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최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돈있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 되기 쉬워”맞는 말이지만 반대로 돈있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되기도 쉽지요. 한마디로 돈 있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인격마저도 다양한 게 아닐까요? 아무튼 이 책을 읽고 그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위선이든 진심이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백종원아저씨의 “착한 척 하면 착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을 요즘들어 부쩍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냥 어른으로, 사회의 리더로, 때로는 그냥 돈 많은 사람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회장님을‘아버지’라고 넉살좋게 부르지 못하는 직원들도 따듯하게 바라봐 주시길 바라고요. 제가 그런 주변머리를 갖추지 못해 그런지 그런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신경쓰였습니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작가는 3주만의 급작스러운 청혼, 고작 석달간의 짧은 연애후의 결혼생활 중 서로의 맞지 않음에 놀라워 했지만 10년동안의 연애후에 결혼한 저 역시 서로의 다름에 깜짝깜짝 놀라 때로는 10년의 시간을 헛 산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맞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가끔 사랑이라는 감정 따위 뭉게버리고 싶을 때도 이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 제 마음이 그럭저럭 10년의 결혼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결혼하는 신부에게 쓴 메모가 있는데 저도 결혼하는 후배에게 이 글을 적어주곤 합니다.“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하루키의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그렇거든요. 아마 임경선작가님도 그랬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한 남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임경선 작가님의 글은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기는 하지만 이 책은 결혼에 대한 에세이도 참고서도 아닌 실용서로 분류해야할 듯 합니다.
결혼생활을 가급적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서로의 ‘안 맞음을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초연해하며, 그것이 일으킬 갈등의 가능성을 피하려는 훈련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결혼생활은 분명 일종의 인격 수양이라 할 수가 있겠다. 다만 때로는 수양이 과해진 나머지 ‘난 네가 그걸 원하는 줄 알아서 그렇게 했다고!‘라는 식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기 위한 양보와 희생조차도 안 맞는 경우를 맞닥뜨릴 때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힘없이 웃음만 새어 나왔다.
안도와 더불어 느껴지는 약간의 아쉬움. 아내들의 이런 작은 살의가 남편들의 명을 늘린다.
‘우와… 정말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그런 아저씨네….’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계속 쳐다보고있자니 그제야 남편이 나를 알아봤다. 그가 팔을 번쩍 들어 흔들며,하게 웃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아저씨‘ 중한 명이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조금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몇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얼마전에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고 작가님이 SNS라이브방송까지 하시는 것을 보고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원래는 드라마로 제작된 ‘아이를 찾습니다’ 만 읽어보려 했는데 순식간에 다 읽고 말았네요.책으로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슬픔과 절망감이 시각적으로 나타나니 그 충격은 몇배가 되더군요. 시청률을 따지는 드라마작가가 작정하고 썼다면 이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을 작가의 말이 더욱 깊이 다가오네요.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어제는 잠이 안와 밤새 잡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럴때는 왜 좋은 생각보다 지난 후회와 자책만 생나는지 모르겠어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일은 차곡차곡 쌓여 복리로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그냥 내 어리석음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나이 먹도록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주의깊게 살피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이고 어른은 나라의 현재인데 내가 어른으로서 너무 무능하고 어리석어 한심했습니다. 정규교육도 착실히 받고 살았는데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인권도, 정치경제도, 문화예술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이런 건 왜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았지요?? 사회에서 구경도 못하는 쓸모 없는 것들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요즘 읽고 있는 책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트릭미러’ 와 이 책 입니다. 그녀들이 세상을 보는 눈에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너무 수동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온 시간이 모두 사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녀들의 환경이 그녀들에게 그런 시각을 만들어 주었을 지 모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나에게도 나만의 방법이 있다고 위로할 방법도 있겠지만 아니, 없습니다. 이리저리 휩쓸리고 휘말리고 떠밀리며 살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사느라 지친 것 같아.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알기 위해 조금 더 보고 읽어가며 조금 더 생각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양적으로만 풍성한 거품보다 단단하게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