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어학공부 어플을 알게 되어 심심풀이로 영어공부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my computer your computer부터 시작하려니 시시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뭔가 끝장을 보고 싶어 해보았더니 한달도 되지 않아 마스터 트로피를 받아버렸습니다. (이는 결코 제 영어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주입식교육 12년을 과정을 이수한 대상자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옆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남편을 보니 다른 언어공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평소 배우고 싶거나 관심이 있던 언어는 없었기에 그저 많이 사용되는 언어라는 이유로 스페인어를 선택했습니다(그런 이유라면 중국어가 우선이었겠지만 시작도 전에 한자 앞에서 좌절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스페인어.. 앱으로 혼자 공부하려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 영어와 비슷해 외우기 어렵지도 않고 새로운 단어를 배워 한글떼는 아이처럼 보이는 사물마다 스페인어로 발음해보는 기분은 신선했지요. 하지만 결국 마의 구간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동사변형이 닥치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그저 앱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책을 찾아 보던 중 하현작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제 마음과 같은지… 큰 목표 없이 그저 호기심만으로 시작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는 스페인어. 잘하면 좋고 못해도 할 수 없는 스페인어. 이렇게 배우는 수준으로 원서를 읽을 수도 유창한 회화를 할 수도 없겠지만 낯선 언어를 배우는 재미만으로 일상에 활력이 생겨 일석이조는 되니 어쨌든 제게는 이익입니다.
결국 스페인어 문법책은 더이상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파고 들면 금방 지루해 질 것 같거든요. 제 스페인어공부의 목표는 그저 ‘가늘고 길게’이니 아직 동사변형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작가님과는 다르게 저는 여행을 좋아해 언젠가는 스페인에 가서 단어의 나열로만 여행을 즐겨 보고 싶습니다. 우리도 외국인이 더듬거리고 한국말을 하면 문법이 틀리더라도 그저 귀엽게 봐주지 않나요? 스페인에서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Yo necesito una café라고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오늘도 반갑게 스페인어를 마주합니다.
제2외국어 배우기. 말하자면 내게 그건 외발자전거 타기나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한 번쯤 흥미를 가져 볼 수는 있겠으나 결코 실천에 옮기지는 않을 일. 해서 나쁠 건 없겠지만 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건 없는 일. 학창 시절 선택 교과로 슬렁슬렁 배웠던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외하면 내 인생에 제2외국어 같은 건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꼬박 이십 년을 배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제2외국어가 웬말인가.
일상이 단조로운 건 그렇다 쳐도 삶의 목표마저 이렇게한결같다니. "이러다 너무 평평한 인간이 될 것 같아요." 고민 상담을 가장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뭔가 새로운 걸 배워 보면 어때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면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 같고……" 그 말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학원에 가서 뭔가를 배우는 건 의지박약형 인간이자 안전제일주의자인 나에게 아주 적합한일이었다. 여행처럼 목돈을 들일 필요도 없고 운동처럼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안전한 도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앉다‘는 없고 ‘앉히다‘만 있는, ‘화나다’는 없고 ‘화나게 하다‘만 있는이 이상한 언어의 체계가. 하지만 나는 이방인. 내 이해따위는 필요 없다. 스페인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모든 걸 익숙한 모국어의 개념으로 치환하려는 태도는외국어 습득을 방해하는 커다란 걸림돌이다.
있지, 사실 나 스페인어를 사랑하지 않아. 그저 약간의흥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야. 나도 안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글이 읽는 사람에게 어떤감동을 주는지. 하지만 또 안다. 그 마음은 결코 연기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것임을. 사랑의 모양은 너무도 고유해서 아무리 뛰어난 재주로도 모방할 수가 없다. 소묘와는 다르게. 루시는 그 반대편에 있다. 애틋함 없이도 어떤 일을 지속하는 사람의 마음. 의무, 책임, 흥미, 욕심. 애정이 아닌 단어로 설명되는 노력. 그런 것들이 만드는 이야기에는 또 다른 감동이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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