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어떤 말에 설득당해 어떤 행동을 하게나 어떤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떤 말을 자신의 어떤 결정이나 경향을 설득시 키는 도구로 이용하는 이런 습성은 아주 일반적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누군가의 결정이나경향을 지원, 혹은 해명하는 데 유리한, 그럴듯한 어떤 말을 하기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신 이 많은 사람을 설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면 그것은 당신이 많은 사람의 결정이나 경향 을 지원, 혹은 해명하는 데 유리한, 그럴듯한 어떤, 그러니까 매우 범속한 말을 하기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을 통해 자기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은, 주로 직업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 착각은 자기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이들에 의해 주어진다. 실은 영향을 끼치고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을 끼치고 있는 것뿐이다.그러나 이 착각과 이용은 워낙 은밀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 눈치채지 못한다. 착각하는 자는 착각인 줄 모르고 이용하는 자는 이용하는 줄 모른다. 서로는 서로의 무지를 필요로 한다.
과거는 입이 크다. 입이 큰 과거는 현재를 문다. 때로 어떤 사람에게 이 묽은 치명적이다.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이 이빨은 현재가 알지 못하고추측하지 못하는 이빨이다. 현재는 과거가 제자리에 멈춰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멈춰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 혹은 짐작, 혹은 기대이다. 현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과거는 움직이고, 자라고, 변하고, 그래서 몰라보게 달라진다. 현재를 삼킬 만큼 커지고 현재를 물어뜯을 만큼 날카로워진다. 현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달라진다. 현재를 무는 과거의 이빨은 현재가기억하지 못하거나 짐작하지 못하는 이빨이다.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달아났기 때문이고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현재의 숙명이다. 과거로부터 달아나기를 원치 않는 현재는 없다. 과거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오만이다. 오만하지 않은 현재는 없다. 과거의 변신과 보복을 예감하고 대비할 만큼 겸손한 현재는없다. 과거를 땅속에 묻었다고 안심하지 말라. 관뚜껑을 열고 나오는 과거는 더 사납다.
생각해보니 나는 굳이 수고를 들이는 일들을 좋아한다. 칼로 연필을 깎고, 매일 시계의 태엽을 감고, 일력을 뜯고, 전기포트를 놔두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인다. 이런 비효율성을 감내하는 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뜻한다(바쁠 땐 일력도 밀리고 시계도 멈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 속에 항상 쓸데없는일들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 수고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있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내의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하고 아름다울 일인가요? 😉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잖유. 도로에 침도 좀뱉고, 술을 마셨으면 주정도 좀 하고, 가벼운 범죄 정도는 슬슬 저질러가면서 속 편하게 사는 게 최고 아니유, 술 마시고 집에 가다 오줌싸게 생겼는디도, 줄줄이 서 있는 전봇대를 그냥 지나쳐 집까지 참고달려가려면 얼마나 힘들겠슈. 안 그류?"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이 언제든 홀로 여행할 수 있다면그것은 바람직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엔 안 좋은 점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손가락 화상이 그 예다.평소처럼 난 나의 동물성에게 아침 준비를 맡겼다. 빵을 구워서 자르는 건 그의 몫이다. 그는 커피도 훌륭히 끓여 내 는데 이 모든 일을 대부분 혼자서 한다. 영혼으로서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볼밖에 달리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왜냐하면 어떤 장치‘를 다룰 때 보면, 우리는 쉽게 딴생각 에 빠져 정작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는 주의를 잘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나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의거하여좀 더 부연하자면, 나의 영혼에게 나의 동물성이 하는 일을주시하면서 그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는 말고 그냥 바라보게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수행하기엔 경악하리만치 어려운 형이상학적 과제다.나는 빵을 굽기 위해 화덕 위에 부집게를 올려 놓았었다.잠시 뒤, 나의 영혼은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 틈에 나의 동물성은 달구어진 장작을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우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동물성은 손을 뻗어 뜨거운 부집게를 그냥 잡아 버렸고 결국 나는 손가락을 데었다.
같이 지낸 지는 햇수로 6년인데 서로 데면데면한 적이 한 버도 없다. 소소하게나마 투닥거렸을 때, 언제나 내 쪽에 더크 허물이 있었음에도 먼저 화해를 청한 건 그였다. 전날 저녀에 내게 한 소리 들으면 그는 애처롭게 물러나 끽소리도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다소곳이내 침대 곁에 와서 기다렸던 것이다. 주인이 몸을 뒤척이거나 깰 기미가 보일라치면 침대 협탁을 꼬리로 살랑살랑 치면서 제 존재를 알렸다.우리가 같이 지낸 이래 나에 대한 사랑이 단 한 번도 식지않은 다정한 그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다 열거할 순 없어도 한때 나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까마득히 잊은 이들이 있다. 한때 나의 친구였거나 연 인이었거나 혹은 지인이었던 그들에게 이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의 뇌리에선 나의 이름도 가물가물할터다.그토록 사랑과 우정을 맹세하고 후의를 기약했건만! 경제적으로 의지해도 되고 허물없는 영원한 우정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건만!사랑하는 나의 로진은 내게 그런 후의를 약속한 바 없으 나 인간이 받을 수 없는 최상의 후의를 내게 베풀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오늘도 나를 사랑한다.그리고 나도 일말의 주저 없이 그에 대한 사랑은 내 벗들에 대한 사랑 못지않다고 말한다.
오늘 나는 자유다. 아니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일상의 멍에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제 나는 격식과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그래도 변덕스런 여신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두 세계를 다시는 잊지 않도록 해 주고, 다시는 이 위험한 연금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 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내 여행을 끝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나를 방에 가두는 게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간직한 이 멋진 공간에서 말이지? 쥐를 광에 가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제 나는 내 자신을 이중적 존재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상상으로 누리던 즐거움이 그리울 때면 나는 어떤 힘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을 느낀다. 그 은밀한 힘은 나를 인도한다. 그는 내게 속삭인다. 내겐 탁三인 대지와 하늘이 필요하고 고독은 죽음과 같다고 말이다. 채비는 끝났다. 나의 문은 열렸다. 포 가街의 널따란 회랑 밑을 거닌다. 수많은 정겨운 유령이 내 눈앞에서 오간다.그래, 이건 저택이고, 문이고, 계단이다. 벌써부터 짜릿한기분이 든다.레몬을 자르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혀에서 신맛이 도는것과 같다.오, 나의 동물성이여, 몸조심하기를!!
엄마는 10여년 이상을 하루 서너시간씩 헬스장에 나가 운동을 하는 열혈 운동 매니아입니다. 가끔은 너무 과한 듯 하여 식구들은 올림픽 준비하냐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런 엄마가 얼마전 심하게 감기에 걸려 동네 병원에 다녀도 낫지를 않아 큰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하더라구요. 병원에서 지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며 의자에 누워 버리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장거리여도 버스에서 절대 졸지도 않고 꼿꼿하게 앉아 계시는 성격이시거든요. 그러고 보니 엄마도 몇년 후면 벌써 70세이십니다. 매번 제나이 드는 것만 한탄하다보니 엄마나이를 잊고 있었네요. 이 책의 노인들처럼 나이가 들며 기억이 흐려지고 몸이 약해져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그런 날이 나의 부모에게도 나에게도 언젠가는 오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 통장도 두둑히 마음도 든든히 준비해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