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무가 아닌 사명으로 일어나기2. 호기심이 아닌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하기3.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기4. 거리를 두고 어슬렁 거리며 보기5. 깊이 듣기6. 평범한 현재를 즐기기(충분하다=완벽하다)7. 주변에 공감을 가지기8. 옳음을 위해 싸우기9. 선한 마음으로 행동하기10. 자신의 감각으로 아름다움을 누리기11. 반복되는 매일을 즐기기12. 현재의 나를 다스리기13. 나이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14. 죽음을 두려워 않기
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해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옳은 말씀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는 걸까? 생각은 당연히 내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일어나는 일인데.
어쩌면 정말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지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아는 지혜를 지녔는지도 몰랐다.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최악의 무지는 지식의 가면을 쓴 무지였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에피쿠로스는 정치적 유대가자족의 가능성을 낮춰 결국 행복을 외부에 위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의 모토는 라테 비오사스Lathe Biosas, 즉 숨어사는 삶‘이었다. 세상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늘 의심받는다. 우리는 은둔자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만큼 그를 조롱한다.
죽음에 관해서 에피쿠로스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말한다.물론 죽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고통에는 본질적으로 끝이 있다. 그 고통은 평생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이 가라앉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두려워할 것은 없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positiveaffect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s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平靜주의자였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는 것이지요.
내친김에 ‘경양식집에서’까지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신기하게도 두권의 음식점 소개 책을 읽으면서도 그다지 허기가 들거나 식욕이 일지는 않더군요. 모든 음식이 대부분 아는 맛이니까요. 하지만 우연이라도 그 지역에 가게 된다면 들려보고 싶은 마음에 꼼꼼히 저장해 두었습니다. 경양식집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어릴 적 동네에 ‘궁전 레스토랑’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동네 유일한 경양식집이었지요. 셋집에 살던 우리 식구들이 정말 큰맘먹고 외식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저만 외출을 하고 동생과 아빠는 집에 있었는데 귀가하니 문은 잠겨 있고 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도 디지털키도 없던 시절이기에 엄마와 저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아빠와 동생이 나타나서는 ‘궁전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먹고 왔다 했습니다. ‘이럴수가!!!! 동생만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그 ‘궁전레스토랑’의 맛은 잊었지만 그날의 분노는 아직도 마음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 둘! 남편과 어릴적 먹던 경양식집 돈까스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에게 “당신은 밥이랑 빵중에 뭐 달라고 해서 먹었어?”라고 물었더니 “우리엄마는 항상 ‘빵으로 주시구요, 밥은 서비스로 주세요’ 라고 해서 매번 같이 먹었어”랍니다. ‘이럴수가!!!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어머님 존경합니다.’ 매번 빵과 밥사이에서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다시 경양식집에 가서 돈까스를 먹게 된다면 어릴 적 이야기들이 다시 술술 나오겠지요.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라 할 수도 있고 ‘고독한 미식가-중식편’이라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오래전 학교 선배는 ‘단무지만 먹어봐도 맛있는 중국집을 알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도 없이 조율사님의 리스트만 구글맵에 찍어두면 되겠습니다. 만약 조율사님이 저희 집에 조율을 하러 오신다면 저는 아침도 안먹고 기다리다가 조율사님의 퇴근길을 미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불리던 많은 별명중의 하나는 ‘강화백’이었습니다. 그림을 잘그려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못그리기 때문이었지요. 미술시간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미술수업이 4교시나 마지막 시간에 있지 않으면 마음만 더 급해지고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선생님의 배려로 집에서 완성해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옆집친구에게 부탁해서 그려갔을 정도 입니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가 두렵고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웠을 뿐이지요. 따라서 그리는 것은 해보겠는데 3차원의 무언가를 2치원으로 옮긴다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리는 것은 정말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려보고 싶어 드로잉책도 사보고(집에 김충원 선생님의 책이 몇권이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후 전철을 타고 한시간씩이나 가서 미술수업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곳에서는 부끄러움과 자괴감만을 더 얹어 왔을 뿐입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도 ‘또 뻔한 이야기겠군’ 이라는 생각에 지나쳤지만 ‘그래도 한번…?’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흰 종이에 대한 불안, 처음 그은 선 하나에 대한 불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등 제가 그동안 느껴온 감정들이 이 책안에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고 좀 뻔뻔해져야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꾸준히 그리는 것! 그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겠지요. 유명한 화백들도 매일 몇시간씩을 그림연습을 한다던데 겨우 애송이축에도 못드는 ‘강화백’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불안함 밑에 숨겨진 오만함으로 무조건 잘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수영을 잘하고 싶어서 매일 수영장에 가고, 아사나를완성하기 위해 매일 요가원에 갔던 것 처럼 그림을 잘그리기 위해서는 매일 그려야 한다는 것!!!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럼 그림을 매일 그리기 위해선 뭐다? 먼저 좋은 종이와 펜부터 사야겠습니다. 이미 장바구니가 그득합니다. (장비병을 부추겨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년 전 그린 그림을 하나 올립니다. 당시에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보았던 ‘디어 마이 프렌즈’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 딱 이수준인데 연습하면 정말 나아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