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저널리스트 타치바나 타카시의 기행문 모음인데...

아스라한 바다의 풍경을 깔고 필기체로 휘갈겨 쓴 멋들어진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 즉 당대 일본의 저명한 지식인이 홀로 어디론가 떠나서 인간과 우주, 운명, 삶과 죽음, 뭐 이런 고차원적인 주제를 처절한 고독 속에 탐구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기대와는 약간 동떨어진 주제들을 종횡무진 섭렵하는 책이다. 

자신의 여행론과, 여행을 많이 다닌 데 비해 여행기가 빈약한 데 대한 변명, 그나마 언론에 발표해서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각각의 여행에 대한 배경 설명 등이 약 이백여 쪽에 걸쳐 장황하게 펼쳐지는 서론은 저려오는 다리를 달래가며 열시간 씩 앉아 가야 하는 국적기 삼등석이라 치자.

본론에서는 멋들어진 앞서의 표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잡다한 주제들, 곧 가르강튀아적이라는 수식까지 붙인 프랑스 와인 기행,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는 중동 기행, 반핵 영화를 상영하며 진정 생활 속에 뿌리내린 저항운동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럽 배낭 여행,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에 대한 장송곡이자 그곳의 핵심인 금융 산업에 대한 보고서(미국 금융 산업의 '놀라운' 정보화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이미 '제3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지금 수준에서 보면 뜬금없기만 하다. 삼십여년 전에는 이 정도를 가지고 놀라워 했구나, 하는 격세지감...) 등, 다양한 여행담들이 펼쳐진다.  

 

책을 뽑아들 때의 기대와는 약간 동떨어지긴 했지만 이제껏 모르던 새로운 세계,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완정한 세계를 이루는 것에 대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자세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점은 역시 타치바나 답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모험성, 그 무엇이 가지는 의외성, 모험과 전면적으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는 전면성이야 말로 여행의 매력이라 할 진데, 이 점에서 [사색기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고 해야겠지.

 

MA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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