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봄날의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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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 작품 수가 상당한데도 국내에 번역되어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아 항상 아쉬웠었다. 그의 작품을 읽으려면 직접 일본어를 배우는 수밖에 없는걸까 싶었던 찰나, 반가운 소식! <생의 실루엣>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미야모토 테루의 에세이다. 독보적인 서정성으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의 심장을 앗아간 미야모토 테루 문학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정말이지 필독해야한다.



제목마저도 절묘한 <생의 실루엣>(원제는 ‘생명의 모습’). 그 탄생 일화부터 흥미진진하다. 소설에 집중하고자 에세이를 쓰지 않기로 결심한 저자였지만, 에세이 잡지 발간이 꿈이라는 단골 요릿집 사장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10년간 일 년에 두 번씩 에세이를 연재했다고. 오랜 시간 한 편씩 쓰여진 글들이 모여 이 책이 된 것이다. 저자가 어린시절 겪었던 일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 즐겨 읽었던 책 이야기까지 글의 내용도 분량도 다양하다. 그동안 소설로만 만날 수 있었던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그려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 그가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다가 ‘나라면 백배는 더 재밌는 소설을 하룻밤만에 쓸 수 있다’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있다.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역시 천재는 출발부터 다른 것인가!’ 하며 경외의 마음을 품었었다. 이번 책에는 당시의 일화가 자세히 그려져있는데, 원인모를 불안증세를 겪고 있었던 저자에게 생긴 ‘꿈만 같은 큰 목표’가 바로 소설이었다고.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셈이다. ‘살아가자, 멋진 소설을 쓰자.’ 문학을 향한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가득한 그의 문장을 읽으니 내 안에서도 용기가 피어오른다. 그의 글이 더 좋아진다.



미야모토 테루 소설 애독자분들, 이 에세이 무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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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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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잔 가져다두고 읽으면 더없이 어울릴 책. 피에르 베르제가 먼저 세상을 떠난 동반자 이브 생 로랑에게 반 년동안 쓴 편지들이 담긴 서간집이다. 50여년간 사업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두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무척 각별할테다. 그렇지 않더라도 평생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마음을 열지 않기는 힘들겠지만.



편지는 약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수집한 예술품 경매가 사상 최고가로 치러진 시기를 통과한다. 베르제의 문장은 슬픔이 깃들어있음에도 무척 아름답다. 특히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그 순간은 얼마나 찬란했는지, 함께 했던 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회고하는 장면은 당장이라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동반자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가하면 베르제는 말년의 이브 생 로랑을 두고는 가차없이 솔직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너는 언제나 조난자였지.’) 가장 가까이에서 단단한 믿음과 애정으로 함께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모든 문장에 그리움이 서려있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인데도 다 읽고 나니 여운이 길다. 아름답고 쓸쓸한 연서.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가 그랬듯,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정확히 바라봐줄 평생의 연인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제대로 알아볼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 굳이 나타내려하지 않아도 글마다 배어나는 베르제의 예술적 안목에도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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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워커스 -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 그룹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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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일이 좋아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 브랜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열광할수밖에 없는 모빌스그룹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 제목부터 짜릿한 <프리워커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시작부터 유튜브에 낱낱이 공개하며 팬들을(모쨍이들! 나도 모쨍이!)을 모으고, 급기야는 노동절 대잔치로 수천명의 사람들을 집결시킨 모빌스그룹. 이 팀은 어떻게 순식간에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가 되어버린 걸까? 이 팀은 대체 어떻게 일하는 걸까?



프리워커란 누구인가. ‘일하는 형식이나 위치에 관계없이, 내가 내 일의 주인이라면 프리워커다.‘ 그렇다면 결국 프리워커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물음은 어떤 일을 할지가 아닌 ‘어떤 태도로 일할 것인가‘일테다. 모빌스그룹에서는 브랜드 기획자가 프로듀서가 되고, 디자이너가 유튜버가 된다. 이들은 직함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시도하고, 고치고, 나아간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엉성하더라도 기록을 남기고 공유한다는 것. 이들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정해지기 이전부터 모춘의 퇴사 직후 이야기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감없이 공유했다.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에 집중한 셈이다. 그 외에도 두낫띵클럽과 협업하며 느슨하지 않은 느슨한 연대를 만든 이야기, 팬과 함께 만드는 ‘누브랜딩‘이야기 등 모빌스그룹이 지나온 여정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 속에 가감없이 담겨있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모빌스그룹의 채널 ‘MoTV‘를 알게된 이후 남몰래 이들을 응원해왔다. 모쨍이로서, 책임감있는 태도로 내 일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일과 라이프스타일의 비중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이라면 모빌스그룹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이들의 콘텐츠 중 ‘현실조언‘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데, 인터뷰 중 ‘실패와 불안은 디폴트‘라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 그러니 모두 실패와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고 ‘프리워커‘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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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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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 맑은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뿐사뿐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사노 요코 등 내로라하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30년째 번역하고 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을 하고 싶다‘는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번역과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는 저자의 말처럼 문장마다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싶을 수밖에. 역시, 아쉬운 것은 분량 뿐!



‘하루도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8할이 운인 가성비 좋은 인생’이라는 저자. 소심하고 수줍은듯 하지만 쾌활하고 낙천적인 기운이 문장 곳곳에 흐른다. 이런 것이 베테랑의 여유일까. 그런가하면 저자가 솔직하게 풀어놓는 일상의 이야기 앞에선 쿡쿡 웃을 수 밖에 없다. 프리랜서의 원수 스마트폰, 암울한 패션감각, 엄마와 딸과 함께하는 이야기까지. 저자가 ‘지하철이 4호선까지밖에 없던 시절’부터 계속해온 번역에 얽힌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노 요코의 책에 미처 그대로 실리지 못한 역자 후기를 읽는 기쁨이 있었다.



왜 많은 분들이 저자의 책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알겠다. 이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번역가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저자의 이전 책 <번역의 살고 죽고>를 연이어 읽고 있는 참이다. 작년에 나온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는 아껴서 읽어야지. 그래서 다음 책은 언제 나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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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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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비평가 마틴 게이퍼드의 미술 작품 탐방기를 그린 <예술과 풍경>. 전문적인 비평서라기보다는 저자가 미술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한 기록에 가깝다. 저자는 루마니아, 이탈리아, 중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를 넘나들며 조각, 회화, 사진작가 등 작품과 작가들을 만난다. 웹 상에서 클릭 몇 번이면 어떤 작품이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오로지 ‘바로 그 작품‘을 ‘바로 그 곳‘에서 보고자 모험을 감행하는 저자의 모습은 ‘덕후‘의 형형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여행이 어디 쉽던가. 그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서 길을 잃고, 간발의 차이로 작품을 보지 못하며, 예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론 독자로서는 더욱 친근하고 풍성한 글을 읽을 수 있어 즐거울 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저자와 예술가들이 나누는 대화다. 그동안 다양한 예술가들과 친근하게 교류해온 저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베니스의 궁전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만나 ‘퍼포먼스 속 거대한 예술의 에너지‘에 대해 논하고, 까다롭게 인터뷰하기로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서 그가 직접 수정한 드로잉 북을 선물받는다. 저자가 상대방으로부터 깊이 있는 대답을 이끌어내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의 분위기다. 어떤 환경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며 그가 받은 느낌은 어떠한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지식을 뽐내거나 젠체하지 않고 독자를 대화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예술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14p) 정말 그렇다. 작품을 만들 때 예술가가 서 있었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경험은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 또한 바로 그러한 경험들이야말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원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마음 놓고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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