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31 #시라는별 76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황인찬 시인이 쳐놓은 덫에 걸려 그의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대출해 읽었다. 2012년 출간된 이 시집은 24세의 황인찬 시인이 등단 2년만에 이뤄낸 놀라운 업적이라고 한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선사”하는 “희귀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이후 젊은 황인찬은 ‘시인계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붙고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가 각각 2만 부씩 팔려 나갈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고.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사랑을 위한 되풀이』도 1만1천부 넘게 나갔다고 한다.

이 시집에는 5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류를 바꿔 놓았다는 황인찬의 작법이 여전히 낯설지만 『사랑을 위한 되풀이』 보다는 편하게 읽었고 이따금 즐겁게 읽었다. 이해도 되고 마음에도 들었던 시를 꼽자면 <건조과>, <구관조 씻기기>,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파수대> ,
<레코더> 그리고 <무화과 숲>이었다.

황인찬의 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관조‘하기 같다. 그는 자연을 인간의 시선으로 예찬하지 않고 사물에 인간의 마음을 싣지 않는다. 그저 응시하고 묘사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담담하게. 나는 이 점이 썩 마음에 든다. 그래서 작품 해설을 쓴박상수 시인의 이 평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었다.

˝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대상을 인간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주체의 정념으로 일렬 배치하는 서정시의 기율 대신 사물의 사물성과 순수성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보존하려는, 김춘수로부터 시작된 한국 시의 저 오래된 반인간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율:도덕상으로 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 

<구관조 씻기기>는 황인찬 시인의 그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난 시로 읽혔다. 시적 대상을 내게로 끌어당기려는 구식 관조(구관조)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식 관조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날, 시인은 숨소리조차 내기 미안할 만큼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를 다룬 책이다. 시인이 고른 두 개의 인용문이 재밌으면서 의미심장하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스스로 목욕을 할 줄 아니 씻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구관조 씻기기‘라는 제목은 인간이 인간의 잣대로 자연에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누군가가 저만의 판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을 꼬집는 역설일 수 있겠다.

자연도 사람도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내 관점으로 해석하지 말 것. 진정한 배려란 씻길 필요가 없는 새를 목욕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이 사방으로 튈 때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주는 것˝이라는 것. 황인찬은 조용한 도서관에서 새에 관한 책만 읽고도 한 편의 시를, 그것도 무언가를 깊이 사색하게 만드는 시를 써낼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또한 ‘자기복제‘는 기피하며 거듭나기를 원하는 시인이다. ​

˝제가 좋아하고 항상 감탄했던 문학작품들은 운 좋게 잘 가지고 태어난 반짝이는 재능 같은 게 아니고, 오랜 시간을 견뎌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그래서 한 명의 시인이나 작가로 완성된 사람들을 더 좋아했거든요. 저는 그래서 랭보나 기형도 같은 시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의 재능은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배울 수 있는 건 태도겠죠. 점차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자세, 그러면서 자기복제를 하지 않는 것, 그렇게 희소한 태도를 견지한 작가들에게 감동을 받았어요.˝
(2016년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 중)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이 꿈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독자인 나 또한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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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31 00: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구관조 키워봤습니다
7년을 살다갔는데
삐약이 병아리 보고
궈엽다는 말을 할정도로 지능이 유아급이였어요
구관조 스스로 씻고(짝짓기 하려고 몸단장)거울 앞에서 재롱도 😄
무화과 숲 시 2022년 흑호랑이 시로넘ㅎ 좋습니다
떡국 먹는날
책읽기님 복 마뉘🤗🎰


행복한책읽기 2022-01-31 11:21   좋아요 4 | URL
구관조도 키워보시다니. scott님은 실물 경험도 참 많으세요. 스스로 씻는 모습을 직접 보셨다니. 와~~~~ scott님 맛난 떡국 드시고 복 그득 챙기세요~~~^^

mini74 2022-01-31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도 혼나지 않은 꿈 ~ 저도 이 구절 참 좋아요 ~ 책읽기님도 복 가득가득 받으시길 *^^*

희선 2022-02-01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첫번째는 못 보고 두번째는 봤어요 황인찬도 시인계 아이돌이라는 말을 들었군요 저는 박준이 그렇다는 말을 전에 들었어요 자연도 사람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 좋네요 그런 말 알아도 그러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