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잠깐 동안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그 속에서 우리를 친구로만들어주는 어떤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분 최고다!"크리스가 웃으면서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끝내준다!"나도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신난다."번이 말했다. 비록 짤막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단순히 쓰레기장에 무단 침입했다는 사실이나 부모들을 속였다는 사실, 혹은 철도를 따라 할로까지 나들이를 하는중이라는 사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에는 물론 그런것들도 포함되었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이상의 무엇이 더 있었던 것같다. 그날 우리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멋진 일이었다.
나는 열두 살 때의 그 친구들처럼 멋진 친구들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젠장,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여러 가지 놀이도 했고, 밥을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켜버릴 때도 많았고, 잔디도 깎아야 했고,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고, 벽에 동전 던지기도 했고, 사람들이 우리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 이렇게 앉아서 IBM키보드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녹색과 갈색이공존하던 그해 여름 중에서 제일 좋았던 일과 제일 나빴던 일을 기억해 내려고 노력한다. 그러자 문득 이 늙어가는 몸뚱이 속에 아직도 그 깡마르고 상처 딱지 투성이였던 소년이 숨어 있는 것이 거의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때의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무튼 그 시절과 그 기억의 절정은 호주머니 속에 잔돈을 잔뜩 넣고등줄기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플로리다 마켓을 향해 그 길을 달려 내려가던 고든라챈스의 모습이다.
말이 곧 해악이다. 사랑은 로드 맥퀸 같은 엉터리 시인들의 노래와는 전혀 다르다. 사랑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 이빨로 물어뜯는다. 그렇게 생긴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사랑의 상처는 어떤 말로도, 어떤 말들의 조합으로도 아물게할 수 없다. 우습게도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상처가 아물면 말도 함께 죽어버린다. 내 말은 믿어도 된다. 나는 한평생 말로 먹고 산 사람이므로 그것이 사실임을 잘 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괜찮아요, 빌.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공포 소설가가 되죠 뭐. 그것도 괜찮은 일이잖아요."(…)그러나 나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도 사랑했고 내 마음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이들을 사랑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들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도 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좋은 소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주기를, 즉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날 수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마법이 바로 그것이다.자, 됐다. 이제 끝내야겠다. 그럼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모두 정신 바짝 차리시길, 좋은 책 많이 읽으시길, 쓸모 있는 사람이 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빈다.사랑과 기원을 담아,스티븐 킹1982년 1월 4일메인 주 뱅거에서
배우들은 한가지 이미지의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요. 작가도 그럴까요? 배우야 이야기에 따라 역할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작가는 이야기 그 자체인데 이렇게 바꿔 버리시면 저는 어쩌나요? ㅠㅠ 한참을 기다린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이 이전과는 달리 너무 순해 실망하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끝을 상상하며 제 싱황을 대입해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내가 행한 기적의 수혜자 서른일곱 명이 그들의 더러운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에게 가장 큰 웃음을 준 것은 가버나움의 마귀들렸던 자였다.「마귀가 나간 후로 사는게 시들해져 버렸어요!」눈이 멀었던 자는 세상이 이렇게 추악할 줄 몰랐다며 한탄을 늘어놓았고, 문둥병에 걸렸던 자는 이제 아무도 그에게 적선하지 않는다고 투덜댔으며, 티베리아스의 어부 조합은 다른 조들을 배제하고 한조만 특별대우 했다며 나를 비난했고,나사로는 살갗에 시체냄새가 밴채로 사는 게 얼마나 끔찍한일인지 토로했다.
좋은 질문이다. 나는 TL는 늘 알지만, II는 결코 알지 못1한다. 다시 말해, 목적보어는 알아도 상황보어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전지(全知)의 존재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부사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인간은 육신의 이런저런 결함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당연한 일 아닌가. 집이 없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는 일에만 훌륭한 솜씨를 발휘한다. 아버지는 한 번도 육신을 가져본 적이 없다.나는 그분이 육신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경이로울 정도로일을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기적을 일으키는 일이 은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게 되어 버렸다.냉이라이트사지가 잘려 나간 장애인이나 빈사 상태의 환자를 나에게들이미는 사람들의 눈길에서 내가 수없이 읽은 것은 간청이아니라 협박이었다!
우리는 즐거움을 누렸을 때 훨씬 나은 누군가가 된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다.
사랑은 확신과 의심을 한데 모은다.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만큼 그것을 의심한다. 번갈아 그런 게 아니라, 난감하지만 동시에 그러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질문을 퍼부어서 의심을 떨치려 애쓰는 건 극도로 애매한 사랑의 본성을 부인하는 일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일 때 느끼는 것, 그것을 배양하라. 그것이 바로 신비주의적 충동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배고픔을 더는 느끼지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포만이라 부른다. 피로를 더는 느끼지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휴식이라 부른다. 고통을 더는 느끼지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위안이라 부른다. 갈증을 더는 느끼지않을 때 그것을 칭하는 낱말은 없다. 언어는 지혜로워서 갈증에 반대되는 낱말을 창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증을 해소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그것을 견뎌 보라고 권한다. 마시는 순간을 늦춰 보라고. 물론 한없이 늦추라는 말은 아니다. 건강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되니까. 나는 갈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갈증을 해소하기 전에 그것을몸과 마음으로, 철저하게 느껴 보라는 것이다. 세우실험을 해보라. 목이 타는 갈증을 참고 또 참은 후에 잔의물을 단숨에 들이켜지 마라. 한 모금만 입에 머금고 삼키기 전몇 초 동안 참아 보라. 그 경이로움을 가늠해 보라. 그 황홀함,그것이 바로 신이다. 아빠 했으며졌다친수해왔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신의 은유가 아니다. 바로 그 순간그 한 모금의 물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사랑이 바로 신이다.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그러한 사랑을 느끼기에 이른 자이다. 그리스도가 된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다. 그렇다, 극도의 고통에시달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 물 한 모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나의 믿음은 그 정도로 온전하다.의해서 살았다
나는 빗물을 받아먹기 위해 혀를 내밀힘조차 없다. 하지만빗물이 내 입술을 적신다. 나는 언젠가 〈페트리코르〉 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될,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를다시 한번 들이마시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다.
진실로, 당신의 사랑하는 망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마음껏 기뻐하라. 그것은 그가 가장 좋은 방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결론짓지 마라. 그는 최선의 방식으로, 당신을 위해 억지로 내키지 않는 재주를 부리지는 않는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한다.죽어 있는 것은 평온하다. 당신에게 돌아오는 일은 짜증스럽다. 상상해 보라. 한겨울, 당신은 따뜻한 이불속에, 휴식과온기의 희열 속에 누워 있다. 당신이 친구들을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들에게 그렇다고 말해 주기 위해 추운 바깥으로 나가고 싶겠는가? 당신이 그 친구라면, 당신 혼자 좋자고, 보고싶은 누군가를 차갑고 짙은 안개 속으로 억지로 나오게 하고싶겠는가?당신이 죽은 자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침묵마저 사랑할만큼 그들에게 신뢰를 바쳐라.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상처가 될 만한 것을 늘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적어도 그들 중 하나와 마주친 적이 있다. 항상 언짢아하는 존재, 만성적인 불만자, 성대한 잔치에 초대받고도 빠진 음식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 그들이 왜 죽는 순간에불평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박탈당하겠는가? 그들에게도 그들의 죽음을 망칠 권리가 있다.
수많은 인물과 꼬여있는 족보때문에 헷갈리기는 하지만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욱 쉽게 풀어 주셨네요. 알고 있는 이야기는 알아서 재미있고 모르던 이야기는 새로 알게 되니 더욱 재미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이 남아 있으니 늘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세상을 떠난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그들이 남긴 글과 이야기를 읽으며이제 우리는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내가 깃들 집, 단단히붙들고 삶을 견뎌 내야 할 기둥, 삶의 여정을 헤쳐 나가기 위해 타고 떠나야 할 때,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그렇게 우리 삶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작가의 말이 책의 원제는 『베를린은 맑은가』입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파리를 불태우라는 작전 용어 ‘파리는 불타고있는가‘로부터 착안하였습니다. 침략전쟁을 시작한 나라가 패전하고 인과응보처럼 점거된 것을 의식하면서, 개인의 죄악을 반영해 보았을 때 마음은 맑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또 제 모국인 일본은 패전의 날 하늘이 매우 맑았다고합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임을기억하라는 뜻도 이 글에 담았습니다.후카미도리 노와키
당, 나치는 ‘범죄자가 없는 아름다운 민족 공동체‘를 만들기위해 많은 사람을 박해의 대상으로 삼았다. 유대인은 물론이고슬라브인과 폴란드인, 치고이너(집시, 로마인을 가리키는 당시의 멸칭)에 공산당원, 병자와 장애인 등.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돼. 하지만 말이지, 아우구스테. 네가여기에 있어도 되는 것처럼 기젤라도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란다. 네가 재채기를 하고 싶을 때 재채기할 수 있는 것처럼 기젤라가 장미를 보고 싶을 때 장미를 봐도 되는 거야. 만약 앞으로 기젤라가 장미를 보고 싶어 하는데 많은 사람이 안 된다면서 ‘기젤라 견학 금지‘ 팻말을 세우더라도 아우구스테는 팻말을 뽑아내고 기젤라에게 장미를 보여주면 좋겠어. 약속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겁쟁이고 정의가 뭔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사람들이 벌써 죽어서 복수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