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 파치먼이 얼마나 일을 잘 할지, 자신 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할지 궁금했다. 그녀에게는 개인 욕실과 텔레비전, 안락한 의자 몇 개와 푹신한 침대를 제공해 주었다. 짐 말에게는 좋은 마구간과 여물통이 필요하니까. 그녀가 이에 만족해서 앞으로도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유니스 또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유니스가 오기로 한 오월 구일 토요일이 되었지만, 커버데일 가족은 그녀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이 집에 오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지, 자신들에게 닥친 것과 똑같은 희망과 공포를 그녀도 느꼈는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그들에게 있어 유니스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기계에게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으려면 적당히 기름을 치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도록 계단에서 거치적대는 물건을 치우기만 하면 족하다
하지만 유니스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멜린다의 말처럼 유니스 는 살아 있는 존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고 있는데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치자. 도둑은 나보다 힘이 세고 주변에 흉기 될 만한 것이 널려 있다 치자. 일어 나서 도둑이야 소리 지르면 도둑이 나를 죽일 것 같아서, 도둑이 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치자. 그래서 내가 아주 귀중한 것을 도둑맞았다면, 그건 내 잘못인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도둑에게 제압당했다고 치자. 내가 다치고 부러졌다고 도둑은 도둑질하지 않을까? 저항하다가 내가 죽었다고 치자. 도둑은 도둑질하지 않을까? 내가 소리 지르거나 죽도록 반항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가만있 었으니까 도둑은 아무 잘못이 없나?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도둑보다 도둑맞은 내 잘못이 크다고. 네가 도둑맞을 짓을 했다고. 나는 몰랐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무서웠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의심하고 내 잘못을 지적한다. 내 인생은 이미 망한 것처럼 말한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애가, 사리분별 다하고 할 말 다하는 애가 그냥 당하고만 있었다니 말이 되느냐, 요즘 애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약았는데, 울면서 하는 말이라고 다 믿으면 안 된다. 걔가 뭔가 감추는 게 있 을 것이다, 그런 소리들, 내가 못 들은 줄 알지.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냐고 할 때는 몰랐다. 내 감정을 알지 못했다. 부끄러워야 하나 헷갈렸다. 이렇게 쓰니까 확실히 알겠다. 난 부끄럽지 않다. 난 고통스럽다.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당신들도 당해봐야 한다. 내가 겪은 것 을, 나와 똑같은 상황과 조건에서 당해보면 알 것이다. 어째서 당하고만 있었는지. 어째서 부끄럽지 않고 고통스러운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겪은 일이 먼지인 줄 안다. 먼지처럼 털어내라고 말한다. 먼지가 아니다. 압사시키는 태산이다.
꼼짝할 수 없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일 수 있다. 걷고 보고 말하고 달릴 수 있다. 울고 웃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모는 내가 겪은 일 때문에 나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제야는 일기에 이모의 말을 썼다. 언젠가는 이모의 말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랐다.

나는 내 인생 최대 불행이 강간당한 거라고 생각했는 데, 아니다. 내 인생 최대 불행은 이런 세상에, 이런 사람들 틈에 태어난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른이라고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하고 어른이 하는 말이니까 들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싹수가 노란 거고 애당초 글러먹은 애가 되는 거고. 당숙이 악마여서 나를 강간한 게 아니다. 여기서는 그게 강간이 아니니까 강간한거다. 당숙이 당당한 건, 가해자면서 희생자인 척 구는 건, 이 세계에서 아주 당연한 문법인 거다. 여기 사람들은 ‘강간‘이나 ‘성폭행‘의 의미를 모른다. ‘남자가 꼴리면 그럴 수도 있는 짓‘만 안다. 돈이 많으면 돈도 많은데 무슨 대수냐, 궁핍하면 불쌍하니까 눈감아주자, 돈이 적당히 있으면 먹고살 만해서 잠깐 딴생각을•·•••• 그러므로 이곳에서 남자는 언제나 그럴 수 있다.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도 여성 할례가 있다고 들었다. 더럽고 불경하다며 생리하는 여자를 격리한다고 들었다. 여자를 재산 취급한다고 들었다. 결혼 지참금이 적다고 여자를 학대한다고 들었다. 여기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 해주면 뭐라고 할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기겁 할까? 우리는 뭐 다르나? 대한민국은 달라? 내 아들이 한 달에 거둬들이는 돈이 얼만데 젊어서 여자애 하나 건드린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이 땅은·••·•• 야만인들. 파렴치 한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아, 누구와 함께해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없어. 남자들은 입만 열면 시대가 틀렸다느니 사회가 문제라느니 말이 많지만, 자기 눈 속에 정열이 없다는 게 제일 나쁘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어…‘

젊은 죄수는 커튼도 치지 않고 얼굴 가득 아침 햇살을 받으며 늠름하게 숨을 몰아쉬며 자고 있었다. 빛 은 머리맡에 세워둔 엽총 가죽 가방을 반지르르하게 비 추고 있었고, 이런 지저분한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수 한 광선이 실내에 가득 차 있었다. 벽에는 서양의 명화 를 복제한 벌거벗은 여자가 어두운 숲속 샘물을 들여다 보는 척하며 츠요시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나쓰코는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질 수 있는 생각 - 소프트커버 보급판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어른‘은, 우연히 자기 바로 앞에 선 작은 영혼에게 그때 당면한 최선을 다해 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그저 보여 주는 사람일지 모른다. 멘토라는 말은 흔하지만, 스스로 멘토가 되고자 한다고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단숨에 드러나지 않지만 말없이 삶으로 보여 주는 수많은 멘토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건축 여행 - 시간을 건너 낯선 눈으로 서울을 보다
김예슬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을 따라 양 옆으로 빼곡한 건물들, 자동차, 저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까지. 높은 곳에서 보니 도시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연신 감탄하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울 처음 왔냐고 깔깔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렇게 도시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주변을 새롭게 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이 여행이기도 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