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aits > [올농까페] 인권지킴이집 옥상에서 온 편지

 

 너무 많은 게시물을 몰아 올려서 즐겨찾기 하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도 평택 소식이 주요 기사로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이제 그만 옮겨도 될 것 같네요. 시간과 마음이 허락하는 분들은 청와대와 국방부 항의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네요. 국방부는 실명확인이 필요하지만 청와대는 대화명으로도 작성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녁때 시간이 되시면 촛불집회에도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편지를 쓴 인권지킴이들이 지금 연행중이라고 하네요. 너무나 맥없이 무너진다는 허탈감도 들지만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물리력, 어쩌면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근 때문에 비록 컴퓨터 앞에 있지만...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정말로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주제 넘게 떠들었습니다. ;;

 

인권지킴이집 옥상에서 온 편지.... (꼭 읽으세요..) | 이장 마이크 2006.09.13 02:49
myoungrrang 카페스탭 http://cafe.naver.com/allnong/669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평택의 평화를 위해, 미군의 전쟁기지를 막기 위해
강제철거가 자행되는 즉시 평택지킴이들은 다음과 같이 행동합시다.


- 서울 국방부 앞 2시 집회와 7시 촛불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십시오.
- 강제철거의 폭력성과 규탄의 내용을 인터넷 포탈, 까페, 블로그 등에 널리 알려 주십시오.

대추리 도두리 마을파괴 및 주택강제철거 규탄 사이버 항의시위

1. ☞★ 청와대 항의시위 하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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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국방부 항의시위 하기 클릭>>>>>>>>★
http://www.mnd.go.kr/NationPart/Freeboard/index.jsp

<우리의 요구>

- 국방부는 야만적인 마을파괴, 주택강제철거를 즉각 중단하라!
- 노무현 정부는 사대굴욕적인 미군기지확장 사업을 전면 재협상하라!

 


대추리 인권지킴이집 옥상에 지난 여름나기 캠프 때,
서울대책회의를 후원해 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300만원을 들여 평화전망대를 지었습니다.
오늘 낮 기자회견 때부터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폭풍전야 지금까지,
평화전망대를 지키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심경을 담은 짧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몹시 두렵다...
그러나 햇볕 좋은 마당에 빨래를 널고 참깨를 너는
어머니, 아버님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다.

정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여기는 대추리 황새울이 한 눈에 보이는 평화전망대입니다.
노을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전쟁 같은 일을 치루고 있습니다.
또다시 대규모 병력이 황새울 들판을 새까맣게 메우고 아무런 무기도,
든든한 동지들도 없는 우리들은 전쟁포로처럼 끌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수십 번이라도 잡혀가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런 저항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우리 인권활동가들은 그 길을 마다않고 가야할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은 미사일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전쟁음모가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저는 지금 평화전망대에 제 몸을 묶습니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지난 3월, 포크레인 밑에서 울부짖던 한 할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게 평화전망대에 올라서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 할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답할 것입니다.
철거가 들어오기까지 불과 몇 시간 전입니다. 많이 긴장이 되고 떨립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다치지는 않을 런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2주 사이에 훌쩍 커버린 배추의 모종들을 보면서,
그리고 논에 약을 치고, 밭에 물을 주고 있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보면서,
그 평화로운 일상들을 꼭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모기소리처럼 왱왱 거리는 저 헬리콥터가
더 이상 이 위를 날지 않는 그 날을 위해서 잘 버티겠습니다^-^

김명수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나는 오늘 대추리의 집 지붕에 올라갈 것이다.
거기서 경찰을 앞세우고 집을 부수는 중장비에 맞설 것이다.
나는 평화와 인권을 옹호한다.
집은 평화롭고 인권적인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런 나의 신념 하에서 집을 부수는 공권력에 맞설 수밖에 없다.
공권력은 아마 나를 법의 이름으로 연행할 것이다.
인권과 정의에 어긋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을 지킬 수는 없다.
그 법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으로 인권과 평화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기를...

박 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요즘처럼 평화라는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적도 없어요.
대추리·도두리 할머니들 눈물을 보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가져올 재앙을 알면서 일상이 평화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저는 어느 가족이 따뜻한 저녁을 해 먹으며 도란 거렸을 집의 지붕위로 올라갑니다.
그 곳에서 마을을 부수러 오는 국가폭력을 만나게 되겠죠.
그들에게 이곳을 지키는 것이 평화임을 알리겠습니다.


미안하고, 답답합니다.
곁으로 가고 싶어도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미안해하고, 답답해하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닙니다.
대추리 ․ 도두리에 들어가 있는 모든 지킴이 친구들에게는
나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면회가서 미안했다고, 멋있다고 말하기로 합시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들의 위치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방부 게시판에 항의 글을 남기고,
다음과 싸이월드 등 포털 싸이트의 토론방을 찾아 추천과 댓글을 달고
직접 글을 올려 토론에 동참합시다.
오마이뉴스 ․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들에 가서 글을 남깁시다.
거기에 있는 기사들을 추천하고 댓글을 답시다.
오후 2시부터 밤까지 계속 될, 국방부 앞 규탄집회에 함께 합시다.

2만 명의 경찰과 400여명의 용역깡패들, 그리고 수백 톤의 중장비들....
그 앞에 우리들은 너무나도 힘없는 존재들일지 모릅니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들을 닭장차까지 들고 가는데 십분도 안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린 보여줄 것입니다.
노무현과 이 나라 정부, 부시와 미국에 보여 줄 것입니다.
민중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들이 대추리 ․ 도두리를 빼앗아가면,
우리는 한반도 남쪽 절반 땅을 모두 대추리 ․ 도두리로 만들 것입니다.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우린 똑똑히 보여 줄 것입니다.

종일 기사들을 읽으며, 메일을 쓰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받습니다.
순간순간 목이 탁 막혀버리고, 뜨겁다 못해 따가운 눈물이 흐르더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처철하게 살아야하나 생각이 듭니다.
눈감고, 귀 막고 대추리 ․ 도두리를 잊고 살아가기에는,
우리들 모두는 이미 너무나 깊은 대추리 ․ 도두리 병 환자들입니다.
이 불치병을 우리는 행복하게 앓고 있습니다.

대추리 ․ 도두리에서는 차가운 바람에 맞서 밤을 밝히며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정삼거리 주변에는 대추리로 들어가지 못한 지킴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그들의 숫자는 3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전국행진을 떠난 행진단은 열린우리당 광주시당 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 한시간만이라도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늘 참 많은 글을 쓰고, 메일을 보냅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어제 오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제 몇 시간 후, 올 한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름....
대추리 ․ 도두리가 무참히 짓밟힐 터인데,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쓰고, 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역할분담”이라는 핑계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밤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답답하고, 무엇인가 해야겠는데 몸은 뺄 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 대추리 ․ 도두리에도 분명 전해 졌을 것입니다.

용역깡패들은 폭력을 휘두르겠지만, 우린 평화란 방패로 막을 겁니다.
경찰들은 인권을 짓밟겠지만, 우린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집을 부수겠지만, 우린 집을 지을 겁니다.
우린 내일 패배하겠지만, 우린 결국 승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범대위의 긴급지침을 전합니다..


* 범대위 긴급지침 *

현재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는 병력들이 배치되어 있고 오늘(13일) 새벽에 강제철거가 감행될 것입니다. 오늘 인권단체 활동가 5인이 평택 강제철거 저지 선언을 하였고 저녁 촛불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낼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마을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강제철거 저지를 위한 투쟁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평택문제를 전국에 알리고 9.24 평화대행진 대중적 성사를 위한 전국 행진 단원들 12명이 광주에서 평택 강제철거 중단을 촉구하며 정부 여당인 열린우리당 광주시당을 항의방문하고 촛불 행사를 진행하였고, 원정삼거리에서는 대추리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강제철거 규탄 촛불문화제를 진행하였습니다.

마을은 현재 초긴장 상태입니다.
제2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은 용역 450명과 2만명의 경찰을 대동하여 진행될 것입니다. 여기에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은 평화적으로 완강하게 싸울 각오로 오늘 밤을 보낼 것입니다.

평택의 평화를 위해, 미군의 전쟁기지를 막기 위해
강제철거가 자행되는 즉시 평택지킴이들은 다음과 같이 행동합시다.

- 모든 평택지킴이와 단위들은 대추리로 모여 주십시오.
- 대추리로 오지 못한 평택 지킴이들은
서울 국방부 앞 2시 집회와 7시 촛불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십시오.
- 각 지역에서는 열린우리당 등에 대한 항의방문과 집회를 진행하고
저녁 규탄 촛불행사를 개최해 주십시오.
진행상황은 평택범대위 자유게시판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단체 명의로 강체철거 규탄 긴급 성명서를 발표하고 청와대, 국방부에 항의해 주십시오.
- 강제철거의 폭력성과 규탄의 내용을 인터넷 포탈, 까페, 블로그 등에 널리 알려 주십시오.

대추리 도두리 마을파괴 및 주택강제철거 규탄 사이버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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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요구>

- 국방부는 야만적인 마을파괴, 주택강제철거를 즉각 중단하라!
- 노무현 정부는 사대굴욕적인 미군기지확장 사업을 전면 재협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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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반전평화행동]9.23.반전행동 및 9.24.평화대행진

 

[반전평화행동]9.23.반전행동 및 9.24.평화대행진
2006-09-07 17:01 | VIEW : 71

 

 


자이툰 연내 완전 철군, 평택미군기지 전면 재협상


9월23일과 24일 두 개의 중요한 '반전평화공동행동'이 있습니다. 평화네트워크 회원 여러분들과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0. 자이툰 연내 완전 철군을 위한 9.23 반전행동

이라크 점령종식/한국군 레바논 파병 반대/이란 공격 반대/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일시: 9월23일(토) 오후 3시
-장소: 서울역

0.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평화대행진

강제철거강행 노무현 규탄/전쟁기지 한미FTA강요 미국 규탄/평택미군기지확장 전면재협상 촉구

-일시: 9월24일(일) 오후 2시
-장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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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돌바람 >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문헌으로 인권읽기]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류은숙 
보편적 인권을 선언했다고 하는 근대 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인간이 아닌, 부르주아 남성의 권리가 보장되었을 뿐이었다.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의 대표적 문서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을 다시 쓰는 방식을 취하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간과와 모멸을 비난한 것이다. 남녀평등의 관점에 선 발언은 구즈 이전에도 존재해 있었지만,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확립하는 관점에 서서 사람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서 여성이 배제 당하고 있었던 현실과,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보편적 인권'을 선언했던 인권선언(및 당시의 제정자들)의 기만성을 비판한 것이다.

구즈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의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 비판에 반대하여 '인간의 권리 옹호'(1790년)을 쓴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1792년에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쓰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요구했다. 또 이들 여성의 권리 요구의 흐름은 1848년에 미국에서 1776년 독립선언을 기초로 한 '여성 소신선언'으로 이어진다.

구즈가 이 선언을 쓴 1791년은 프랑스에서 최초의 헌법이 제정된 해였다. 당시에 모든 여성은 재산 없는 남성 시민과 더불어 2등 시민 또는 수동시민으로 간주되어 투표권과 정치적 참여를 부인 당했다.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여성, 어린이, 외국인, 그리고 공적 시설의 유지에 하등 공헌할 수 없는 자는 공적 문제에 하등 능동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는 인구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수동시민으로 분류되어 선거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당연히 여성과 남성도 평등하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부장제나 노예제, 식민통치, 계급 차별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인권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고, 공적영역에서 국가가 법을 평등하게(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사적영역에 대한 불개입을 강조했다. 공적영역의 참가자가 될 수 없는 여성이 소위 사적영역에서 겪는 폭력과 박탈은 애당초 인권문제가 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다는 영국 여성의 권리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이렇다. 여성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남성과는 다른 처벌을 받아야 했다. 교회에서는 남편들과 같은 의자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흔히 구타당해야 했다. 일부 사회계약 이론가들은 자연상태에서의 여성의 동등성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사회계약에 들어갈 때 여성은 보호를 받는 대가로서 남편 또는 남성의 정치적 권위에 대해 동의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성들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권위가 신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왜 군주의 권리는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동등한 인간이기를 요구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은 컸다.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들의 선언'에서 교수대에 설 권리만이 아니라 연단에 설 권리를 주창했던 구즈 자신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소수자로서 취급받으면서 실제로는 결코 소수자가 아니었던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프랑스 인권선언 직후부터 세계 최초의 여권선언 등을 통해 계속 주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일부에 불과한 참정권의 실현에만도 1백 5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인권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관점에 선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의 인권 배제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선주민족·장애인·이주자 등과 또한 이들 사회적 약자가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여성장애인, 여성이주자 등)의 인권 배제에 관한 비판과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침해'란 원래 권리가 있었을 때 침해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배제'란 애초에 권리가 있기나 했는가의 문제이다. 인권의 주체라는 면에서 볼 때 침해라 말하기에 앞서 배제의 문제가 가슴에 와 닿을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1791)
전문


어머니들, 딸들, 자매들, 그리고 프랑스 인민의 대표들은 국민의회로 구성될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권리들에 대한 무지, 망각 또는 멸시가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에 대한 유일한 원인들이라고 간주하여, 여성들은 엄숙한 선언을 통해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신성한 여성의 권리를 제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 선언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항시 제시되어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들을 끊임없이 상기하도록 하고, 여성의 입법권과 행정권의 행위들과 남성의 입법권과 행정권의 행위들이 매 순간마다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과 비교됨으로써 존중받도록 하고, 이제 단순명백한 원리들에 입각한 시민들의 요구들이 언제나 헌법, 유익한 도덕, 만인의 행복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따라서, 출산의 고통 중에 보여지는 용기에서와 같이 미에서 우등한 여성은 최고존재의 앞에서 그리고 그 비호아래 다음과 같은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들을 승인하고 선포한다.


제1조. 여성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서 남성과 평등하게 태어나며 그렇게 존속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동의 유용성에 입각할 때만 가능하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여성과 남성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들을 보존하는데 있다. 이 권리들은 자유, 소유권, 안전, 그리고 특히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으며, 이 국민은 여성과 남성의 결합에 다름 아니다. 명백하게 국민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권위는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행사할 수 없다.


제4조. 자유와 정의는 타인에게 속한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여성의 자연권 행사에 대한 유일한 제한은 영구적인 남성의 폭정이다. 이러한 제한은 자연과 이성의 법률에 의해 개혁돼야 한다.


제5조. 자연과 이성의 법은 사회에 해로운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이러한 현명하고 신성한 법률에 의해 금지돼지 않은 모든 것은 방해될 수 없으며, 또 누구에게도 법이 명령하지 않은 것을 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제6조. 법은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만 한다. 모든 여성과 남성 시민은 직접, 또는 그 대표를 통하여 그것의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그들의 능력에 따라서 또 그들의 덕성과 재능 이외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평등하게 모든 공적인 위계, 지위, 직무에 오를 수 있다.


제7조. 어떤 여성도 법이 정한 경우가 아니면 고소, 체포, 구금될 수 없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법에 복종한다.


제8조. 법은 엄격하고 명백하게 필요한 형벌만을 규정해야 하며, 누구도 범법행위 이전에 제정, 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여성에게 적용된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될 수 없다.


제9조. 일단 어떤 여성이든 유죄로 선고되면, 완전한 엄격함이 법에 의해 행사돼야 한다.


제10조. 누구도 자신의 기본적 의견에 대해 침묵할 것을 강요받아선 안된다. 여성은 교수대에 오를 권리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11조. 자유로 인해 아버지들이 자기 자녀에 대한 인정을 보장받기 때문에,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여성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어떤 여성 시민이든 진실을 숨기려는 야만적인 편견에 강요받지 않고 나는 당신 아이의 어머니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법이 정한 경우에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12조.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들의 보장은 주요한 이익을 포함한다. 이러한 보장은 그것을 위탁받은 자들의 특수한 유용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의 이익을 위해서 설치된 것이어야 한다.


제13조. 공공의 무력과 행정 비용을 위한 여성과 남성의 기여는 평등하다. 여성은 모든 의무와 모든 힘든 임무를 공유한다. 따라서 여성은 지위, 고용, 직무, 명예와 직업의 배분에서 똑같은 몫을 공유해야 한다.


제14조. 여성과 남성 시민은 스스로 또는 그 대표를 통해 공공의 기여의 필요성을 검증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은 여성이 재산뿐만 아니라 공공행정에서 그 액수, 근거, 징수, 기간을 결정하는데 있어 동등한 공유를 보장받아야만 적용될 수 있다.


제15조. 전체 남성을 목적으로 한 세금에 참가하는 전체 여성은 어떤 공직자에게나 그들의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권리를 갖는다.


제16조. 권리들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정해지지 않은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헌법은 국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다수가 그 기초에 함께 하지 않았다면 무효이다.


제17조. 재산은 함께 있거나 헤어졌거나 남성과 여성 둘 다에 속한다. 남성과 여성 각각에게 그것은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이므로, 누구도 합법적으로 확인된 공공의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리고 정당한 사전 보상의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것을 빼앗길 수 없다.


후문

여성이여, 깨어나라. 이성의 종소리가 전 우주에서 들려오고 있다. 당신의 권리를 발견하라. 강력한 자연의 왕국은 더 이상 편견과 광신과 미신과 거짓말에 싸여있지 않다. 진실의 불꽃이 어리석음과 권리 침해의 모든 구름을 쫓아버렸다. 노예화된 남성은 자신의 사슬을 끊기 위해 여성의 사슬을 수단으로 하는 힘과 필요를 늘려왔다. 남성은 자유로워지자 그 동료에게 불공평했다. 오, 여성이여, 여성이여! 언제가 돼야 눈을 뜰 것인가? 혁명에서 여성은 무슨 이익을 얻었던가? 더욱 분명한 멸시와 더욱 두드러진 경멸이다. (이하 생략)
인권하루소식 제 2779 호 [입력] 2005년03월28일 23:44:14

프랑스혁명 인권선언서 빠진 여성의 인권 주창한 드 구즈

한겨레 2004-3-9

 




1789년 8월,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보편적 인권과 국민 주권을 사회의 기초로 삼음으로써 근대 정치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 선언에서 말하는 인간과 시민이라는 추상적 표현은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의 구분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결과 무산자와 여성은 배제되고 오직 (유산자) 남성만이 권리의 주체로 상정됐다.  

이에 대해 극작가인 올랭프 드 구즈는 프랑스 최초의 헌법이 제정되는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통해 남성에게 부여된 모든 권리와 자유가 여성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혁명과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몇몇 희곡으로 파리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리던 드 구즈는 대혁명기에 여러 팸플릿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나선다. 여기서 드 구즈는 상상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도 “인간(남성)과 (남성)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자신은 “양서 동물”이며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여성도 시민권을 가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새로운 시민성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다시 말해 능동적인 상상력을 행사해 그는 스스로를 자율적인 주체로 구성했던 것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다시 서술하는 방식으로 씌어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우선 드 구즈는 인간(남성)으로만 한정되어 있는 주체에 여성을 부가함으로써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보충한다. 예를 들어, 제10조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교수대에 올라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올라갈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개입은 보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으로 모든 권리를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 관계 및 시민권에 대한 새로운 규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발언의 자유를 여성의 가장 고귀한 권리라고 말하는 제11조는 여성 시민이 어떠한 침해도 받지 않고, “나는 당신의 아이의 어머니다”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발언의 자유는 아이에 대해 부모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남성(인간)이 순수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적 존재라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 허구적 보편성을 파헤친다. 또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재생산의 행위자로 드러냄으로써 재생산의 역할 때문에 여성은 수동적 시민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에 기초해 그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형태로 여성과 남성이 결합해야 한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안효상/서울대 강사(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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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참세상] 전국행진연속기고(1) 당신의 몸이 기억할 수 있는 투쟁

 

당신의 몸이 기억할 수 있는 투쟁
[전국행진연속기고](1) - 새로운 운동과 실천의 두려움을 벗고
이원재(범국본) 
최근 들어 한미FTA 협정, 평택 미군기지 확장, 포항 건설노조 탄압 등 굵직한 사회적 현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놀라운 집착 속에서 어느 새 3차 본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 주민들의 분노와 활동가들의 계속되는 구속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강제철거를 하겠다는 평택 문제, 노동자를 거리에서 때려 죽이고도 사과는 고사하고 탄압의 강도만을 높이고 있는 포항 사태...

시간이 지날수록 결코 감출 수없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군사주의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위선이 밝혀진 인간의 돌변한 포악함처럼, 참여민주주의의 가식마저 벗어 던진 채 노무현 정부는 그 어느 지배 권력보다도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과 실천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과 투쟁 그리고 대안은 여전히 자욱한 안개 속을 허우적대고 있다.

먼저 어느 새 굳어져 버린 개별 운동의제 중심의 접근이 “하반기 대투쟁”, “11월 민중 총궐기” 등의 목표를 신뢰할 수 없는 추상적인 구호로 고착화하고 있다.

모든 투쟁의 현장에서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자”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각자의 눈 앞에 있는 일정과 실무만이 빠듯한 일상을 지배할 뿐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많은 연대체에 비슷한 운동단위들이 결합하여 유사한 실천을 진행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의사소통과 연대조차 쉽지 않을 정도이다. 과도한 중앙 집중식, 거대담론 중심의 운동이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만큼이나 배타적인 의제별 운동 방식과 성과주의 역시 사회투쟁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중조직에 의지한 대의제 운동은 너무나 깊숙이 관성화 되어, 대중조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한탕주의가 실질적인 사회투쟁의 구체적 실천을 생략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랜 실천과 투쟁을 통해 만들어 온 진보진영의 대중조직들은 거대한 사회투쟁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거점이자 진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현재 대중조직들의 제한된 역량과 내재적 한계, 나아가 대중조직 지도부의 개량주의는 오랫동안 축적된 대의제 운동의 결과이다. 지금처럼 개인과 일상의 자율적 실천과 투쟁이 없이 대중조직을 통한 진보적 역량의 발산만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계획하는 것은 “먼 산 바라보기”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대중조직에 기대기”는 대중조직의 관료화와 패권주의를 확대 재생산하고, 새로운 진보적 실험과 자율적 실천의 공간을 억압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하반기 투쟁을 새롭게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운동‘권’의 오래된 습관과 관성은 물론, 새로운 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조차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현실 투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현실의 관성에 의지한다면 새로운 사회투쟁이란 시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의 의제를 넘는 실질적인 자본주의 반대 사회투쟁이 필요한 때

하반기 투쟁을 꿈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미FTA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다양한 노동 현안 투쟁 등 현재의 주요 투쟁에 대한 유기적, 통합적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별 의제의 자율성이나 특이성의 수준이 아니라 자기 의제 중심의 배타적 접근과 성과주의는 제한된 역량의 진보진영에게 있어 피로감과 패배주의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한미FTA 협상, 평택 미군기지 확장, 노동운동 탄압 등은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자본 재편)와 군사주의(전략적 유연성) 전략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동일한 목적의 다른 양태”일 뿐이다. 따라서 진보 진영 역시 당위의 수준을 넘어 각각의 현안을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의 심화(가속화)에 대한 강력한 반대 투쟁으로 정교하게 꿰매어 나가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개별의 사안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가로지르는 연대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하반기 투쟁은 각각의 운동 의제들에 내면화되어 있는 다양한 운동의 실체들이 노무현 정부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커다란 흐름으로 매개되어, 포괄적인 사회투쟁의 형태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한미FTA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노동현안 투쟁 등의 실체와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제대로 된 협상을 요구하거나 오직 한미FTA만을 막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역시 주민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나 미군기지 확장이 평택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쟁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 현안들 역시 투쟁 현장에서 해당 노동자의 권리만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한미FTA 반대운동과 노동자 투쟁은 초국적 자본주의의 강요된 경쟁과 삶의 빈곤화에 반대하는 투쟁이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구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은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군사주의가 강요하는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가 운동의제 개별의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목표와 성과를 넘어 각각의 투쟁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모순에 직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화 했을 때, 다양한 투쟁들은 현실의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투쟁으로 확대될 수 있고 실질적인 연대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열 번의 한숨보다, 한 번의 실천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현실 투쟁에 대한 통합적, 유기적 사유는 연대투쟁의 구체적 과정으로 실천돼야 한다. 구체적인 연대 투쟁이라는 것은 대중조직에 기대거나 조직에 위임한 투쟁이 아니라 운동가 개개인의 자율적인 실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 구호로써의 “대동단결”이나 “총궐기”가 아니다.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이 구체화될 수 있는 투쟁과정을 개인과 조직이 직접적으로 설계하고 행동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9월 8일에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와 한미FTA협상저지를 위한 전국행진’(전국행진)이 시작된다. 한미FTA와 평택 미군기지 문제라는 현안을 분절적으로 접근해 온 관성을 넘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공동행동이자 직접행동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 번의 전국행진이, 몇몇 활동가들의 힘에 기대고 있는 전국행진이 우리가 직면한 운동의 위기를 극복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국행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평택 문제와 한미FTA 사안이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반기 투쟁에서 새로운 사회투쟁,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투쟁의 구체적인 실천이자 출발점이 바로 전국행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연한 대규모 집회나 실체 없는 총궐기만을 선언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투쟁의 과정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직접 맞서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행동들이 축적되고 숙성되고 연계되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제목만의 민중 총궐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제2의 민주화 투쟁,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 자본주의 반대 투쟁 등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퇴진이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투쟁은 조직을 굳게 믿거나, 분담금을 내거나, 공동성명에 연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당신의 투덜거림과 한 숨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신의 자율적인 행동, 당신의 몸이 기억할 수 있는 투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니 세상을 바꾸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다른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마주칠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새로운 운동과 투쟁의 실패가 아니라 정작 무엇 하나 시작해보지 못하고 또 다시 시간만 반복되는 것이다.
이원재 님은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상황실장으로,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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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신념은 유물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계급론과 계급투쟁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경제적 기초를 해명하기 위해 여섯 권으로 된 경제학 체계를 완성하려고 하였다. 즉 자본-토지소유-임금노동-국가-대외무역-세계시장의 순서로 집필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여섯 권의 책을 쓸 시간을 갖지 못해 자본-토지소유-임금노동에 관한 연구를 현존의 『자본론』 세 권에 수록하게 되었다.

『자본론』 세 권의 초고는 대개 1865년까지 끝난 것으로 보이며, 1867년 제1권(독일어판) '자본의 생산과정'이 마르크스 자신의 교열하에 출판되었다. 그 뒤 그는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과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 초고를 수정·첨가했지만, 사망시(1883년)까지는 완성시키지 못했다. 이 마르크스의 초고를 엥겔스가 정리·첨삭하여 1885년에 제2권을, 그리고 1894년에 제3권을 출판했다. 따라서 『자본론』 세 권 중에서 제1권만이 마르크스의 교열을 받았다는 점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제1권은 마르크스의 생전에 프랑스어판(1872~75년 동안 시리즈로 발간)과 독일어 제2판(1873)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은 더욱 완벽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권의 프랑스어판에 의거해 독일어 제3판(1883)이 엥겔스에 의해 발간되고, 그것의 영어판은 1886년에 나왔다. 이 영어판은 편 및 장의 구성에서 독일어판과 약간의 차이를 나타내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영어판을 사용해 『자본론』을 해석할 것이다.

『자본론』은 현재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과정에 관한 연구고, 제2권은 유통과정에 관한 연구며, 제3권은 생산-유통-분배과정을 총괄해 연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을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과 통일로 파악하고 있는 마르크스는, 그 대립과 통일이 가장 분명히 나타나는 공장내의 생산과정을 취급한 것이다. 제2권에서는 자본가가 투자한 화폐가 어떠한 변화를 거치면서 증식하고 있는가가 연구되고 있다. 화폐가 생산요소(생산수단과 노동력)로 형태변화하면서 처음의 화폐가치가 증식되는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제3권은 생산과정에서 창조되고 유통과정에서 실현된 잉여가치(=이윤)가 개별자본가들에게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제3권에서는 개별 산업자본가들의 경쟁이 평균이윤율을 형성환다는 점, 그리고 잉여가치의 분배 또는 분할을 둘러싸고 산업자본가·대부자본가·상업자본가·지주 사이에 이해의 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

『자본론』전체의 내용을 계급투쟁과 관련시켜 파악한다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노동자계급은 점차로 자본가계급의 지배하에 종속되어 가면서 고용과 임금 및 인격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로 빠져든다는 점과, 유산계급(산업자본가·상업자본가·대부자본가·지주)사이에 이해 대립이 있지만,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의 '분할'을 둘러싼 것이므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에서는 공동보조를 취하게 된다는 점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2. 제1권의 내용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은 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상품과 화폐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5편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6편 임금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

다음에서는 각 편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상품과 화폐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시장에 팔기 위해 재화와 용역이 생산되는데, 이처럼 출하된 재화와 용역을 상품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상품은 당연히 유용성(사용가치)과 값(교환가치)을 가진다.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재화와 용역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기 때문에 상품이 되지 못하며, 그리고 상품이 팔릴 때에는 일정한 값(다른 상품의 일정량이나 일정한 금액의 화폐)과 교환되기 때문에 상품은 교환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10미터의 광목과 저고리 한 벌이 시장에서 교환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광목을 만드는 직포공의 노동과, 저고리를 만드는 재봉공의 노동이 서로 교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상이한 '구체적 노동'이 교환과정에서는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추상적 노동'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둘째 10미터의 광목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추상적 인간노동과 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동일한 크기이기 때문에 10키터의 광목과 저고리 한 벌이 교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상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추상적 인간노동을 그 상품의 '가치'라고 정의하며, 상품들 사이의 교환비율(또는 교환가치)은 각 상품들의 가치를 비교함으로써 구해질 수 있다. 물론 추상적 인간노동은 구체적 인간노동처럼 노동시간에 의해 현실적으로 측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동가치설(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생산에 소요된 추상적 인간노동의 크기와 같다)은 상품들 사이의 교환비율을 구하기 위해 각 상품의 생산에 소요된 추상적 인간노동량을 측량하는 이론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기계화의 진행, 노동의 단순화, 노동자의 다능공화는 구체적 노동을 추상적 노동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화폐의 발생과정을 보면 물물교환의 과정에서 어떤 특정상품이 가치척도 또는 계산단위의 역할과 교환수단의 역할을 독점하게 될 때 그 특정상품이 화폐로 되는 것이다. 이 화폐는 각종의 다른 상품들을 직접적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 등가물'이라고 부르며, 화폐는 그 스스로가 일정한 가치를 가진 상품화폐(예를 들믄 금과 은)일 때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곧 가격)이 객관적·법칙적으로 결정된다. 『자본론』에서는 금이 화폐라는 전제 아래서 모든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

화폐는 가치척도(또는 계산단위), 교환수단, 가치저장의 수단 및 지불수단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는 잠재적 자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화폐를 투자해 더욱 큰 화폐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증식을 위해 투자하는 화폐를 '자본'(capital)이라고 하는데, 화폐가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것은 화폐로 무산대중의 노동력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에 관해 논하고 있으며,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은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무산대중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창출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2) 잉여가치의 생산방법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적은 이윤 획득에 있는데, 이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에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정신적·육체적 힘, 즉 노동력(labour-power)을 그 가치대로 임금을 주고 구입해 공장 안에서 그 임금의 가치 이상으로 노동하게 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하게 된다. 노동자의 하루의 노동시간 중에서 노동력의 가치(임금)에 해당하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이라고 하고 그 나머지를 '잉여노동'시간이라 한다. 이 잉여노동이 잉여생산물의 형태를 취해 잉여가치로 실현되며 이 잉여가치가 바로 이윤이다.

따라서 자본가의 투자자본 중에서 노동력의 구입에 사용된 자본만이 잉여가치를 창조·생산한다. 이처럼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자본을 '가변자본'이라고 부르며, 기계와 원료의 구입에 투자된 자본을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투자자본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성되며,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불변 자본의 가치(C)+가변자본의 가치(V)+잉여가치(S)가 된다.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항상 잉여가치의 증대에 노력하게 된다. 그 하나의 방법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수준을 변동시키지 않은 채 하루의 노동시간(즉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하루 10시간의 노동 중에서 필요노동시간(즉 노동력의 가치)이 6시간이고 잉여노동시간이 4시간인 상태에서, 하루의 노동시간을 13시간으로 연장하면 잉여노동시간은 4시간에서 7시간으로 증가하며 이에 따라 이윤도 증대한다. 이것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노동일의 연장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노동일은 24시간까지 연장할 수 없는 일이며, 노동시간의 연장에 따라 노동능률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작업장의 사고가 빈번해지며, 노동자들의 반항을 야기키시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노동일을 고정시켜 둔 채 필요노동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벙법'이라고 부른다. 필요노동시간은 노동력의 가치(임금)을 반영하며,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 및 그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들(즉 임금재)의 가치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자면, 노동력을 계속 공급할 수 있게 만드는 임금수준은 지금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제2세대의 노동자를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은 임금재의 가치를 인하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새로운 기계설비를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하루 10시간의 노동 중 6시간이 필요노동시간이며, 이것은 임금재 30개의 가치와 같다면, 기술혁신으로 임금재 30개를 값싸게 제조해 그것의 가치를 2시간으로 인하하는 경우, 필요노동시간은 2시간이 되고 잉여노동시간은 4시간에서 8시간으로 증가하게 되며 이윤도 그만큼 상승한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의 증대 방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기술혁신을 끊임없이 전재시키지 않을 수 없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3) 자본의 축적과정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생산·실현하고 그 실현된 잉여가치(=이윤)를 다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구입에 재투자함으로써 투자자본의 규모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과정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실현과정(즉 상품의 유통과정)과 잉여가치의 분배과정(잉여가치가 상업이윤·이자·지대 및 기업이윤으로 분할되는 과정)까지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하지만, 제1권에서는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잉여가치가 그대로 유통과정에서 실현되며, 또한 산업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모두 취득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더욱이 노동자의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자본의 축적과정을 논의하고 있다.

우선 자본의 축적과정은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향싱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량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자의 수는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의 수에 비해 기계와 원료의 수량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며, 또한 가변자본(노동력의 구입에 투하된 자본)에 비해 불변자본(생산수단의 구입에 투하된 자본)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를 마르크스는 각각 자본의 기술적 구성과 유기적 구성(불변자본/가변자본)이 고도화한다고 명명했다.

자본의 기술적 구성과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는 노동자를 생산과정으로부터 축출하는 경향을 가진다. 예를 들면 투자자본의 규모가 10억 원인 경우, 그 유기적 구성이 2:8에서 8:2로 상승한다면 취업 노동자의 수는 1/4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고찰한다면, 종전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규모가 4배로 증가해야 하며 시장의 규모도 그에 따라 확대되어야만 한다.

다음으로 자본의 축적과정 경기변동을 수반하는데, 이것이 노동자 계급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경기가 호황인 국면에서는 경제규모가 확대해 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수준도 상승한다. 그러나 불황이 나타나면 실업이 대규모로 발생하며 임금수준도 크게 하락한다. 이처럼 노동자의 운명은 전적으로 자본의 운동에 따라 좌우되며, 불황의 시기에는 자본의 이윤추구욕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잉인 노동인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상대적 과잉인구를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이라고 부른다.

산업예비군은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존재다. 왜냐하면 산업예비군은 자본축적이 노동인구의 자연적 성장에 의해 제약받는 것을 해소시켜 줄 뿐만 아니라, 산업예비군은 자본가에 대한 취업노동자들의 요구와 대항을 약화시키고 자본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잉여노동의 확대를 용이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의 축적과정은 기계의 도입,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경기순환을 내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더 '궁핍'하게 된다. 실업의 위험이 증대하고, 숙련과 지식은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무용지물이 되며, 노동자들은 점차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산업예비군이 주기적으로 창출되며, 생산력을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한다면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노동자들이 빈곤을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궁핍화 경향'인데, 그 내용은 임금수준의 저하 경향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점점 더 자본의 지배하에 종속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의 축적과정은 노동자들의 상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결해 자본의 지배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게 된다고 마르크스는 제1권을 끝맺는다.

2. 제2권의 내용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의 편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편 자본의 변태와 그들의 순환
제2편 자본의 회전
제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아래에서는 각 편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해 볼 것이다.


1) 자본의 변태와 그들의 순환

자본가가 화폐(M)를 투자해 생산수단(MP:기계, 원료)과 노동력(LP)을 구입하고, 노동자로 하여금 상품(C')을 생산하게 하여 그 상품을 팔아 최초의 투자액과 이윤(m)을 획득하는 과정 전체를 가리켜 '자본의 순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이 자본의 순환에서, 자본은 처음에 화폐형태로 있다가 생산요소의 형태로 변화하며, 이 생산요소는 생산과정(P)에서 상품의 형태로 변화하고, 마지막으로 상품은 화폐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이것을 '자본의 형태변화'라고 부르는데, 자본은 화폐형태, 생산요소형태와 상품형태를 차례로 취하면서 가치증식하고 있는 운동체라고 볼 수 있다. 화폐형태에 있는 자본을 화폐자본, 생산요소형태에 있는 자본을 생산자본, 그리고 상품형태에 있는 자본을 상품자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본의 운동은 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의 연속인데, 각 단계마다의 형태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자본은 소기의 이윤을 획득할 수 없게 된다. 화폐자본이 생산자본으로 형태변화하는 영역과 상품자본이 화폐자본으로 형태변화하는 영역은 생산요소의 구입과 상품의 판매가 행해지는 '유통영역'이고, 생산자본이 상품자본으로 형태변화하는 영역은 공장 안에서의 '생산영역'이므로, 자본의 순환은 유통영역과 생산영역의 통일체며, 어느 영역에서의 비정상적인 발전은 자본의 순환을 혼란시키게 된다.


2) 자본의 회전

자본은 화폐·생산요소·상품의 형태를 취하면서 순환하고 있는데, 이 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회전(turnover)이라 말한다. 그리고 처음의 자본형태로부터 시작하여 동일한 자본형태로 되돌아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자본의 회전기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의 합계와 같다. 화폐자본의 순환의 경우, M---C, (MP, LP)...P...C'---M'에 걸리는 시간이 자본의 회전기간인데, M---C와 C'---M'에 걸리는 시간은 유통기간이고 C...P...C에 걸리는 시간은 생산기간이다.

구체적 예에 의거해 자본의 회전기간의 의미를 살펴보자. 만약 어떤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경우,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9개월이 걸리고, 그 상품을 팔아 상품의 가치(투자자본의 가치와 잉여가치)를 회수하는 데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한다(지금 우리는 화폐로 생산요소를 구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자본의 생산기간은 9개월이며, 유통기간은 3개월이기 때문에 자본의 회전기간은 1년이 된다. 만약 이 경우 생산을 진행시키는 데 매월 1000원이 필요하다면, 자본가의 투자자본의 총액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 그는 9개월간의 생산기간 중 매월 1000원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9000원의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품이 생산되자마자 곧바로 팔려 그 대금이 회수되는 것이 아니고 3개월 이후에 대금이 회수되기 때문에, 이 자본가는 3개월간의 유통기간 중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3000원의 화폐자본을 추가로 투자해야만 한다. 따라서 생산기간이 9개월, 유통기간이 3개월인 경우, 총액 12000원의 자본이 필요하게 되며, 12개월 이후에는 상품의 대금(9000원+이윤)이 회수되므로 자본가는 그 화폐로 생산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의 투자 필요액을 절약시키는 방법은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을 단축시켜 자본의 회전을 축진시키는데 있다. 사실상 생산기술의 발달은 단위당 상품의 생산기간을 크게 단축시키고 있으며, 교통·통신 및 신용제도의 발달은 상품의 판매와 구매에 걸리는 시간을 감축시키고 있다.

자본의 회전과 관련하여 생산자본은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구별된다. 기계와 건물에 투자된 자본은 자기의 가치를 한꺼번에 상품의 가치에 이전시키지 않고, 그것의 감가상각액만큼만 상품의 가치에 이전시키며, 상품의 판매에 의해 감가상각액만큼만 회수하고 있는데, 이를 고정자본이라고 부른다. 한편 1회의 상품생산에 자기의 가치를 모두 이전시키며, 그 상품의 판매로 자기의 가치를 모두 회수하는 자본을 유동자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원료와 반제품 및 노동력의 구입에 사용된 자본이 속한다.

그런데 자본의 회전기간은 연간이윤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두 자본의 다른 모든 조건(예를 들면 잉여가치율, 노동생산성)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자본의 회전기간이 12개월인 경우와 1개월인 경우를 비교해 보자. 전자의 경우는 매월 1000원씩 합계 12000원을 투자해 연말에 6000원의 이윤을 획득하게 된다면, 후자의 경우는 매월 1000원을 투자해 500원의 이윤을 획득하고, 이것을 12회 반복하여 연간 6000원의 이윤을 얻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연간이윤율(=연간잉여가치 생산액/투자자본액)은 전자의 경우 50%(=6000원/12000원)인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600%(6000원/1000원)나 된다. 그러므로 자본가들은 이윤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회전기간을 단축시키려고 노력하며,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통신·교통의 발달은 이것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3)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

재생산표식은 연간에 생산된 상품이 어떠한 교환과정을 거쳐 완전히 판매 또는 소비되는가를 쉽게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생산재의 소비는 생산 그 자체를 의미하므로 연간에 생산된 상품의 소비과정을 밝히는 것은 사회적 규모의 재생산이 어떻게 달성되고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과 같게 된다.

연간생산물의 교환·소비과정을 단순재생산에 의거해 설명해 보자. 전년에 생산된 상품은
생산재 6000원과 소비재 3000원인데, 그것의 가치구성은 다음과 같다고 가정한다.



단순재생산에서는 경제가 매년 동일한 규모와 형태로 유지된다고 보기 때문에, 전년의 생산재 6000 D1은 생산재부문의 보충을 위해 4000 C1 만큼 수요되며, 소비재부문의 보충을 위해 2000 C2 만큼 수요된다. 한편 전년의 소비재 3000 D2는 노동자들에 의해 1500원(=1000V1+500V2)만큼 수요되며, 자본가들에 의해 1500원(=1000S1+500S2)만큼 수요된다. 위와 같은 형태로 전년도의 생산물이 완전히 교환·소비되면, 금년도의 생산물은 전년도와 똑같은 구성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매우 간단한 예에서도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아 낼 수 있다.

첫째, 전년도의 생산물에 대한 유효수요의 전체는 자본가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생산재 6000원이 모두 팔리는 것은 생산재부문과 소비재부문의 자본가가 금년에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각각 4000원과 2000원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재 1500원이 노동자들에게 팔리게 되는 것은 자본가들이 금년에도 노동자들에게 1500원의 임금을 지불하기 때문이며, 남은 소비재 1500원은 자본가들이 자기 스스로 구매하게 된다. 따라서 상품의 판매 또는 시장의 문제는 상품의 생산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둘째, 연간의 생산물이 완전히 팔리기 위해서는 그 생산물의 각 구성분이 종류와 가치의 면에서 사회적 수요와 부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개별자본가가 독립적으로 생산계획을 수립·집행하기 때문에 사회적 총생산은 각 부문의 수요와 균형을 달성하기 어려우며, 이에 다라 상품가격의 변동과 일부 자본의 도산 등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 연간 총생산물의 가치는 사회의 소득 총계보다 크다는 점이다. 소득 총계는 임금과 이윤의 합계인데 반해, 총생산물의 가치는 소득 총계에다 불변자본의 가치를 추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 총액으로 연간 총생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2. 제3권의 내용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의 편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편 잉여가치의 이윤으로의 전환과 잉여가치율의 이윤율로의 전환
제2편 이윤의 평균이윤으로의 전환
제3편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제4편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의 상품거래자본과 화폐거래자본으로의 전환
제5편 이윤의 이자 및 기업가이득으로의 분할
제6편 초과이윤의 지대로의 전환
제7편 소득과 그 원천

아래에서는 제3권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볼 것이다.


1) 잉여가치, 이윤 및 평균이윤

자본의 생산과정을 연구하는 제1권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구별이 핵심적이었고, 자본의 유통과정을 연구하는 제2권에서는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구별이 중요했는데, 자본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및 분배과정을 통합하는 제3권에서는 자본투자액과 자본소모액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현실의 자본가들이 경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상품의 가치를 비용가격과 이윤의 합계라고 파악하고 있는데, 비용가격은 상품의 생산에 소모된 자본액(기계와 건물의 감가상각액+원료비+임금)과 같으며, 이윤은 자본투자액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자본가들이 잉여가치가 가변자본으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투자 총액의 산물이라고 파악할 때 잉여가치는 이윤으로 전환한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따라서 잉여가치와 이윤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동일한 것이지만 그 파악 방법의 차이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자본가들 사이에 경쟁에 의해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면, 각각의 자본가들이 취득하는 평균이윤은 그들의 자본투자 총액의 크기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자본가 A는 불변자본 600원과 가변자본 400원을 투자해 잉여가치 400원을 창조하고, 자본가 B는 불변자본 400원과 가변자본 600원을 투자해 잉여가치 600원을 창조하는 경우, 평균이윤율은 잉여가치의 총액 1000원을 자본투자 총액 2000원으로 나눈 50%가 되며, A와 B 두 자본가는 이 평균이윤율에 따라 각각 500원의 평균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균이윤은 잉여가치의 총액이 자본가들의 경쟁과정에서 그들에서 자본투자액에 따라 분배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2)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제1권에서는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진행되는 자본의 기술적 구성과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노동자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이 고찰되었는데, 제3권에서는 그것의 고도화가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 또는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이 고찰되고 있다. 그런데 제3권 제3편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첫번째 장에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설명하고, 두번째 장에서 이윤율의 상승 경향을 설명하며, 그리고 세번째 장에서는 이 두 개의 모순적인 경향들이 어떻게 자본의 축적과정을 규제하며 또한 공황을 발생시키게 되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이윤율이 역사적으로 점차로 저하할 것이라고 예측한 법칙은 결코 아니다. 연간이윤율(r)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연간이윤율은 가변자본의 연간회전수(n)와 잉여가치율(S/V)이 증가할수록 상승하고 자본의 가치구성(C/V)이 고도화할수록 저하한다. 그런데 자본의 가치구성은 기술적 구성(=QC/QV)을 하나의 요소로 내포하고 있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고도화 그 자체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기계화가 취업노동자의 수를 불변자본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시켜 투자자본 총액 중 잉여가치를 낳지 않는 불변자본의 비중을 높이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고도화는 다른 한편으로 임금재의 가치를 인하시켜 잉여가치율(S/V)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자본의 회전기간을 단축시켜 가변자본의 연간회전수(n)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두 개의 모순적인 경향들로부터 자본주의 경제의 운동과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본은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이윤량의 증대로 보상하기 위해 취업노동자 수의 절대규모를 증가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윤율의 상승 경향을 야기시킨 요인들(예를 들면 상품가치의 저하로 일정한 화폐자본이 구입할 수 있는 생산요소의 수량이 증가한다)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생산규모의 끊임없는 증가 시도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시키게 된다. 또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이윤량의 증대로 보상하는 과정에서 산업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소규모의 자본이 커지며, 이 최소규모에 미달하는 화폐자본은 신용기관에 집중해대부자본화함으로써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더욱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는 공황이 발생하는 특수국면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국면은,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이윤율의 상승 경향을 압도해 이윤율이 현실적으로 저하하면, 생산규모의 확대율이 종전과 같이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에 유효수요의 부족-상품의 과잉-공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국면은, 신기술의 도입으로 낡은 기술이 폐기되고 상품가치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교환관계 또는 채권·채무의 관계가 혼란에 빠져 자본의 재생산과정의 마비, 즉 공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특수국면들은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항상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공황과 그 뒤의 불황은 자본주의 경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부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판매량이 격감한 상태에서 이윤량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길밖에 없고, 이에 따라 자본은 대량실업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신기술을 개발·도입하게 된다. 또한 상품의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새로운 종류의 상품과 산업이 개발되어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새로이 창조한다. 더욱이 대량실업의 존재는 노동조직의 재구성과 노동규율의 강화를 용이하게 하여 착취율을 상승시켜 준다. 이리하여 공황과 불황을 겪으면서 자본은 재편성되어 자본주의 경제를 새롭게 발전시키게 된다. 물론 공황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대량으로 유휴화시키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생산력의 발전이나 인간의 욕구충족에 가장 적합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 폭로되는 것이다.


3) 상업이윤과 이자 및 지대

상업자본은 산업자본이 스스로 담당해야 할 상품의 판매업무를 대행함으로써 산업자본이 창조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상업이윤으로 분배받는 것이다. 상업자본은 상품구입자금과 순수유통비용(매매를 성사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품 구입자금은 경제 전체로 보면 산업자본이 자본의 유통기간 중에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금액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순수유통비용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 지출이므로 잉여가치의 사회적 총량에서 보충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산업자본이 투자한 생산자본의 규모를 a, 연간에 창조한 잉여가치를 s, 상업자본이 투자한 상품 구입자금을 b, 순수유통비용을 y 라고 한다면, 사회적 평균이윤율(r)은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r=(s-y)/(a+b+y)

한편 이자의 개념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능자본가(=산업자본가)가 화폐자본가(화폐소유자)로부터 화폐를 차입해 생산활동을 수행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편리하다. 기능자본가는 생산활동에서 창조한 잉여가치 중 일부를 화폐자본의 사용료로서 화폐자본에게 지불하게 되는데, 이 경우 화폐자본가는 이자를 취득하며 기능자본가는 그 나머지를 기업가이득으로 취득하게 된다. 결국 잉여가치가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되는데, 이 분할을 지배하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자는 화폐자본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화폐자본가는 이자를 얻어 그의 화폐를 증식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의 소유화폐는 '이자낳는 자본'으로 역할한다.

지대는 토지소유자가 취득하는 소득형태인데, 여기에는 절대지대와 차액지대가 존재한다. 농업자본가는 사회적 평균이윤율을 달성하면서도 지주에게 지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토지생산물의 가격은 항상 생산가격(=비용가격+평균이윤)을 초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주가 농업투자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업에서의 초과이윤이 지대(절대지대)로 전환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만약 토지의 사유재산제도가 철폐된다면 토지생산물의 가격은 생산가격의 수준으로 저하하게 될 것이다.

토지생산물의 생산가격은 최열등지의 그것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비옥한 토지의 사용자는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지만 지주는 그것을 지대로 흡수하게 된다. 또한 농업자본가는 차지계약 중에 토지개량과 수리시설 등에 의해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지만, 차지계약의 만료와 함께 토지개량과 수리시설은 지주의 것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지주는 그 초과이윤을 지대로 취득하게 된다. 따라서 지주의 존재는 농업생산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며 지력을 소모시켜 농업을 황폐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상업이윤과 이자 및 지대는 산업자본가(농업자본가를 포함한다)가 임금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를 분배하는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산업자본가·상업자본가·화폐자본가 및 지주는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4) 제3권의 마지막 장

제3권의 마지막 장은 제52장 '계급들'이다. 이 장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마르크스는 죽었다. 이 장은 그의 경제학 체계에서 어떠한 위치와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는 이 장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3대계급(자본가계급, 지주계급 및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소득형태(이윤, 지대 및 임금)을 조응시키면서 계급투쟁의 전개과정을 제시하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지배계급의 소득 원천은 노동자계급의 잉여노동이기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은 노동자계급과의 투쟁에서는 동맹세력이 될 수 있지만,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 사이에도 이해대립이 존재하며 자본가계급 안에서도 분파들 사이에 이해대립이 발생한다. 이러한 계급간 및 계급분파들간의 투쟁은 결국 국가를 매개로 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52장 '계급들'은 국가의 분석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추가 가능한 것은 자본---토지소유---임금노동---국가---대외무역---세계시장의 순서로 완성하려고 했다는 점과 '부르주아 사회는 국가형태로 총괄된다'고 지적한 점이다.

(『사상총서6, 마르크스』,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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