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이 책에 수록된 사람들의 증언은 완전히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것이다. 문장 표현상의 기교도 없을뿐만 아니라 유도도 없고 도발도 없다. 나의 문장력은(만일 그런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지만) ‘증언자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와 동시에 얼마나 읽기 쉽게 쓰는가‘라는 단 한 가지에 집중되었다.

직업적인 작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합적이고 개념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딱히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교환 불가능한-존재양태에 대해서만 흥미를느낀다. 그 때문에 나는 증언자를 앞에 두고 한정된 두시간 동안 집중하여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것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려고했다. 증언자의 사정으로 활자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긴했지만.

두려움도 있고 마음의 상처도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 보여달라고 한다면 보여줄 방법이없습니다. 목숨을 잃은 분, 순직하신 분의 유족들에게 저로서는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이 인터뷰를 받아들이는 걸 반대하시더군요.
이제 겨우 잊어버리려 하는데 다시 기억을 더듬으면 좋지 않다고 말이죠. 그러나 이 기회를 하나의 경계선으로삼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한 번은 죽어요.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요. 죽어버리면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자신에게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옴진리교 사람들은 과연 책임이란 것을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과연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깨닫기 바랍니다.
정말로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런 후 갱생의 길을 걷게 하든지해야 합니다. 결코 죽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스스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저는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1995년 3월 20일 아침에, 도쿄의 지하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품은 의문이었다. 아주 간단한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당신은 누군가(무언가)에게 자아의 일정한 부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제도=시스템에 인격의 일부를 맡기고있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제도는 언젠가 당신을향해 어떤 ‘광기‘를 요구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는 올바른 내적 합의점에 도달해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당신의 이야기일까? 당신이 꾸고 있는 꿈은 정말로 당신 자신의 꿈일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으로 변해버릴지 모르는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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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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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상하기 쉬운 음식과 같습니다. 계속 끓여주고 갈아주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 검사들이 여전히 건재한 검찰을, 검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조직의 결정을 따랐을뿐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권력기관인 검찰을 믿지 마세요.
먼 훗날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그날이 오더라도, 검찰을맹목적으로 믿지 마세요. 견제와 균형이 흐트러지고 감시와 비판이 멈출 때, 검찰은 다시 상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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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KBS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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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할 수 있지만 여기서 ‘그친다.‘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의 매듭을 끊어버린 정조. 비록 33년간의 원대한 계획은 아버지의 복수라는 사사로운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끝에서 선택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으며 일반 백성이 행복해지는 세상. 수많은 개혁 정책과 화성 건설을 통해 정조는 사심 안에 공심이 있는 사중지공을 만날 수 있었고, 겉으로는 국가와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반대 세력들의 공중지사(公中之私)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조가 남긴 건배사는 "불취무귀", 즉 취하지 않은 자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던 정조가 8일간의 축제 기간에 신하와 백성들에게 던진 건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가 취하자고 했던 건 술이아니라 행복이 아니었을까? 모든 백성이 행복에 흠뻑 취하기를 바랐던,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미안해하던 국왕의 건배사. 다시 정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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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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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는 도널드에게 안전한 장소였다. 속속들이 알기도 했지만, 지역사회가 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열대여섯 살때쯤 그는 마을 밖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따라 멀리까지 걷곤 했다.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며 허공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사람들은차를 몰고 지나가다 속도를 늦추고 인사를 건넨 뒤, 묻곤 했다. 태워줄까, 도널드? 돌아오는 길에 집에 데려다 줄까? 그저 걷고 싶다고해도 상관없었다. 도널드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누구나 그가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의 일부였으며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헌팅턴에서 입소자의 세계는 똑같이 생긴 두세 개의 병실로 구성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우주였다. 잠자는 방, 식사하는 방, 운이 좋으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다닐 수 있고, 저쪽 끝에 도달하면철창을 통해 잠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방. 아치는 이 공간을 다른수십 명과 공유했다. 출입문은 언제나 밖에서 잠겨 있었다. 세 개의방이 그들의 우주였다. 언제까지나.

실제로 "자폐증"이란 단어에 관련된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논쟁을 밀고 나간 힘은 점차 사회를 변화시켰다. 자폐증을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루고자 노력했던 모든 사회는 그 복잡하고종잡을 수 없는 현상을 사회와 조화시키려는 과정을 통해 ‘어딘가다른 개인의 존엄성을 역사상 어느 때보다 크게 인정하는 쪽으로나아갔다. 이제 가장 심하게 대립했던 적들과 가장 관심없는 방관자들조차 자폐증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게 되었다. 자폐증을 겪는다는 것, 자폐인이라는 것은 인류라는 옷감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주름일 뿐이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주름지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다.

게르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년을 괴롭히는 승객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얘가 왜 그러냐구? 얘는 자폐인이요. 이제 당신들이왜 그러는지 말해봐요. 아니면 입 닥치고 조용히 가든지."
긴장 어린 정적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남성은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니콜라스 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더 이상 니콜라스를 건드리지 않았다. 게르하르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버스가 즉흥적으로 자신이 평생 그려왔던 공동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십여 명의 승객 사이에 일종의 친근감이생겨났던 것이다. 미시시피주 포레스트처럼 이웃들은 어딘지 다른그 소년이 사실은 "우리 중 하나",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일은 뉴저지주의 한 버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서든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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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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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나는 태연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염치가 없거나 비열해서가 아니다. 내가 강해서도 아니다.
내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 앞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팀장님 말씀이, 아니라는 거야. 범인은 경찰 조직 전체가 함께 잡는 거지, 형사 하나가 잡는 게 아니라고. 사건이 나면 신고를 받는 사람이있고, 현장에 나가서 증거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증거를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목격자 찾아다니면서 진술 받는 사람도 있고, 용의자몽타주를 그리는 사람도 있고, 수배 전단을 전국 곳곳에 붙이는 사람도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범인을 잡는 거다, 그러시더라고.
뭐, 말하자면 이게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거지, 수사시스템. 그리고그 시스템은 더 큰 시스템의 한 부분인 거야. 경찰은 수사를 하고, 검찰은 기소를 하고, 법원은 재판을 하고, 교도소에서 범인을 가두고 벌을주지. 뭐, 이건 형사사법시스템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 큰 시스템을 생각해보라고, 형사는 결코 범인을 잡아 응징하고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아니야.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일을 하는 건 커다란 시스템이고,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가 맡은 역할만 할뿐이지. 형사도 그중 한사람이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는 양도할수 없는 권리‘라는 선언에는 행복에 대한 정의 외에도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먼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계속해서벌어지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흐릿한 경계 지대가 있다. 태아라든가뇌사 상태처럼.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구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면 필연적으로 임신부의행복추구권은 축소해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회색 지대는 더 넓어지리라. 머지않은장래에 인류는 유전자조작 기술로 반인반수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한사람의 기억과 의지를 기계에 옮길 수도 있을 테고, 네안데르탈인 같은우리의 옛 친척을 되살려낼 수도 있다. 그들에게도 기본권을 부여해야할까?
‘양도할 수 없다‘는 문구도 혼란스럽다. 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또다른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100명의 행복추구권이라면 한 사람의 행복추구권보다 중요한 것 아닐까? 그 한사람에게 강제로 양보를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혹시1만 명, 아니 100만 명의 생명은 한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 아닐까?
계몽사상의 신봉자들은 이런 딜레마의 존재 자체를 애써 감추려 한다. 그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나 100만 명의 생명이나 똑같이 존엄하다‘ 고 말한다.
이는 삼위일체보다도 더 억지스러운 얘기다. 어떤 정부도 그런 원칙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는 늘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어떤 백신이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백만 명에 한명꼴로 알레르기 쇼크로 인한 사망자가 나올 때, 우리는 그 백신을 모든아이에게 접종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결정은 정부의 정책 담당자만이 하는 것이라고,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고민거리는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계에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7억 명이 넘는다. 보통 사람이라도 구호단체를 통해 그들에게 돈을 보내는 방법은 아주 쉽다. 그러므로 내가 당장 필요하지 않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살 때, 나는명백히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사하라사막 남쪽에 사는 사람들 수백 명의끼니보다 과시성 소비로 인한 나의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는향이 좋은 프리미엄 커피를 마실 때, 플라스틱 가구 대신 원목 가구를살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택시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집에 있지 않고 여행을 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절대빈곤 상태에 있는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죽게 내버려두자고 선택한다. 우리는모두 학살자이다.
계몽주의 사회는 그런 선택을 허용한다. 스마트폰을 살까? 제3세계에 기부할까? 기부한다면 얼마나 할까?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사회가 침해할 수 없기에.
나는야그리고 그런 자유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선의로가득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주먹구구식으로 타협한다. ‘수입의 10퍼센트 정도를 기부하면 괜찮겠지‘ 하는식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청소년 범죄를 보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왜 성인처럼 범죄를 저지를 힘이 먼저 생기고 성인처럼 충동을 자제하는 능력이 나중에 생기는 걸까, 하는 그 순서가 거꾸로였다면 세상이 훨씬 살기 좋을 텐데요"

연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만이 동물원에서 우리 안에 갇힌 육식동물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가엾게 여긴다. 야생에서늑대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창살에 대해 감상을 품지 않는다. 연지혜는 판사들이 우리에 갇히지 않은 범죄자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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