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집을 어둡게 하고 지냈다. 시각장애인이 보는 캄캄한 어둠 이 아니라 어둠침침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그 안에 조 심스럽게 넣어두고 있었다.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개조 된 몸뚱이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심장이 거기 있었다

그는 성인의 삶이란 꼭 모래시계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다 흘러내면 뒤집어 다시 흘러내리게 하고 그것을 반복한 다. 모래시계 안에 갇힌 고운 모래는 한 톨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그걸 다 지킬 수 있 겠어? 사람은 자신의 진심을 회피하면 안 돼. 그 마음 앞에 자기 자 신을 놓아야 해."

책임은 때론 거래와 같죠. 비록 모든 거래가 이해득실을 따지 지만 좋은 거래는 의리를 중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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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불평등하다는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달리 여성을 모욕하는 일에서는 남녀가평등해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여성도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진화론이라는 것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점점 똑똑해졌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적자생존을 통해서 살아남은 이들이 이렇게 폭력적이면서도 우둔하다고?

어째서 세상은 ‘화나다‘, ‘차분하다‘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나누는 걸까. 인류의 감정이 그렇게 단순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화를 내는 사람은 차분하지 않고, 차분한사람은 반드시 옳다. 심지어 정의롭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류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 늘 이것저것 걱정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걱정이 많다는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걱정하는 것에만 불과하다는 게 얼마나좋은 일인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생각을하고 어떤 생각을 하지 않을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고, 이들이 할일과 하지 않을 일을 고려해야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이 순간의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우리의 안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면 사람들에게비웃음을 살 수 있지만, 대신 그날만큼은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아니,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니까. 여성을 강간하지도, 성희롱하지도 않았다. 그건 나도 알았다. 문제는 그들 중 누가 그러하고 누가 그러하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어제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도 그러지 않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가장 큰 억압이 평등권 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 게임에서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각각의 세부 항목마다별 다섯 개짜리 호평을 얻으려고 어쩔 수 없이 애를 쓰다니. 그리고 가장 우스운 건 이거였다.

"아니지. 성적인 농담을 한다거나 사업적으로 성공했다거나 성격이 단호하다는 건 내 개인적인 특징이잖아. 이런 게 대장부랑무슨 상관이야. 그럼 성적인 농담을 안 하는 좋은 남자들이 너무억울해하지 않겠어?"

인생이라는 게 있잖아, 사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저들은 성희롱도 못 본 척하는 놈들이거든. 아줌마 욕도 대놓고는못해서 멀리서 속삭이는 놈들이라고. 저딴 놈들의 생각 같은 건신경 쓸 필요도 없어.

자기 아이를 픽업해 오라고 하거나 생활용품을 사 오라고 하거나 전처의 전화를 대신 받으라고 하는 대머리 배불뚝이 전 상사에게 사실은 온화함과 인내심, 인정이라는 또 다른 면모가 있었다면? 그러한 면모들을 정말로 알고 싶을까?

"아, 주인공 배우라는 그 딸이구나? 어쩜 이렇게 예쁠까. 엄마따라 시장에도 왔네. 자상하기도 해라. 친정에 자주 와서 엄마랑시간도 보내 주고 그래."
(아, 며느리구나. 요즘 통 얼굴을 못 봤네. 며느리가 집안일을 좀 더도와야지. 시어머니 연세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젊다고 너무 자기놀 생각만 하면 안 된다고.)

저는 제가 타이완 여성에게서 보았던 보이지 않는 족쇄‘들을『여신 뷔페』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죄악처럼 보이는 족쇄는 아니지요. 가끔은 달콤한 설탕물이 입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족쇄들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어야만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더는 가부장제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자기 자신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는데도 이를 잊게 되었다면, 혹은 아직은그렇게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인류 사회에 수천 년이나 심어진 독소인걸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다음에 안 되면 그다음에 하면 되는걸요. 우리 계속 함께 노력해요.


2025년 6월
류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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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과 갈등없이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한 소설이었습니다. (마침 책에서도 터너를 언급했더라고요.)책을 읽는 동안 유튜브로 iss에서 보여주는 지구를 한참이나 보았습니다. 수시로 해가 지는 광경이 비현실적이기는 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먹먹해 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 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지구는 주변부도 중심도 아니다. 전부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보통은 아닌 듯 보인다. 돌로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어슴푸레한 빛이자 에테르처럼 보인다. 지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는 민첩한 행성이다.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행성은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부로 좌천되어 무언가를 따라 도는 존재다. 작은 혹 같은 달을 빼면 무엇도 지구를 따라돌지 않는다. 이런 존재가 우리 인간을 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계속해서 알려 주는, 나날이 커지는 망원경 렌즈를 닦는 우리를. 우리는 멍하게 거기 서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주변에 있을 뿐 아니라 우주가 주변일 뿐임을. 중심은 없고 그저 어지러이 왈츠를 추는 것들의 무리뿐임을 깨닫는다.

이제 인류는 자해와 허무주의에 빠져 닥치는 대로 깨부수는 10대 후반기에 접어든 게 아닐까. 살게 해 달라고 한 적도, 돌봐야 할 지구를 물려받게 해 달라고 청한 적도, 이토록 혼자 억울하고암울하게 살게 해 달라고 바란 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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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0여년 전에 손택여사가 화내던 상황들은 아직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회는 젊음에 정서적 특권을 부여하고, 이것이 모두에게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을 일으킨다. 현대의 모든 도시화된 사회가(부족사회와 달리) 성숙함의 가치를 낮잡아 보고 젊은 시절의 기쁨에만 한껏 영광을 돌린다.

여성이 ‘미스‘와 ‘미세스‘로 나눔으로써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끊임없이 관심이 집중된다는 사실은 혼인 여부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중요하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나이 듦은 생물학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판단이다. 완경기(수명이 늘어나면서 갈수록 늦게 찾아오고 있다)에 겪는 혹독한 상실감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 노화로 인한 우울감이다. 이 우울감은 여성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 비롯된 게 아닐 수 있다. 이 우울감은 여성의 상상력이 자꾸 ‘억제되는‘
상태이며, 이 상태를 명하는 것은 바로 사회다. 즉, 이 우울감은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자유롭게 상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여성은 변화가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꿔야 하고, 서로를 바꿔야 한다. 오로지 여성이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무엇이 남자에게 좋은지를 망각할 때만 여성의 의식이 변화할 것이다. 남성과 협업해서 이러한 변화에 착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 투쟁의 범위와 깊이를 축소하고 하찮게 만든다.

‘해방된‘ 여성의 첫 번째 책임은 최선을 다해 가장 충실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책임은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해방된 여성은 남성과 함께 살고일하고 섹스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처한 상황을 현실보다 더단순하거나 덜 의심스럽거나 타협으로 가득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 할 권리는 없다. 남성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다른 자매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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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 하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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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시작한 커플은 날개를 받쳐 주는 바람이 있으니 우리처럼 관계를 유지하려고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래된 커플, 그중에서도 특히 피하고 싶은 과거의 끔찍한 그늘이 있는 커플은 날개를 퍼덕여야 한다. 우리가한게 그거였다.

내게 자신의 상상과 말초 신경을 맡긴 열혈 독자들에게도 무한한감사를 전한다. 그대들은 더 어두운 걸 좋아하는가? 좋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래서 우리가 영혼의 단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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