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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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 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 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 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 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 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 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 날거야.

나란 존재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의 합에 더욱 가까웠다

삶이 점점 힘들어질 수도 있죠.
그 비관을 끌어안고 희망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과 가치가 있 으니까. "세상은 다 망했어"라고 말하는 대신 "망하 도록 두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 으면 좋겠어요. 희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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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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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다. 독보적인 자기개발서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게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라 하지 않아도 나를 시간에 맡기고 누리라는 어마어마한 인생의 팁을 알려준다. 게다가 그 시간은 무려 24챕터로 나뉘고 단 한번도(매년 돌아오는 그 제목의 챕터 마저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 들 이미 내가 이전의 나와는 달라져 다른 감각으로 다시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매일 달력을 볼때 숫자가 아니라 그 밑에 작게 쓰인 글자에 더 눈이 간다.

+ 절기를 기준으로 한 달력을 굿즈로 만들어 주셨다면 무척이나 기쁘고 유용했을 듯!

입춘 날 각자 맡은 일을 아홉 번씩 하던 ‘아홉차리‘라는 풍속도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한 해 동안 복을 받는다고 믿었기에 공부하는 아이들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나무를 아홉 짐 하고, 나물을 캐도 아홉 바구니를 캐고, 새끼를 꼬아도 아홉 번 꼬았다는 얘기. 이날은 매를 맞아도 아홉 번을 맞았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거 중간이 없네, 싶어 웃음이 났다. 하지 만 꼬박꼬박 세어가며 어떤 일을 아홉 번 채웠을 마음에는 역시 희망이 깃들어 있었겠지.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면 서쪽 연못에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이 되어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세모*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 데에 이바지한다.
<죽란시사첩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적는 이유는 하나. 어둑했던 일상을 환히 밝혀주는 봄꽃들을 정확 히 호명하고 싶으니까. 어떤 영화는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 혼자 보러 가게 되지만, 봄이 상영하는 영화만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어진다. 혼자 걸으면 멈추 고 싶은 데마다 멈춰 서고, 앉아 있고 싶은 데서 하염 없이 앉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홀가분함보다 큰 건 "이것 좀 봐!" 말하고 싶은 마음. 옆에 선 이의 어깨 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순간이 다섯 걸음에 한 번씩은 나타나는 게 봄의 산책이다.

걷는 계절. 자연은 어서 나와 이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한다. 햇빛을 행복의 자원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행 복해질 기회는 이미 충분히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무엇이든 해보라고 격려 해주는 손길 같다. 눈부시게 자라난 올해의 신록과 활 동량이 부쩍 늘어난 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1년 중 가 장 씩씩해져서 이맘때를 보낸다.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적마다,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오늘 같은 날은 접어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1년을 담은 책이 있다면 아마 초여름 부분은 접힌 페이지가 가장 많아 서 책의 오른쪽 모서리가 불룩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다들 가을에 진심인 것, 아름다 움 앞에 열심인 것. 그 마음을 헤아리면 이 모든 소동 이 극성이 아니라 정성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성 수기가 성수기인 이유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는 저마다의 제철 숙제 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방어 먹으러 제주에? 서울에도 파는 데 많은 데." 그런 말이 떠올랐다면 넣어두시길. 여기서 포인트 는 ‘굳이‘에 있으니까. ‘굳이데이‘의 창시자인 뮤지션
‘우즈‘도 말하지 않았던가.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고. 사는 거 뭐 있나. 제철 음식 찾아 굳 이 거기까지 가서, 굳이 줄을 서고, 마침내 고대해온 음 식을 앞에 두고 이 계절을 기념하듯 잔을 부딪치는 그 런 거지. 한겨울 방어 먹으러 모슬포에, 늦겨울 새조개 먹으러 천수만에, 이른 봄 도다리쑥국 먹으러 통영에
‘굳이‘ 가는 그때야말로 비로소 제철을 아는 어른의 세 계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산지가 바로 맛집‘인 제철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귀찮음의 여정에 몸을 싣는 사람만이 제철 낭만을 누릴 자격을 얻는 법. 효율 같은것만 따져서는 한 번뿐인 인생이 팍팍해진다. ‘언제까 지 낭만 타령이나 할 거냐‘는 말에는 ‘평생‘이라는 답을 미리 준비해둔다.
나만 아는 기쁨의 목록을 가지고 그 목록을 하나하 나 지워가면서 하나의 계절을 날 때 다른 숙제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이란 계절은 여행지 같 다.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틈틈이 준비물을 챙기 고, 도착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적어두게 되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 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하기로 되어 있는 흐름에 내 걸 음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불필요한 가 지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꼭 필요치도 않 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 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다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 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 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 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 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겨울 숲의 저 나무들처럼, 신의 부재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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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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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 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 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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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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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 파치먼이 얼마나 일을 잘 할지, 자신 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할지 궁금했다. 그녀에게는 개인 욕실과 텔레비전, 안락한 의자 몇 개와 푹신한 침대를 제공해 주었다. 짐 말에게는 좋은 마구간과 여물통이 필요하니까. 그녀가 이에 만족해서 앞으로도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유니스 또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유니스가 오기로 한 오월 구일 토요일이 되었지만, 커버데일 가족은 그녀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이 집에 오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지, 자신들에게 닥친 것과 똑같은 희망과 공포를 그녀도 느꼈는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그들에게 있어 유니스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기계에게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으려면 적당히 기름을 치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도록 계단에서 거치적대는 물건을 치우기만 하면 족하다
하지만 유니스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멜린다의 말처럼 유니스 는 살아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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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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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데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치자. 도둑은 나보다 힘이 세고 주변에 흉기 될 만한 것이 널려 있다 치자. 일어 나서 도둑이야 소리 지르면 도둑이 나를 죽일 것 같아서, 도둑이 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치자. 그래서 내가 아주 귀중한 것을 도둑맞았다면, 그건 내 잘못인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도둑에게 제압당했다고 치자. 내가 다치고 부러졌다고 도둑은 도둑질하지 않을까? 저항하다가 내가 죽었다고 치자. 도둑은 도둑질하지 않을까? 내가 소리 지르거나 죽도록 반항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가만있 었으니까 도둑은 아무 잘못이 없나?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도둑보다 도둑맞은 내 잘못이 크다고. 네가 도둑맞을 짓을 했다고. 나는 몰랐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무서웠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의심하고 내 잘못을 지적한다. 내 인생은 이미 망한 것처럼 말한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애가, 사리분별 다하고 할 말 다하는 애가 그냥 당하고만 있었다니 말이 되느냐, 요즘 애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약았는데, 울면서 하는 말이라고 다 믿으면 안 된다. 걔가 뭔가 감추는 게 있 을 것이다, 그런 소리들, 내가 못 들은 줄 알지.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냐고 할 때는 몰랐다. 내 감정을 알지 못했다. 부끄러워야 하나 헷갈렸다. 이렇게 쓰니까 확실히 알겠다. 난 부끄럽지 않다. 난 고통스럽다.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당신들도 당해봐야 한다. 내가 겪은 것 을, 나와 똑같은 상황과 조건에서 당해보면 알 것이다. 어째서 당하고만 있었는지. 어째서 부끄럽지 않고 고통스러운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겪은 일이 먼지인 줄 안다. 먼지처럼 털어내라고 말한다. 먼지가 아니다. 압사시키는 태산이다.
꼼짝할 수 없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일 수 있다. 걷고 보고 말하고 달릴 수 있다. 울고 웃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모는 내가 겪은 일 때문에 나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제야는 일기에 이모의 말을 썼다. 언젠가는 이모의 말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랐다.

나는 내 인생 최대 불행이 강간당한 거라고 생각했는 데, 아니다. 내 인생 최대 불행은 이런 세상에, 이런 사람들 틈에 태어난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른이라고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하고 어른이 하는 말이니까 들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싹수가 노란 거고 애당초 글러먹은 애가 되는 거고. 당숙이 악마여서 나를 강간한 게 아니다. 여기서는 그게 강간이 아니니까 강간한거다. 당숙이 당당한 건, 가해자면서 희생자인 척 구는 건, 이 세계에서 아주 당연한 문법인 거다. 여기 사람들은 ‘강간‘이나 ‘성폭행‘의 의미를 모른다. ‘남자가 꼴리면 그럴 수도 있는 짓‘만 안다. 돈이 많으면 돈도 많은데 무슨 대수냐, 궁핍하면 불쌍하니까 눈감아주자, 돈이 적당히 있으면 먹고살 만해서 잠깐 딴생각을•·•••• 그러므로 이곳에서 남자는 언제나 그럴 수 있다.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도 여성 할례가 있다고 들었다. 더럽고 불경하다며 생리하는 여자를 격리한다고 들었다. 여자를 재산 취급한다고 들었다. 결혼 지참금이 적다고 여자를 학대한다고 들었다. 여기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 해주면 뭐라고 할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기겁 할까? 우리는 뭐 다르나? 대한민국은 달라? 내 아들이 한 달에 거둬들이는 돈이 얼만데 젊어서 여자애 하나 건드린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이 땅은·••·•• 야만인들. 파렴치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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