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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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첫 책을 읽은 후 늘 다음 책을 기다리고 나오면 바로 읽고, 작가님이 더 좋아 지고 다시 기나긴 기다림을 하게 되지만 재촉하는 마음이 죄송할 정도로 이렇게 힘들게 책을 쓰시니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막연하게 상자만 나르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에도 그 나름대로 방식과 절차가 있었다. 내가 일터에서 사랑하는 순간들이 이런 것을 발 견하게 될 때다. 너무나도 뻔하고 단순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 다양한 체 계와 규칙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조금의 상상력도 자극하지 않는 보잘 것없던 존재들이 고통을 함께한 사람에게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단면들 을 펼쳐 보여주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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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67
천선란 지음 / 위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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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책을 읽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너 한글 쓸 줄 알잖아. 그럼 됐지."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여태껏 내가 뼈에 새기고 있는 삶의 이정표 중 하나다. 모두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어쩌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규칙도 모른 채 축구공을 찬 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전 부 알고 하지 않는다. 희끄무레한 빛, 크기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그런 것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공부는 더 자세히 알기 위한 후속 단계이지, 출발점에서부터 이고 가야 할 건 아니란 말이다.

도망치는 때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 생각한다. 북토크에서 독자들이 이 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 나는 도망치라고 말한다. 견디고 이기는 건 나 중 일이고, 숨이 막히면 우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도망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삶은 전쟁터가 아니다. 왜 삶이 전쟁터여야 하는가? 적어도 내게 산다는 건 그 저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 너무 의미가 많아 모 든 것이 무의미해진 모순적인 세상에서, 너무 많은 존재 속에서 의미를 잃은 내가 꿋꿋하게 존재하는 것. 방법은 간단하다.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로부터 도망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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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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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 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 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 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 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 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 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 날거야.

나란 존재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의 합에 더욱 가까웠다

삶이 점점 힘들어질 수도 있죠.
그 비관을 끌어안고 희망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과 가치가 있 으니까. "세상은 다 망했어"라고 말하는 대신 "망하 도록 두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 으면 좋겠어요. 희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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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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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다. 독보적인 자기개발서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게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라 하지 않아도 나를 시간에 맡기고 누리라는 어마어마한 인생의 팁을 알려준다. 게다가 그 시간은 무려 24챕터로 나뉘고 단 한번도(매년 돌아오는 그 제목의 챕터 마저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 들 이미 내가 이전의 나와는 달라져 다른 감각으로 다시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매일 달력을 볼때 숫자가 아니라 그 밑에 작게 쓰인 글자에 더 눈이 간다.

+ 절기를 기준으로 한 달력을 굿즈로 만들어 주셨다면 무척이나 기쁘고 유용했을 듯!

입춘 날 각자 맡은 일을 아홉 번씩 하던 ‘아홉차리‘라는 풍속도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한 해 동안 복을 받는다고 믿었기에 공부하는 아이들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나무를 아홉 짐 하고, 나물을 캐도 아홉 바구니를 캐고, 새끼를 꼬아도 아홉 번 꼬았다는 얘기. 이날은 매를 맞아도 아홉 번을 맞았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거 중간이 없네, 싶어 웃음이 났다. 하지 만 꼬박꼬박 세어가며 어떤 일을 아홉 번 채웠을 마음에는 역시 희망이 깃들어 있었겠지.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면 서쪽 연못에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이 되어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세모*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 데에 이바지한다.
<죽란시사첩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적는 이유는 하나. 어둑했던 일상을 환히 밝혀주는 봄꽃들을 정확 히 호명하고 싶으니까. 어떤 영화는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 혼자 보러 가게 되지만, 봄이 상영하는 영화만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어진다. 혼자 걸으면 멈추 고 싶은 데마다 멈춰 서고, 앉아 있고 싶은 데서 하염 없이 앉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홀가분함보다 큰 건 "이것 좀 봐!" 말하고 싶은 마음. 옆에 선 이의 어깨 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순간이 다섯 걸음에 한 번씩은 나타나는 게 봄의 산책이다.

걷는 계절. 자연은 어서 나와 이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한다. 햇빛을 행복의 자원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행 복해질 기회는 이미 충분히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무엇이든 해보라고 격려 해주는 손길 같다. 눈부시게 자라난 올해의 신록과 활 동량이 부쩍 늘어난 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1년 중 가 장 씩씩해져서 이맘때를 보낸다.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적마다,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오늘 같은 날은 접어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1년을 담은 책이 있다면 아마 초여름 부분은 접힌 페이지가 가장 많아 서 책의 오른쪽 모서리가 불룩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다들 가을에 진심인 것, 아름다 움 앞에 열심인 것. 그 마음을 헤아리면 이 모든 소동 이 극성이 아니라 정성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성 수기가 성수기인 이유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는 저마다의 제철 숙제 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방어 먹으러 제주에? 서울에도 파는 데 많은 데." 그런 말이 떠올랐다면 넣어두시길. 여기서 포인트 는 ‘굳이‘에 있으니까. ‘굳이데이‘의 창시자인 뮤지션
‘우즈‘도 말하지 않았던가.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고. 사는 거 뭐 있나. 제철 음식 찾아 굳 이 거기까지 가서, 굳이 줄을 서고, 마침내 고대해온 음 식을 앞에 두고 이 계절을 기념하듯 잔을 부딪치는 그 런 거지. 한겨울 방어 먹으러 모슬포에, 늦겨울 새조개 먹으러 천수만에, 이른 봄 도다리쑥국 먹으러 통영에
‘굳이‘ 가는 그때야말로 비로소 제철을 아는 어른의 세 계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산지가 바로 맛집‘인 제철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귀찮음의 여정에 몸을 싣는 사람만이 제철 낭만을 누릴 자격을 얻는 법. 효율 같은것만 따져서는 한 번뿐인 인생이 팍팍해진다. ‘언제까 지 낭만 타령이나 할 거냐‘는 말에는 ‘평생‘이라는 답을 미리 준비해둔다.
나만 아는 기쁨의 목록을 가지고 그 목록을 하나하 나 지워가면서 하나의 계절을 날 때 다른 숙제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이란 계절은 여행지 같 다.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틈틈이 준비물을 챙기 고, 도착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적어두게 되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 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하기로 되어 있는 흐름에 내 걸 음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불필요한 가 지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꼭 필요치도 않 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 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다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 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 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 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 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겨울 숲의 저 나무들처럼, 신의 부재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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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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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 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 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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