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에서 불리던 많은 별명중의 하나는 ‘강화백’이었습니다. 그림을 잘그려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못그리기 때문이었지요. 미술시간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미술수업이 4교시나 마지막 시간에 있지 않으면 마음만 더 급해지고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선생님의 배려로 집에서 완성해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옆집친구에게 부탁해서 그려갔을 정도 입니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가 두렵고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웠을 뿐이지요. 따라서 그리는 것은 해보겠는데 3차원의 무언가를 2치원으로 옮긴다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리는 것은 정말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려보고 싶어 드로잉책도 사보고(집에 김충원 선생님의 책이 몇권이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후 전철을 타고 한시간씩이나 가서 미술수업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곳에서는 부끄러움과 자괴감만을 더 얹어 왔을 뿐입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도 ‘또 뻔한 이야기겠군’ 이라는 생각에 지나쳤지만 ‘그래도 한번…?’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흰 종이에 대한 불안, 처음 그은 선 하나에 대한 불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등 제가 그동안 느껴온 감정들이 이 책안에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고 좀 뻔뻔해져야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꾸준히 그리는 것! 그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겠지요. 유명한 화백들도 매일 몇시간씩을 그림연습을 한다던데 겨우 애송이축에도 못드는 ‘강화백’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불안함 밑에 숨겨진 오만함으로 무조건 잘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수영을 잘하고 싶어서 매일 수영장에 가고, 아사나를완성하기 위해 매일 요가원에 갔던 것 처럼 그림을 잘그리기 위해서는 매일 그려야 한다는 것!!!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럼 그림을 매일 그리기 위해선 뭐다? 먼저 좋은 종이와 펜부터 사야겠습니다. 이미 장바구니가 그득합니다. (장비병을 부추겨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년 전 그린 그림을 하나 올립니다. 당시에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보았던 ‘디어 마이 프렌즈’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 딱 이수준인데 연습하면 정말 나아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