은 것이 값있는 것으로 보고 싶고, 나뿐 아니라 이것을 모든 조선 사람이 알았으면 싶다.

나혜석 : 깃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나요?

S: ‘여성의 독립을 위해 싸우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였습니다.

나혜석 : 물론 많이 잡혔겠지요?

S: 잡히고 말고요. 모조리 잡혀 들어가서 금식 동맹을 하고 야단났었지요.

나혜석 :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이것이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혜석 : 이것 나 주십시오.

S: 무엇하시게요?

나혜석 :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

고야는 만년에 시력이 쇠약해지고, 귀머거리가 되고, 궁핍하였다. 판화를 그리려고 조국을 떠나 멀리 적막한 남프랑스 보르도에 우거하였다가 1828년 4월에 파란 많은 삶을 마쳤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그의 묘를 보고 아울러 그의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또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이 생각 들었다. 내 발길은 좀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내가 이같이 감흥해 보기는 일찍이 없었다.

동경 집은 모두 바라크 같고, 도로는 더럽고, 사 람들은 허리가 새우등같이 꼬부라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구라파 경색에 비하면 산이 높고 수려한 맛은 있으나, 마음을 적시는 기분이 적다.

아, 아, 동경하던 구미 만유도 지나간 과거가 되고, 그리워하던 고향에도 돌아왔다. 이로부터 우리의 앞길은 어떻게 전개되려는고.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왕 형제의 모험 (1973 초판본 에디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나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유학생이 웬일인지 아주 가깝고도 낯익은 느낌이 드네요. 그 나라에도 내 이야기를 듣 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줘요."

착하고 귀여운 나의 스코르핀,
네 영혼이 여기 온 걸 내가 안단다.
내 품에 안겨 편히 쉬려고
멀리서 날아온 너를••··••.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되느 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그렇지만 어림없어. 우리처럼 한데 뭉쳐 자유를 위해 싸우 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걸 텡일은 상상도 못 하겠지."

등불에 비친 그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일이 왜 오르바르를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앙상 하게 여원 그의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무엇인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옥처럼 어두운 동굴 안에서 도 살아남도록 지켜 준 것은 바로 그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불 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불길은 몸서리치도 록 끔찍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른 것입니다.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 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 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나의 여왕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을 밀쳐내고 들어앉은 혹독한 겨울이 슬금슬금 계곡을 빠져나가던 무렵이었다. 가엾은 봄은 두 계절 사이에 찡겨 있었다. 어떤 손님이 한 말이었는데, 내 귀엔 이말이 재미있게 들렸다. 마치 바람이 내 방과 산의 중간에 찡겨 있듯이.

오솔길은 마치 절벽에흰 분필로 상처를 내기라도 한 듯 거대한Z자를 그리고 있었다. Z자는 조로 덕분에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글자였다. 나는 소

우리는 영영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것이고, 나중에 누군가가 딱 붙어 있는 우리 둘의 해골을 보면서 〈이 두 사람은 정말’친구’였네>라고 말을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위대한 유산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오디오북) 213
찰스 디킨스 저자, 이인규 역자, 서원석 외 낭독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의 성공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여러 계획을 펼쳐 보이며 머물렀다. 그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상세한 건 잊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기억나는데, 그는 연극을 부흥시키는 일로 시작했다가 연극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삶을 끝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망하면 연극계는 그야말로 모든 걸 잃고 완전히 몰락하여 아무런 가능성이나 희망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재거스 씨의 일 처리 방식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아주 높은 존재로 유지하는 것이랍니다. 그는 언제나 아주 높은 곳에 있지요. 한결같은 그 높은 위치는 그의 엄청난 능력과 짝을 이루는 것이랍니다. 저 간수가 재거스 씨에게 사건에 대한 의도가 어떤지 감히 물어보지 못하는 것처럼, 아까 그 대령도 재거스 씨에게 감히 작별 인사 같은 걸 할 생각을 전혀 못 하지요. 그래서 재거스 씨는 자신의 그 높은 위치와 이 사람들 사이에 바로 나 같은 고용인을 끼워 두는 거랍니다. 아시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거지요."

그녀에 대한 내 관계가 지닌 성격 때문에 나는 그녀와 친밀한 사이면서도 그녀의 애정을 받는 위치에는 있지 않았는데, 이것은 내 심리적 고통을 더욱 증대했다. 그녀는 나를 이용하여 다른 구애자들을 애태우게 했으며, 그녀 자신과 나 사이의 친밀함 바로 그 자체를 이용해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내 사랑을 끊임없이 경멸해 댔다

난 이제 깃털이 처음 나기 시작한 이래로 온갖 종류의 덫을 피해 온 늙은 새 같은 존재란다. 그래서 난 허수아비 위에 내려앉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단다. 만약 그 허수아비 안에 죽음이 감춰져 있다면, ‘좋다, 있을 테면 있고 나올 테면 나와라, 한번 붙어 보자, 그럼 죽음이 있다는 걸 믿겠다, 하지만 그전까진 안 믿겠다.’라는 배짱이지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한테서 친절하기를 바란단 말이냐

이 책을 읽는 그대 자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어리석은 행동을 작년에, 또는 지난달에, 아니 바로 지난주에 똑같이 범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던가?

나는 허버트와 내가 ‘지리학적’ 식당이라고 부르곤 했던 고기 전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곳은 식탁보의 50센티미터마다 흑맥주 잔 가장자리의 자국으로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나이프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고기즙으로 해도(海圖)가 그려져 있는 곳이었다.

웨믹의 팔이 슬며시 웨믹 부인의 몸에 감겨들었을 때, 그녀가 더 이상 그 팔을 풀어 내지 않고 벽에 붙은 등받이 높은 의자에 마치 케이스 속에 놓인 첼로처럼 가만히 앉아서는 그 감미로운 악기가 악사의 포옹에 응하듯이 웨믹의 포옹에 순순히 몸을 맡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네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르고, 또 너와 난 언제나 다정한 친구였으니 이런 순간에 한번 방문하는 것 정도는 네가 그리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거였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