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종의 인식을 향하여: 스피노자와 “마주침의 유물론”


최 원

(뉴 스쿨 대 철학 박사과정)


왜 바다에, 큰 길에, 사구(砂丘)에 비가 오는지

― 말브랑슈(Malebranche)1)


자신의 아내 엘렌(Hélèn)을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 이후 그에게 강요된 침묵의 심연으로부터 빠져 나와 “공적으로 말(parole)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면서,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자신의 생각에 관해 맹렬한 집필을 시작했다.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1982)2)은 그 같은 투쟁의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철학적 대립이 작동하는 지반 그 자체를 뒤흔들려는 시도였다. 우연성이란 부차적인 요소로서 필연성이 자신을 실현하고 스스로에게 복귀하기 위한 매개에 불과하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우연성을 필연성의 바로 그 토대에 위치시킴으로써 알튀세르는 유물론과 관념론 양자 모두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기원(archē) 및 목적(telos)이라는 관념(혹은 출발점과 종착점의 일치라는 관념)을 비판했다. 그는 다양한 유물론들을 내부로부터 그렇게 자주 무장 해제시키곤 했던 목적론을 관념론들의 관념론으로 식별해냈다. 이러한 급진적인 비판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세계 및 세계의 의미의 형성을 클리나멘(clinamen)의 결과로, 즉 공백 속에 평행으로 낙하하는 무한수의 원자 가운데 하나의 우연한 빗나감과 그에 따른 충돌 및 응고의 결과로 설명한 에피큐로스적인 전통을 특권화시켰다. “우발적인 것(l'aléatoire)”의 유물론이라는 이 전통 안에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홉스, 루소, 맑스, 하이데거, 데리다와 같은, 그들 모두가 통상적으로 유물론자들로 분류되지는 않는 철학자들을 다수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가장 기이하게 보이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피노자일 것이다. 비록 그가 철학의 전 역사를 통해 목적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들 가운데 하나를 제공한 철학자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이러한 비판은 우연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또 다른 비판을 기초로 해서만 가능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포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스피노자가 『윤리학』3)에서 가공했던 “제 3종의 인식(the third kind of knowledge)”의 종별적인 내용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가능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서, 알튀세르가 발견하고 재건한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전통에 스피노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의 제 3종의 인식의 급진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알튀세르 자신이 또한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스피노자는 인식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눈다. 제 1종의 인식은 상상(Imagination)의 인식으로 “우연적인 경험들” 및 “기호들(signs)”을 통해 획득되는 것을 말한다. 제 2종의 인식은 “공통의 통념(common notions)”에 기반한 이성(Reason)의 인식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제 3종의 인식은 직관(Intuition), 혹은 “직관적 인식”으로 스피노자는 이를 “특정한 신(神)의 속성들(attributes)의 형식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사물들의 [NS4): 형식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가는”(E2P40S2) 인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의 분류는 이미 『지성향상론』5)에 나타나고 『윤리학』에 재등장한다. 그러나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텍스트가 각각 인식의 세 가지 종류를 분절시키고 정의하는 방식은 상당히 판이하다. 이 두 텍스트 사이에서 스피노자는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break)”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한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자신의 글6)에서 이 두 텍스트의 관계를 단절이라기 보다는 “진화(evolution)”로 특징지음으로써 그들 사이의 일정한 연속성을 가정했다는 사실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나는 곧 이 점에 관해 자세히 논하겠다.

     “제 2종의 인식”의 정의에 관한 『지성향상론』과 『윤리학』의 두 가지 주요한 차이점을 묘사함으로써 시작해 보자.7) 1) 『지성향상론』이 제 2종의 인식을 “부적합한 것”으로 정의하는 반면, 『윤리학』은 그것을 제 3종의 인식과 함께 “필연적으로 적합한 것”(E2P41)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제 2종의 인식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많은 혼란을 야기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성향상론』의 입장을 『윤리학』의 독해에 투사하면서 『윤리학』에도 제 2종의 인식에 대한 모순적인 평가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하도록 허용했다.8) 2) 또 다른 주요한 차이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지성향상론』이 제 2종의 인식을 “보편적”인 통념에 기반한 것으로 보는 반면, 『윤리학』은 그것을 “공통의 통념”(E2P40S)에 기반한 것으로 봤다는 점이다. 사실, 공통의 통념이라는 개념이 스피노자에게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단지 『윤리학』(2P38C)에 이르러서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성향상론』의 보편적 통념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적절한 이름의 부재’라는 부차적인 문제로 봐야하는 것일까? 바꿔 말해서, 우리는 회고적으로 『지성향상론』의 보편적 통념을 『윤리학』의 공통의 통념과 실천적으로 같은 것으로 동일시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정확히 저 두 텍스트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 혹은 단절을 지워버리는 것이며,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왜 공통의 통념을 초월적 통념(Transcendental notions: “존재, 사물, 어떤 것”)뿐만 아니라 보편적 통념(“사람, 말, 개, 등”)으로부터 명확히 구별하기 위해 그토록 애썼는지의 이유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E2P40S1).

     이러한 두 가지 차이점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 두 텍스트의 관계에 관한 들뢰즈의 설명을 우회해 보자.


     1. 들뢰즈의 설명: “스피노자의 진화”


     앞서 지적했듯이 『지성향상론』과 『윤리학』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들뢰즈가 사용하는 “진화”라는 용어는 모호하다. 그것은 분명한 단절보다 연속적인 발전을 가정한다.

     『스피노자: 실천적 철학』(이하 SPP)에서 들뢰즈는 두 텍스트의 주요한 차이점을 정당하게 『윤리학』에 등장하는 “공통의 통념” 이론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공통의 통념” 이론을 『윤리학』에 도입함으로써 『지성향상론』이 이성과 적합한 관념의 형성이라는 질문에 관해 달성한 것들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그러나 공통의 통념 이론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스피노자로 하여금 “기하학적 방법론으로부터 [『지성향상론』 안에서] 그것의 실행을 제약한 허구들과 추상들을 제거”(SPP, 56~57)하도록 허용한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공통의 통념들은 육체들(bodies)의 물리적인 조우9)의 경험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공통의 통념들은 우선적으로 육체들에 관련되는 것이고, 정신 내에서의 그것들의 형성은 항상 육체들 사이에서의 구성에 이차적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공통의 통념의 육체적인 특성들이야말로 관념들의 추상을 엄격하게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 있어 공통의 통념의 의미는 “수학적이라기 보다는 생물학적이다.”(SPP, 54).

     그러나 질문이 따라나온다. 만일 공통의 통념이 육체들 사이의 조우의 “경험들”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왜 필연적으로 적합한가? 경험들이란 스피노자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상상적인 것의 주요한 두 원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다시 말해서, 왜 공통의 통념이 제 1종의 인식이 아닌 제 2종의 인식에 속한다는 말인가? 들뢰즈는 이를, 일치(agreement)의 관계에 진입하는 개별적인 사물들은 즉시 “기쁜 정념(joyful passions)”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렬(disagreement)의 관계는 육체들을 필연적으로 슬픔에 의해 변용(affect)시키기 때문에, 육체들로 하여금 어떤 공통의 통념도 형성하도록 유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통의 통념은, 들뢰즈에 따르면, 상상과 이성 사이의 미분(differentiation)으로 기능한다. 그는 공통의 통념이란 “우리의 역능에 관련된 실천적 관념들(practical Ideas)[이며], 단지 관념들만에 관련되는 그것들의 해명(exposition)의 질서들과 달리, 그것들의 형성의 질서는 정동들(affects)과 관련된다”(SPP, 119)고 말한다.

     비록 이러한 설명은 상상으로부터 이성으로의 이행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장점을 갖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논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 우리는 들뢰즈가 공통의 통념을 “실천적 관념들”이라고 해석한 것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그것은 공통의 통념이란 관념들과의 어떤 관련도 없이 정동들에만 우선적으로 관계하고 이차적으로 관념들에 관계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둘 째, 그것은 조우한 대상들에 대한 관념들에 의해서 야기된 정동들에 우선적으로 관계하지만 아직 그 정동(기쁜 정념)의 내적인 원인들은 정신에 해명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스피노자의 공리(Axiom)와 모순된다: “사랑, 욕망, 혹은 정신의 정동들이라는 말로 지시될 수 있는 모든 것과 같은 사유의 양태는 동일한 개체(Individual) 안에 그 사랑하거나 욕망하는 것에 대한 관념이 없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념은 다른 사유의 양태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E2A3) 후자의 경우, 그것은 스피노자의 정의(Definition)와 충돌한다: “나는 적합한 관념이란 대상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고려되는 한에서 진실한 관념의 모든 성질들과 내적인 지표들(denominations)을 갖는 관념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E2D4, 강조는 인용자) 바꿔 말해서, 공통의 통념이 진정 “적합한” 관념이어야 한다면, 그것은 즉각적으로 그것들이 이미 특정한 “해명(exposition)”의 과정을 통과한 관념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공통의 통념이 우선은 육체들의 문제이고 단지 이차적으로만 정신의 문제라는 들뢰즈의 주장은 “연장의 양태와 그 양태에 대한 관념은 동일한 것이지만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E2P7S)라는 스피노자 자신의 말과 직접적으로 모순된다. 나에게는 이러한 모순들은 스피노자에게 일종의 생기론적 형상을 부여하려고 하는 들뢰즈의 경향 때문에 초래되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다시 스피노자 안으로 정신-육체의 이원론을 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데카르트에게서와 달리 특권화되는 것은 육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들뢰즈는 여기서 “생물학적인 것”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SPP, 56)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것”이 “수학적인 것”보다 더 실제적이고 더 구체적이라는 주장은 스피노자 자신에게는 상당히 낯선 것이 아닐까?10)   

     공통의 통념에 대한 들뢰즈의 설명을 조금 더 쫓아가 보자. 그에 따르면, 공통의 통념이 둘 혹은 그 이상의 육체들의 조우로부터 형성되는 한, 그것의 “일반성들”은 최소값(“두 육체들”의 일반성)과 최대값(“모든 육체들”의 일반성)에 의해 표시되어지는 일종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공통의 통념은 진동하는 일반성들이다(SPP, 114). 따라서, 더 많은 것들을 우리가 조우할수록 더 “보편적인” 인식을 우리가 획득할 수 있다. 이는 따라서 가장 적은 보편성으로부터 가장 큰 보편성으로의 긴 이행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이행이 필연적으로 우리를 “신의 관념”으로 인도하며, 신의 관념은 이제 “실존하는 실체” 및 “실존하는 양태들”의 개별적인 본질들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제 3종의 인식으로의 이행을 매개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공통의 통념은 제 1종의 인식에서 제 2종의 인식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뿐 아니라 제 2종에서 제 3종으로의 이행까지도 설명한다.

     나는 이러한 들뢰즈의 훌륭한 설명에 동의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설명의 뒷면을 구성하는 그의 생각이다. 들뢰즈는 가장 적은 보편성으로부터 가장 큰 보편성으로의 이행이 또한 ‘이론적인 해명의 질서’라는 측면에서는 거꾸로 가장 큰 보편성으로부터 가장 적은 보편성으로의 이행이라는 점을 인정한다(SPP, 114). 왜냐하면, 두 육체가 공유하는 보편성은 모든 육체들이 공유하는 보편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대면하게 되는 질문은 ‘왜 이러한 이행이 또한 동시에 우리의 사유의 역능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키는 과정으로 여겨져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즉, 스피노자가 날카롭게 구별하는 “보편적 통념”이 갖는 보편성과 “공통의 통념”이 갖는 보편성의 종별적인 차이를 구성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11) 공통의 통념의 현실성과 경향적으로 동일시되는 그것의 육체적 특징이라는 것은 더 이상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확히 이론적 해명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보편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이라는 용어들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적이다(특히 SPP, 118~9). 요컨대, 개별자들의 육체적 조우의 경험들로부터 형성되는 관념이라는 식으로 공통의 통념을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이질적인 경험주의의 요소를 수입할 위험을 갖는 것이 아닌가?12)

     이 점에 관해서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의 진술을 한다. 첫 번째는 “진실한 관념은 그것의 대상과 일치한다”라는 제 1부의 여섯 번째 공리다. 다른 하나는 적합한 관념의 정의에 대한 해명이다: “나는 내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외적인 것, 즉 관념과 그것의 대상의 일치라는 것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E2D4Exp)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말들은 진리에 대한 스피노자의 입장이 갖는 힘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킨다. 그것들은 진리의 개념화의 적절한 순서를 표현한다. 즉, 진리에 대한 두 개의 연속적인 테제가 있고 그것의 순서는 뒤집어질 수 없다. 1) 만일 어떤 관념의 모든 성질과 내적인 지표들이 그 관념을 진실한 것으로 명시한다면, 반드시 그 경우에만 그 관념은 진실하다. 2) 어떤 관념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그것의 대상과 반드시 일치하게 된다. 이는 경험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그러므로 대상과 관념의 일치가 우연적인 것인 한에서, 그 관념에 의해 야기되는 기쁜 정념은 여전히 슬픈 정념으로 바뀔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적합한 관념으로 정의될 수 없다. 기실, 『윤리학』의 제 3부 전체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상반되는 정념의 “양가성(ambivalence)”에 대한 한 편의 긴 논의가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스피노자의 “동요하는 정신”(즉 같은 대상이나 유사한 대상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정념을 갖게 되는 것: E3P17S)과 ‘희망과 공포의 동일성’(즉 타인에게 자신의 무능력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과 같다: E3DA13Exp)에 관한 주장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피노자의 반-경험주의적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공통의 통념의 적합함의 원천을 그것의 육체적인 측면에서 찾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보편적 통념”의 추상성을 그것의 물리성(Physicality)의 결여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일을 말이다. 반대로 물리성의 결여(즉 관념과 대상의 불일치)란 보편적 통념의 추상성(즉 관념의 진실로서의 성질과 내적인 지표의 결여)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결과가 아닌가?

     『지성향상론』의 종결부에서 스피노자는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의 연쇄”(TdIE100)라는 매우 낯선 관념을 제안한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진화”라는 글의 한 각주에서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것들”을 속성들과 무한 양태들이 아닌 공통의 통념들과 동일시한다. 이 점에 관한 스피노자 자신의 몇몇 구절들을 읽어보자.


우리는 항상 모든 우리의 관념을 물리적인 것들이나 혹은 실제적 존재들로부터 연역해야만 한다. 가능한 한 원인들의 연쇄를 따라 하나의 실제적인 존재로부터 또 다른 실제적인 존재로 추상들이나 보편적인 것들로 넘어가지 않는 그러한 방식으로 말이다. (TdIE99)


그러나 원인들과 실제적 존재의 연쇄라는 것을 나는 개별적이고 변화하기 쉬운 사물들의 연쇄가 아니라 단지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의 연쇄로 이해한다. (TdIE 100)


진정 이러한 개별적이고 변화하기 쉬운 것들은 […] 그것들이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고 인식될 수도 없는 고정된 사물들에 밀접하게 의존한다. 그래서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은 개별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천에 널려있는 그것의 존재 때문에, 그리고 그것의 확장적인(extensive) 역능 때문에,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개별적이고 변화하기 쉬운 것들의 정의(definition)의 보편들이나 일반류들(genera)인 듯 보이고 모든 사물들의 가까운 원인(proximate cause)인 것처럼 보인다. (TdIE101, 강조는 인용자)   


확실히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과 들뢰즈가 “공통의 통념”으로 정의한 것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다. 특히 추상성(보편성)과 물리성 사이의 대립이 눈에 띈다. 비록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고 인식될 수도 없”다는 표현이나 “지천에 널려있는 그것의 존재”라는 표현은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을 속성들과 무한 양태들로 보이게 만들지만, 들뢰즈는 “여기서 속성들과 무한 양태들은 변화하기 쉬운 개별적 사물들에로의 그것들의 적용이라는 정확한 의미에서만 개입”하며, 따라서 그것들이 여기서는 단지 “공통의 통념으로서”만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한다(SPP, 120~21). 이로부터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은 『윤리학』의 공통의 통념을 예상한다는 그의 주장이 따라나온다. 그러나 진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즉, 그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은 진정 공통의 통념의 예상인가? 아니면, 차라리 공통의 통념 안으로 『지성향상론』의 그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을 투사하고 있는 들뢰즈의 해석을 표현하는 것인가? 그 어떤 경우이든, 들뢰즈는 여기서 스피노자의 두 텍스트간의 모종의 연속성을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따라서 단절이라기 보다는 “진화”가 어울리게 된다).

     여전히, 수수께끼는 남는다. 즉, 이러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이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보편들이나 일반류들인 듯 보인다”고 말할 때 스피노자가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관한 논의를 한 후 그는 곧 『지성향상론』의 집필을 중단하고 그것을 미완성인 채로 놔둔다. 그렇다면 이것은, 들뢰즈가 주장하듯이, 스피노자가 마침내 공통의 통념(비록 그것을 그렇게 부르진 않았다고 할지라도)을 발견했고, 그리하여 『지성향상론』을 다시 쓰는 것이 필요해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스피노자가 결국 하나의 불가능성(impasse)에 봉착했으며, 그리하여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을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사고하고 다시 가공하는 것이 필요해졌다는 뜻일까?


     2. 알튀세르의 설명: 제 3종의 인식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1985; 이하 UTM)13)에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라는 두 명의 철학자에 관해 쓴다. 그는 스피노자에 관한 첫 번째 장에서 세 가지 인식의 종류들을 논한다. 그에 따르면, 제 1종의 인식, 즉 상상은 우리가 즉시 스스로를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생활세계(Lebenswelt)” 그 자체다. 알튀세르는 『윤리학』 제 1부의 부록을 원용하면서, 상상은 “(인간) 주체를 모든 지각과 행동, 목표, 그리고 의미의 중심과 기원에 두지만, […]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이처럼 사물의 실제 질서를 전도시키는데, 왜냐하면 사물의 실제 질서는 원인들의 유일한 결정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이”(UTM, 154, 강조는 인용자)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생활세계는 하나의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고 오직 전도의 “장치” 안에서만 경험한다. 그리고 나서 알튀세르는 더 이상 제 2종의 인식, 즉 이성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제 3종의 인식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나중에 왜 그가 제 2종의 인식에 관한 논의를 완전히 생략하는지의 놀라운 이유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의 제 3종의 인식에 관한 사고들을 따라가 보자.

     알튀세르는 제 3종의 인식이 모호하고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는 스피노자가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amor intellectus Dei)’과 ‘지복(至福, beatitudo)’에 관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3종의 인식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인 예도 사실상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매우 예외적인 예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학-정치학 논고』에 등장하는 유태인민의 개별적인 역사라는 사례다. 그는 이 “사례(case)”를 동시에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인 어떤 것이라고 특징짓는다. 그는 모든 사례들이 개별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쉽게 인정하지만, 만일 개별적인 사례가 그 자체로 동시에 보편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문제고 파문이 인다고 말한다(UTM, 157). 진정, 이것은 스피노자가 『지성향상론』의 끝에서 마주친 것과 같은 역설이 아닌가? 즉,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는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이라는 역설 말이다. 알튀세르는 계속해서, 만일 개별적인 사례가 그 자체로 보편적이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 사례에 관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면(왜냐하면 ‘보편적인 것’ 없이는 그 어떤 지식도 불가능하므로), 경험들에 의한 이론의 검증가능성(칼 포퍼(Karl Popper)는 이를 ‘과학’의 기준으로 만들었다)이라는 실증주의적 질문은 그 자체로 무효가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이론이란 그 아래로 모든 개별적인 사례들이 포섭되어야만 하는 어떤 “보편적인” 이론들이 아니라 사실 스스로가 그만큼의 많은 사례들에 불과한 “개별적인” 이론들이기 때문이다.14)

     그러나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인 “사례”라는 것은 무엇인가? 알튀세르 자신이 이 질문을 던진다: “결코 “동일한 사례”를 만나지 않으며, 항상 그리고 오로지 개별적이고 따라서 상이한 “사례들”만 만난”다면, “어떻게 거기서 일반적인, 즉 추상적인 인식들을 끌어낸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UTM, 158) 여기서 그는 개별적-보편적 사례들이라는 스피노자적 쉐마를 “부정”과 “매개”라는 수단에 의해 작동하는, 개별성, 보편성, 특수성에 관한 헤겔적인 쉐마로부터 조심스럽게 분리한다. 이러한 개별적-보편적 사례들이라는 스피노자적인 쉐마는 순수하게 긍정적이어야만 한다. 즉,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직접성, 즉 일종의 “단락(short-circuit)”(발리바르)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확히 질문은 여기-지금-이-나무의 개별적인 본질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은 여기-지금-이-나무(헤겔적 즉자)를 인식하는 문제도 아니고 보편적인 “나무”의 실현되거나 특수화된 형태(“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양자두나무, 배나무 따위”)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난해한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 우리가 재검토해야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통의 통념”이다.

     스피노자가 보편적 통념으로부터 공통의 통념을 구별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보편적 통념은 말들과 이름들에 관련된다: “인간, 말, 개, 등 저들이 보편적이라고 부르는 저 통념들은 […] 그렇게 많은 이미지들(예컨대, 인간의)이 인간의 육체 안에 한꺼번에 형성되어서 상상의 역능을 능가하기 때문에 나온다. […] 육체는 [NS: 강력하게] [공통된 것]에 의해 가장 많이 변용되는데, 각각의 개별적인 것이 그것을 [이러한 성질에 의해] 변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NS: 정신은] 이것을 인간이라는 에 의해 표현하고 그 말을 무수히 많은 개별자들에 대해 서술한다(predicate).”(E2P40S1, 강조는 인용자) 그러므로, 보편적 통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상상의 역능”의 제한된 능력으로부터 결과된다. 즉,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 육체의 개별적이고 상이한 변용들을 유사성에 따라 하나의 이름 아래 모으는 방식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통념은 개별적인 사물들을 류와 종으로 나누는 분류의 체계에 다름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러한 개별적인 사물들의 분류가 오로지 우리 육체의 변용들의 효과들결과들에 대해서만 수행된다는 점이다(즉, 그것은 효과들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서 진행한다). 공통의 통념들 또한 개별적인 사물들의 분류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이점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공통의 통념의 분류라는 것은 효과가 아닌 원인들에 대해서 행해진다는 사실이다.15) 그리고 이 원인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고 항상 이미 어떤 종류의 “이론적 해명”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보편적 통념이 결과들의 보편성에 의존한다면, 공통의 통념은 (이성의 작업들을 통해 식별되는) 원인들의 보편성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핵심적이다. 적어도 스피노자의 『윤리학』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보편성이 있다(나는 ‘적어도’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예컨대, 존재, 사물, 어떤 것이라는 신의 속성들에 관한 혼란스런 관념에 관계된 “초월적” 통념들이라는 범주가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이러한 구별 위에서만, 우리는 왜 공통의 통념이 보편적 통념과 달리 “필연적으로 적합한 관념”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원인들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원인들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공통의 통념은 정신의 ‘수동(passion)’이라기 보다는 ‘능동(action)’의 토대이다. 우리는 공통의 통념의 보편성을 ‘실제적인 혹은 진정한 보편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보편적 통념의 그것을 ‘상상적 보편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의 스피노자주의 내로의 경험주의의 수입 및 공통의 통념의 물리성에 대한 과잉강조는 모두 이러한 결정적인 구별에 대한 무지/무시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공통의 통념을 원인들의 보편성에 관한 인식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지성향상론』과 『윤리학』의 단절의 급진성을 측정하기 시작할 수 있다. 『지성향상론』은 기본적으로 방법론에 관련되어 있다. 스피노자는 방법론의 기원을 지성의 “향상” 과정 속에서 관념들 그 자체로부터 전진적으로만 구별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스피노자에 의한 방법론의 기원에 대한 인식은 명백히 데카르트의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진술은 그가 데카르트주의로부터 단지 한 발자국만을 벗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혼란은 정신이 하나의 전체이거나 많은 사물들로 구성된 사물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알고, 모르는 것으로부터 아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귀결되므로 […], 이로부터 첫 째, 만일 관념이 어떤 가장 단순한 것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명석판명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따라나온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로서 알려지게 되거나 혹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 째, 만일 사유 안에서 우리가 많은 사물들로 구성된 사물을 그것의 모든 가장 단순한 부분들로 나누고 이들 각각을 분리해서 관찰한다면 모든 혼란은 사라질 것이다 … (TdIE63 and 64)


여기에 데카르트의 『방법론 서설』로부터의 한 귀절을 함께 놔보자.


두 번째 [주된 방법론은] 내가 시험하는 각각의 곤란들을 가능한 한 많은 부분들로 나누고 그것을 더 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나누는 것이다. […] 기하학자들이 가장 어려운 증명들에 도달하기 위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매우 단순하고 쉬운 추론으로 구성된 이들 긴 사슬들은 나로 하여금 인간의 인식 하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은 똑 같은 방식으로 상호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게 하곤 했다.16)


우리가 볼 수 있듯,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양자 모두에게 있어 명석판명한 관념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은 혼란되고 복잡한 관념을 “그것의 모든 가장 단순한 부분들”로 나누어 나가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질문이 따라나온다. 혼란된 관념을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단순히 나누는 이러한 과정이 왜 우리를 명석판명한 관념으로 필연적으로 이끈다고 가정될 수 있는가? 사실, 이러한 나눔의 방법론은 정확히 효과들이나 결과들의 분류법이라는 방법론이 아닌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는 자신의 저서 『날것과 익힌 것』에서 한 번 이러한 데카르트적인 방법론의 부적합함에 관해 비판한 적이 있다(물론 이러한 비판은 데카르트 자신에게 만큼이나 스피노자 자신에게도 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화들의 연구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필요한 만큼 많은 부분들로 곤란을 나누어나가는 데카르트적 원칙에 따라 그 연구가 행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신화학적 분석에는 어떤 실제적인 끝이 없고 그 나눔의 과정이 종결됐을 때 움켜쥘 숨겨진 단위(unity)도 없다. 테마들은 무한하게 갈라질 수 있다.”17) 요컨대, 우리가 혼란된 관념을 얼마나 잘게 자르던 간에, 우리는 결코 어떤 단순한, 즉 명석판명한 관념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다시 또 다른 혼란스런 관념만을 만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나눔의 과정은 기껏해야 결과들의 분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지어 여기서 더 나아가서 모든 혼란스런 관념들은 사실 그만큼의 “신화”들이며 우리가 그 원인에 대해 무지한 최종생산물, 효과, 결과로서의 신화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방법론의 질문은 또한 “관념의 관념(an idea of an idea)”으로서의 ‘확실성’의 질문이기도 하며, 따라서 그것은 진리의 기준이라는 질문이다. 비록 진리의 기준은 그 초기적인 단계에서 진실한 관념들 그 자체로부터 분리되기 힘들지만, 그것은 지성향상의 과정을 통해서 특정한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성향상론』에서 스피노자는 방법론을 “반성적 인식(Reflexive Knowledge)”과 동일시한다: “이로부터 방법론이란 반성적 인식 혹은 관념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 추론될 수 있다.”(TdIE38, 강조는 인용자) 그러나 자기-반성으로 정의된 방법론은 또한 의식이기도 하다.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오류를 가장하기(feigning)라는 질문(예컨대, ‘지구는 평평하다’가 잘못된 말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상상하거나 말하기)에 관해 논의하면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즉 “우리는 먼저 우리가 때때로 오류를 범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오류를 의식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가장할 수 있다.” (TdIE56, 강조는 인용자). 만일 누군가가 이 구절을 놓고 그것이 윤리학의 다음과 같은 정리와 실제로 같은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일 것이다: “오류는 부적합하거나 잘려져 있거나 혼란스런 관념들이 포함하고 있는 인식의 결핍 속에서 구성된다.”(E2P35) 『지성향상론』과 『윤리학』의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정확히 지적 과정의 순서의 정식화에 관련된다. 『지성향상론』에서 우리는 이렇게 진행한다. 먼저 우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그 오류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한다; 그 다음 우리는 그렇게 알려진 오류를 우리의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예컨대, 과거로부터의 오류를 기억하는 일이라든지 또는 타인들의 같은 오류를 묘사한다든지 따위). 『윤리학』은 반면 앞에 인용된 그 정리를 선행하는 또 다른 정리가 있다. 즉 “관념 안에는 그것에 의해 그 관념들이 잘못이라고 불릴만한 그 어떤 긍정적인 것도 없다.”(E2P33)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우리는 먼저 혼란스런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아직 오류로 규정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혼란스런 관념을 가공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적합한 관념이나 진실한 관념을 획득한다; 이제 이러한 진실한 관념에 의해 우리는 혼란스런 관념을 긍정적으로 오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바꿔 말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출발점은 오류나 잘못이 아니라 그 자체 제 1종의 인식이라고 불리는 “상상”인 것이다.18) 여기서 우리는 『지성향상론』과는 달리 오류에서 진리로 진행하지 않는다. 반대로 오류는 진리들 그 자체의 생산의 결정적 효과이다. 이로부터 “진리는 자기 자신과 오류 양자 모두의 기준이다”(E2P43S)라는 저 유명한 테제가 나온다.19) 『지성향상론』과는 달리 『윤리학』에서 “반성적 인식”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진다.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윤리학』에서 관념의 관념 및 확실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식적 반성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증명”의 문제, 즉 “비-의식적인” 지적 노동의 문제가 된다. 즉, 진리의 생산 과정은 이제 “주체 없는 과정”인 것이다.20)

     우리는 『윤리학』에 두 종류의 보편성이 있다고 말했고 공통의 통념은 효과가 아닌 원인들의 보편성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통의 통념들은 여전히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설사 적합한 관념이라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개별적 사물들의 본질들(즉, 지금-여기-이-나무의 본질!)에 관해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들뢰즈가 공통의 통념의 이행과정에 관해 논할 때, 그가 이론적인 해명의 순서라는 측면에서의 가장 큰 보편성으로부터 가장 적은 보편성으로의 이행이 또한 왜 우리의 인식의 역능을 증가시키는 과정일 수 있는지에 관해 어떤 적절한 설명도 주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모든 육체들로부터 형성되는 “최대의” 공통의 통념들이 ‘가장 희박한 보편성’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는 심지어 그것이 단순한 몇 개의 보편적 관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원인들의 보편성의 인식이며, 사실은 ‘공통원인’으로서의 신의 속성들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제 3종의 인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제 3종의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의 출발점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제 3종의 인식은] 신의 특정한 속성들의 형식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사물들의 [NS: 형식적] 본질의 적합한 관념으로 나아간다.”(E2P40S2) 물론 질문은 ‘어떻게?’이다.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에서 제 3종의 인식에 관해 논하면서 알튀세르는 오로지 개별성들만이 있고 실제로 개별적이지만 보편적인 개별성들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개별성들이 동시에 보편적인 것은 마치 “반복적 불변수들(invariants répétitives)”이나 “상수들(constants)”이 그 개별성들을 “관통하고 그것들에 붙어다니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것들이 물리학의 법칙처럼 어떤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불변수들은 개별성들의 형태에 관한 논의에 특정한 “지표”를 준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그것들은 “일반적”이지 않고 “총칭적(generic)”이다.(UTM, 158~9)

     반드시 알튀세르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개별적-보편’의 개념을 가공하려고 했던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을 여기서 참조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21) 『날것과 익힌 것』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내가 지금부터 참조신화(key myth)로 부르고자 하는 보로로(Bororo) 신화는 내가 보여주려고 시도할 것처럼 단순히 같은 사회, 혹은 이웃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에서 기원하는 다른 신화들의 다소간의 변형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출발점으로 그 그룹의 대표적인 신화의 어떤 것이라도 정당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참조신화는 그것이 전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그룹 내에서의 불규칙한 위치 때문에 흥미롭다.22)


 놀랍게도 여기서 “보로로 신화”는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 제 3종의 인식의 예(즉 유태민족의 개별적 역사)와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 비록 “참조신화”는 다른 신화들에 대해 어떤 특권도 갖지 않는 단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마치 다른 신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이 “전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이웃하는 신화들의 변형들이 합류하는 독특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이는 정확히 알튀세르가 불변수들이나 상수들은 “일반적”이지 않고 “총칭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의미했던 것이다. 물론 질문은 ‘어떻게 단지 하나의 신화(비록 몇 개의 다른 신화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라고 하지만)에 대해 작업하고 그리하여 그것으로부터 불변수와 상수들을 뽑아냄으로써 다른 모든 신화들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가’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대답은 결정적이다.


만일 비평가들이 나에게 남아메리카 신화들을 분석하기 전에 그것들의 완전한 발굴을 수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롱한다면 그들은 이러한 문서들의 본질과 기능에 관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주어진 공동체에 속하는 신화의 총체(total body)는 그 공동체의 말(speech)과 비교할만하다. 인구가 실제로든 도덕적으로든 다 죽어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총체성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당신은 또한 언어가 생긴 이래 발음된 단어들의 총목록을 작성하지 않은 채, 또 그 언어의 실존의 미래 안에서 무엇이 말해질 것인지를 모르는 채 언어의 문법을 수집(compile)했다는 것에 관해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언어학자가 자신이 이론상으로 수집할 수 있었던 문장들[…]에 비해 놀랍도록 적은 수의 문장들로부터 주어진 언어의 문법들을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심지어 부분적인 문법이나 혹은 개요적인 문법도 우리가 모르는 언어들을 다룰 때는 소중한 수확이다. 구문은 단지 (이론적으로 무한한) 사건의 연쇄가 기록되거나 시험된 후에만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그 사건들의 생산을 지배하는 규칙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23)


신화와 언어의 총체는 항상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대상들은 살아있고 여전히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일반화나 나눔의 방법론을 통해 접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사례들” 안에서 발견되는 불변수들 혹은 상수들은 이론적인 도구로 작동할 수 있는데,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알려져 있거나 그렇지 않은 무한히 많은 다른 “사례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것들이 최종-생산물이나 결과들로서의 신화들 그 자체를 지배하는 규칙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생산을 지배하는 규칙들”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들은 효과나 결과들의 보편성이 아니라 원인들의 보편성인 것이다. 바로 “공통의 통념들”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신의 속성들의 형식적 본질에 대한 인식에서 개별적인 사물들의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통의 통념들이 비록 그 숫자 상으로는 제한되어 있을지라도(즉 가장 희박한 보편성이라고 할지라도) 개별적 사물들의 그 모든 “생산”을 지배하는 원인들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2종의 인식은 그 자체로는 제 3종의 인식에 “전제”들을 마련해줌으로써 “전제 없는 결론”(E2P28Dem)으로서의 상상적 보편성에 대항해서 사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제 2종의 인식은 인식의 진정한 과정의 출발점에 우리를 데려다 준다. 그리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질서를 파악하는 “진정한” 인식으로서의 제 3종의 인식은 그 자체가 실천인 인식24)(이것이 바로 왜 스피노자가 그의 저서를 “윤리학”이라고 명명했는지의 궁극적인 이유이다)인 것이다. 마치 제 1종의 인식처럼 말이다. 단 하나의 차이는 제 3종은 제 1종의 전화되거나 “치유”된 인식이라는 점이다. 제 2종의 인식은 그렇다면 제 1종과 제 3종 사이의 “단절”을 생산하는 이론적인 개입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이것이 왜 알튀세르가 제 1종의 인식을 “생활세계” 그 자체와 동일시한 후에 제 2종의 인식에 대한 논의를 거의 제로로 압축시키면서(그는 집약적으로 그것이 “원인”에 관련된다고만 지적한다) 막바로 제 3종의 인식에 대한 논의로 넘어갔는지의 이유이다. 제 2종의 인식은 실로 이데올로기적인 실천들로부터의 “단절”이면서 동시에 그것들 내로의 “재기입”이 된다.

     알튀세르는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만 프로이트 그 자신이 우리에게 이러한 ‘기적’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그는 무의식은 아주 빈약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진실과 동시에 매우 단순한 어떤 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의 말뜻은 무의식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아주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설명에서 열거되었던 아주 적은 수의 요소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아주 단순하다. 실은 이 기초적 요소들은 두 손의 손가락들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아주 제한되어 있다. 무의식의 기초적 요소들이 아주 단순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무의식과 나의 무의식이 단순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들은 아주 비상하게 복잡하다. 그것들의 복잡함은 이 단순한 요소들(이것들 각자는 프로이트가 ‘정동(affect)’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수준의 강도를 가질 수 있다)이 결합되는 방식에 기인한다. 정동이 0에서 ∞까지 변할 수 있음을 알 때, 가능한 결합들이 무한하고, 또 따라서 무한히 가변적임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무의식도 다른 무의식과 비슷하지 않은 것이다.25)


무의식의 이러한 “요소들”은 불변수들 혹은 상수들이다. 숫적으로 적지만 그것들은 무한수의 결합을 생산해내고 그 각각의 결합은 그만큼의 “비슷하지 않은” 개별성이 된다. “신성한 본질의 필연성으로부터 무한히 많은 것들이 무한한 양태로 따라나온다 (즉, 무한한 지성하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말이다)”(E1P16)라고 스피노자가 말했을 때, 그가 프로이트, 알튀세르가 보고 있던 바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프로이트(및 알튀세르)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여기서 모두 보고 있는 것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과잉결정”이라는 개념이다. 사실 제 3종의 인식은 과잉결정된 개별성들, 즉 사건들의 열려있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전들에 대한 인식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스피노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신의 무한한 본질과 그의 영원성이 모두에게 알려진다는 것을 본다. 모든 사물은 신 안에 있고 신을 통해서 인식되므로, 우리는 이 인식으로부터 우리가 적합하게 알고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연역할 수 있고 그리하여 제 3종의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따라나온다.”(E2P47S, 강조는 인용자)

     알튀세르는 스피노자를 “마주침의 유물론”의 전통 안에 포함시켰다. 자연 안에 어떤 공백도 허용하지 않고(“명석한 이성이 무오류적이라는 것을 아는 모든 자들, […] 특히 공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E1P15S)) 또한 우연적인 것의 관념을 혐오했던 철학자를 파르메니데스적 전통이 아닌 에피큐로스적 전통 안에 포함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스피노자 안에 무한수의 속성들 사이의 구조적인 마주침들이라는 “한계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렇게 쓴다.


나는 스피노자에게는 철학의 대상이 공백이라는 테제[…]를 주장하고자 한다. […] “나는 신에서 시작한다”고, 또는 전체에서, 또는 유일독특한 실체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 전체와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체 외부에는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이 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일독특하고 무한한, 무한한 수의 무한한 속성들을 갖추고 있는, 절대적 실체이다. […] 우리는 연장과 사유[사고]라는 두 속성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사유에 대하여 욕망에 있어 사유되지 않은 그 역능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신체에 대하여 그 모든 역능들을 인식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속성들, 수적으로 무한한 이 무한한 속성들이 모든 가능한 것들과 불가능한 것들을 덮어 숨기기 위해 거기에 있다. 이 속성들이 수적으로 무한하며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 이 속성들의 우발적인 형상들에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이 속성들이 평행하며 이 속성들에서는 모든 것이 평행의 효과라는 사실이 에피큐로스의 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속성들은 오직 이 예외적인 평행 속에서만 서로 마주칠 수 있는 빗방울들처럼 자신들의 결정의 빈 공간 속으로 떨어진다. […] 요컨대 그것은 마주침 없는 평행, 그렇지만 각 속성의 상이한 요소들 사이의 관계 바로 그것의 구조상 이미 그 자체로서 마주침인 평행이다.26)


나는 알튀세르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실체의 관점에서 모든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유한자들로서의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실체에 대한 “인식”은 항상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어느 정도까지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신의 속성들 가운데 단지 두 가지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 두 가지 이외에 그렇게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이 존재하는가? 확실히 『윤리학』 이전에 그것들은 거기에 없었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글의 도입부에서 말브랑슈가 던진 질문을 인용한다. “왜 바다에, 큰 길에, 사구(砂丘)에 비가 오는지?” 만일 그 비가 바다에 아무 것도 보태줄 수 없다면, 왜 비는 거기에 내리는가? 그것은 단지 떨어질 뿐이다. 목적도 없이. 마치 스피노자의 속성들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한수의 속성들이 자연 안으로 목적 없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윤리학』의 근본질문이다. 알튀세르는 그것들이 실체를 우리로부터 숨기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한다. 실체가 우리에게 폭로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모든 것이 폭로되는 것은 아니라는 조건하에서, 즉 어떤 것이 어둠 속에 항상 아직 남아있게 된다는 조건하에서 폭로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왜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이 그 절대적 현전(Presence)의 외양에도 불구하고 결코 “현전”으로 결정될 수 없는지의 이유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이 뒤집힌다. 항상 우리는 우연한 것들을 보게 된다. 우리가 몇몇의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질에 관한 다소간 적합한 관념을 획득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어떤 ‘섬뜩한’(unheimlich, 프로이트) 것들을 마주친다. 따라서, 다시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실체에 대한 양태들의 항상적인 과잉이 있다. 이러한 과잉은 그러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어떤 균열 때문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무한한 구조적 다면성의 “표상불가능성”(윤소영) 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알튀세르는 “그 자체로 마주침인 것”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사례”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또 다른 사례에 대한 지식으로 “직관적”으로 진행하면서 말이다.


     3. 결론: “과정(process)”으로서의 제 3종의 인식


     발리바르는 「『윤리학』에서의 “의식/양심”에 관한 노트」라는 글에서 제 2종의 인식은 비-의식적인 것이지만 제 3종의 인식은 다시 “의식/양심”에 관련된다고 주장한다.27) 사실, 스피노자는 『윤리학』 5부의 후반부에서 제 3종의 인식을 논하면서 지속적으로 “의식한다(conscius)”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제 2종의 인식을 논할 때 사용되지 않은 것이었다(E5P31S, P34S 및 P39S를 보라). 발리바르에 따르면, 제 5부에서 설명되는 바의 제 3종의 인식의 항은 “네 가지 “대상들”(정신, “그것의” 육체, 신, “사물” 일반)”로 구성된다. 그리고 바로 저 두 번째 대상(즉, 정신 자신의 육체)으로 인하여 “의식하다”라는 용어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이렇게 정의된 제 3종의 인식은 결코 ““고정된” 관념이나 개별관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말을 읽어보자.


많은 것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육체를 가진 자는 악한 정동에 의해(IVP38에 의해), 즉 (IVP30에 의해), 우리의 본질에 반대되는 정동들에 의해 가장 덜 곤경에 빠진다. 그래서 (P10에 의해) 그는 그의 육체의 변용들을 지성의 질서에 따라 질서짓고 연결할 수 있는 역능을 갖고 결과적으로 (P14에 의해) 육체의 모든 변용들이 신의 관념에 관계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역능을 갖는다.(E5P39Dem, 강조는 인용자)


이 구절을 읽고, 이와 유사한 또 다른 구절이 또한 제 5부에서 제 3종의 인식에 대한 논의가 출현하기 전에 이미 나왔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5P10S에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육체의 변용들을 올바르게 질서 짓고 연결하는 역능에 의해 우리는 악한 정동들에 의해 쉽게 변용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제 2종의 인식에 관련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P10S의 나머지 부분이 이를 보여줄 것이다.


(P7에 의해서) 지성의 질서에 따라 질서지어지고 연결된 정동들을 제약하는 것이, 불확실하고 우연적인 정동들을 제약하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동에 대해 우리가 완벽한 인식을 갖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살아있는 혹은 확실한 생활의 금언이라는 올바른 원칙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단단히 기억시키며 그것들을 우리 삶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특수한 사례들에 항상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은 그것들에 의해 상당히 변용이 되고 우리는 항상 그것들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 2종의 인식에 특정한 고정성(fixity)이 따라붙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여기서 거의 좋은 습관의 형성을 주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습관이란 항상 외적인 고정(extrinsic fixation)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금언”이라는 말 앞에 “살아있는”이라는 형용사를 위치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이러한 고정성을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제 2종의 인식이 사례들로부터 다른 사례들로 끊임없이 움직인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금언들을 특수한 사례들에 적용시킴으로써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제 3종의 인식에 관련된 P39S는 상당히 다른 것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항상적인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더 낫게 더 나쁘게 변화함에 따라 행복하거나 불행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개별적인 사물들(알려져 있는 몇몇이 있지만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과의 항상적인 마주침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변용시키는 수없이 많은 개별적 사물들에 대한 “끝없는 분석”(프로이트)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우리 자신은 언제나 “변화에 대한 변화”로서만, 혹은 차라리 (상상 속에서 자신들의 실천을 축적하여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적분적 주체’가 아닌) “변화에 대한 미분[적 주체]”로서, 그 변화들에 작용하는 변화로서 우리의 실천을 조직해 나가야만 한다.28) 따라서 발리바르가 말하듯, 제 3종의 인식은 결코 “고정된 관념”이나 “개별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육체의 변용의 원인들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지성향상론』의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나는 여기서 스피노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공통의 통념이라기 보다는 제 3종의 인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모든 우리의 관념을 물리적인 것들이나 혹은 실제적 존재들로부터 연역해야만 한다. 가능한 한 원인들의 연쇄를 따라 하나의 실제적인 존재로부터 또 다른 실제적인 존재로 추상들이나 보편적인 것들로 넘어가지 않는 그러한 방식으로 말이다.”(TdIE99, 강조는 인용자) 그러나 원인들의 연쇄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윤리학』의 제 3종의 인식과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이라는 관념은 『지성향상론』에서 스피노자가 마주쳤던 바로 그 곤란을 표현한다. 그가 “원인들과 실제적 존재의 연쇄라는 것을 나는 개별적이고 변화하기 쉬운 사물들의 연쇄가 아니라 단지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의 연쇄로 이해한다”(TdIE 100)고 말할 때, 그는 제 3종의 인식 앞에서 주춤거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제 2종의 인식의 최대이자 제 3종의 인식의 출발점인 신의 속성들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별적-보편적 사례라는 역설을 풀지 않고 스피노자는 『지성향상론』을 계속 집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지성향상론』 안에는 바로 제 3종의 인식이 완전히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윤리학』에 이르러서였던 것이다.

     제 3종의 인식은 『윤리학』의 대상 그 자체였다. 이를 “가공함”(process-ing)에 의해서 스피노자는 그 자신이 제 3종의 인식의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 사이의 일치(union)는 그 자신의 결론이 되었다.


1) Malebranche, Entretiens sur la métaphysique, IX, Paragraphe 12. 루이 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서관모․백승욱 편역, (새길, 1996), 35쪽에서 재인용.


2) 앞의 책, 35~92쪽


3) Spinoza, The Collected Works of Spinoza, vol. I, Edwin Curley(ed. & tr.),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 pp. 408~617. 스피노자의 텍스트에 관련된 이 글의 모든 약자들은 커를리의 것을 따른다.


4) 스피노자 사후 출판된 1677년 네덜란드어 판본인 De Nagelate Schriften van B. D. S. 삽입구절을 말하는 약자다.


5) Op. cit., pp. 7~45.


6) Gilles Deleuze, "Spinoza's Evolution", Spinoza: Practical Philosophy, Robert Hurley(tr.), (San Francisco: City Lights Books, 1988), pp. 110~121.


7) 『지성향상론』은 제 2종의 인식(혹은 그것에 해당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또 다른 사물로부터 하나의 사물의 본질이, 그러나 부적합하게, 추론될 때 우리가 갖는 지각(Perception)이 있다. 이것은 어떤 효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할 때 발생하거나, 또는 무엇인가가 어떤 성질을 항상 동반하는 어떤 보편(Universal)으로부터 추론될 때 발생한다.”(TdIE19, 강조는 인용자)


8) 그렇다면, 이러한 이론적인 상황이 제 3종의 인식에 관한 논의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것은 제 2종의 인식과 제 3종의 인식 사이에 하나의 완전한 단절을 위치시킴으로써 제 3종의 인식이란 기본적으로 그노시스적이고 카발라적인 전통에서 등장하는 비교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지혜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던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해석을 정당화시켜왔다. 니체가 나중에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하면서 미학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를 전개할 때 그 안에서 이러한 낭만주의적인 경향의 반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윤소영, 『알튀세르의 현재성: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공감, 1996), 185쪽을 참조하라.)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렵다”(E5P42S)는 윤리학의 마지막 구절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해석적 경향은 텍스트와 독해의 질문에 관한 스피노자 자신의 입장을 배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고립분산적인 문장들에 의해 “외적으로 결정된” 독해가 아니라, 텍스트 자체 내에 발견되는 “다수의 것들의 일치점, 차이점, 대립점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들을 동시에”(E2P29S) 내적으로 인식하는 독해를 스피노자 자신의 텍스트들에 적용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9) 원래 여기서 “조우”(encounter)라는 것은 “마주침”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마주침”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싣고 있는 만큼 구별을 위해 들뢰즈의 경우에는 “조우”라는 말로 번역한다.


10) 소산적 자연 내에서의 들뢰즈의 이러한 육체에 대한 강조는 능산적 자연 안에 그것의 맞대응물을 갖는데, 그것은 다른 속성들에 대한 사유라는 속성의 우위라는 그의 사고다. Deleuze, Expressionism in Philosophy: Spinoza, Martin Joughin(tr.), (New York: Zone Books, 1992), 특히 제 7장을 보라. 이러한 그의 입장은 궁극적으론 정신-육체의 이원론을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더욱 확장된 존재론적 규모에서 도입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더욱 중요하게는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두 수준의 일정한 분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들뢰즈는 이렇게 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저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의 실체가 아니라 유한한 양태들의 구성이었습니다. 나는 이를 내 책의 가장 독창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유한한 양태들 위에서 실체가 회전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실체 안에서 유한한 양태들이 작동하는 내재성의 평면을 보려는 희망이 이 책에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Op. cit., p. 11) 이 모든 것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미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스피노자에게는 실체와 양태 사이에 실제적인 틈이 있으며, 이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중에 들뢰즈 자신이 그렇게 할 것처럼 실체와 양태 사이의 관계를 전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의 “리좀(rhizome)”에 관한 이론은 바로 이러한 전도로부터 나오는 것 같고 그것의 이론적인 결과는 바로 일자(一者)와 다자(多者)라는 문제설정의 기각이다. “이것은 일자와 다자(the Multiple)가 아니라 일자와 다자 사이의 어떤 대립도 효과적으로 넘어서는 융합적 다양체라는 문제다. 그와 같이 실체의 존재론적 통일성을 구성하는 실체적 속성들의 형식적 다양체 말이다. 하나의 개별적 실체 하에 모든 속성들, 혹은 강렬도의 류(genus)들의 연속(continuum)이 있고 개별적인 유형 혹은 속성 하에 특정한 류의 강렬도들의 연속이 있다. 강렬도 안에서의 모든 실체들의 연속과 실체 안에서의 모든 강렬도들의 연속 말이다.”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Brian Massumi(tr.), (Minnesota: University of Minnesota, 1987), p. 154). 그러나 적어도 “모든 속성들의 연속”이라는 것은 스피노자에게선 전혀 생각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11) 비록 『지성향상론』에 나온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일반적으로 존재가 인식될수록 또한 더욱 혼란스럽게 인식되며 아무 것에나 허구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반대로 그것이 더욱 특수하게 인식될수록 더욱 명석하게 인식되며 우리가 심지어 자연의 질서에 주의하지 않을 때조차 그 사물 자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허구적으로 그것을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TdIE55)


12) 더욱이 어떻게 우리가 속성들의 개별적인 본질들의 관념인 신의 관념으로부터 “실존하는 양태들”의 개별적인 본질들에 관한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 들뢰즈 안에는 없다. 그는 스피노자가 이미 말한 것을 설명하지 않고 단지 반복할 뿐이다. 심지어 그의 『스피노자: 실천적 철학』의 제 4장 “『윤리학』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색인”에 나타나는 “인식 (그 종류들)”이라는 항목에조차 제 2종에서 제 3종으로의 이행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한 진정한 설명이 없다. 들뢰즈는 단순히 제 3종의 인식이 제 2종 안에 형상원인(causa fiendi)를 갖는다고 덧붙이고, 신의 관념이 “이러한 [제 2종의 인식의] 새로운 관점 하에 우리로 하여금 제 3종으로 이행하도록 강제한다”(SPP, 83)고 말할 뿐이다. 여전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관해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제 3종의 인식은 엄격히 말한다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영원히 주어진 것으로 발견되는 것”(SPP, 83)이라고 말할 때, 그는 제 3종의 인식을 미스테리 속에 남겨두고 신으로부터 “주어진” 비교주의적 지혜라는 오래된 테마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가 제 2종과 제 3종 사이에 완전한 단절을 상정하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3) 알튀세르,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철학과 맑스주의』, 145~205쪽.


14) 그리하여 맑스의 역사과학과 프로이트의 역사과학(왜냐하면 정신분석학이란 개인들의 정신적 장치들의 개별적인 역사에 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이 정당화될 수 있다. 칼 포퍼의 이론적 공격의 두 주된 타겟이 맑스와 프로이트의 이론들, 즉 그것들의 궁극적인 대상이 ‘개별적인 정세’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닌 이론들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5) 스피노자는 E2P40의 증명에서 “인간 정신 내의 어떤 관념이 인간 정신 내의 적합한 관념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때, 우리는 […] 신성한 지성 안에는 신이 그 원인인 관념이 있다는 것 이외의 어떤 말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강조는 인용자)라고 말한 뒤, 곧바로 이어지는 주석에서 “이로써 나는 공통되다고 불리는 통념들의 원인을 설명했다”고 말하면서 이를 초월적 통념 및 보편적 통념으로부터 구별한다.


16) Descartes,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vol. I, J. Gottingham, R. Stoothoff, and D. Murdoch(t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 120.


17) Lévi-Strauss, The Raw and the Cooked, John and Dorren Weightman(tr.),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9), p. 5. 이 글에서의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논의를 관해서, 나는 자크 데리다의 훌륭한 설명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Jacques Derrida, "Structure, Sign and Play in the Discourse of the Human Sciences", Writing and Difference, Alan Bass(t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78), pp. 278~93을 보라.


18) 스피노자는 이 점에 관해서 아주 명료하다. “그리고 여기서, 오류가 무엇인지를 지시하기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당신이 마음의 상상들은 그 자체로 고려되었을 때 어떤 오류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 혹은 마음은 그것이 상상한다는 사실로부터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의했으면 좋겠다.”(E2P17S) 그리고 『지성향상론』이 “인식”이 아닌 “지각들(Perceptions)”이라고 부르는 것의 종류에 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이 텍스트는 “인식(knowledge)의 종류”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 이 표현은 단지 “오직 본질을 통한 지각”이라는 것에만 적용된다(TdIE22). 사실 “인식”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지각에만 배타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법은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제 2종의 인식에 해당하는 인식을 『지성향상론』은 “부적합한” 인식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19) 『지성향상론』에도 또한 비슷한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리는 스스로를 명시한다”(TdIE44)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윤리학』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저 “양자 모두”(“자기 자신과 오류 양자 모두의…”)라는 말에 달려있다. 그것은 지적 과정의 순서를 완전히 전화시킨다. 또한 이러한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지성향상론』이 “타고난(inborn)” 진실한 관념(이는 데카르트의 “생득관념”이라는 것과 같다)을 출발점에 필요로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이 없다면 애초에 의식이 반성적 심급으로서 등장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고난 관념이라는 것은 『윤리학』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모든 적합한 관념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어지는 것은 단지 상상적인 것뿐이다.


20) Balibar, "A Note on "Consciousness/Conscience" in the Ethics", Studia Spinozana, vol. 8, (Alling: Walther & Walther, 1992), pp. 37~53. 여기서 들뢰즈가 “의식”을 “스스로를 복사하고 무한하게 재생산(redoubling)하는 관념의 성질, 즉 관념의 관념”(SPP, 58)과 동일시한다는 점에 주의하자. 반면, 발리바르는 『윤리학』에서의 관념의 관념과 확실성은 의식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앞의 논문의 열 번째 각주를 참조하라. 또한 알튀세르가 그의 “인식론적 단절”이론을 가공했을 때, 그것은 정확히 이 『윤리학』의 모델을 따라 행해졌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발리바르, 「바슐라르에서 알튀세르로: ‘인식론적 단절’ 개념」, 서관모 역, 『이론』 13호, (새길, 1995), 특히 183쪽 이하를 보라.


21) 이 양자 사이의 쟁점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22) Lévi-Strauss, ibid., p. 2.


23) Op. cit., p. 7. 강조는 인용자.


24) 그러므로 나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실천적 철학”이라고 부른 것에 동의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공통의 통념들이 그 자체로 “실천적 관념들”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감히 공통의 통념에 기반한 제 2종의 인식은 차라리 “이론적인 관념들”(물론 이론적인 것이 항상 이미 실험과 조사를 포함한다는 조건하에서)이며 반면 제 1종의 인식과 제 3종의 인식이야말로 “실천적 관념들”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25) 알튀세르,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 『알튀세르와 라캉』, 윤소영 편, (공감, 1996), 62쪽. 강조는 인용자.


26) 알튀세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철학과 맑스주의』, 49~51쪽.


27) Balibar, ibid., pp. 48~51.


28) Cf. Balibar,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É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 La crainte des masses, (Paris: Galilée, 1997), p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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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 No. 1 Summer 2001


*퍼온 글인데 출처가 불분명....;; 그리고 각주가 다 짤려 있다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1)





Sean Homer**1)

김서영 역



나는 신자유-민주주의 질서가 무한히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생태학적 위기나 그 밖의 다른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파열될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매우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1)


1997년 인터뷰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버쏘 출판사에서 나오는 󰡔그것이 있던 곳󰡕(Wo es War)이라는 그의 총서의 성향에 대해 질문 받았다. 그는 그 총서들에 대한 전반적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두 정통이론의 재건을 총서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답했다. 지젝에 의하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과 결합된 엄격히 교조적인 라깡적 시각이다.”2)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앞의 주장은 1990년대 초기의 가장 유행적이고 재치 있는 이론가에서 현대 문화연구의 ‘미운 오리새끼’로 역전되는 그의 작업의 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행적을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에 반대하는 최근 논쟁은 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프와 같은 영국과 미국에 있는 그의 예전 동료들과 지젝 사이의 거리를 조명한다.3) 얼마 전 피터 듀스가 지적했듯이, 지젝은 “국제무대에서는 ‘맑스주의’ 문화 비평가이고, 그의 고향에서는 민족적 성향을 띤 집권당인 신 자유당의 일원”4) 이라는 매우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지젝의 모호한 입장은 한 순간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에 관심이 있는 문화 비평가이며 다음 순간에는 정통 맑스주의자로 변모하는 지젝의 국제적 연혁 또한 설명한다. 본 논문에서 나는 정통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지젝의 논의가 얼마나 <정통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이 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인 엄격히 <교조적> 라깡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이 입장이 얼마나 지속적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면서 동시에 맑스주의에 대한 지젝의 양가적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지젝에게 맑스주의는 그의 비평가들에 의해 언급된 이상으로 그의 글들에 구심점이 되어 온 듯 하며, 이 사실은 그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성향의 모호함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킨다. 지젝이 말하는 맑스주의의 정확한 본질은 가늠하기가 어려운 반면, 지젝의 라깡에 대한 관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바로 이러한 그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의해 맑스주의의 정통적 이해의 가능성이나 명백히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과업의 실현이 배제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국제적 지성의 출현

서유럽과 북미 학계에서 이룩한 슬라보예 지젝의 주목할만한 성공은 폄훼하기 어렵지만 한편 내게 그 성공의 당위성은 한번도 자명해 보인 적이 없다. 헤겔의 변증법,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그리고 라깡의 정신분석을 독특하게 혼합하는 지젝의 방법은 처음에는 포스트 모더니즘, 퀴어이론과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에 주력하는 영미 학자들의 풍토에는 그리 알맞지 않은 듯 하다. 󰡔정치적 무의식󰡕의 제임슨이 아마도 유일하게 지젝과 비교될 수 있는 학자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매우 다른 학문체계를 함께 다루려는 제임슨의 시도는 포스트 맑스주의 좌파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5) 지젝에 대한 주목할 만한 긍정적 반응을 초래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는, 비록 같은 농담이 세 권의 책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지젝의 농담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짚고 넘어갈 점은 그의 글을 대중화시킨 가장 주된 요인인 그의 초기 두 권의 저작―󰡔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자끄 라깡의 이해󰡕(1991)와 󰡔당신의 증상을 즐기세요! 헐리웃 안팎의 자끄 라깡󰡕(1992)―은 지젝의 가장 비정치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6) 맑스와 맑스주의는 이 두 권의 저서들 어느 곳에서도 주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며, 헐리웃의 주류 영화와 장르 소설들을 악명 높은 라깡의 불가해한 문장들을 설명하는데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명료히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일원으로 분류되었다. 어려운 이론과 대중문화를 접목시키는 능란한 솜씨와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명백한 관심은 그의 인기에 가장 주된 역할을 해 왔다. 로버트 미크리취가 말하듯 지젝은 “미국을 내부에서부터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외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지젝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을 우리에게 다시 투영해(reflects) 주며 이것이 우리가 그를 즐겨 읽는 이유이다 (이것을 라깡은 역투영(in reverse)이라 할 것이다).”7) 내용면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형식면에서 본다면 지젝은 명백한 포스트 모더니스트이며 때때로 지젝 자신이 그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해석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8)

두 번째로, 지젝의 이론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관심에서 정치적으로 더욱 중요한 요인은 지젝의 글에 나타난 포스트 맑스주의를 이용한 이데올로기적 필터이다. 지젝의 글들 중 영어로 번역된 첫 저서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은 라클라우와 무프의 프로네시스 총서로 출판되었는데 그 총서의 발간사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듯이 프로네시스 총서는 반-본질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급진적 다원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좌파를 위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한다. 어떤 면에서, 지젝의 글을 번역하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실재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연이어 일어났으며 서유럽에서는 서구 맑스주의의 최종적 소멸이 이미 완성되었거나 보증된 듯 했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학계의 경향은 최고조에 이르러 그 기세가 의기양양했다. 좋은 예로 라클라우와 무프의 글에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의 결론에서 보여주듯 그들의 주장이 본질적으로 맑스주의적 논쟁에 근거한다는 어떤 종류의 단서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9)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오히려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해박한,  <사회주의>정부의 반대자인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삐딱하게 보기󰡕까지 이 순간을 조명했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에서 라클라우가 말하듯,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의 구호가 명료한 동조를 끌어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클라우는 지젝의 이론과 슬로베니아 학파를 한편으로는 라깡주의에 연결시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 철학에 연결시키는 반면 (철학가로서의) 맑스나 <맑스주의적 구조주의> 이론가들과 <맑스주의 경향>의 영향에 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참조사항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라클라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포스트 맑스주의 시대에 민주사회주의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이론적 전망을 모색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적이다.10)


이번에도 역시 지젝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견해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된 첫 독립 공화국임을 발표하는 전날 행해진 󰡔급진주의 철학󰡕을 위한 1990년 인터뷰에서 지젝은 그의 입장을 신흥 슬로베니아 자유당과 연관지어 명시하였다. 슬로베니아의 자유당은 유럽의 그 이외 지역에서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반대체제를 구축하고, 여성주의 운동과 생태학적 운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지젝에 의하면, 자유당의 특징은 재건된 공산당, 녹색당, 그리고 극우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그룹들을 연합시킨 정치적 경향인 인민 민족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있다. 다원주의, 생태학 그리고 소수의 권리 옹호를 이데올로기로 삼으며 자유당은 그들 자신들이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자유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포스트 맑스주의 경향을 식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이것은 샹탈 무프가 󰡔정치적인 것의 회귀󰡕에서 현대 정치학의 목표는 국가 체제의 전복보다는 민주주의의 실천과 그 제도들을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11) 그러나 부분적으로 지젝은 신자유주의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데, 비록 지젝이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로 정의하고 자유당을 자유 시장 경제에 대립시키지만, 경제 개혁에 관해서 만은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 “만약 어떤 것이 효과가 있다면, 조금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12)


맑스의 유령들

지젝의 글 자체와 비교하더라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맑스나 맑스의 영향의 긍정적 가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인식도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제1장의 제목은 “맑스는 어떻게 증후를 발명하였나?”이며 여기서 지젝은 상품형태, 상품물신숭배,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잉여가치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제시한다. 즉, 지젝의 서론에서 더욱 분명해 지듯, 정신분석 용어를 빌면 일종의 억압의 순간이 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하버마스의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제외되어 있는 몇몇 고유명사들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하버마스의 앞의 책에는 라깡의 이름이 단지 다섯 번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나타난 맑스의 이름처럼, 매번 다른 사람과 함께만 말해짐을 지적하며 지젝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바타이유, 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푸코에 대해서는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이 어째서 라깡과의 직접 대면을 거부하는 것일까?”13) 지젝의 글에 익숙한 독자라면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라깡이라는 이름보다는 오히려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너무나 깊이 억압되어, 심지어 언급되지조차 않는 이름인 알튀세르에서 찾아 진다. 다시 말하면 하버마스-푸코 논쟁은 사실 이론적으로 더욱 광대한 영역을 포함하는 알튀세르와 라깡의 조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알튀세르 학파의 갑작스러운 쇠퇴에는 이론적 패배라고 결론 내리기엔 미흡한 뭔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알튀세르의 이론에 조급히 잊혀지고 <억압되어야 하는> 외상적 중핵이 존재하는 듯한데 이것은 이론적 망각증세(theoretical amnesia)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14)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조차 알튀세르주의는 지젝과 포스트 맑스주의가 분리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라클라우와 무프 자신들의 이론 형성이 알튀세르적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주장은 다소 억지인 듯 느껴질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 맑스주의 그리고 지젝의 맑스주의는 모두 알튀세르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라고 한정지을 수 있다.

라클라우는 라깡이 포스트 구조주의자라는 명제나 헤겔의 독법 등에 대해 항상 지젝과는 다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15) 그러나 1990년에 지젝이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실질적 비판을 공식화 할 때, 그는 라깡이나 헤겔이 아닌 알튀세르에 관한 이해하기 힘든 침묵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젝에 의하면, 1980년대의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는 주체라는 의미 있는 관점에서 그 전의 그들 각자의 작업들로부터의 이론적 후퇴를 보여주는데, 즉 󰡔헤게모니와 사회전략󰡕 이후에 발전되는 “주체의 위치들”(subject positions)이라는 개념은 라클라우의 초기 저작들에 “정교하게 설명되어 있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theory of interpellation)”16)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게 됨을 암시한다. 이론적으로, “주체의 위치들”이라는 개념과 정체성의 논증적 구조는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의해 주체가 성립된다는 본질적으로 알튀세르적 논쟁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한 마디로, “주체-위치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입장으로서 채택하게 되는 사회 과정의 한 대리인으로서의 우리의 위치를 자각하게 하며, 그 특정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참여하게 되는 방식이다.”17)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서의 동일시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과 더불어 우리가 호명과정 이전에 항상-이미 주체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지젝에 의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개인들은 주체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항상-이미’ 주체로서 존재한다.”18) 그러므로 문제는 알튀세르가 인지했던 것처럼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주체가 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항상-이미 주체인 우리가 어떻게 특정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주체가 되는가에 있다. 알튀세르의 이론에서 고려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은 영상과의 동일시 이전에 존재하는 호명의 순간이다. 주체화의 이전에 일종의 기괴한 주체가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라깡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주체의 중심에는 빈 공간, 틈이 있어 이것이 “주체 자신과 더불어 주체의 자아-정체성을 침식한다”.19) 지젝은 라클라우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데 실패함으로써 초래되는 직접적 결과로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에 나타나는 급진적 차원의 이론적 축소를 들고 있는데, 이는 즉 “사회의 적대구조”라는 개념에 나타나듯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일관되고 통합된 실체로서 구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20) 지젝에 의하면, 주체 위치들이라는 개념은 이 근본적인 외상적 경험을 배제하는 데에만 주력하며 이 사실은 포스트 맑스주의의 급진적 성격을 약화시킨다.21) 다시 말해 파편화된 주체성과 다수의 주체위치들에 관한 반 본질주의 이론은 후기 자본주의의 중심을 벗어나 불안정하게 파동치는 지구 단위 경제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주체에 대한 학문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문화 다원주의와 정체성 지향 정치의 비판

1990년대 초에 지젝이 제기한 포스트 맑스주의의 담론 개념과 <주체의 위치 정하기>(subject positioning)에 대한 비판은 라깡적 개념인 결핍과 적대관계(antagonism)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었다. 지젝에게 중요한 점은 적대관계라는 개념이 주체와 사회적인 것 안에 있는 내적 한계와 균열을 보여준다는 데 있는데, 즉 이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체계의 불가능성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또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주체들 사이에 나타나는 외적 적대관계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한계 내에서 일어나므로, 체계적인 차원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실질적인 정치적 위협도 야기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 최근의 저서에서 지젝은 다소 비이론적인 어투로 주체의 위치 정하기,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identity politics)의 정치적 결과를 지적한다:


사회적 상상력의 범위가 이제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궁극적 몰락을 상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묵묵히 ‘자본주의는 영속적 체계’임을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비판적인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기본적 동질성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들의 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데에서 그 대체적 분출구를 찾았다. 그래서 우리는 좌파적 투쟁을 통해 소수민족들, 동성연애자들, 그리고 그 외 다른 삶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반면 자본주의는 그 승리의 전진을 감행하고, <문화 연구>의 가면을 쓴 오늘날의 비판 이론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존재를 감추는 데 주력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에 활발히 동참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발전에 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의 주도적인 형태인 포스트모던 <문화비평>의 자본주의가 세계체제라는 언급은 <본질주의>, <근본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경제를 비정치화하면 정치의 영역 자체가 비정치화 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전의 정치적 투쟁은 소외된 정체성들에 대한 인정과 차이에 대한 관용을 위한 문화적 투쟁으로 변모되는 것이다.22)


최근 지젝의 글에는 그 자신의 이론을 프레드릭 제임슨의 작업에 동일시하는 흔적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그는 본래의 정치학을 윤리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결핍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문화 다원주의는 합병된 세계경제의 문화적 표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정체성 지향 정치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비정치화의 부자연스러운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보편성의 차원과 맑스주의의 메시아적 차원을 (재)강조하는 것이다.23) 지젝은 요즘 세상에서는 공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즉 편들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자본의 국제적 논리를 찬성하는 것을 뜻하며 역설적으로 “<편들기>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효과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는 유일한 길임을 의미한다.”24)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로 후퇴한 급진적 민주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제 삼의 길 ― 즉 현실에 작용하는 사상들의 정치이다. 지젝에 의하면 정치 고유의 행동은 “단지 현존질서의 체계 안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작용을 규정하는 체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25) 이렇게 말할 때의 지젝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1990년에 동유럽은 경제 재건에 효과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자유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자> 지젝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자유주의와 지젝의 양가감정

지금까지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의 최근 정통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일련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지젝의 작업들을 정말 <정통> 맑스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포스트 맑스주의자들 전부가 정말로 그토록 엉터리 독자일 수가 있을까? 1990년에 지젝은 󰡔신좌파 평론󰡕에 이전 동유럽의 국가들의 분열과 신 민족주의의 부흥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26) 이년 후 그는 󰡔신독일 비평󰡕에 「동유럽의 자유주의와 그 불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는 지젝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한 강의록에 근거하고 있다.27) 이 중 첫 번째 글에서 지젝은 서유럽에 이상화되고 매혹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동유럽을 라깡의 ‘물 자체’(das Ding)―즉 주체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한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사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동유럽 안에서 부활하는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과 신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체제라는 과거로부터의 급작스러운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연속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민족적인-것”(national-Thing)의 출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상징 체계가 해체될 때 사회적인 것의 중심으로 귀환하는 실재계, 즉 외상적 중핵의 회귀를 뜻한다. 지젝은 동유럽의 사람들이 왜 그들이 앞서 전복시킨 바로 그 억압적이고 견디기 힘들며 인종차별적인 체계를 다시 부과하는지에 대해 물으며 이에 대한 대답은 서양의 해설자들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증오와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격세유전의 심리학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서 찾아 진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은 계속되는 위기와 현존하는 조건들의 끊임없는 혁신 사이에 나타나는 <그 고유의 구조적 불균형>과 그 심부에 자리잡은 적대적 성질에 있다.”28) 지젝이 말하듯, 민족 우월주의의 고조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과잉과, 자본의 과잉이 사회에 초래하는 고유의 불안정성, 개방성 그리고 갈등의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발칸에서 보여지는 고삐 풀린 폭력과 증오는 공산주의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고대 종족의 증오가 다시 폭발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한 폭력으로 볼 수 있다.

지젝이 같은 주제에 대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조금 다른 성격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신좌파 평론󰡕에 발표된 글을 지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좌파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요구 자체에 대해 거울상 역할을 한다: 즉 우리는 이를 통해 그 동안의 의심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실망하였으며 서서히 그들이 얻게 된 것뿐만 아니라 (사회 안전처럼) 잃어버리게 된 것들까지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하도록 요구받는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이 덫에 걸려들어 좌파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가, 민주주의적 열광이 어떻게 해서 민족주의적 조합국가로 귀결되고 있는가 - 한 마디로 해서 이것은 우리에게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권리를 부여해줄 뿐이라는 원한에 가득 찬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29)


여기서 명백히 해야할 점은 지젝이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원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전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제 삼의 길” 지지자들의―우리가 보기에는 지젝 스스로 자신을 이 그룹에 포함시키고 있는 듯도 하지만―순진함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지젝은 서구의 맑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그들의 전공인 듯 하다고 혹평하기도 하는데 그에 의하면 이것은 “자신의 성적 무능과 성적 실패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과 섬뜩하다할 정도로 유사하 다.”30) 물론 우리는 모두 청중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며, 제임슨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약호를 사용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젝이 제시한 예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이면의 심층 논리에 있다. 최근에 정치적으로 문제되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1999년 봄, 󰡔신좌파 평론󰡕은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여기에는 나토의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는 타리크 알리, 에드워드 사이드, 피터 고완의 글들과 「이중 블랙메일에 대항하여」라는 제목 하에 나토와 세르비아인들 모두를, 특히 밀로세비치의 정권을 비판하는 지젝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31) 폭격에 대하여 반-나토, 반-밀로세비치의 입장을 취하는 지젝의 관점은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나토 모두에 각별한 동정심을 품고 있지 않은 서유럽 좌파에게 명백히 큰 매력으로 작용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 이중 블랙메일을 거부해야 한다면 (만약 나토의 공격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인종청소를 감행하는 밀로세비치의 프로토-파시스트 정권에 찬성하는 것이며, 만약 밀로세비치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지구 단위로 전개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인종적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개화된 국제적 개입과 새로운 세계 질서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립이 그릇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밀로세비치 정권과 같은 현상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증후’이며 그래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32)


「이중 블랙 메일에 대항하여」의 결론에서 지젝은 “제삼의 길”이 블레어와 클린턴의 신-자유주의적 제삼의 길과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폐쇄된 민족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악순환을 타파”33)하는 진정한 제삼의 길이어야 함을 간명히 주장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글이 󰡔신좌파 평론󰡕에 발표되기 전에 이미 인터넷상에 유포되었다는 것인데, 거의 모든 내용이 동일한 이 두 글에 나타나는 유일한 차이점은 좀더 확신 있는 어투의 <좌파적> 결론 이외에 하나의 중요 문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지젝이 제안하는 밀로세비치 문제의 대안은 영어권의 주도적 맑스주의 잡지라는 테두리 밖에서는 그다지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분명한 좌파의 한 사람으로서 <폭탄공격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 폭탄의 양이 <충분치> 않으며 그나마 이것은 모두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34)


계속되는 단락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지젝은 라깡이 󰡔햄릿󰡕과 논리적 시간의 문제에 대해 다룬 글을 참고하고 있다.35) 여기서 지젝은 사회적인 것 자체에 내재하는 고유의 균열과 적대관계로 규정되는 실재계의 불가능함을 암시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실재계의 외상을 지우기에 <충분한> 폭탄은 있을 수 없으며, 충분한 폭탄이 있다 하더라도 폭탄공격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실재계와의 대면은 언제나 어긋나므로 우리는 항상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기묘하게 스스로의 논지를 취소시킨다. 어차피 너무 늦게 도착될 것이라면 더 많은 양의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폭탄 공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젝의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인 동시에 그렇지 않다”인 것이다!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저자가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증후적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즉, 아무리 많은 양의 폭탄도, 그리고 폭탄이 투하되는 시간이 언제이건 모두 절대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복잡한 라깡적 견해와, 순진하고 표면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토의 공격이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더욱 일찍 감행되어야했다는 주장 사이에는 현저한 마찰이 존재한다. 지구단위 자본과 전체주의를 극복한 제삼의 길을 향한 솜씨 있는 접근방법은 사라지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나토가 세르비아인들에 대항하여 더욱 ‘일찍’ 그리고 더욱 ‘군사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위의 문장은 지젝이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제시하며, 또한 동시에 이것은 지젝의 심부에 내재한 민족주의로 인해 불투명해 진 그의 정치학을 증후적으로 드러낸다. 위의 문장이 ‘유일하게’ 인터넷에 실린 글로부터 제거된 문장이라는 거북한 사실은 지젝이 위의 문장의 정치적 반향, 즉 그 문장의 라깡적 독법뿐 아니라 순진한 정치적 독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사실, 이 문장은 전체 글의 어조를 완전히 바꾸며, 이것은 이 논문뿐 아니라 발칸의 국가들에 대한 지젝의 최근 글들의 다수에 명백하게 나타난 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강조한다.36)

위에서 언급되었던 정체성 지향 정치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적 표현이라는 긴 인용문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인용문 직후에 지젝은 “문화 다원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허상”에 대해 좌파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찰하는데, 비록 그가 <한 쪽의 편을 들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젝에 의하면 이로부터 내려져야 하는 역설적 결론은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적 문화 다원주의와 대중적 근본주의 모두를 거부하는 좌파 <비판이론가들>이며 그들은 지구단위 자본주의와 인종적 근본주의의 공범관계를 명백히 인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37) 이 경우, 우리는 쉽게 주디스 버틀러, 라클라우 그리고 포스트 맑스주의를 좌파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 우리가 묻게 되는 논리적 질문은 만약 우리가 이미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였다면 자유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여야 하는가이다. 벤 왓슨의 최근 논평을 바꾸어 말하자면 지젝에 관련된 문제는 그를 과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보다는 그의 어떤 주장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인가에 있다.38)


실재계의 귀환

1990년의 인터뷰에 이어 1993년에 다시 󰡔급진주의 철학󰡕은 지젝의 인터뷰를 다루었는데 이 두 번째 인터뷰의 어조가 첫 번째와 매우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는 자유 야당의 정치적 안건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항하여 개방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제안하는 반면, 종래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담론인 헤게모니, 접합(articulation), 담론 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


나는 라클라우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데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단순히 표준적 자유 민주주의 게임의 수정본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그가 이상할 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이다. 즉 급진적 민주주의는 그의 허수아비인 것이다.39)


이전의 지젝이 그의 반대 입장을 새로운 사회 운동들과 동일시했던 반면 최근 그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자본 자체의 모순들과 근본적 적대관계에 대한 투쟁이라는 더욱 시급한 관심으로부터의 이탈로 이해하고 있다. 더욱이 때때로 지젝은 여전히 정체성 지향 정치의 적법성을 받아들이는 한편―이것은 우리가 정체성 지향 정치가 근본적으로 사회변혁을 초래하리라는 바람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적용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성적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해방과업과 사회 변혁에 반대하는 작용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새로운 전략과 새로운 정체성들을 생성하는 푸고적 실천은 후기 자본주의의 주체성 게임을 즐기는 [매우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40) 이전에 유고슬라비아였던 곳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 후, 세 번째로 벌어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의 더욱 잔인한 전쟁 끝에, 그리고 삼 년 간의 경제 개발이 수행된 후에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정체성, 철학 그리고 문화의 섬세한 짜임은 마침내 실재계라는 부동의 바위, 다시 말하면 자본의 경제 논리에 직면한 듯 하다.

지젝의 글에서 실재계는 그 의미가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범주이다. 이는 또한 그의 입장과 고전적 맑스주의, 즉 정통 맑스주의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실재계는 명백히 ‘적대관계’라는 라클라우와 무프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실재계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의: 실재계는 존재하지 않는 원인이고 항상 왜곡되고 전치되는 방식으로 일련의 효과 속에서만 존재한다. 만약 실재계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바로 이 사실이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그들의 ‘적대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실제계의 논리를 발전시켜 처음으로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 적용하였다: 적대관계란 바로 그러한 불가능의 핵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종류의 한계를 뜻한다: 이것은 오직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소급적으로(retroactively) 구성된다. 적대관계는 모든 효과들에서 벗어난 외상의 지점으로서 그것은 사회 영역이 폐쇄되는 것을 저지한다.41)


라클라우와 무프에 의해 주장되었듯이 우리는 여기서 적대관계란 변증법적 또는 결정론적 모순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명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42) 지젝 또한 그의 역사주의에 대항한 논쟁에서 실재계를 알튀세르의 부재 원인(absent cause)으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정의와 연결시켰다.

상징계는 <소거>(barred) 되었으며 의미 사슬은 본질적으로 비일관적이고  <전체가 아니며> 빈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상징화에 저항하는 이 내재된 장애물이 바로 상징계와 실재계 간의 거리를 유지해 주며 상징계가 실재계 안으로 <침몰>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궁극적으로 실재계를 상징계와 관련짓는 주요 개념은 <원인>이다: 실재계는 상징계의 부재 원인인 것이다.43)


마지막으로 최근 실재계는 지구단위 자본에 내재된 논리와 연관되었다. 󰡔난제󰡕의 서문에서 지젝은 근래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재난은 우리 시대의 실재계에 육신을 제공한다: 자본의 공격은 인간성의 존속을 위협하며 특히 세상의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44) 그러나 지젝의 맑스주의를 이해하는 데 곤란한 점은 그의 실재계에 대한 라깡적 해석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젝에게 실재계라는 라깡의 개념은 그의 작업을 포스트 맑스주의와 고전적 맑스주의 ‘모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포스트 맑스주의가 정치적 갈등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특수성을 자본에 내재한 고유의 모순 같은 하나의 결정 층위로 환원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반면 라깡의 정신분석은 완전히 그 반대의 견해를 가진다.

라깡의 관점에서 보면 현존하는 갈등들의 다원성과 특수성은 하나의 심급(審級)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다. 즉, 그것들은 실재계와의 불가능하며 외상적인 대면에 대한 동일한 반응인 것이다.45) 그러나 실재계를 맑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모순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라깡의 실재계는 칸트의 <물자체>(Thing-in-itself)와는 달리 모든 상징화에 저항하므로 주체나 사회가 참아 내기에 너무나 외상적인 것이다. 실재계는 근본적으로 주체와 사회의 심부에 있는 틈 또는 공백이며 주체의 통일성과 사회의 연대성을 저지하는 불가능의 순간이다:


그러므로 실제계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단단한 관통 불능의 핵인 ‘동시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론적 일관성을 가지지 않는 순수한 정체불명의 실체이다 ... 실재계는 어떠한 종류의 상징화를 위한 시도도 좌절되는 바위이며 우리의 모든 가능한 세계들(상징적 우주들)에 항상 일관되게 존속하는 견고한 중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태가 매우 변덕스러워서 실패한 상태에서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에만 흔적으로 지속되며 우리가 그것의 긍정적 특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자마자 사라져 버린다.46)

로버트 미크리치에 의하면 실재계는 그 최종 분석에서 드러나는 헤겔의 순수한 “사유물”(Thing-of-thought)47)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역사적 현재의 구조를 가리키는 헤겔의 개념 속에서 <관념성>을 강조하는 것은 실재계에 고유한 역설을 망각하는 것이다. 실재계는 상징계를 유지시키는 동시에 그 기반을 약하게 하고 혼란시킨다. 이것은 부재하는 원인인 동시에 그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지젝은 무산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지젝에 의하면 맑스주의의 역사적 독창성은 그 이론이 계급과 계급투쟁의 체계적 역할을 자본의 논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데 있다. 라클라우는 계급갈등 자체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것을 단지 잠재적 정체성과 차별성의 연쇄 안에서 가능한 하나의 주체 위치로 간주하며, 게다가 그는 이 입장이 현대 사회에서는 점차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48) 반면 지젝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단순히 동등하게 중요한 일련의 투쟁들 중 하나의 사회적 적대관계가 아니라 “이 특수한 적대관계는 <나머지에 대해 우월하므로 이것과의 관계에 따라 그 이외의 투쟁들에 서열과 영향력이 부과된다. 즉, 이것은 모든 나머지의 색채에 영향을 미치는 광선과 같아서 그들의 특성을 변형시킨다>.”49) 다시 말하면, 계급 대립은 오늘날의 정치적 주체들과 정치적 갈등의 분화와 증식 속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맡게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은 모두 지구단위 자본 안에서 전개되는 “계급 투쟁”의 직접적 결과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지젝의 계급 투쟁의 중요성에 대한 확인과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에 대한 다원적 평가는 환영받게 되어있다.50) <정치적> 쟁점들은 우리가 그의 <계급 투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찰할 때 제기된다. 즉 계급투쟁이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의 최종적 연대를 저지하는 “어떤 한계와 순수한 부정성 그리고 외상적 한계”를51) 의미하는 것인지를 논의하게 될 때 일어난다.

라깡의 관점에서 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기호에 의해 지배되는 주체이다: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를 상징하며 주체는 상징의 사슬에 존재하는 ‘틈’(breach)이다.52) 주체는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주체는 “세상에 무 대신 유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실재계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무산계급에 대한 맑스의 이론은 이러한 “실체 없는 주체성”의 완벽한 예를 제시해 준다:


<소외>라는 역사적 과정과, 상품 생산의 <유기적> 물질적 조건들의 지배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는 노동력의 정점으로서의 무산계급 (무산계급의 이중 자유: 그는 모든 물질적-유기적 속박에서 벗어난 추상적 주체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그는 가진 것을 박탈당하므로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그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된다).53)


맑스의 착오는 무산계급의 혁명을 통해 주체와 실체의 변증법적 화해―즉 반소외의 과정과 생산과정의 투명화―가 이루어 질 것임을 가정한 데 있다. 󰡔부정 안에 머물기󰡕에서 지젝은 맑스의 “유물론적 역전”(materialist reversal)에 반대하여 헤겔의 변증법을 옹호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헤겔의 철학보다 맑스의 철학이 오히려 더 자폐적 체계이다. 그는 맑스의 무산계급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인 것이 전체성과 투명성을 획득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폐쇄의 순간이 구체화 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반해 헤겔의 이론에서 체계의 핵심에 위치하는 부정적인 것은 사회의 투명성이라는, 어떠한 종류의 소위 이데올로기적 시각도 부정한다. 지젝은, “맑스주의에 의한 <헤겔철학의 유물론적 역전>이 일세기 이상 논쟁되어 온 후 이제 마침내 맑스에 대한 헤겔주의적 비판이라는 역전의 가능성이 필요한 시대가 된 듯 하다”고 주장한다.54) 간단히 말해, 헤겔이 “절대적 관념론자”라는 맑스의 비판은 바로 그가 거부한 존재론의 전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이는 “맑스주의 과업에 내재된 불가능성”55)의 증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 긍정적이며 또한 동시에 부정적이다?

지젝에게 라깡의 실재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계기이다. 그것은 통합되고 일관된 정체성을 위조해 내려는 어떠한 종류의 시도도 저지하므로 이에 의해 정통 맑스주의적 반응의 가능성이 배제된다. 실재계는 주체성의 핵심에 있는 결여이며 사회 구성의 기반을 이루는 빈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것으로든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듯 보인다. 버틀러와 라클라우에 대하여 벌인 지젝의 논쟁에서, (내가 버틀러와 라클라우의 특수한 프로젝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좌파가 어떻게 특정 무대와 정치적 의제를 구성하고 체계화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버틀러는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정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해야 하며 그것이 단순히 그러한 종류의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논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라클라우는 민주주의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람시적 “진지전”(war of position)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라클라우에 의하면 지젝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젝이 세계화의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개념에 대해 한번도 분명히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56)이다. 더욱이, “그의 담론은 고도로 세밀한 라깡적 분석과 충분히 해체되지 않은 고전적 맑스주의 사이에서 분열증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다.”57) 라클라우와 버틀러 모두 지젝에게 필요한 것은 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고전적 맑스주의 개념들의 포기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문제가 지젝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가 어떠한 종류의 긍정적 내용도 내포하지 못하고 정치적 행위가 이의나 반대로 축소되는 것은 바로 라깡의 개념인 실재계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 때문이다. 드니스 기강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젝은 일종의 개념적 내용이나 비판적 진실을 가장한 어떤 종류의 입장을 채택하는 다른 문학이론가들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근본적으로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58)


간단히 말해서,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지젝은 반-자본주의적 선택을 취해 왔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는 자유주의와 새로운 사회 운동에 의해,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생태학적 위기의 가능성에 의해 표현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이러한 입장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 되었으며, 이제 그것은 󰡔나약한 절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급진적” 정통성59)에서 발견된다. 이것을 정통 라깡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정통 맑스주의라고 하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


숀호머. Fredric Jameson: Marxism, Hermeneutics, Postmodernism (Cambridge Polity, 1998)

“Mapping the Terrain of Theoretical Anti-Humanism”

“Psychoanalysis and the Politics of Postmodernity: A Conversation with Anthony Elliott”

“The Frankfurt School, the Father and the Social Fantasy” 외 다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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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8-0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를 검색하시면 출처가 뜰 겁니다.^^

바라 2006-08-0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이미 로쟈님께서 관련 페이퍼를 쓰셨군요. 감사~
 

 

THE ADVENTURE OF FRENCH PHILOSOPHY



Alain Badiou



Let us begin these reflections on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with a paradox: that which is the most universal is also, at the same time, the most particular. Hegel calls this the ‘concrete universal’, the synthesis of that which is absolutely universal, which pertains to everything, with that which has a particular time and place. Philosophy is a good example. Absolutely universal, it addresses itself to all, without exception; but within philosophy there exist powerful cultural and national particularities. There are what we might call moments of philosophy, in space and in time. Philosophy is thus both a universal aim of reason and, simultaneously, one that manifests itself in completely specific moments. Let us take the example of two especially intense and well-known philosophical instances. First, that of classical Greek philosophy between Parmenides and Aristotle, from the 5th to the 3rd centuries bc: a highly inventive, foundational moment, ultimately quite short-lived. Second, that of German idealism between Kant and Hegel, via Fichte and Schelling: another exceptional philosophical moment, from the late 18th to the early 19th centuries, intensely creative and condensed within an even shorter timespan. I propose to defend a further national and historical thesis: there was—or there is, depending where I put myself—a French philosophical moment of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which, toute proportion gardée, bears comparison to the examples of classical Greece and enlightenment Germany.



Sartre’s foundational work, Being and Nothingness, appeared in 1943 and the last writings of Deleuze, What is Philosophy?, date from the early 1990s. The moment of French philosophy develops between the two of them, and includes Bachelard, Merleau-Ponty, Lévi-Strauss, Althusser, Foucault, Derrida and Lacan as well as Sartre and Deleuze—and myself, maybe. Time will tell; though if there has been such a French philosophical moment, my position would be as perhaps its last representative. It is the totality of this body of work, situated between the ground-breaking contribution of Sartre and the last works of Deleuze, that is intended here by the term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I will argue that it constitutes a new moment of philosophical creativity, both particular and universal. The problem is to identify this endeavour. What took place in France, in philosophy, between 1940 and the end of the 20th century? What happened around the ten or so names cited above? What was it that we called existentialism, structuralism, deconstruction? Was there a historical and intellectual unity to that moment? If so, of what sort?



I shall approach these problems in four different ways. First, origins: where does this moment come from, what were its antecedents, what was its birth? Next, what were the principal philosophical operations that it undertook? Third, the fundamental question of these philosophers’ link with literature, and the more general connection between philosophy and literature within this sequence. And finally, the constant discussion throughout this whole period between philosophy and psychoanalysis. Origins, operations, style and literature, psychoanalysis: four means by which to attempt to define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Concept and interior life



To think the philosophical origins of this moment we need to return to the fundamental division that occurred within French philosophy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with the emergence of two contrasting currents. In 1911, Bergson gave two celebrated lectures at Oxford, which appeared in his collection La pensée et le mouvement. In 1912—simultaneously, in other words—Brunschvicg published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Coming on the eve of the Great War, these interventions attest to the existence of two completely distinct orientations. In Bergson we find what might be called a philosophy of vital interiority, a thesis on the identity of being and becoming; a philosophy of life and change. This orientation will persist throughout the 20th century, up to and including Deleuze. In Brunschvicg’s work, we find a philosophy of the mathematically based concept: the possibility of a philosophical formalism of thought and of the symbolic, which likewise continues throughout the century, most specifically in Lévi-Strauss, Althusser and Lacan.



From the start of the century, then, French philosophy presents a divided and dialectical character. On one side, a philosophy of life; on the other, a philosophy of the concept. This debate between life and concept will be absolutely central to the period that follows. At stake in any such discussion is the question of the human subject, for it is here that the two orientations coincide. At once a living organism and a creator of concepts, the subject is interrogated both with regard to its interior, animal, organic life, and in terms of its thought, its capacity for creativity and abstrac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body and idea, or life and concept, formulated around the question of the subject, thus structures the whole development of 20th-century French philosophy from the initial opposition between Bergson and Brunschvicg onwards. To deploy Kant’s metaphor of philosophy as a battleground on which we are all the more or less exhausted combatant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the lines of battle were still essentially constituted around the question of the subject. Thus, Althusser defines history as a process without a subject, and the subject as an ideological category; Derrida, interpreting Heidegger, regards the subject as a category of metaphysics; Lacan creates a concept of the subject; Sartre or Merleau-Ponty, of course, allotted an absolutely central role to the subject. A first definition of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would therefore be in terms of the conflict over the human subject, since the fundamental issue at stake in this conflict is tha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life and concept.



We could, of course, take the quest for origins further back and describe the division of French philosophy as a split over the Cartesian heritage. In one sense, the postwar philosophical moment can be read as an epic discussion about the ideas and significance of Descartes, as the philosophical inventor of the category of the subject. Descartes was a theoretician both of the physical body—of the animal-machine—and of pure reflection. He was thus concerned with both the physics of phenomena and the metaphysics of the subject. All the great contemporary philosophers have written on Descartes: Lacan actually raises the call for a return to Descartes, Sartre produces a notable text on the Cartesian treatment of liberty, Deleuze remains implacably hostile. In short, there are as many Descartes as there are French philosophers of the postwar period. Again, this origin yields a first definition of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as a conceptual battle around the question of the subject.



Four moves



Next, the identification of intellectual operations common to all these thinkers. I shall outline four procedures which, to my mind, clearly exemplify a way of doing philosophy that is specific to this moment; all, in some sense, are methodological ones. The first move is a German one—or rather, a French move upon German philosophers. All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is also, in reality, a discussion of the German heritage. Its formative moments include Kojève’s seminars on Hegel, attended by Lacan and also influential upon Lévi-Strauss, and the discovery of phenomenology in the 1930s and 40s, through the works of Husserl and Heidegger. Sartre, for instance, radically modified his philosophical perspectives after reading these authors in the original during his sojourn in Berlin. Derrida may be regarded as, first and foremost, a thoroughly original interpreter of German thought. Nietzsche was a fundamental reference for both Foucault and Deleuze.


French philosophers went seeking something in Germany, then, through the work of Hegel, Nietzsche, Husserl and Heidegger. What was it that they sought? In a phrase: a new relation between concept and existence. Behind the many names this search adopted—deconstruction, existentialism, hermeneutics—lies a common goal: that of transforming, or displacing, this relation. The existential transformation of thought, the relation of thought to its living subsoil, was of compelling interest for French thinkers grappling with this central issue of their own heritage. This, then, is the ‘German move’, the search for new ways of handling the relation of concept to existence by recourse to German philosophical traditions. In the process of its translation onto the battleground of French philosophy, moreover, German philosophy was transformed into something completely new. This first operation, then, is effectively a French appropriation of German philosophy.



The second operation, no less important, concerns science. French philosophers sought to wrest science from the exclusive domain of the philosophy of knowledge by demonstrating that, as a mode of productive or creative activity, and not merely an object of reflection or cognition, it went far beyond the realm of knowledge. They interrogated science for models of invention and transformation that would inscribe it as a practice of creative thought, comparable to artistic activity, rather than as the organization of revealed phenomena. This operation, of displacing science from the field of knowledge to that of creativity, and ultimately of bringing it ever closer to art, find its supreme expression in Deleuze, who explores the comparison between scientific and artistic creation in the most subtle and intimate way. But it begins well before him, as one of the constitutive operations of French philosophy.



The third operation is a political one. The philosophers of this period all sought an in-depth engagement of philosophy with the question of politics. Sartre, the post-war Merleau-Ponty, Foucault, Althusser and Deleuze were political activists; just as they had gone to German philosophy for a fresh approach to concept and existence, so they looked to politics for a new relation between concept and action—in particular, collective action. This fundamental desire to engage philosophy with the political situation transforms the relation between concept and action.



The fourth operation has to do with the modernization of philosophy, in a sense quite distinct from the cant of successive government administrations. French philosophers evinced a profound attraction to modernity. They followed contemporary artistic, cultural and social developments very closely. There was a strong philosophical interest in non-figurative painting, new music and theatre, detective novels, jazz and cinema, and a desire to bring philosophy to bear upon the most intense expressions of the modern world. Keen attention was also paid to sexuality and new modes of living. In all this, philosophy was seeking a new relation between the concept and the production of forms—artistic, social, or forms of life. Modernization was thus the quest for a new way in which philosophy could approach the creation of forms.



In sum: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encompassed a new appropriation of German thought, a vision of science as creativity, a radical political engagement and a search for new forms in art and life. Across these operations runs the common attempt to find a new position, or disposition, for the concept: to displace the relation between the concept and its external environment by developing new relations to existence, to thought, to action, and to the movement of forms. It is the novelty of this relation between the philosophical concept and the external environment that constitutes the broader innovation of twentieth-century French philosophy.



Writing, language, forms



The question of forms, and of the intimate relations of philosophy with the creation of forms, was of crucial importance. Clearly, this posed the issue of the form of philosophy itself: one could not displace the concept without inventing new philosophical forms. It was thus necessary not just to create new concepts but to transform the language of philosophy. This prompted a singular alliance between philosophy and literature which has been one of the most striking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There is, of course, a longer history to this. The works of those known to the 18th century as philosophes—Voltaire, Rousseau or Diderot—are classics of French literature; these writers are in a sense the ancestors of the postwar alliance. There are numerous French authors who cannot be allocated exclusively either to philosophy or to literature; Pascal, for example, is both one of the greatest figures in French literature and one of the most profound French thinkers. In the 20th century Alain, to all intents and purposes a classical philosopher and no part of the moment that concerns us here, was closely involved in literature; the process of writing was very important to him, and he produced numerous commentaries on novels—his texts on Balzac are extremely interesting—and on contemporary French poetry, Valéry in particular. In other words, even the more conventional figures of twentieth-century French philosophy can illustrate this affinity between philosophy and literature.



The surrealists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They too were eager to shake up relations regarding the production of forms, modernity, the arts; they wanted to invent new modes of life. If theirs was largely an aesthetic programme, it paved the way for the philosophical programme of the 1950s and 60s; both Lacan and Lévi-Strauss frequented surrealist circles, for example. This is a complex history, but if the surrealists were the first representatives of a 20th-century convergence between aesthetic and philosophical projects in France, by the 1950s and 60s it was philosophy that was inventing its own literary forms in an attempt to find a direct expressive link between philosophical style and presentation, and the new positioning for the concept that it proposed.



It is at this stage that we witness a spectacular change in philosophical writing. Forty years on we have, perhaps, grown accustomed to the writing of Deleuze, Foucault, Lacan; we have lost the sense of what an extraordinary rupture with earlier philosophical styles it represented. All these thinkers were bent upon finding a style of their own, inventing a new way of creating prose; they wanted to be writers. Reading Deleuze or Foucault, one finds something quite unprecedented at the level of the sentence, a link between thought and phrasal movement that is completely original. There is a new, affirmative rhythm and an astonishing inventiveness in the formulations. In Derrida there is a patient, complicated relationship of language to language, as language works upon itself and thought passes through that work into words. In Lacan one wrestles with a dazzlingly complex syntax which resembles nothing so much as the syntax of Mallarmé, and is therefore poetic—confessedly so.



There was, then, both a transformation of philosophical expression and an effort to shift the frontiers between philosophy and literature. We should recall—another innovation—that Sartre was also a novelist and playwright (as am I). The specificity of this moment in French philosophy is to play upon several different registers in language, displacing the borders between philosophy and literature, between philosophy and drama. One could even say that one of the goals of French philosophy has been to construct a new space from which to write, one where literature and philosophy would be indistinguishable; a domain which would be neither specialized philosophy, nor literature as such, but rather the home of a sort of writing in which it was no longer possible to disentangle philosophy from literature. A space, in other words, where there is no longer a formal differentiation between concept and life, for the invention of this writing ultimately consists in giving a new life to the concept: a literary life.



With and against Freud



At stake, finally, in this invention of a new writing, is the enunciation of the new subject; of the creation of this figure within philosophy, and the restructuring of the battlefield around it. For this can no longer be the rational, conscious subject that comes down to us from Descartes; it cannot be, to use a more technical expression, the reflexive subject. The contemporary human subject has to be something murkier, more mingled in life and the body, more extensive than the Cartesian model; more akin to a process of production, or creation, that concentrates much greater potential forces inside itself. Whether or not it takes the name of subject, this is what French philosophy has been trying to find, to enunciate, to think. If psychoanalysis has been an interlocutor, it is because the Freudian invention was also, in essence, a new proposition about the subject. For what Freud introduced with the idea of the unconscious was the notion of a human subject that is greater than consciousness—which contains consciousness, but is not restricted to it; such is the fundamental signification of the word ‘unconscious’.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has therefore also been engaged in a long-running conversation with psychoanalysis. This exchange has been a drama of great complexity, highly revealing in and of itself. At issue, most fundamentally, has been the division of French philosophy between, on one side, what I would call an existential vitalism, originating with Bergson and running through Sartre, Foucault and Deleuze, and on the other a conceptual formalism, derived from Brunschvicg and continuing through Althusser and Lacan. Where the two paths cross is on the question of the subject, which might ultimately be defined, in terms of French philosophy, as the being that brings forth the concept. In a certain sense the Freudian unconscious occupies the same space; the unconscious, too, is something vital or existing yet which produces, which bears forth, the concept. How can an existence bear forth a concept, how can something be created out of a body? If this is the central question, we can see why philosophy is drawn into such intense exchanges with psychoanalysis. Naturally, there is always a certain friction where common aims are pursued by different means. There is an element of complicity—you are doing the same as I am—but also of rivalry: you are doing it differently. The relation between philosophy and psychoanalysis within French philosophy is just this, one of competition and complicity, of fascination and hostility, love and hatred. No wonder the drama between them has been so violent, so complex.



Three key texts may give us an idea of it. The first, perhaps the clearest example of this complicity and competition, comes from the beginning of Bachelard’s work of 1938, La psychanalyse du feu. Bachelard proposes a new psychoanalysis grounded in poetry and dream, a psychoanalysis of the elements—fire, water, air and earth. One could say that Bachelard is here trying to replace Freudian sexual inhibition with reverie, to demonstrate that this is the larger and more open category. The second text comes from the end of Being and Nothingness where Sartre, in his turn, proposes the creation of a new psychoanalysis, contrasting Freud’s ‘empirical’ psychoanalysis with his own (by implication) properly theoretical existential model. Sartre seeks to replace the Freudian complex—the structure of the unconscious—with what he terms the ‘original choice’. For him what defines the subject is not a structure, neurotic or perverse, but a fundamental project of existence. Again, an exemplary instance of complicity and rivalry combined.



The third text comes from Chapter 4 of Anti-Oedipus by Deleuze and Guattari. Here, psychoanalysis is to be replaced by a method that Deleuze calls schizoanalysis, in outright competition with Freudian analysis. For Bachelard, it was reverie rather than inhibition; for Sartre, the project rather than the complex. For Deleuze, as Anti-Oedipus makes clear, it is construction rather than expression; his chief objection to psychoanalysis is that it does no more than express the forces of the unconscious, when it ought to construct it. He calls explicitly for the replacement of ‘Freudian expression’ with the construction that is the work of schizoanalysis. It is striking, to say the least, to find three great philosophers, Bachelard, Sartre and Deleuze, each proposing to replace psychoanalysis with a model of their own.



Path of greatness



Finally, a philosophical moment defines itself by its programme of thought. What might we define as the common ground of postwar French philosophy in terms, not of its works or system or even its concepts, but of its intellectual programme? The philosophers involved are, of course, very different figures, and would approach such a programme in different ways. Nevertheless, where you have a major question, jointly acknowledged, there you have a philosophical moment, worked out through a broad diversity of means, texts and thinkers. We may summarize the main points of the programme that inspired postwar French philosophy as follows.



1.                    To have done with the separation of concept and existence—no longer to oppose the two; to demonstrate that the concept is a living thing, a creation, a process, an event, and, as such, not divorced from existence;



2.                    To inscribe philosophy within modernity, which also means taking it out of the academy and putting it into circulation in daily life. Sexual modernity, artistic modernity, social modernity: philosophy has to engage with all of this;



3.                    To abandon the opposition between philosophy of knowledge and philosophy of action, the Kantian division between theoretical and practical reason, and to demonstrate that knowledge itself, even scientific knowledge, is actually a practice;



4.                    To situate philosophy directly within the political arena, without making the detour via political philosophy; to invent what I would call the ‘philosophical militant’, to make philosophy into a militant practice in its presence, in its way of being: not simply a reflection upon politics, but a real political intervention;



5.                    To reprise the question of the subject, abandoning the reflexive model, and thus to engage with psychoanalysis—to rival and, if possible, to better it;



6.                    To create a new style of philosophical exposition, and so to compete with literature; essentially, to reinvent in contemporary terms the 18th-century figure of the philosopher-writer.



Such is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its programme, its high ambition. To identify it further, its one essential desire—for every identity is the identity of a desire—was to turn philosophy into an active form of writing that would be the medium for the new subject. And by the same token, to banish the meditative or professorial image of the philosopher; to make the philosopher something other than a sage, and so other than a rival to the priest. Rather, the philosopher aspired to become a writer-combatant, an artist of the subject, a lover of invention, a philosophical militant—these are the names for the desire that runs through this period: the desire that philosophy should act in its own name. I am reminded of the phrase Malraux attributed to de Gaulle in Les chênes qu’on abat: ‘Greatness is a road toward something that one does not know’. Fundamentally,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of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was proposing that philosophy should prefer that road to the goals it knew, that it should choose philosophical action or intervention over wisdom and meditation. It is as philosophy without wisdom that it is condemned today.



But the French philosophical moment was more interested in greatness than in happiness. We wanted something quite unusual, and admittedly problematic: our desire was to be adventurers of the concept. We were not seeking a clear separation between life and concept, nor the subordination of existence to the idea or the norm. Instead, we wanted the concept itself to be a journey whose destination we did not necessarily know. The epoch of adventure is, unfortunately, generally followed by an epoch of order. This may be understandable—there was a piratical side to this philosophy, or a nomadic one, as Deleuze would say. Yet ‘adventurers of the concept’ might be a formula that could unite us all; and thus I would argue that what took place in late 20th-century France was ultimately a moment of philosophical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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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반성완 번역을 기본으로 김남시님이 오역을 수정한 번역을 퍼옴

(발터 벤야민과 현대 카페)

(2~14번 테제, 파란 부분이 수정된 것)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어떤 장기 자동기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기계는 어떤 사람이 장기를 두면 그때마다 그 반대 수를 둠으로써 언제나 이기게끔 만들어졌었다. 터어키 의상을 하고 입에는 水煙筒을 문 인형이 넓은 책상 위에 놓여진 장기판 앞에 앉아 잇었다. 거울로 장치를 함으로써 이 책상은 사방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기의 명수인 등이 굽은 난장이가 그 책상 안에 앉아서는 줄을 당겨 인형의 손놀림을 조종하였다. 우리는 철학에서도 이러한 장치에 대응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다. 항상 승리하게끔 되어 있는 것은 소위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리어지는 인형이다. 이 역사적 유물론은, 만약 그것이 오늘날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신학을 자기의 것으로 이용한다면, 누구하고도 한판 승부를 벌일 수가 있을 것이다. 



로체는 "인간의 심성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 중의 하나는...개별인들에게 존재하는 저 많은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재가 그들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질투심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 생각을 좀 더 진전시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이 품고 있는 행복에 대한 그림은, 우리 자신의 삶의 과정이 언젠가 우리 스스로를 배제시켰던 저 시간에 의해 채색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후회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을 저 행복은 우리가 숨쉬었던 그 공기 속에, 우리가 말을 걸 수도 있었을 사람들과, 우리 품에 안길 수도 있었을 여인들과 함께 숨쉬었던 저 공기 속에만 존재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행복의 표상 속에는 구원의 표상이 처분할 수 없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대상으로 삼는 과거에 대한 표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하나의 비밀스러운 인덱스를 지니고 있는데, 그를통해 과거는 구원을 지시하게 된다. 저 지나가 버린 순간에 존재했던 한 숨의 공기가 우리 자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목소리 속에 이제는 그쳐버린 목소리의 메아리가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가 연연해하는 저 여인들에겐 그녀들이 더 이상 알지 못했던 누이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과거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엔 어떤 비밀스런 묵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기다려졌던 존재들이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에겐 우리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인간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과거가 그에대해 요구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요구는 값싸게 처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에대해 알고있다.


사건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연대기 기록자는 그를통해 언젠가 한번 일어났던 것은 그 어느 것도 역사에서 상실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진리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류에게는 그들이 구원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과거가 완전하게 주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된 인류에게 비로소 그들의 과거는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인용 가능한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모든 순간들은 그 날, 즉 최후 심판의 날의 의사 일정의 인용이 된다.  

4                                                                                                                                                                                         먼저 먹고 입을 것을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신의 왕국은 스스로 열릴 것이다. - 헤겔


마르크스를 따라 교육된 역사가가 눈 앞에 두고있는 계급투쟁은 거칠고 물질적인 것들을 두고 일어나는 싸움이다. 이 거칠고 물질적인 것들이 없이는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투쟁 속에서 이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승리자의 손에 떨어지는 노획물과는 다른 이미지를 하고있다. 그것들은 신뢰, 용기, 유머, 기지와 불굴성으로서 이 싸움 속에서 살아있으며 먼 과거의 시간에까지(in die Ferne der Zeit) 영향을 미치고있다. 그것들은 언제나 새로이 우연히 지배자들에게 주어진 모든 승리를 의문시할 것이다. 꽃들이 그들의 머리를 태양을 향해 돌리듯 지나가 버린 과거는 저 비밀스런 종류의 향일성에 힘입어 역사의 하늘에서 떠오르려 하는 태양을 향하려 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모든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띄지 않는 이러한 변화들에 정통해야만 한다.

 



과거에 대한 참된 그림은 휙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것이 인식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번쩍 하고는 다시는 보지못하게 되는 그런 그림으로서만 과거는 붙잡을 수 있을 뿐이다. <진리는 우리로부터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 고트프리드 켈러의 이 말은, 역사주의(Historismus)의 역사에 대한 그림 중에서 역사적 유물론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의 그림 속에서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 못한 현재와 함께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 바로 이 되가져올 수 없는  과거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것을 역사적으로 표명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본래 어떠했었던가>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순간에 번쩍하고 우리에게 드러나는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유물론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과거의 그림을 붙잡는 것이다. 그 위험은 전통의 존속 뿐 아니라 그 전통의 계승자들도 위협하고 있다. 이 양자 모두에게 공통되는 그 위험이란 자신을 지배 계급의 도구로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시대마다 새로이 전승된 것을 위압하려하는 타협주의로부터 전승된 것을 뺏어오려는 시도가 행해져야만 한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반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도 온다. 바로 역사 서술가에게만, 지나간 것 속에서, 바로 그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져 있다. 죽은자들조차도 적으로부터, 만일 적이 승리한다면, 안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적은 지금껏 승리하기를 멈추치 않았다.



고난과 비참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이 골짜기의 암흑과 혹한을 생각하라.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푸스텔 드 코라쥬는 역사가들에게 권고하길, 한 시대를 추체험해보고자 한다면 그 시대 이후 역사의 경과에 대해 그가 알고있는 모든 것을 머리에서 떨쳐버리라고 말한다. 역사적 유물론이 그로부터 결별했던 방법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그것은 바로 감정 이입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순간적으로 번쩍 지나가 버리는 진정한 역사적 그림을 낚아 챌 만한 용기를 잃은 심장의 관성, 곧 권태 acedia에 그 근원을 갖는다. 이것은 중세 신학자들에게선 우울함의 근원으로 여겨졌었다. 이에 친숙해 있었던 플로베르는 <카르타고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얼만큼의 슬픔 triste 이 존재해야 하는지 짐작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썼다. 이 우울함의 본성은 역사주의의 역사 서술가가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 자신을 위치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게도 승리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때마다의 지배자들은 언젠가 승리했던 모든 이들의 상속자이다. 승리자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따라서 언제나 그때마다의 지배자들을 위하는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자에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말해졌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역사의 승리1를 거머쥐고 있는 자는 오늘날의 지배자들을 오늘날 바닥에 누워있는 피지배자들 위로 이끌고 가는 개선행렬에 함께 행진하는 자이다. 늘 그러했듯이 그 개선행렬엔 노획물이 함께 따라 다닌다. 사람들은 그 노획물을 문화유산2이라 부른다. 그 문화유산들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거리를 둔 관찰자로써 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유산에서 그가 바라보는 것은 예외없이 참혹함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원천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저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를 창조했던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 뿐 아니라 그 동시대인들의 이름없는 노동에도 빚지고 있다.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지 않은 문화의 기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의 기록이 야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듯이 이들에게서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가는 전승의 과정 역시 야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때문에 가능한 한 그 전승으로부터 거리를 취한다.3 그는 역사를 결에 거슬려 빗질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억압받은 자들의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있는 <예외적상태>라는 것이 상례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외적 상태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겐 진짜 예외적 상태를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이 분명해 질 것이다. 그를통해 파시즘과의 투쟁에 있어서 우리의 입지가 더 나아질 것이다. 파시즘이 승산을 갖는 데에는 적지않게 그 반대자들(좌파)이 진보라는 역사적 규범의 이름으로 파시즘과 접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1 우리가 체험하는 것들이 20세기에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놀라움은 결코 철학적 놀라움이 아니다. 그로부터 저 놀라움이 기인하는 저 역사에 대한 표상이 유지되는 한 저 놀라움은 인식의 출발을 이루지 못한다.



내 날개는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난 기꺼이 되돌아 가련다.

살아있는 시간동안 내가 머문다 하더라도

난 별로 행복하지 않을테니까.

 

게르하르트 쇼렘 <천사로부터의 인사>

 

 

앙겔루스 노부스 (새로운 천사)라고 불리는 클레의 그림이 있다. 거기엔 한 천사가 그려져 있는데, 그 는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막 물러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눈은 크게 떠있고 그의 입은 열려있으며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가 틀림없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그는 얼굴을 과거를 향하고 있다. 사건들의 연쇄가 우리 앞에 드러나는 곳에서 그는 하나의 유일한 재난을 바라 보고있다. 그 재난은 끊임없이 폐허 위에 폐허를 쌓아 올리며 그것들을 천사의 발 앞에 내 던지고 있다. 그는 기꺼이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죽은자들을 흔들어 깨우고 부서진 것을 다시 결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이 그의 날개에 휘몰아 들어가는데 그 폭풍은 천사가 더 이상 날개를 접지도 못할 만큼 강하다. 이 폭풍이 쉴새없이 그를,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로 밀어대고 있, 그 사이에 그의 앞에 쌓이는 폐허 더미는 하늘까지 다다르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폭풍이다.       


10 
수도원이 규칙을 통해 수사들로 하여금 명상을 위해 지정해 놓은 대상들은 그들이 세상과 이 세상의 번잡함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쫓고 있는 사고도 이와 유사한 규정으로부터 나온다. 이 사고는, 파시즘의 반대자들이 희망을 걸었었던 정치가들이 나자빠지고 자신의 일에 대한 배반을 통해 이 패배를 재삼 확인하고 있는 이 순간, 파시즘의 반대자들이 정치적 현세주의자들을 현혹시켰던 그 올가미로부터 정치적 현세주의자들을 떨어져 나오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관찰은, 이 정치가들의 고집스러운 진보에 대한 믿음과 그들의 '대중기반'에 대한 신뢰,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기구에 대한 그들의 노예같은 적응이 동일한 사태의 세 측면이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관찰은 이 정치가들이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역사관과의 어떠한 공모도 거부하는 그러한 역사에 대한 표상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의 관습적 사고가 얼마나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11 

처음부터 사회민주주의 속에 비밀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던 순응주의 (Konformismus) 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전략뿐 아니라, 그들의 경제에 대한 사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저 순응주의는 이후 (사민주의의) 붕괴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독일의 노동자들(연합)을 저토록이나 타락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흐름에 따라 움직여라" (schwimme mit dem Strom) 라고 하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그들에게 기술적인 발전은 그들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 흐름의 하나라고만 여겨졌던 것이다. 이 생각으로부터, 기술 진보의 과정에서 생겨난 공장 노동은 정치적 성과에 다름 아니다라고 하는 환상까지는 한 걸음 차이밖에 나지않는다. 이전의 프로테스탄티즘적 노동윤리가 세속화된 형태로 독일 노동자들 사이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미 고타 강령 속에 이러한 착각의 흔적이 담겨있다. 고타 강령은 노동을 "모든 문화와 부의 원천"으로 정의하고 있다. 무언가 불길함을 예감한 마르크스는 그에 대해 응답하기를, 자신의 노동력 외엔 다른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한 인간은 "재산가로 성장한 다른 사람들의 노예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혼돈이 생겨나 얼마 뒤에 Josef Diezgen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에 이른다.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치유책이다. 노동을 개선해 나가는 속에 바로 지금 이룩할 수 있는 저 풍요로움이 존재하는데, 그건 지금까지 그 어떤 구원자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러한 천박한 마르크스적 개념은 다음의 질문 앞에선 오래 버티지 못한다. 즉,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을 스스로 소유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생산물들이 그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천박한 노동 개념은 자연지배에 있어서의 진보만을 인식할 뿐, 역사의 퇴보를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이 개념은 이후에 파시즘에서 등장하게될 테크노크라시적 경향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저 테크노크라시적 경향에 속하는 것이 지난 3월 초 불운을 예고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에서 등장했던 자연 개념이다. 여기서 이해되고 있는 노동은,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의 착취에 대한 나이브한 보상으로 여기고 있는 자연에 대한 착취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실증주의적 positivistischen 개념화와 비교해보면 엄청난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푸리에가 제시한 환상들이 놀랍게도 건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다. 푸리에에 의하면, 성공적으로 이룩된 사회적 노동은 네 개의 달이 지상의 밤을 비추고, 남극과 북극의 얼음들이 사라지며, 바닷물이 더이상 짠맛을 내지 않고, 맹수들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하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자연 착취로 부터는 거리가 먼 노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노동은 가능자로써 자연의 무릎 속에서 잠자고 있는 저 피조물들로부터 자연을 출산시킬 수 있는 그런 노동이다. 저 타락한 노동 개념 속에 등장하는 노동의 대응물로써의 자연은, Diezgen이 표현했었던 것처럼 "공짜로 저기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12 
우리에겐 역사 Historie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하는 역사는 저 응석받이 같은 하릴없는 자가 지식의 정원에서 필요로 하는 그런 역사와는 다른 것이다.

 - 니체 : 삶을 위한 역사의 유용성과 단점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고 있는, 억압된 계급 자신이다. 맑스에게서 그 계급은 최후의, 노예화된 계급이자, 이제 복수를 하는 계급으로 등장하는데, 그 계급은 패배한 세대들의 이름으로 해방이라는 작업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러한 의식, 잠시동안이지만 <스파르트쿠스> 에서도 등장했었던, 이러한 의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민주주의에게는 불쾌한 것이었다. 30년의 시간을 거쳐 사회민주주의는 이전의 한 세기를 뒤 흔들었었던 블랑키라는 이름을 거의 사라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에게 미래 세대들의 구원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만족스러워했다. 그를통해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가장 커다란 힘줄을 잘라버렸다. 저 계급은 이 (사회민주주의적) 학교에서 증오 못지않게 희생정신 또한 잊어버렸다. 저 증오와 희생정신은 해방된 손자들이라는 이상이 아니라, 노예였던 선조들에 대한 그림을 통해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우리의 일들은 하루 하루 분명해 질 것이고 민중은 나날이 현명해 질 것이다.

          Josef Dietzgen : 사회민주주의적 철학

 

 

사회민주주의 이론, 특히 그 실천은 현실이 아니라 도그마적 요구에 집착하고 있는 진보 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머리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진보란 첫째로, 인류 자체의 (인류의 기술과 지식의 진보일 뿐만 아니라) 진보였다. 두번째로 그 진보는, 결코 끝마쳐질수 없는 (인류의 무한한 완전성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로, 그 진보는, 본질적으로 중단될 수 없는 (스스로 움직이면서 직선 혹은 나선형의 궤도를 따라 나아가는 ) 것이었다. (진보에 대한) 이 모든 술어들은 전부 논란의 여지가 많으며, 하나 하나 전부 비판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이 모든 술어들의 배후에로 가 그 모두에 공통적인 것을 향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인류의 진보에 대한 이러한 표상은, 동질적이고 homogenes 빈 leere  시간을 따라 나아가는 인류에 대한 표상과 떨어질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동질적이고 빈 시간을 따라) 나아감 Fortgang의 표상에 대한 비판이 진보에 대한 표상 일반에 대한 비판의 근본이 되어야만 한다.


14 
근원은 목표이다.(칼 크라우스, [운문으로 된 말들])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그 구성의 장소는 동질적이고 빈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시간에 의해 채워져있는 것이다. 그렇게 로베스피에르에게 고대 로마는 지금의 시간으로 충전되어 있는 과거였는데, 그 과거를 그는 역사의 연속체로부터 떼어 잘라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회귀한 로마로 이해했다. 프랑스 혁명은 고대 로마를 마치 모드가 지나간 시대의 복장을 인용하듯 그렇게 인용했던 것이다. 모드는 과거의 정글 속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현재적인 것 Aktuelle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드는 지나간 것에로 향한 호랑이의 도약이다. 다만 그 도약은 지배 계급이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경기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 아래서의 그런 도약은, 마르크스가 혁명이라고 파악했던 저 변증법적 도약이다.

15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저속도 촬영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 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백년 이래 유럽에서는 그 가장 희미한 흔적조차도 드러내지 않았던 역사의식의 기념비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것은 1848년의 7월혁명 동안에 일어났던 하나의 돌발적 사건에서였다. 투쟁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곳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관련도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시계탑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시의 압운에 힘입어 그의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이 사건의 어느 증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고 하듯이 시계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16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도기로서의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그 속에 머물러 정지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이와 같은 현재의 개념에 의해서만 역사를 쓰고 있는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를 나타낸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회적인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 따위는 역사주의의 유곽에서 <옛날 옛적>이라고 불리우는 창녀에게 정력을 탕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맡겨 버리고, 대신 그는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역사의 지속성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남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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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가 보편적 세계(인류)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른 종류의 역사보다는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명확히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첨가적이다. 그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구성원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고에는 생각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의 정지도 포함된다. 사고는, 그것이 긴장으로 충만한 사실의 배열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사실의 배열에 충격을 가하게 되고 또 이를 통해 사고는 하나의 單子 Monade로서 結晶化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가 단자로서 마주 대하는 역사적 대상에만 오로지 접근한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식, 달리 말해 억압된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동질적이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과정을 폭파시켜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과거를 인지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시대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삶을, 일생의 사업으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사업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는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악되어진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18 
<이 지구상의 유기적 생물체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호모 사피엔스(인류)의 보잘것없는 오천년 역사는 이를테면 하루의 24시간 중의 마지막 2초와 같은 것이고 또 이러한 기준에서 두고 보면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의 마치막 초의 1/5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어느 현대의 생물학자는 말한 바 있다. 메시아적 현재시간의 모델로서 전 인류역사를 엄청나게 축소해서 포괄하고 있는 현재시간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만든 바로 그 형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부기 

1) 역사주의는 역사의 여러 상이한 계기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다. 원인으로서의 사실은, 수천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그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추후에 역사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계기를 마치 염주를 하나 하나 세듯 차례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들로 점철된 <현재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2)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미래가 지니는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에겐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문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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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Technik des Schriftstellers in dreizehn Thesen[1]

  

1. 무언가 작품을 쓰려는 사람은 즐겨야 한다. 꼭지가 끝난 다음에는 글쓰기의 진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허락하라.

 

 2. 원한다면 네가 이미 썼던 것에 대해 말해도 좋지만, 아직 진행 중인 글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지는 마라. 그를통해 생겨나는 모든 종류의 만족감은 너의 템포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체제를 따른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자 하는, 점점 증가하는 욕구가 결국 완성을 향한 모터가 된다.

 

3. 글쓰는 환경에 있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일상을 피하라. 김빠진 소음을 동반한 반쪽짜리 조용함은 오히려 (작업을) 훼손시킨다. 그에반해 에튀드나 사람들의 뒤섞인 말소리들은, 몸으로 느껴지는 밤의 적막만큼이나 글쓰기에 중요할 있다. 밤의 적막이 내면의 귀를 날카롭게 한다면, 저것들은 글을 쓰는 방법의 시금석이 되는데, 그것이 쌓이게 되면 어떤 기괴한 소음들도 속에 파묻혀진다.   

 

4. (필기) 도구를 가려라. 특정한 종이, 펜과 잉크에 까탈스럽게 매달리는 도움이 된다. 호화로운 아닐지라도 이런 소품들을 갖추어 놓는 없어서는 안될 일이다. 

 

5. 떠오르는 어떤 생각들도 의식하지 않은채 지나가게 하지 마라. 너의 메모 노트를 마치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장부를 다루듯 그렇게 엄격하게 활용하라.

 

6. 너의 펜이 떠오르는 착상에 대해 까다롭게 굴도록 해라, 그러면 펜은 자석같은 힘으로 착상들을 스스로 끌어당길 것이다.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는데 있어 숙고하면 할수록 생각은 성숙하게 자라나 앞에 나타날 것이다. 말은 생각을 함락시키지만, 글자는 그를 지배한다.

 

7.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코 글쓰기를 중단하지 마라. 약속 (식사, 선약) 지켜야 하거나 작품을 끝마쳤을 때에만 글쓰기를 중단하는 것이 문학적 명예의 준칙이다.

 

8. 착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썼던 것을 깨끗히 정서해보라. 위에서 영감이 깨어날 것이다.

 

9. 하루도 글을 쓰지 않고 보내지 마라.  Nulla dies sine linea. 그러나 몇주 동안이라면.

 

10. 저녁부터 꼬박 날이 밝을 때까지 거기 매달려보지 않은 어떤 글도 결코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11. 작품의 종결은 평소의 작업실에서 쓰지마라. 거기선 작품을 종결짓기 위한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12. 집필의 단계는 생각 문체 글자의 순으로 하라. 탈고의 의의는 글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면서 다만 멋진 글자모양을 만들어내는 있다. 생각은 착상을 죽이고, 문체는 사고를 속박하며 글자는 문체에 댓가를 지불한다.

 

13. 작품은 구상의 데드 마스크다.

 

  

1.      Wer an die Niederschrift eines größeren Werks zu gehen beabsichtigt, lasse sich’s wohl sein und gewähre sich nach erledigtem Pensum alles, was die Fortführung nicht beeinträchtigt.

2.      Sprich vom Geleisteten, wenn du willst, jedoch lies während des Verlaufs der Arbeit nicht daraus vor. Jede Genugtuung, die du dir hierdurch verschaffst, hemmt dein Tempo. Bei der Befolgung dieses Regimes wird der zunehmende Wunsch nach Mitteilung zuletzt ein Motor der Vollendung.

3.      In den Arbeitsumständen such dem Mittelmaß des Alltags zu entgehen. Halbe Ruhe, von schalen Geräuschen begleitet, entwürdigt. Dagegen vermag die Begleitung einer Etude oder von Stimmengewirr der Arbeit ebenso bedeutsam zu werden, wie die vernehmliche Stille der Nacht. Schärft diese das innere Ohr, so wird jene zum Prüfstein einer Diktion, deren Fülle selbst die exzentrischen Geräusche in sich begräbt.

4.      Meide beliebiges Handwerkzeug. Pedantisches Beharren bei gewissen Papieren, Federn, Tinten ist von Nutzen. Nicht Luxus, aber Fülle dieser Utensilien ist unerlässlich.

5.      Lass dir keinen Gedanken inkognito passieren und führe dein Notizheft so streng wie die Behörde das Fremdenregister.

6.      Mache diene Feder spröde gegen die Eingebung, und sie wird mit der Kraft des Magneten sie an sich ziehen. Je besonnener du mit der Niederschrift eines Einfalls verziehst, desto reifer entfaltet wird er sich dir ausliefern. Die Rede erobert den Gedanken, aber die Schrift beherrscht ihn.

7.      Höre niemals mit Schreiben auf, weil dir nichts mehr einfällt. Es ist ein Gebot der literarischen Ehren, nur dann abzubrechen, wenn ein Termin (eine Mahlzeit, eine Verabredung) einzuhalten oder das Werk beendet ist.

8.      Das Aussetzen der Eingebung fülle aus mit der sauberen Abschrift des Geleisteten. Die Intuition wird darüber erwachen.

  1. Nulla dies sine linea – wohl aber Wochen.
  2.  Betrachte niemals ein Werk als vollkommen, über dem du nicht einmal vom Abend bis zum hellen Tage gesessen hast.

11.  Den Abschluss des Werkes schreibe nicht im gewohnten Arbeitsraume nieder. Du würdest den Mut dazu in ihm nicht finden.

12.  Stufen der Abfassung : Gedanke – Stil – Schrift. Es ist der Sinn der Reinschrift, dass in ihrer Fixierung die Aufmerksamkeit nur mehr der Kalligraphie gilt. Der Gedanke tötet die Eingebung, der Stil fesselt den Gedanken, die Schrift entlohnt den Stil.

13.  Das Werk ist die Totenmaske der Konzeption.

      



[1] Walter Benjamin Schriften IV.1, S.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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