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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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의문은 이것이다. 시를 배울 수가 있나? 문학을 배울 수가 있나? 마음속에서 길어낸 진짜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내면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내면으로의 길은 각자 걸어야겠지만, 쓰는 것도 각자 해내야겠지만, 앞서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 밝힌 불을 따라갈 수는 있다. 그런 등불이 되어주는 책, 바로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시를 쓴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한데 성큼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지는 못한 채 문가에 서서 서성이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시와 글쓰기와 삶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고, 쓰는 사람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섬세하고도 다정하고 단단한 저자의 문장은 은은한 빛이 되어 독자를 이끈다. 저자가 비추는 등불을 살금살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쓰는 이의 세계에 도착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그저 언제나 내 안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를, 용기내 꺼내고 싶은 마음을 찾게 될지도! 책을 덮을 때쯤이면 온 몸과 마음이 ‘쓰는 기분‘으로 가득해질지도 모른다. 꼭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인이 된다는 건 매일매일 쓰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는 것. 시는 ‘태어나는 것‘이자 ‘감각되는 것‘. 그러므로 시를 쓴다는 건 그야말로 애씀 없는 애씀. <쓰는 기분>에는, 드넓고 풍부한 시의 세계를 바로 그 안에 머무르고 있는 이의 목소리로 만나는 희열이 있다. 시의 세계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에게 전하는 따뜻한 조언과 모과 모임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는지. 이제 나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영원히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혼자라서 아름다운 전사‘들의 이야기라면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책장을 덮고 ‘쓰는 기분‘으로 충만해진 나는, 이제 나만의 ‘생각하면 좋은 것‘들의 목록을 흥얼거리며 시인의 탄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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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화살 - 작은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꿨는가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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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세계를 뒤덮었는지, 이후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면 꼭 선택해야할 책.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의 <신의 화살>.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이 책만큼 사려깊고도 풍부하게 바이러스와 인류의 미래를 짚어낸 책은 없을 듯하다. 저자는 바이러스의 시작부터 유행 과정과 전망까지를 심리학, 사회학,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어느 한 쪽의 시선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그러나 따뜻하게 인류의 미래를 바라본다.



‘2020년에 벌어진 사건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일 뿐이다.‘ 라는 문장은 바이러스 창궐 이후 일상을 잃은 우리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역사상 전염병은 계속해서 찾아왔고 그때마다 인류는 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 저자는 바로 그 변화의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명료한 언어로 바이러스 창궐 원인과 미국 중심의 대처 방안을 분석하면서도 재난 상황에서 빛나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바이러스도 인간의 ‘이타적 행동, 협력, 교육 능력‘을 해치지 못했다고. 전염병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만들지만, 그것이 마음과 마음의 거리마저 좁히지는 못한다. 저자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모든 전염병 유행기에 인간은 선행과 연대의 행동을 보여왔음을 보여준다. 이번 코로나 판데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야말로 바이러스와 맞설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며 변화의 열쇠다.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노라면 지난 1년 반 동안 전세계가 어떻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해왔는지는 물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또렷한 윤곽이 보인다. 저자는 당분간 백신 접종 이외에도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집합 금지 등으로 다면적인 접근을 해나가야한다고 독려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인류 곁에 남을테고 인류에게는 그로부터 야기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라는 과제가 남아있을거라고. 그러나 인류는 이미 발빠른 감염 예방책과 백신 개발로 빠르게 회복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다시금 한국을 찾아온 4차 대유행으로 걱정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요즘, 저자의 명쾌한 분석과 전망은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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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켈리 함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스몰빅아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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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3년 전, 남편이 갑작스럽게 집을 떠난 뒤 홀로 두 아이를 기르며 생계를 유지해야했던 에이미 바일러. 일과 육아에 지친 그녀에게 완전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다. 갑작스럽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채로 뉴욕으로 향하게 된 것! 그야말로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 새 삶을 살아볼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이탈. <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에는 한 싱글맘의 답답한 현실에서의 탈출이 유쾌하고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비단 주인공 에이미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현실의 삶이 녹록치 않을 때 이 삶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이 있으랴. 그런가하면 탈출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재빨리 쟁취하는 것도 능력! 에이미는 친구 탈리아의 감독 아래 ‘맘스프린가‘의 아이콘이 된다. 여성들에게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이콘. 정말 어딘가 있을 법한, 누구나 꿈꿔봤을 법한 현실 탈출 스토리다.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밀리의 직업이 도서관 사서라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으니!



그저 재미있는 소설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결말 부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현실이 감옥같아서 현실을 벗어나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화려한 삶을 살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흔히들 ‘아니다‘라고 답하며 주인공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결말을 그리겠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에는 ‘형체없는 빈 껍데기‘인줄로만 알았던 삶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바라보았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현실의 무게와 나다움의 자유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간만에 가볍고 즐겁게 읽히면서도 생각해볼 거리도 안겨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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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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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제 2차 세계대전 여성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전쟁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성 요원들의 성과는 안팎으로 잘 알려져있지 않은 듯하다. <고아 이야기>로 제 2차 세계대전 독일 서커스단에서의 이야기를 담았던 팜 제노프가 이번에는 영국 특수 작전국 소속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설은 우연히 기차역에서 가방과 그 안에 놓인 소녀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그레이스, 영국 특수작전국의 유일한 여성 책임자로서 소녀들을 도맡아 지휘하는 엘레노어,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비밀 요원이 되어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로 침투하는 마리, 세 여성의 이야기로 번갈아 진행된다. 저자는 베일에 가려진 여성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내며, 소설 속에서 그들의 업적을 다시 복원시킨다.



전쟁이 끝난 뒤 그대로 잊혀져버린 여성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가 그레이스라는 외부인을 통해 다시 파헤쳐진다는 이야기의 구조가 재미있다. 그동안의 오해를 밝혀내고 진실을 발굴해내는 사람 역시 여성인것이다. 당시 책임자였던 엘레노어는 폴란드계 유대인인데다 여성이기에 특수작전국 안에서의 입지가 좁았다. 그때문에 여성 요원들의 신상을 달달 외울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상부에 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가하면 막상 현장에 투입되자 훈련받았던 것과 동떨어진 임무를 맡게되는 등 각종 돌발상황에 처하게 된 마리는 어떤가. 소설은 마리, 엘레노어, 그레이스의 사점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바로 그 장소 안에서, 밖에서, 전쟁이 끝난 뒤 그 시간 밖에서의 이야기가 번갈아 펼쳐진다. 임무에 충실했던, 책임을 지고자 했던, 사실을 밝히고자 했던 세 여성은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다. 이들의 연결 축을 그려보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다.



무릇 역사적 진실이란 시간이 지난 뒤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모든걸 바쳐 헌신했음에도 이름조차 잃은 채 묻혀진 수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조금 아찔해진다. <사라진 소녀들>을 읽으며 전장에서 매분 매초 치열하게 사투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우리 모두가 지금을 살 수 있는 건 이들 덕분이라는 것을 헤아려본다. 선악과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는 앞선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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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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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여름 소설에 필요한 모든 것! 독보적인 소설 세계를 가진 노스텔지어의 마법사 온다 리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스러져가는 과거와 그 안에서 피어난 기억 속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다로와 산타 형제는 건물 철거 현장에 나타나는 흰 여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를 발견하며 ‘스키마와라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사람과 사람의 기억 사이에 깃드는 아이라는 뜻. 형제는 스키미와라시의 흔적을 따라가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얽힌 비밀, 잊혀진 기억들을 발견해낸다. 따뜻하면서도 몽글몽글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쫄깃하다. 소설 <스키마와라시>.



급변하는 시대. 건물도 사람도 사라진다면 기억은 어디로 갈까? 오래된 물건을 찾아헤매는 형제와 과거의 흔적 속 ‘스키마와라시‘ 이야기는 그리움의 정서로 가득하다. 누구보다 빨리 앞으로 달리느라 뒤돌아볼 틈이 없는 이 시대에 지나간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만드는 이야기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머무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야말로 온다 리쿠 세계의 정수만을 뽑아낸 작품이다. 낡은 건물, 골동품, 예술 전시 등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도 가득 담겨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미스테리 요소! 동생 산타에게는 사연이 있는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이 간직한 기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가 우연히 오래된 타일을 만졌다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관련된 기억을 만나는 순간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축이다. 이후 산타는 같은 타일을 찾아다니며 기억을 추적해나가는데, 그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결국 이 여정의 끝은 ‘스키마와라시‘의 정체와도 이어진다. 결말부에 모든 연결성이 드러났을 때 얼마나 감동이 밀려오던지! 몽환에 더해 미스테리 추리물의 장점도 훌륭히 갖춘 소설이다. 과연 온다 리쿠 소설의 완성판이라 할만하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애틋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시간이 갈수록 더 멋진 작품으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저자의 최신작이기도 한 <스키마와라시>! 지나간 어린 시절을 그리웠던 과거의 기억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올 여름의 미스테리 소설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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