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는 것이지요.
내친김에 ‘경양식집에서’까지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신기하게도 두권의 음식점 소개 책을 읽으면서도 그다지 허기가 들거나 식욕이 일지는 않더군요. 모든 음식이 대부분 아는 맛이니까요. 하지만 우연이라도 그 지역에 가게 된다면 들려보고 싶은 마음에 꼼꼼히 저장해 두었습니다. 경양식집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어릴 적 동네에 ‘궁전 레스토랑’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동네 유일한 경양식집이었지요. 셋집에 살던 우리 식구들이 정말 큰맘먹고 외식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저만 외출을 하고 동생과 아빠는 집에 있었는데 귀가하니 문은 잠겨 있고 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도 디지털키도 없던 시절이기에 엄마와 저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아빠와 동생이 나타나서는 ‘궁전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먹고 왔다 했습니다. ‘이럴수가!!!! 동생만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그 ‘궁전레스토랑’의 맛은 잊었지만 그날의 분노는 아직도 마음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 둘! 남편과 어릴적 먹던 경양식집 돈까스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에게 “당신은 밥이랑 빵중에 뭐 달라고 해서 먹었어?”라고 물었더니 “우리엄마는 항상 ‘빵으로 주시구요, 밥은 서비스로 주세요’ 라고 해서 매번 같이 먹었어”랍니다. ‘이럴수가!!!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어머님 존경합니다.’ 매번 빵과 밥사이에서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다시 경양식집에 가서 돈까스를 먹게 된다면 어릴 적 이야기들이 다시 술술 나오겠지요.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라 할 수도 있고 ‘고독한 미식가-중식편’이라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오래전 학교 선배는 ‘단무지만 먹어봐도 맛있는 중국집을 알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도 없이 조율사님의 리스트만 구글맵에 찍어두면 되겠습니다. 만약 조율사님이 저희 집에 조율을 하러 오신다면 저는 아침도 안먹고 기다리다가 조율사님의 퇴근길을 미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불리던 많은 별명중의 하나는 ‘강화백’이었습니다. 그림을 잘그려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못그리기 때문이었지요. 미술시간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미술수업이 4교시나 마지막 시간에 있지 않으면 마음만 더 급해지고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선생님의 배려로 집에서 완성해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옆집친구에게 부탁해서 그려갔을 정도 입니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가 두렵고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웠을 뿐이지요. 따라서 그리는 것은 해보겠는데 3차원의 무언가를 2치원으로 옮긴다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리는 것은 정말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려보고 싶어 드로잉책도 사보고(집에 김충원 선생님의 책이 몇권이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후 전철을 타고 한시간씩이나 가서 미술수업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곳에서는 부끄러움과 자괴감만을 더 얹어 왔을 뿐입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도 ‘또 뻔한 이야기겠군’ 이라는 생각에 지나쳤지만 ‘그래도 한번…?’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흰 종이에 대한 불안, 처음 그은 선 하나에 대한 불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등 제가 그동안 느껴온 감정들이 이 책안에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고 좀 뻔뻔해져야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꾸준히 그리는 것! 그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겠지요. 유명한 화백들도 매일 몇시간씩을 그림연습을 한다던데 겨우 애송이축에도 못드는 ‘강화백’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불안함 밑에 숨겨진 오만함으로 무조건 잘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수영을 잘하고 싶어서 매일 수영장에 가고, 아사나를완성하기 위해 매일 요가원에 갔던 것 처럼 그림을 잘그리기 위해서는 매일 그려야 한다는 것!!!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럼 그림을 매일 그리기 위해선 뭐다? 먼저 좋은 종이와 펜부터 사야겠습니다. 이미 장바구니가 그득합니다. (장비병을 부추겨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년 전 그린 그림을 하나 올립니다. 당시에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보았던 ‘디어 마이 프렌즈’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 딱 이수준인데 연습하면 정말 나아질 수 있겠죠?
작년 1월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새해 아침에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1월 2일에 다니던 요가원 옆의 피아노 학원에 무직정 등록을 했지요. 그저 좋아하는 곡정도는 피아노로 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의 모든 노력은 노후준비로 결론이 납니다. 직장생활은 노후의 경제력을, 요가는 건강을, 독서는 혼자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피아노는 혼자 즐기는 방법을 알기 위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도 그런 것들로 인해 생활이 되고 삶의 활력이 되지요. 저는 클래식을 동경하지만 즐겨듣는 편이 아니라 주로 재즈나 POP음악의 코드반주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입으로만 중얼거리던 노래들을 피아노 연주로 해내면서 무척이나 즐겁고 만족감을 느낍니다. 저 나름대로의 반주법을 연구해가며 노력의 성과를 직접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 주변 사람들도 저에게 자주 묻습니다. 피아노를 뭐하러 배우냐고. 저의 대답도 작가님과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나 좋으라고, 나 기쁘려고 배우고 있다고.
내 삶에는 ‘연습‘ 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있는 것이 필요하다. 도통 안 되던 것이 잘되어갈 때의 희열이라든지, 좋아하는 곡을내가 직접 연주할 때의 쾌감을 느껴본 지오래되었다. 피아노를 연습하면 글쓰기에서 채워지지 않아 조바심에 시달리던 부분들이 충족될 것이다.
나는 ‘하면 된다‘ 라는 말을 싫어한다. 듣기에도 별로고 쓰기도 꺼려진다. 때에 따라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말은 ‘된다‘ 라는 결과를 빌미로, 남을 또는 나 자신을 가두거나 낭떠러지로 밀면서 몰아세우고 강요한다.무조건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곁에두니까, 마침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