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찬양하다
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임도울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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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그의 대담한 결단이 적당한 자리와 우리의 자잘하고 소소한 일들이 적당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내가 종종 활용이라는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초점에서 너무 빗나갈 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요한 걸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다면 뭐 하러 새로사야하지 하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이미 있는 걸 다시 이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나? 그럼, 당연하지. 버리는 것보다는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 생명을 주는 편이 언제나 좋지. 하지만 때때로 진짜 가치 있는 건 시간일 때가 있다. 내가 집 안에서 꼭 맞는 한 쌍의 볼트와 너트를 찾아 헤맨 날은 시간을잘못 쓴 경우다. 그날 나는 철물점에 가서 100개들이 나사한 상자를 사 와 내 시간을 다른 더 좋은 일들을 하는 데 써야 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세비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후안루와 벨레냐의 리듬이 나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체가 결정하는 리듬, 육체의 본성과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리듬. 정신이 아니라 육체가 리듬을 결정한다. 누군가의 꿈이나 의도가 아니라 누군가가 가진 근육의 탄성과 힘,칼슘 밀도에 따른 뼈의 강도, 피부의 탄력과 같은 것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리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삶의 매 순간 다른 걸 요구한다. 정신은 제안만 할 뿐 결심하는 건 육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점차 쇠퇴하기만하는 육체, 움직이려는 충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늙는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그는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작은 미덕‘이 아니라
‘큰 미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절약 정신이 아니라 ‘관대함‘과 ‘돈에 관한 무관심‘을, 신중함이 아니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와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또한 교활함이 아니라 ‘솔직함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외교술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와 앎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필요한 무언가를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자율성을획득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게 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는 계속해서 우리 안에 쌓인다. 엔조마리의 의자의 경우를 봐도 의자 제작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있는 건 다층적이다. 신체적인 능력,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대한 새로운 지식. 배를 묶어 두었던 밧줄이 풀렸을 때처럼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미지의 세계였던 곳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된다. 나무판자 한 장을 다루며자르고 사포질하고 거기에 구멍을 뚫는 일을 통해 우리는다른 나무판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 항해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두려움은 잊게 되고, 그 길에 남는 건 순수한기쁨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그것이 의자이든, 미치광이 돈키호테의 혜안이든, 발코니에서 키운 토마토든에대한 의식적인 개입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우리를 하나로만든다. 세상이 우리에게 더해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의 제작자가 되거나 우리가 먹는 모든 먹거리의 생산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한다면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데 우리 삶이 묶이고 말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런 삶의 방식도 가능하고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내 생각에는 딱 한 가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해 보는 것으로충분하다. 우리가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 중 딱 한 가지.냅킨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 훌륭한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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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질로 데려간 것은 내가 잘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못하는 무언가였다.

우편배달 일에서 내가 받은 최고 학점은 기껏해야 B-나 C+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최고의 성취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의 온전함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면, 그 온전함을 떠받치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도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왜 안전한가? 비행기는 왜 안전한가?
공식 주립대학에서 받은 학위는 왜 가치가 있는가?
이 모든 시스템이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거래는 당신을 소비자로만들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당신을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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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서서 나를 구분 짓는 것이,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속할 수도 있다고 믿는 것이, 내게 호의적인 태도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차라리 경찰을 정비소로 유인했으면 좋았을걸. 집에 와서 딸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그게 낫지. 하지만 일터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더 수치스러웠으려나. 그런데 앞이 안 보이는 아버지가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있거든. 그 아버지에겐 딸이 필요한데••••••.

정신이 또렷하던 시절의 어머니는, 우리 가문의 여자들은 말로 옛이야기를 되살려 낼 수 있다고, 목소리로 조상을 불러낼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넌 여자잖아. 실패해서 집에 돌아와도 괜찮아. 돈 많은 한국 남자랑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지만 않으면 되거든. 그렇지만 나는 다르지. 내가 실패하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겠어?」

「비극을 기다리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어. 날짜를 기록해 두는 건 나한테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재앙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 앞에서,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지.」

「한국사가 이어지는 동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가 강력한 외세에 공물로 바쳐졌어요. 중국과 몽골, 최근에는 서양에.」

「그림 형제의 책처럼 글로 적힌 동화들은 교육받은 남자들이 민속 문화를, 국가적 정체성을 만들고 선별하기 위해 쓴 거예요. 하지만 훨씬 더 오래된 자료들에 똑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상당수는 여성이 이야기한 거예요. 여자들은 대부분 문맹이고요. 이런 이야기는 들판에서, 부엌에서, 난롯가에서 탄생했어요.
말하는 사람에 맞게 가공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마을의 경계를 넘고 세대를 따라 전해졌어요.」

「나요? 스웨덴에서 아시아인 여자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아냐고요? 남자가 있을 때는 어떻고 없을 때는 어떤지, 그게 백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지 아냐고? 아이고, 난 존나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있잖아요, 나도 알고 있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오빠라든가 어쩌면 오스카르보다도 편하게 지낸다는 걸. 하지만 여기에 있다 보면 고향의 인종 차별을 그리워하게 된다니까요. 휴가에서 얻은 기념품 애인이라든가 메일로 주문한 신부로 오해받는 것보다는 의사나 회계사로 오해받는 게 낫잖아요.

아시아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쉽게 폭발한다. 서로의 분노를 메아리처럼 반복하게 되니까. 부모의 헛짓거리를 반복하고 그들의 조져 버린 관계를 재현할까 봐, 사랑보다는 승인과 성취를 쫓는 아이들을 키울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까.

「글쎄요, 고아가 서양에서 자라는 게 행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뿐인 건 아니라서. 이런 동화는 절망에 빠진 생모를 달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죄책감을 달래는 역할도 해요.

입양이 아기 엄마와 그의 미래, 지금도 아등바등 겨우 먹여 살리고 있는 다른 자식들을 위한 최선이라며 그를 설득한 친척들 말이에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외국 입양 기관과 거래하는 사람들이 휘두르는 설득의 무기랍니다. 입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이런 환상을 꿈꿔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서양에서 자란 한국 고아의 발라드. 아이는 정체성, 언어, 고향에 살 권리를 빼앗겼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니까요. 합당한 아기를 받아 마땅한 백인 부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동화의 해피 엔딩치고는 졸렬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그러나 결말을 누리는 건 아이를 잃는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새로운 가족 안에서, 그리고 청년 시절 내내 눈에 띄는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누가 가장 이국적이고, 희귀하고, 외로울까?

2등급으로 강등되었다면, 아래에 꼭 3등급과 4등급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과 새로 온 이민자들을 괴롭히는 일보다 더 미국적인 게 있을까?

「생물학적 전략이야. 아기는 귀여우니까 잡아먹지 않고 돌봐 주잖아. 부모가 늙고 처량해지는 것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지.」

「신라시대 방언에서 〈에미〉는 〈어머니〉, 〈에밀레〉는 〈어머니 때문에〉라는 뜻이에요.」

「그럼 종소리로 고발하는 거군요! 죽은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어요!」

왜 몇몇 문화의 신화와 전설만 고전 문학의 기초로 인정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거지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쟁취하는 여자보다 강한 게 있을까?

「어쨌든, 무엇보다도 스웨덴인은 인종 이야기를 꺼려요. 입양 부모 중에는 이런 식인 사람들도 있어요. 〈내겐 네 인종이 보이지 않아. 넌 그저 내 아이일 뿐이니 내가 너를 위해 조성한 이 환경에서 네가 눈에 띄는지 어떤지 알 필요는 없어. 우리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아라.〉 이런 문화에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우울감은 더 파괴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엘사도 잘 알겠지요.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달라요. 필요도, 상실과 갈망도 다르다고요. 피난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가족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며, 사랑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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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듯, 공공 정신병원도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코로나 감염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발열이 아니라 발광發狂이었다. 발열은 치료할 수 있지만 발광은 불치병이다. 내가 그 시스템과 마인드에 메스를 대보았지만, 다시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들은 병식이 없었다. 이젠 나도 모든 걸 포기했다. 이곳에는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없는 듯했다.

내가 겪은 공공 정신병원의 전문의들과 레지던트들은 넓은 의미의 공공도 아니며, 좁은 의미의 공무원도 아니었고, 최소한의 의사도 아니었다. 여기에 한 톨만큼의 부끄러움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더 말할 가치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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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의학협회 안락사 가이드라인>

1. 환자의 안락사 요청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2. 환자의 안락사 요청은 충분한 근거에 기초한 숙고된 결정이어야 한다.
3. 환자의 삶을 마치고자 하는 바람은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4. 환자가 겪는 고통은 참을 수 없으며, 회복의 가망이 전혀 없어야 한다.
여기서 고통은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모두 포함한다.
5. 담당 의사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의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

<요청에 의한 죽음이 안락사로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 -일본>

1. 환자는 당시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로 회복이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으며, 죽음이 임박한 상태여야 한다.
2.환자가 겪는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 곁에서 지켜보기조차 어려운 수준이어야 한다.
3.안락사는 오직 환자의 고통을 경 감하려는 목적에서만 시행되어야 한다.
4.환자가 의식이 명 료하고 의사결정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명시적인 요청이나 동의가 있어야 한다.
5. 안락사는 반드시 의사에 의해 시행되어 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명확한 사유가 필요하다.
6. 안락사는 윤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 로드리게즈의 삶과 조력자살을 결심해 법적 소송까지 이어간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에 이르게 된다. 수는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일까. 실제로 수는 "정말로 죽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잔인한 질문에 수는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가능한 한 오래 건강하게 살며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에게 허락되지 않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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