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통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때는 제법 가깝게 지냈는데, 다들 먹고 사느라 바쁘다보니 어쩌다 생각이 나야 연락하는 사람들. 그나마도 내 편에서 먼저 전화를 하는 일은 드물고, 몇 달에 한 번씩 문득 전화가 걸려온다. 요 며칠 그런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다들 첫 인사는, 잘 있었어? 요즘 뭐 하고 지내? 이다. 다시 책이 재미있어졌고, 서재질 하면서 시간 보낸다는 내 대답에 대한 반응은 대개 이렇다.

1. 너 할 일 없구나?

2. 니가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지.

그 인간들 책 안 읽는 건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대체 할 일 없어서 책 본다는 건 무슨 소린지. 술마시고 쇼핑하고 TV 보는 게 할 일이라는 건지, 회사 일 바쁜 게 자랑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나야 뭐 회사 일 널널하고, 6시면 칼퇴근하고 (덕분에 월급은 많지 않지만), 술도 안 마시고, TV도 안 보니까 시간은 무진장하니 많다. 친구들은 주로 주말에 만나니, 평일 저녁은 온전히 내게 쏟아부을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흐응, 웃고 만다. 뭐 한 마디 하자면, 냅둬라 이렇게 살다 죽을란다, 정도.

전엔 나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고 하는 게 나름대로 의미있고 좋았는데, 점점 그런 데 미련이 없어진다. 저녁에 혼자 있는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더 커지고, 일에 매여 있는 친구들 보면, 혹 그들은 자랑스러워 하더라도, 내 보기엔 안 됐다. 아마 그 사람들도 나를 볼 때 그렇겠지?

뭐 어쩌랴,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것을. 연락은 점점 뜸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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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가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지...
참 그리운 말입니다.
어때요? 이 말 위로가 되죠?^^

urblue 2004-08-2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님은 정말...자주 저를 웃게 만드신다니까요.

2004-08-24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4-08-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할 일이 없어서 책을 본다고 생각하시다니.... 책 읽는 사람은 존경해주어야 합니다!^^*

2004-08-24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08-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영엄마님, 이리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제 주변에 있는 인간들, 한 때는 책 좀 본다 어쩐다 하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다들 직장이나 집 장만 같은 얘기만 합니다. 서재분들 보면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답니다.

하얀마녀 2004-08-2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넘들도 결혼하니 그저 주식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주로 돈 얘기하더라구요.

urblue 2004-08-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도 여우같은 마눌님 생기면 바뀌는 거 아니에요? ㅋㅋ

mira95 2004-08-2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더군요~~ 제 주변에 임신한 사람이 있는데.. 남편이 하나도 협조를 안해준다고 투덜거리던데요... 저는 임신하면 남편이 여왕님처럼 떠받들어주는 줄 알았는데...

깍두기 2004-09-1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참여하려고 이 글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게 되었습니다. 알라딘이 좋은 이유는 이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 많아서인가 봅니다. 결혼했다는 것만 빼고는 저도 님과 비슷하군요.(근데 결혼하면 몸은 이렇게 하고 싶어도 새끼들 입에 밥 넣어주려면 마음대로 안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