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23살에 처음 쓴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가. <일식>보다 <달>을 먼저 읽었고, 그 정취에 흠뻑 젖어버렸다. 다음 책 소식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9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인터뷰이다.
―큰 상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일본 문단의 최고 권위라고 알려져 있는 아쿠타가와상을 학생의 신분으로 그것도 첫 작품으로 수상하게 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상입니다. 긴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가 아직 여로의 쓴맛을 맛보기도 전에 진수성찬부터 대접받은 격입니다. 먼 훗날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지금보다는 더 떳떳하고 뿌듯할 텐데요. 한눈팔지 말고 작품활동에 더욱 정진하라는 뜻이라 여기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수상 발표 직후 일본 언론은, “음, 좋군요. 이런 작품을 아쿠타가와상이 인정했다는 것은, 아쿠타가와상에게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다소 오연한 히라노의 소감에 ‘기자들도 압도되는 분위기였다’고 기자회견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주간 문춘』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 취재에 영합하지 않는 태도는 축구계의 나카다 선수와 비슷한 타입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요즈음 언론의 보도 분위기를 보면, 비단 문학계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가 ‘히라노 열풍’에 휩싸인 듯한 느낌입니다. 수상 이후, 주위의 시선을 비롯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법학도에서 유명 작가로 변신한 기분이 어떠습니까.
“한마디로 깜짝 놀라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치 하루아침에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서 타임 슬립을 체험하고 있는 듯한…… 일종의 컬쳐 쇼크라고나 할까요. 나 자신은 변한 것도 없고 또 변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주위가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요즘은 원고 청탁이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불만입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옵니다. 머리 염색이 좀 그렇다느니, 이제 돈도 꽤 생겼을 테니 양복이라도 사입고 다니라느니……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일종의 열풍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열도 내리고 바람도 자겠지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열풍이 지나간 이후에 찾아올 무관심과 비판적 시각에 대비하여, 자신의 스타일이나 페이스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의 수상 소식이 저에게 가장 기뻤던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지난해에 난생 처음으로 투고한 『일식』이 신조사(新潮社)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문예지에 실리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가 훨씬 흥분되었었지요.”
―그때의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시지요.
“당시 저로서는 『일식』이 얼마만큼의 작품적 가치가 있는지, 또는 나의 창작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자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판사의 편집장 앞으로 편지와 함께 원고를 보내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서 한 달쯤 지났을까요, 편집장으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교토까지 직접 찾아오셨더라고요. 문예지 『신조』에 실리게 됐다는 통보를 그 자리에서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기쁨을 다시 맛보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도 신조사의 편집장 마에다 씨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일본 언론이 전하는, 신조사의 편집장 마에다의 말을 들어보자.
“일 년 전에 히라노가 자신의 문학관을 담은 열여섯 장의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보들레르에서부터 니체, 종교학자 엘리아데까지 인용한 편지에서, ‘나는 예술지상주의자이며, 문학으로써 성(聖)스러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신인상이라는 제도 자체에 의문을 갖고 있으므로, 무언가 다른 형식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편지와 함께 보내온 것이 『일식』입니다. 읽고 나서 한동안 몸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를 만나러 곧바로 교토로 갔지요.”
무명 신인이 투고한 작품이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지 『신조』의 권두소설로 전재된 것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일본 문예지의 기나긴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는 것이 마에다 편집장의 말이다.
―『일식』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일식』을 쓰기 전에도 두 편 정도 소설을 쓴 경험이 있었지만, 세상에 내놓을 목적으로 쓴 것은 『일식』이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힘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어요. 게다가 소설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중세 유럽이기 때문에, 구성 단계에서부터 상당히 세밀하게 준비를 했지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는, 예를 들어 의복이나 음식 따위에 관한 묘사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겠지만, 무대가 중세 유럽인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자잘한 부분이나마 당시의 상황에 어긋난 묘사가 발견되면, 비록 픽션이라 하더라도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잖습니까. 소설의 본질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약 육 개월 동안에 걸쳐 당시의 상황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면서 참고가 되는 문헌을 읽어나갔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의식주 따위와 관련된 기초적인 서적에서부터, 당시의 역사나 사상, 신학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 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읽었지요. 오래 전부터 중세 유럽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의 토대는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요. 그리고 나서 다시 육 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 글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작품이 나오기까지 일 년 정도가 소요된 셈이 되네요.”
좀더 덧붙이자면, 히라노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작품의 시대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시기는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전통의 기독교에 있어서, 육과 영이라든가, 신과 세계라든가가 무한히 접근했습니다. 20세기 이전에 단 한 번 있었던 예외의 시기였지요. 그것이 플라톤주의 수용과 종교개혁에 의해, 다시 신과 세계는 짝 갈라져서, 육에 대한 영의 우위가 확립되어버립니다. 그 갈라지기 직전의 긴장된 시기가 『일식』의 시대 배경입니다.”
―걸작이 탄생한 이면에는 그런 빈틈없는 준비와 노력이 있었군요. 그런데 『일식』의 문체나 내용을 보고 회고(懷古)적 또는 현학(衒學)적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다시 말해 표현이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지적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껏 글을 써오면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일부러 어렵게 쓴 기억은 없습니다. 반대로 적절한 표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소 어려운 단어라는 이유로 애써 쉬운 표현을 찾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있어, 독자의 수준을 낮게 설정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골라가면서 쓰는 태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리 오가이의 문체가 어렵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의 작품들을 주로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어요. 물론 어려운 표현이 많이 등장하지만,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가며 보면 되지 않겠어요? 소설이라고 해서 공부하면서 읽으면 안 된다는 법 있습니까? 설사 모리 오가이의 문체가 다소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표현을 쉽게 하겠다는 의도로 잡다한 설명을 늘어놓았다면, 그의 작품들은 지금의 무게를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저의 작풍(作風)을 보고 회고조(懷古調)라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이는 『일식』의 작품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회고적 취미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부정적입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갈색 머리와 귀걸이가 작가의 반회고적 성향을 대변하고 있잖아요!
“하하하! 오늘도 한마디 듣고 말았군요. 이제 유명해졌으니까 귀걸이 좀 그만 하고 다니라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합니다. 다시 작풍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식』의 경우는 중세 유럽의 수도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 측면에서 다소 고전적인 문체를 도입한 것이지요. 그리고 당시의 유럽 분위기는, 스콜라 철학적인 고전주의와 르네상스적 인문주의가 부딪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문체와 관련지어 표현하자면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이전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갈등적 상황을, 가능한 한 그 시대를 현대로 설정하여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화제를 가벼운 쪽으로 돌려볼까요. 저는 작가의 어린 시절, 다시 말해 작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배경에 관심이 많은데……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셨나요? 예를 들어 문학소년이라고 불렸다든지…….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흔히 말하는 문학소년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초등학교의 방학 숙제 등을 통해서, 나츠메 소세키의 『봇챵』이라든지 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 같은 소설을 누구나 읽게 되지요. 일종의 권장도서 또는 모델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저도 그런 정도의 독서 수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시절에는 문학작품보다는 오히려 그림이나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나아가 줄거리뿐만 아니라 구성이나 문체를 주의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흔히 고전문학 또는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또는 카프카나 토마스 만 등의 작품을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세계는 섭렵을 하셨나요? 그리고 주로 언제쯤 그런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까?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느 정도 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충 본 적이 있는 작품들을 다시 의식적으로 탐독했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 명작을 다 독파했다고 하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저는 그러한 어린 시절의 독서가 얼마만큼 깊이 있는 이해를 동반했을까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이 『죄와 벌』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세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어린 시절에 읽은 책들이 그다지 많지도 않은데다 매우 편향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의식적으로 고전에 대한 독서에 중점을 두고, 읽는 분야와 폭을 넓혀갔지요. 다시 말해 고등학교 때까지는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좋아하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제 독서 스타일에 대해 약간의 반성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그 동안 등한시했던 분야로까지 독서의 폭을 넓히고 고전에 대한 지식이나 교양 등을 염두에 두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비교적 편향된 독서를 했다고 하셨는데요, 주로 어떤 분야였습니까?
“중학교 시절이라고 기억합니다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고 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미시마의 작품을 줄기차게 읽어나갔지요. 아시다시피 미시마는 대단한 독서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토마스 만이나 오스카 와일드에 관한 언급이 많지요. 그렇게 미시마의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들을 찾아 읽는 식으로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굳이 시대를 한정짓는다면 19세기 프랑스 문학이 주요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저의 작품세계의 배경에 미시마 유키오나 19세기 프랑스 문학이 깔려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하나의 중요한 계기나 열쇠가 됐다고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의식이 싹튼 것은 언제쯤이었나요?
“나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좀처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되고 싶다는 것과 된다는 것이 다르듯이, 바람은 있었지만 실력이나 자질이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앞섰지요. 그래서 이것저것 습작을 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겁니다. 최근에 들어서, 그러니까 『일식』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 이르러서야 목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물론 지금은 평생 작가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가족적 배경에 관하여 들어볼까요.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저는 아이치현 출신인 아버지와 후쿠오카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분은 학창 시절에 도쿄에서 만나, 결혼 후에는 아이치현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저도 아이치현에서 태어났지요. 그런데 제가 한 살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후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두 아이(누나와 저)를 데리고 후쿠오카의 친정으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의 기억이 제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어머니가 물심양면으로 고생이 많았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향이나 가족의 이미지는 자연히 외가가 배경이 됩니다. 현재 저희 가족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저, 이렇게 네 식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편모 슬하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군요.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생활은 어땠습니까?
“의외로 그렇게 어려웠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치과의사이셨기 때문에 외가 자체가 비교적 윤택한 집안이었고, 게다가 어머니도 남의 신세를 지기 싫어하시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열심히 일을 하셨지요. 사회적으로도 칠팔십년 대의 일본은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다고 할 수 있고요.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체험이나 가족관계, 또는 생활 등이 제 자신의 가치관이나 작품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 역시 관심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렇다 할 인과관계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어렸을 때부터 우등생이었을 거라고 추측이 되는데요…….
“본의 아니게 자랑을 늘어놓는 격이 되어 쑥스럽습니다만, 객관적으로 볼 때 항상 성적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거의 빠짐없이 반장을 도맡아 했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조용한 걸 좋아하는데다 숫기도 없는 편이라 반장이나 급장 따위는 그다지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까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된 것도 같습니다.”
―집안이나 주위에서 배고픈 소설가보다는 법관이나 관료가 되라는 등의 압력은 없습니까? 그리고 본인의 본심은 어떤지요? 혹시 문학이 아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든지…….
“지금의 심정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런 방면으로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저의 직업이나 장래에 대해서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법관이나 관료 등의 직업에는 비교적 관심이 덜했지만, 실무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는 꽤 강한 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원이나 은행원 같은…… 아직도 그러한 욕구가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건방진 표현이지만, 평범한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느낌입니다. 자신이 걸을 수 없는 길에 대한 동경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저기로 취직을 해서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일종의 소외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정은 문학을 하는 이상 언제까지고 제 마음속에 남아 있겠지요. 플로베르 같은, 제가 보기에는 평범한 세계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듯한 예술가마저도, 만년에 공원을 거닐다가 어느 단란한 부르주아 가족을 보면서 부러워했다는 일화를 읽은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누구나 자신이 맛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는 동경을 갖는 법이지요. 중학교 땐가 토마스 만의 작품 중에 「광대」라고 하는 짤막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청소년기 이후의 정신세계는 바로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철저한 예술적 기질을 타고나지도 못했으면서, 문학과 예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자기 고집만 늘어가는…… 하지만 저같이 완전한 ‘끼’를 타고나지 못한 평범한 소설가에게는, 그렇게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다시 작가의 작품세계와 관련된 내용으로 돌아갈까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에 관해 언급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달리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다면……?
“저는 엘리아데를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진실로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같은 주장이 이렇게까지 주목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엘리아데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학설을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함축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첫째는, 단순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글을 너무나 재미있게 쓴다는 것입니다. 그 재미를 지탱하는 바탕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의 방대한 양의 지식과, 그러한 지식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뛰어난 문장력이 깔려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철학 종교학 민속학 문학 미학 등을 망라한 인류의 총체적인 문화, 다시 말해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시점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지요. 아무튼 엘리아데는 저의 사고나 작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 일본 작가로는 모리 오가이와 미시마 유키오를 들 수 있겠군요. 모리 오가이의 문체는 『일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그의 문체를 감각적으로 익히기 위해서 작품집을 녹음한 낭독 테이프를 반복해서 듣기도 했지요.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는 한마디로 말해 작가적 기질이 비슷하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에 그의 소설을 읽고 독서에 재미를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면 제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앞으로 펼쳐질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작가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영역, 또는 앞으로 써보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저의 기본적인 관심은, 인간에 관한 보편적 본질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에는 필연적으로 현대에 대한 관심이 요구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대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식』과 같이 과거가 무대가 되는 소설을 다시 쓰게 되더라도, 그 시대나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는 뜻이지요. 저는 추상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주인공의 추상성보다는, 등장인물의 지역성이나 구체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와 같은 신화적 인물조차도, 보편적 존재로서의 그들이 지닌 구체성이 훨씬 큰 의의를 갖는다고 봅니다. 지금으로서는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럽과 일본이 제가 다룰 수 있는 세계의 한계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만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구체적 사건과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재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 그래야만 되겠지요.
『일식』이 앞으로의 제 창작활동에 있어서 일종의 입구와 같은 역할이 되었다고 봅니다. 입구, 즉 문이라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가치에 의해서만 그 의미가 부여되듯이, 앞으로 제가 얼마나 좋은 작품을 써나가느냐에 따라 『일식』의 의미, 나아가서는 이번 수상의 의미가 평가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창작활동에 정진해나갈 생각입 니다.”
―끝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들려주시지요.
“외국인과의 인터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만, 이국적인 느낌이나 일종의 거리감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요. 물론 언어의 장애 없이 대화를 나눈 탓이 크겠지만, 정서적으로도 아주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죄송하게도 한국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지만,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는 오늘의 느낌만큼이나 좋은 편입니다. 그것은 제가 자란 큐슈 지방이 한국과 아주 가깝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저의 작품에 어떤 평가를 내려주실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아무쪼록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끝까지 읽고 나서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한 번 한국에 가보고 싶습니다.
끝으로, 미진한 저의 작품을 읽어주신 한국의 독자 여러분과 출판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문학동네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