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다>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른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가 떠오르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그대의 손을 맞잡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그것은 짧은 치마
그것은 플라네타륨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추어진 악을 조심스럽게 거부하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짓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지금이 지나가고 있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새는 날개를 친다는 것
바다는 울린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그대 손의 따스함
목숨이라는 것

<해골>

내가 죽으면 해골이 되고 싶어
해골이 돼서 요코와 함께 놀고 싶어
그네를 타면 바람이 솔솔 새어들어서
상괘하겠지
요코가 무서워할지 모르지만
나는 손을 잡고 싶어

눈도 귀고 텅 비어 있는데
나는 뭐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
해골이 되어도 옛날 일은 잊지 않아
슬픈 일 우스운 일
나는 달각달각 뼈 소리 내면서 웃을 거야

모두가 날 쳐다보겠지
괴롭히겠지
내가 죽어서
해골이 되었으니
그래도 괜찮아
나는 해골의 마음을 요코에게 알려줄 거야
그전에는 몰랐던 마음을
이제 배도 굶지 않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으니
나는 언제까지나 요코와 함께 놀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데 사실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니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저는 직관이나 상상력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무엇에 대해 사유하거나 쓰려면 삶이 주는 자극과 경험이 선행되어야 해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혼자 쓰라고 하면 저는 못 써요. 아마 이것은 제가 쓰는 글의보편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쓴 글을 읽어주시는 대부분의 독자들과 비슷한 양식의 삶을 살아야지요. 아침저녁으로는 출퇴근길에 시달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 대신 금요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저는 삶의 비루를 계속 느끼면서, 계속 시를 쓸것 같아요."

가끔이지만 강연회 같은 데 다니다 보면 ‘어떻게해야 글을 잘 써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일단 쓰세요‘라고 답해요.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직접 쓰지는 않아요. 하루 손 놓게 되면 이틀 못 쓰고, 이틀 손 놓으면 사흘 못 쓰는 게 저 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단한 줄이라도, 일기라도 쓰라고 해요. 그리고 시작하게 되면 꼭 마무리는 해야 해요. 짧은 글이라도 마무리 짓는 걸 아는 사람이 나중에 긴 글도 쓸 수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 구원
임경선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경선작가님과 이기주작가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그들의 허세와 허영으로 너무 번질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맨질맨질함에 익숙해지지 못해 읽고 나면 불편한 기분이 듭니다. 그럼에도 매번 읽게 되는 건 제게는 일어나지 않을 그런 비현실적인 생활이 부럽기도 해서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만난 은희경작가님의 글은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읽는 내내 줄리언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가 생각나는 것이 저뿐이 아니겠지요.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중년의 여대동창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빛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과거의 빛을 따라가는 그녀들의 눈은 때로 너무 밝아 갑작스레 감아버려 못보기도하고 가끔은 너무 어두워 실눈을 뜨고 보아 뚜렷하지 않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때로 그 빛들에 의한 그림자가 지금의 나에게 드리워져 있다해도 이제는 어쩔수 없겠지요. 지금 보이는 이 빛조차도 나중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 지 모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그녀의 일상이며 여행이고 사랑이며 투병입니다.

전신에 체모가 없는 매끈한 몸 때문에 그는 나를 ‘나의 인어 아내’라고 불렀다. 가슴에 혹처럼 나온 카테테르는 ‘여분의 뼈’가 되었다.

우리의 만남이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우리의생존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자주, 특히 간조 때 트루빌의 해변을 따라 긴 산책을 하면서, 그녀도 나도 이곳에 있어서는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이 여자를본다. 언니의 죽음에 종속되어 탄생했던, 한동안 생이 위태로웠던,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서 웃고 있는 이 여자를. 이상한 느낌이다. 무중력 상태의 유령이 된 것 같은, 우연한 관객이 된 것 같은.

같은 달에 M의 책을 펼쳤다가, 젊은 여자가 어린아이와 나이든 여자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젊은 여자 가 그의 전 부인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 요했다. 관계 초반에 M은 그녀에 대해 "몸은 예쁜데 얼굴 은 그저 그렇다"라고 말했었다. 이 사진들 앞에서 내 첫 번째 반응은 승리감이었다. 그녀의 코, 턱, 디테일한 부분들을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 못생겼잖아!" 그리고 그 여자를 완벽한 이미지로 만들어내서 스스로 열등감을 느낀 나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 뒤로는 슬픔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게 최악은 이런 못생긴 여자를 M이 사랑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게는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라리 그녀가 아름다웠으면 했다. 그 여자를 향한 그의 애착이 평범하면서도 객관적인, 외모라는 이유로 설명될 수있을 테니까.
나는 감정의 언어를 믿으면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시도를 해봤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은 사물의 언어, 물질적인 흔적의 언어, 가시적인 언어다. (그 언어들을 단어로,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사진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이 그의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명백한 것들 앞에 서, 사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증거 앞에서, 내가 절대 답을찾을 수 없는 그는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피하는 방법 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