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쌍안경에서 눈 떼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안마기를 치우며)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서래 당신이 먹으려고 살상하는 건 내가 뭐라고 못하죠.근데 말이야, 내가 밥 주니까 고맙다고 선물을 하는거라면 그럼 됐어. 진짜로. 나에게 선물이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해준우리 일, 무슨 일이요?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당신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든 일이요?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행복‘을 언급해 놓고는 더 화가 나)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자부심이에요.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일어서)할머니 폰 바꿔 드렸어요, 같은 기종으로. 전혀 모르고 계세요.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서래(쓴웃음 지으며 중국어로)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你说爱我的瞬间, 你的爱就结束了。你的爱结束的瞬间, 我的爱就开始了啊。
학교 다니듯 출퇴근을 반복했고, 선생님 대하듯상사와 선배들을 대했고, 자유의지보다 규범화된세계관을 우선하며 지내왔다. ‘어떤 기자가 되고싶은가‘의 세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이래야 한다‘의 세계가 늘 이겼다. 그런나를 조직은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살려뒀으니까. 그렇게 30대가 저물었다. 좋은 기자가 되지도못했고 즐겁게 살지도 못했다. 월급만 주룩주룩 받았다. 10년이 넘도록.
"천천히 걸으니까 좋다. 저런 나무도 보고."
당신은 역사책에서도, 도심의 전쟁 기념비에서도 이여성들의 이름을 찾지 못할 테지만, 내게는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가. 조금 더, 조금 더 끔찍한 이야기를 끝없이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어떤 괴물을 키우도록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가? 포위됐던 콩고 동부에서 막구출되어 비행기에 가득 태워진 벨기에 수녀들에게, 아마 실화는 아니겠지만, "여기에 강간당했고 영어 할 줄 아시는 분 계세요?"라고 외쳤다는 그 텔레비전 리포터와 우리는 정말 다를까?
저희가 얼마나 가난한지 아시겠죠. 하지만 저희가 바라는 건 그냥 돈이 아니에요. 부당한 일을 당한 건 바로 저희라고 인정받는 것이죠."
이브 엔슬러는 나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오랫동안 성폭력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남자들은 다 어디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남성들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과 통신 덕택에 나는 몰랐노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됐다. 이 드라마에 눈을 감는다면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범죄의 책임은 가해자뿐 아니라 못본 척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엄청난 페이지터너는 아니지만 계속 넘길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이 수첩이 우연히라도 그 가치를 아는 자의 손에 들어 간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