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동참, 이모티콘. 컵라면보다 빠르게 해결 가능한 이 선의를 창조해 낸 것은 어쩌면나의 마음이 아니라 네이버페이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제법 많은 인간이 과거를 동경하게끔 설계되었다는 걸 은주와 수원은 알고 있을까.

무인 계산대의 바코드 음이 성스럽게 느껴져 무릎을 꿇을 뻔했다. 전면 기계화, 염가 판매. 이 모든게 무수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 필요했다. 비록 이것들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인간 사회에기계문명의 침투를 허가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결국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위로해 주는필요악이었다. 그것도 모르는 채 나는 그들을 모욕했고 나의 도덕을 그들의 미래 위에 올리려 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만약 소설을 읽고 화가 났다면, 당신이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방감을 느꼈다면, 그것 역시당신이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상반되는 두 결과 모두가 당신의 도덕성을 증명한다. 왜냐? 당신은 도덕적인 사람이고 그래야만 하도록 교육받았으니까.
숨 막히지 않는가? 화를 내는 일도, 해방감을 느끼는 일도, 당신이 곧 ‘사회‘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예속된 ‘자코메티 조각상의 팔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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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퍼트리샤 록우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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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그냥 타고난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야." 그 들은 서로에게 거듭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는 그들 에게 달린 문제였다. 뇌와 몸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 한 그들의 생각. 신경과의사가 처음 만난 그날 언젠 가 저 아기가 셋까지 셀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부 드럽게 말했을 때, 그녀는 하마터면 탁자를 뒤집어 엎을 뻔했다. 셋까지 셀 필요가 뭐가 있어? 셋까지셀 줄 아는 우리가 어떻게 됐는지 봐. 지금 당신한테 경고하는 거야.

"난 백만 년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어." 여동생이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매일 아침 아기에게 열세가지 약을 주며 살았을 거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은 없어. 난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하고 싶은사람은 작고 사랑스러운 나의 리나, 너는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에게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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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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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이천원짜리 스페인산 올리브유 아홉 병을 한 번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요리해서 먹는지, 십삼만구천원짜리 이탈리아산 소가죽 벨트를 쏜살배송으로 주문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진주 자신도 즉석밥이나 생수 따위를 종종 주문했는데, 그 점에 비춰보면 그들도 단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일 거라고, 그래서 자기가 시급을 받고 시간을 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복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진부한 악과 싸우는 일보다는 감춰진 위선을 폭로하는 일이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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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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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욕은 대도시였고, 대도시 에서 오페라에 일찍 나타나는 건 ‘유행에 어긋나 는‘ 일이었다. 그리고 뉴런드 아처가 살고 있는 뉴 욕에서 무엇이 ‘유행‘인지 아닌지는 수천 년 전 조 상들의 운명을 지배했던 두렵고 불가사의한 미신 만큼이나 중요했다.

뉴런드 아처에게는 ‘안목‘ 없는 처신이야말로 최 악이며, 안목에 비하면 ‘격식‘은 부차적이고 표면 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처는 앞서 들은 얘기 가 준 충격을 잊어버렸다. 밴 더 라이든과 친척지 간인 공작을 아둔하다고 생각하고, 감히 그 생각 을 말하는 여성을 만난 건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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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는 ‘접잖은‘ 여자들은 대체 몇 살 이 되어야 독자적으로 행동하게 되는지 궁금했다.
‘평생 못 그러겠지. 우리가 그렇게 놓아두질 않 겠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본인이 실러턴 잭슨 씨에게 퍼부었던 말을 떠올렸다. "여자들도 우리 처럼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어요••••.."

"바보 같은 애지!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린 지 그렇게 말했건만. 유부녀에 백작부인으로 행세 할 수 있는데 왜 늙은 엘런 곳으로 살려고 해!"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않고 길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고 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그대로네요."
아처는 ‘변해 있었어요. 당신을 다시 만나기 전 까지는‘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냥 벌떡 일 어서서 무덥고 어수선한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처가 물었다.
"우리가? 그런 식의 우리는 있을 수 없어요! 우리 는 서로 거리를 유지해야만 같이 있을 수 있거든 요. 그렇게 해야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있 어요. 안 그러면 우리는 그저 우리를 믿는 사람들 을 속이면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엘런 올렌스카의사촌의 남편인 뉴런드 아처와, 뉴런드 아처의 아 내의 사촌인 엘런 올렌스카일 뿐이에요."
"아, 나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어요." 아처가 신음하듯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한 번도 그 단계 를 넘어선 적이 없어요. 나는 넘어봤고, 거기가 어 떤 곳인지 알아요." 부인이 낯선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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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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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국가에 요청받은 납세와 병역 등 여러 의무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전쟁에 나가 죽어서돌아오지 않은 이가 있다면, 주검이라도 찾아서 가족에게 돌려주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계약 위반이다. 선주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국가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내부 구성원에게 증명시켜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름 없는 군인의 유해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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