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8 #시라는별 38 


아아 광주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1980년 5월의 참상을 처음으로 써서 5.18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시이다. 작년 11월에 올린 이 시를 다시 올린다. 

1980년 6월 1일. 광주 전남고 독일어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전남매일신문 편집국장 대리로 있던 문순태 소설가로부터 광주의 통곡을 시로 써 달라는 청을 받는다. 시인은 아내와 두 아이를 내보내고 단칸 셋방에서 109행의 시를 일필휘지로 썼다고 한다. 집필 시간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시는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 제1면에 실렸다. 이 시가 발표된 후 시인이 겪었을 고초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25일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았고 교사직을 버려야 했으며 이후 학원 강사와 신문사 기자로 가족을 부양했다. 또한 '5월광주동지회'를 비롯 5.18광주와 관련된 모임과 활동을 이어갔다. ​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누가 썼느냐, 내 몸 속에 5월에 죽은 사람들이 들어와 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3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경향신문 20190525 )

https://news.v.daum.net/v/20190525180019424​

대학 신입생 초입에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알게 만든 세 사건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 5.18 광주항쟁 그리고 전태일 분신. 몰라서 부끄러웠고, 모르게 해서 분노했다. 

202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가수 안치환은 김준태 시인이 쓴 '노래'라는 시를 빌어 다시 한 번 광주의 넋들을 기렸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 있다.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김준태 '노래') 

2014년에 한스미디어에서 김준태 시인의 영역 시집이, 2018년에는 일본어판 시집이 출간되었다. 2021년 5월 이정국 감독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5.18을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미얀마에서는 우리의 5.18 같은 민주화 투쟁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무력하지만, 나는 믿는다. 미얀마 시민들이 결국은 이겨낼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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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8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5월18일이네요. 그날의 희생이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scott 2021-05-18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이 노래 들으면서
오늘 이땅에서 힘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이들
잊지 말기, 영원히 ㅠ.ㅠ

희선 2021-05-19 0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로 마흔한해라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때 이 시를 써서 시인이 참 힘들었겠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미얀마 길어지는군요 좋아져야 할 텐데, 이런 생각밖에 못하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