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럴 수도 있다. 처녀작으로 권위있는 문학상을 움켜쥐며 화려하게 등단한 신예작가도 가끔은 조야한 상상력에 기반한 별 볼일 없는 장르소설을 써내거나 -[오분후의 세계]- 거울을 보다 어느덧 내려앉은 세월의 더깨를 느끼며 '아, 나도 이제 중년이구나'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일게다.

 

 

 

 

 

 

 



암으로 아내를 사별한 중년남성 아오야마 시게히루(靑山重治)가 문득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7년만에 드디어 재혼이란 것을 해볼 생각을 한다. 문제는 방법. 그는 친구 요시가와의 제의로 여배우 선발을 가장한 마누라 오디션을 꾸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눈길을 끄는 제목의 전말이다. 오디션에서 만나 홀딱 반해버린 '묘령의 여인' 야마사키 아사미(山崎麻美)와 사귀게 되면서 인생의 봄이니 하는 것까지 다시 느끼게 되는 남자.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중년남성이여, 힘내라'류의 소설이다. 오디션을 통한 아내 구하기란 소재도 '예쁘고 머리 좋고 집안도 좋은, 고전적인 훈련을 쌓은 천사같은 여자 열명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p.30)하고픈, 남정네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환타지를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귄지 몇달 만에야 드디어 둘만의 밀월 여행을 떠나는 그 남자, 그 여자. 하지만 날카로운 첫날밤의 추억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지고 만다... 그 뒤의 결말이 문제인데, (아직 책을 읽지 아니한 분들을 위해 세세히 말하는 것은 삼가토록 하겠다) 결말 자체도 의외인데다 그것이 별다른 개연성 없이 갑작스레 전개되면서 독자를 몰입시키지 못하고 겉돌게 만들고 있다. 독자를 소설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할 수 있는, 여자의 행태를 설명해 주는 세부적인 심리묘사가 너무나 부족하다. 아니, 아예 전무하다고 말해도 좋을 지경이어서 뜬금없기조차 하다.



소설의 전반부와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후반부의 뒷심 부족 때문에 소설은 작가가 말하는 '무서운 여자'를 형상화하지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탐색하지도, 사랑의 다른 면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로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류의 어정쩡한 일본식 괴담소설이 되어버렸다.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와 심리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여 야마사키 아사미의 트라우마를 좀더 설득력 있게 드러내 보였다면, 이 작품은 어쩌면 빼어난 문제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흥미나 자극하고 괴상하고 예측키 어려운 결말으로 독자를 놀라게 만들기나 하는 센세이셔날리즘에 그치는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말이다.

 

 

 

 

 

 

 

200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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