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도서관 - 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주일 날마다 시리즈
강원임 지음 / 싱긋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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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에게 다가오는 하루 는 귀하다. 홀로 배우는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안다. 다 가오는 늙음과 고독이 두렵지 않다. 도서관에 다니며 책 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삶의 틈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행 복한 노후를 이미 예약한 사람이다.

어떤 생각들의 접속과 일탈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나와 달라졌음을 느껴야만 한다. 이 무료하고 진부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본능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바뀌지 않는 외부 상황에서 내안의 내부적인 사고와 마음조차 동일하다면 우리는 문이 열리지 않는 공간의 공기를 매일 마시고 있는 것과 같다. 신선한 새 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창문을 여는 일은 낯섦과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사실 삶은 끊임없는 연결과 단절이 반복되며 쉴새없 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동일하다고 느끼는 것일 까? 우리는 진정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조차 나 자신에게 질려버릴 정도로 끔찍하게 동일한 존재라 느껴질 때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와 그들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눈다. 수많은 종류의 대화가 있을 텐데, 우리는 도서관에서 독서 대화를 나눈다. 가장 은밀하고 내밀하고 명상적이었던 개인 독서시간을 끝내고 소리내어 발화한다. 내말조차 어 디로 뻗어나갈지 모른 채. 종착지 없는 곳으로 계속 내달리는 기차를 탄 것처럼 모험이지만 안전하다. 현실 세계 에서 낯선 이들과 가장 안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이니까. 공간은 이만큼이나 중요하다. 도서관이라 는 공간이 내 삶의 맥락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점에서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 또한 중요해진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과 나눈 에너지와 대화 역시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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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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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은 안치실에서 무서운 건 시신이 아니라 "장례지도사 혼 자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고인을 대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사라지면 그보다 무서운 일이 없다는 말.

동네잔치라. 이런 기능을 옛날 옛적에는 환갑이나 칠순 잔치가 대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순 살만 되어도 장수했다고 하던 시절 이다. 잔치의 주인공들이 어찌 마냥 만수무강만 빌었을까. 자신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잔치가 열리는 마당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 시절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존재가 가족과 자손이었겠지. 그러니 손주에 증손주까지 불러 모아 자신이 이룬 것을 돌아본다. 핏줄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된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거나 인정할 시간을 얻지 못한 채 죽음으로 직행한다.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생전장례 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 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나만의 것이 아닌 최초와 최후. 그 사이에 놓인 삶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생전장례식을 치르겠다는 결심을 하진 못하였으나, 타인의 장례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 않고 장례를 치러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 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으로 나는 가네
만당 같은 내 집 두고 문전옥답 다 버리고
만첩 청산에 들어가니 구척광중 길이라고
칠성으로 요를 삼고 떼장으로 이불 삼아
살은 썩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진토 되니
삼혼 칠백 흩어지니 어느 친구가 날 찾으랴
창해 유수 흐른 물은 다시 오기 어려워라

천년만년 살 거라고 먹고픈 것 아니 먹고
가고픈 곳 아니 가고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쓰고픈 것 아니 쓰며 동전 한 닢 아껴 쓰며
아등바등 살았건만 인생이란 일장춘몽

삼천갑자 동방석도 한번 죽음 못 면하고
말 잘하고 말 잘하던 소진장도 결국 한을 달랬더냐
만리장성 진시황도 장생불사 찾았더냐
돈이 없어 죽었던가 기운 없어 죽었던가

어엄창 장사한 태조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이곳 불과 제왕초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삼국 사명 조자룡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사명 축돌 초패왕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우느냐니 우는 줄 아나
가느냐 가는 줄 아나
어허어허 넘차 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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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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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삼 년쯤 전이다.
그때 나는 맙소사, 내가 저 사람을, 저런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 하며 놀랐다. 만약에 어느 날 엄마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거나 죽기라도 하면, 틀림 없이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겨우 추스르고 나서도 몇 날 며칠을 통곡하겠구나, 어쩌면 식음을 전폐한 채 따라 죽으려 할지도, 이런 미친•••••• 하며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일생을 함께 보냈음에도, 그래서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 게 되었음에도, 나는 도무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엄마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좀 우스운 구석이 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 는 걸 깨달은 순간이라니?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특성으로 타인과 구별되지 않는가. 모두가 예외 없이 서로에게 별종이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자살을 생 각하게 된다.

나는 이제부터 변할 거라고,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멀 어지게 될 거라고,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둔 채 살아가게 될 거 라고, 선배가 울 뻔했던 이유는 그걸 다 알고 있어서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지금도 자식이긴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를 사랑했던 것과 지금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그건 아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니까,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시간이 지닌 또다른 힘이라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놓을 수 있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소설 속에서나 이렇게 쓰일 뿐이니까.

나는 엄마의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예전 같았으 면 엄마가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폭언에 맞대응하며 나도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아니면 경멸하듯 노려보다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겠지. 그런 식으로 날을 세워 엄마와 대립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엄마와 겨루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엄마의 말에서 오류나 비약을 조목조목 짚어낸 뒤 내가 옳다고 믿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엄마를 변화시킬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번번이 그것을 시도했다. 맞서다보면, 부딪치다보면 언젠가는 조금이라 도 달라질 줄 알았으니까. 더디게나마, 아주 약간이나마 우리 가 포개질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그러나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시 간이 지나고 보면 그대로였다. 정녕 손톱만큼도 달라진 구석 이 없었다. 내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전혀 다 른 모양의 퍼즐 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도 서로 끼 워 맞출 수 없는•··•·• 그러므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그래야 했다.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나는 마침내 그 연습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실이 너무도 한심하여 헛웃음이 나올 지경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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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업복 이야기 - 차별과 위험으로 박음질된 일터의 옷들
경향신문 작업복 기획팀 지음 / 오월의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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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버린 것, 더러운 것, 보기 싫은 것, 그래서 땅속에 구멍을 파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놓은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옷이 안전과 건강을 지켜줄 리는 없다. 현재의 작업복은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땅속에서 일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작업복을 다루는 기획의 시작을 어떤 직업의 옷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쓰레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첫 회로 내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것은 이 들의 옷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들에게 진 빚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하든, 좋은 작업복에 가까운 옷을 입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업복의 변화는 결국 그 사회가 변하는 속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에서 이들이 안전한 작업복을 입게 될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여성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업무 친화적인 작업복을 입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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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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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회사의
인사팀 담당자가 된 것처럼
출장 예산을 배정하고

우버와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데이트에
출근하고 퇴근했다

문을 열기 전에 이 회사의 슬로건을 기억한다
언니의 마음을 숨기지만 않으면 돼요

월~금요일 매일 100명의 데이터를 보면
한달동안
2000건의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 <아가씨>에
김태리 배우님을 캐스팅하기 전
몇천 명을 만났다는 기사를 기억했다

나에게도 이것은
내 영화의 주인공을 찾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왜
더 빨리 가나요?"

하는 나의 질문에
물리학자 유병희 박사님이 답을 주었다
"기억력이 감퇴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일을 많이 하면
시간은 천천히 갈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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