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동양학 어쩌구 하는 책을 읽는다.

그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 부담없이 술술 넘기기엔 좋다.

조선일보에 수십년간 연재되며 사랑받았던 이규태 코너의 후속으로

이 분이 펜을 이어잡으셨나 본데 ...

이규태의 박람강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한데 ...

하지만 나름의 색깔은 있다 싶다.

 

헌데 그 색깔이란 것이 풍수나 사주 등의 ...

본인 말로는 '동양학'이라 일컫는 것들이 근저에 깔려 있는데,

(다른 저서에서는 '강호 동양학'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동양적인 것'의 신비주의화도 문제거니와

이런 것들을 굳이 현대 한국인에게 필요한 동양학의 지혜니 뭐니 하면서

월요일 아침부터 부여잡고 읽어드려야 하나 싶다.

 

다만 혼자 재물을 움켜잡고 안 내놓는 것이 아니라

두루 잘 사는 것을 추구했던 조선 시대 양반가와 부자들의 이야기는

현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우리식 노블리스 오블리쥬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자나 2014-12-23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판.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