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평점 :
최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에세이집을 몇 권 읽었습니다.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내가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나에게 가해진 차별과 불평등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지 답답했습니다.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행동하는 것일텐데 우물안에 갇힌 저의 생각은 우물안 바가지만했던 것이었지요. 개구리는 뛰기라도 하지, 바가지인 저는 그저 물위를 둥실둥실 떠다니고만 있을 뿐, 가끔 누군가 물을 길으며 우물밖으로 꺼내주면 보이는 세상에 깜짝 놀랐다가 다시 우물안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여성들이(일부 남성들도) 힘들게 일구어 놓은 변화를 아무런 책임감 없이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러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불평등이라 생각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사람은 정말 내가 직장에 나가 성공하고 바쁘게 사는 것 보다 내 남편과 아이를 위해 빨래와 요리를 하는 것이 즐거운데 다른 사람들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옳을까요?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읽으며 무릎을 치고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많지만 가끔 전업주부를 혐오하는 듯한 글을 읽을 때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일에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다만 자신의 하는 일이 비하되거나 능력이 아닌 일 자체로 평가절하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에는 남학생들만큼이나 여학생들도 대학에 다니고, 여성 대부분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지고있다. 피임은 여성들에게 어머니가 되는 순간을 선택할자유를 부여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식사, 빨래, 청소같은 실제 생활을 책임지고 항상 걱정하는 쪽은 여전히여성이다. 여성들은 ‘모든 것을 절충하는 법’을 습득해서, 자신들의 두뇌 속 다양한 소프트웨어 사이에서 온종일 재주를 부린다. 이런 상황을 설명해주는 생물학적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단지, 소년과 소녀가 함께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통이란 것이 깨어나서 자신의 모델을강요한다. 말하자면 한 성에 대해 다른 성의 지배와 불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커플이 되기 전에일 분담, 아이 돌보기, 상호 자유의 문제에 합의해둘 필요가 있다. 커플이 된 후에는 대체로 너무 늦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가는 이 모험에서, 우리는 평등하게 출발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 속에서도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 소녀들, 여성들의 임무다.
아니 에르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