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네‘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유통기한을 늘리려 혀에 뿌리는 인공 방부제인 셈이야. 혀가 굳어 가는 걸 느끼면서도 우리는 ‘네‘를 뿌리고 뿌려.

보파, 나는 뚜라에게 낙태권이라는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그런 권리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녀가죄책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말이야.
낙태권까지 가기에 딸기 따는 여자애들인 우리가 가진 권리는 너무 적어. 나는 그것이 지구에서 너무 멀어 눈으로는볼 수 없는 해왕성이나 천왕성같이 여겨져 우리는 취업 비자가 보장해 주는 최소한의 권리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어.
‘노예처럼 노동하지 않을 권리. 강제로 노동하지 않을 권리.
한국의 노동자와 똑같은 임금을 받을 권리. 한국에서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권리. 한국에서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 한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권리‘

나는 뒤미처 딸기에게 질투가 나 이 나라 사람들이 딸기를너무나 소중히 다뤄서 딸기 가격을 딸기 따는 여자애보다 높게 쳐 주는 것 같아서 딸기가 부럽기도 해. 다음 생에는 딸기로 태어나고 싶은 바람마저 생겨. 내 할머니의 소원처럼 다음생에는 거친 인간의 몸을 빌리지 않고 딸기로 태어나는 거야.

돼지 농장의 사장님들은 농장의 돼지들이 어떻게 몸을 불리는지 사람들이 보는 걸 원치 않아. 농장의 일꾼들이 일하는모습 또한. 돼지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출하장으로 보내지는지를 보지 않아야 돼지를 더 맛있게 먹을수 있어. 더 많이. 사람들이 돼지를 더 많이 먹으면 돼지 농장의 돼지들은 더 빨리 살이 쪄야 해. 암퇘지들은 더 빨리 임신을 하고 새끼 돼지를 더 빨리, 더 많이 낳아야 해. 그래서 농장의 돼지가 더 빨리빨리, 더 많이많이 늘어나면 툴시나 분추처럼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빨리 빨리, 더 많이 많이.오케이?

보고누군가 내게 미래를 위해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고 있는 거라고 속삭여 오면 나는 말할 거야.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날 잃어버린 뒤에 오는 것이 미래라면 나의 딸기 따기는 ‘착취‘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고 착취의 공모자는 나의 국가, 나의 가난한 집, 나를 저당 잡고 있는 가족,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법, 사람을 부른 게 아닌데사람이 왔다고 재수 없어 하는 딸기밭 사장님, 너무 빨리빨리 빨개지는 딸기들 …그리고 딸기 따기에 중독 돼 버린 나. 나는 나 자신도 착취의공모자라는 걸 알고 있어. 나는 날 가장 착취 하고 있어.

나는 빅토리아에게 묻고 싶었어. 누구에게 분노해야 해? 월급날이 닷새나 지났는데도 월급을 입금하지 않는 딸기밭 사장님에게? 요양원에 유폐돼 있는 사모님에게? 내진과 지진 때문에 심신이 부쩍 쇠약해진 엄마에게? 내게 집에 돌아오지말라고 대놓고 말하는 여동생에게? 나이키 운동화와 게스 티셔츠를 갖고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선박 엔진 수리기사 시험에도 떨어져 군인이 된 남동생에게? 내가 떠나올 때보다 더 가난해진 국가에? 아니면 그 모두에게? 아니면 나 자신에게?

너의 딸기 따기가 그럼에도 예술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의 딸기 따기를 기계적인 반복 행위로 만들어 버리는 것들 때문일 거야. 노동력을값싼 공산품처럼 수출하고 수입하는 국가들, 우리 같은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의 고통과 슬픔에 무감각하고 무자비한 법,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사장님, 너무 많은 딸기케이크, 너무 많은 해피 버스데이 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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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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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가 뭐라든 페이스를 유지한다. 몸이 느려져서가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애써 커버하거나 아닌 척해야 할 약점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조건 중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생각을 어린이가 알고 있는 세계의 범주 밖으로 이끄는것은 그보다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 같다. 세상에 대해서아직 기초적인 틀만 갖고 있는 어린이는 자못 원칙적이고 정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화란 어쩌면 자신이 혐오했던 모습으로 퇴화해가는 고통과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노인은 잇몸이 내려앉아서 이는 당나귀 이빨처럼 길어 보인다. 근육이 빠져나가 다리가 앙상해지는데도 이상하게 좋아리에만은 덜렁거릴 살이 남아 있다. 매끄러웠던 손등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우락부락 불거지는가 하면 턱밑은 닭벼슬처럼늘어진다. 난데없이 뺨 한가운데에 터럭이 자라나고 머리숱이빠지면서 점점 골룸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간다. 찰랑거리던 참머리도 필연적으로 부스스한 곱슬이 된다.
특히 피부가 처지고 늘어지면서 얼굴이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에 평화롭게 가만히 있는데도 심통맞고 화가 난 사람처럼보인다. 식도의 연동운동이 둔해져 사레도 잘 걸리고 기침도잦아진다. 귀가 어두워진 탓에 목소리가 커지는데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니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자신이 못 듣는 거면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또 입안이 말라 구취가 생기고 그게 아니고도 몸에서 알데하이드인가 뭔가가 배출돼서 노인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결혼은 타인과의 긴 동행이고 더러운 부산물과 빨랫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 그것들을 구겨넣은 상자를 커튼으로 가려놓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이 상자 안에서 점점 썩어갈 정도로 더러운 것이라면 그만 커튼을 젖히고 처분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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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유심인
정윈만 지음, 김소희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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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도 선택이란 걸 할 줄 알아. 나랑 같이 있기로 한 거잖아.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다면 그건 개만도 못한 거지.

치료라는 게 병이 나은 다음 삶을 누리려고 하는 건데, 그 치료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건 본말이 전도된 거잖아요

고양이를 기르는 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일이에요. 고양이는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주인을 존중하지도 않고, 주인과 같이 놀아주지도 않거든요. 심지어 주인을 사랑해 주지도 않죠."

내 이름은……."

내일. 내일 다시 알려줘.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내일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말이야.

"이름을 옥상에 두고 왔어.

가난이 시녹의 견문을 가두지 않았으면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을 지키고 아끼는 일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그의 원칙이었으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은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나 흰머리, 먼지가 그렇듯 누군가가 알아차리기 전에 소리 없이 삶 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다.

어리숙한 사람이 책에서 답을 찾으려 드는 것에 절대 찬성하지 않습니다. 책에 담긴 건 전부 남의 말, 남의 생각뿐이거든요. 스스로 확고한 의지와 신념 없이 책만 읽으면 더 헤매게 될 뿐이에요."

함께 우주 대폭발을 기원해 보자.

귀한 목숨은 삶을 누리지만, 천한 목숨은 언제나 돈으로만 환산될 뿐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했다.

야우 선생님이 읊어주던 두보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사뿐히 날아오르네’. 아니다. 잠자리는 끝없이 빠른 속도로 날개를 파닥여야만 한다. 그래야 물에 빠지지 않고, 그래야만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청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그건 마치 산다는 것 그 자체임을.

야우 선생님이 읊어주던 두보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사뿐히 날아오르네’. 아니다. 잠자리는 끝없이 빠른 속도로 날개를 파닥여야만 한다. 그래야 물에 빠지지 않고, 그래야만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청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그건 마치 산다는 것 그 자체임을.

그런 다음 개미는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이 벽을 넘어가는 것이 개미에게는 대장정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비장했을까. 어쩌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이 나이니까 미련도 한 번 떨어보는 거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요."
내 입에서 이렇게 현명한 대답이 나오다니, 다이마싱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 비싼 파스타가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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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의 초급반 - 열두 번의 낮과 밤, 매일의 공부와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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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완벽한 뷰란 무엇인가. ‘무엇’이 보인다고 하면 특정한 방향이어야 옳은가. 어떤 건물이나 자연경관이 가려져 있으면 완벽하지않은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야산 뷰에 다시 실망을 느꼈다. 나는이 풍광에 미리 비용을 지불했다. 근본적으로 풍광은 무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좋은경관은 있고 그것은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분명 그날의 행복을 좌우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전망을 바꾸기 위해서 짐을 싸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함께 간다면 기가 막히게 좋은 곳들이 참 많다. 그런데 혼자서 온전히 좋은 곳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만약 그런 곳을 발견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고립된 사람의 감정은 자꾸 침잠하고 어지럽고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혼자만의 천국은 존재하기 어렵다.

‘타인을 함부로 대해선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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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삶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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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나는 일어나서 복도를 지나 부모님 침실로 다가갔다. 문밖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를 들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거기에 있으니 행복했다는 것만은 안다.
나는 그렇게 방 바깥의 어둠 속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웃음소리를, 그들이 아직 그 안에 있다는 기색을, 한때 내가 알! 삶이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조짐을 찾아 귀를 기울였다.

"뭐, 말했듯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진 않을 거야." 그리고 그건 어쩌면 어머니가 자신에게도 해왔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선을 그어 그의 존재를 감당했을 것이다. 그가영원히 곁에 있진 않을 거라고. "있잖아, 어떤 사람은 우리삶에 잠시 들어왔다가." 어머니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고, 물위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냥 그렇게 "어머니는 머리위로 손을 거칠게 내저었다.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야."

형을 찾는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단다, 스티브.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직해졌다. 그냥 아무도-그래, 정말 아무도 형을 진심으로 찾고싶어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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