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읽은 연애 소설이 마음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사람이 쓴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인 분위기에 저도 둥실 떠다녔네요. 그런데 책을 덮고 가만히 이야기를 음미해보면 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침드라마같지 않나요? (사실 저는 ‘마당을 나온 앎탉’을 보고도 어린이용 막장드라마인가?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이니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고 그것이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장석주 작가님의 산문을 좋아합니다. 단단하고 담담한 그의 글이 마음에 꾹꾹 박히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이번 산문집은 도통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끔 마음이 동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글들이 그저 눈으로만 읽고 끝나 버렸습니다. 시드니와 오클랜드 여행을 통한 감상을 편지형식으로 써 주셨지만 그의 무심한 듯한 글들을 사근사근한 말투로 전해주시니 약간의 거북함이 들었네요. 예전에 한창 ‘웃음치료사’라는 직종이 유행할 적에 회사에서 도통 웃지도 않고 항상 아랫 사람을 흘려보던 간부가 갑자기 웃음치료사 공부를 했다며 많은 직원을 모아두고 되지도 않는 웃음을 지으며 웃음치료라는 걸 하겠다고 유난이었습니다. 그때의 그 웃음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시 웃지 않고 눈만 흘기는 사람으로 돌아와 있습니다)장석주 작가님이 다정하고 따듯한 분이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야들야들하게 표현하지 않으셔도 잘 전해지고 있으니 예전 그 모습이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주인공에게는 부모가 없지만 서로 의지하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친척(할머니나 이모 또는 사촌...이번에는 딸 )이 있습니다. 그 여주인공은 프리터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특이한 연애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남자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지만 늘 서로간의 애틋함을 지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때로는 그 둘 사이를 질투하는 다른 여자가 있지만 이 여주인공은 그녀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구구절절 독자를 이해시켜 줍니다.대부분이 이런 내용인데도 그녀의 소설이 나올 때 마다 질리지도 않고 잘도 읽습니다. 이번에서야 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바로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거든요. 교훈을 얻으려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