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호수 난간에 날계란만한 전구를 줄에 끼워 굼틀굼틀 꾸며놓았다. 그것이 검은 호수에 비쳐 흔들리는 야경이 말할 수 없이 좋아 보였다.
대체 스위스 철도는 빙빙 돌든지, 언덕을 오르든 지, 10분 20분씩 굴속으로 들어가든지, 경색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문인 묵객을 상대로 하는 만큼 산촌이고 수변 마을이고 이르는 곳마다 호텔이 무수하고, 등산 열차가 곳곳에 보인다. 기차선로의 좌우 언덕은 솔로 씻은 듯이 잔디가 고르고, 군데군데 목초지는 말뚝 박고 목재를 좌우로 아무렇게나 걸쳐서 지은 것이 향촌의 흥취를 풍긴다. 붉은 수건을 쓰고 조선치마같이 긴 치마를 입은 농가 부녀들이 나무 위에 올라 앉아 과일을 따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좁은 길의 돌과 흙이 햇빛에 비쳐 부서지는 흰빛도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하던 진경이었다.
베를린은 전차, 버스, 택시, 지하철이 쉼 없이 왕래하여 대도시의 기운이 농후하였다. 교통경찰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통행을 안내하는데, 4거리에는 반드시 공중이나 지하에 전기 신호등을 달아놓아 붉은 불이 나오면 진행하고 푸른 불이 나오면 정지하게 되어 있다. 매우 합리적이고 바라보기에도 경쾌하였다. 모든 것이 과학 냄새가 난다.
흥겹게 노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데 알 수 없는 적막과 슬픔이 머릿속을 채운다. 눈을 감고 먼 고국의 풍경을 그려보노라니 소리 없는 한숨이 목구멍을 감돈다.
그 외에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지금까지는 중성 같았던 것이). 그러고 여성은 위대한 것이요, 행복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물정이 여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보았고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큰 것이 존귀한 동시에 작은 것이 값있는 것으로 보고 싶고, 나뿐 아니라 이것을 모든 조선 사람이 알았으면 싶다.
나혜석 : 깃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나요?
S: ‘여성의 독립을 위해 싸우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였습니다.
나혜석 : 물론 많이 잡혔겠지요?
S: 잡히고 말고요. 모조리 잡혀 들어가서 금식 동맹을 하고 야단났었지요.
나혜석 :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이것이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혜석 : 이것 나 주십시오.
S: 무엇하시게요?
나혜석 :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
고야는 만년에 시력이 쇠약해지고, 귀머거리가 되고, 궁핍하였다. 판화를 그리려고 조국을 떠나 멀리 적막한 남프랑스 보르도에 우거하였다가 1828년 4월에 파란 많은 삶을 마쳤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그의 묘를 보고 아울러 그의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또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이 생각 들었다. 내 발길은 좀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내가 이같이 감흥해 보기는 일찍이 없었다.
동경 집은 모두 바라크 같고, 도로는 더럽고, 사 람들은 허리가 새우등같이 꼬부라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구라파 경색에 비하면 산이 높고 수려한 맛은 있으나, 마음을 적시는 기분이 적다.
아, 아, 동경하던 구미 만유도 지나간 과거가 되고, 그리워하던 고향에도 돌아왔다. 이로부터 우리의 앞길은 어떻게 전개되려는고.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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