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과 갈등없이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한 소설이었습니다. (마침 책에서도 터너를 언급했더라고요.)책을 읽는 동안 유튜브로 iss에서 보여주는 지구를 한참이나 보았습니다. 수시로 해가 지는 광경이 비현실적이기는 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먹먹해 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 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지구는 주변부도 중심도 아니다. 전부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보통은 아닌 듯 보인다. 돌로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어슴푸레한 빛이자 에테르처럼 보인다. 지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는 민첩한 행성이다.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행성은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부로 좌천되어 무언가를 따라 도는 존재다. 작은 혹 같은 달을 빼면 무엇도 지구를 따라돌지 않는다. 이런 존재가 우리 인간을 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계속해서 알려 주는, 나날이 커지는 망원경 렌즈를 닦는 우리를. 우리는 멍하게 거기 서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주변에 있을 뿐 아니라 우주가 주변일 뿐임을. 중심은 없고 그저 어지러이 왈츠를 추는 것들의 무리뿐임을 깨닫는다.
이제 인류는 자해와 허무주의에 빠져 닥치는 대로 깨부수는 10대 후반기에 접어든 게 아닐까. 살게 해 달라고 한 적도, 돌봐야 할 지구를 물려받게 해 달라고 청한 적도, 이토록 혼자 억울하고암울하게 살게 해 달라고 바란 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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