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이 언제든 홀로 여행할 수 있다면그것은 바람직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엔 안 좋은 점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손가락 화상이 그 예다.
평소처럼 난 나의 동물성에게 아침 준비를 맡겼다. 빵을 구워서 자르는 건 그의 몫이다. 그는 커피도 훌륭히 끓여 내 는데 이 모든 일을 대부분 혼자서 한다. 영혼으로서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볼밖에 달리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장치‘를 다룰 때 보면, 우리는 쉽게 딴생각 에 빠져 정작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는 주의를 잘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나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의거하여좀 더 부연하자면, 나의 영혼에게 나의 동물성이 하는 일을주시하면서 그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는 말고 그냥 바라보게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수행하기엔 경악하리만치 어려운 형이상학적 과제다.
나는 빵을 굽기 위해 화덕 위에 부집게를 올려 놓았었다.
잠시 뒤, 나의 영혼은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 틈에 나의 동물성은 달구어진 장작을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우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동물성은 손을 뻗어 뜨거운 부집게를 그냥 잡아 버렸고 결국 나는 손가락을 데었다.

같이 지낸 지는 햇수로 6년인데 서로 데면데면한 적이 한 버도 없다. 소소하게나마 투닥거렸을 때, 언제나 내 쪽에 더크 허물이 있었음에도 먼저 화해를 청한 건 그였다. 전날 저녀에 내게 한 소리 들으면 그는 애처롭게 물러나 끽소리도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다소곳이내 침대 곁에 와서 기다렸던 것이다. 주인이 몸을 뒤척이거나 깰 기미가 보일라치면 침대 협탁을 꼬리로 살랑살랑 치면서 제 존재를 알렸다.
우리가 같이 지낸 이래 나에 대한 사랑이 단 한 번도 식지않은 다정한 그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다 열거할 순 없어도 한때 나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까마득히 잊은 이들이 있다. 한때 나의 친구였거나 연 인이었거나 혹은 지인이었던 그들에게 이제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의 뇌리에선 나의 이름도 가물가물할터다.
그토록 사랑과 우정을 맹세하고 후의를 기약했건만! 경제적으로 의지해도 되고 허물없는 영원한 우정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건만!
사랑하는 나의 로진은 내게 그런 후의를 약속한 바 없으 나 인간이 받을 수 없는 최상의 후의를 내게 베풀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오늘도 나를 사랑한다.그리고 나도 일말의 주저 없이 그에 대한 사랑은 내 벗들에 대한 사랑 못지않다고 말한다.

오늘 나는 자유다. 아니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일상의 멍에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제 나는 격식과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변덕스런 여신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두 세계를 다시는 잊지 않도록 해 주고, 다시는 이 위험한 연금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 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내 여행을 끝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나를 방에 가두는 게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간직한 이 멋진 공간에서 말이지? 쥐를 광에 가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제 나는 내 자신을 이중적 존재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상상으로 누리던 즐거움이 그리울 때면 나는 어떤 힘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을 느낀다. 그 은밀한 힘은 나를 인도한다. 그는 내게 속삭인다. 내겐 탁三인 대지와 하늘이 필요하고 고독은 죽음과 같다고 말이다. 채비는 끝났다. 나의 문은 열렸다. 포 가街의 널따란 회랑 밑을 거닌다. 수많은 정겨운 유령이 내 눈앞에서 오간다.
그래, 이건 저택이고, 문이고, 계단이다. 벌써부터 짜릿한기분이 든다.
레몬을 자르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혀에서 신맛이 도는것과 같다.
오, 나의 동물성이여, 몸조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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