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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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시라는별 5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 
-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 나는ㅡ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주말에는 가능한 아이들과 함께 산행 혹은 산책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사온 동네(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에는 마침 뒷산이 있어 큰마음 먹지 않고 물과 간식거리만 챙겨 가볍게 나설 수 있다. 이 가벼움은 물론 내게만 해당된다. 아이들은 . . . 흠흠 . . . 몸이 정말 무겁다. ㅠㅠ

아파트를 기준으로 등산로가 좌우로 나뉜다. 좌측길은 들어갈수록 사람 사는 동네를 벗어나고 우측길은 사람 많은 동네 중심가로 이어진다. 나는 코로나 19로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산 지 어언 1년이라 인적 드문 좌측 등산로를 선호하지만 아이들은 노선도 짧고 놀이터도 자주 등장하는 우측 등산로를 선호한다. 어제는 왼쪽길로 긴 시간, 오늘은 오른쪽길로 짧은 시간 산행을 했다.

하여 떠오른 시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이었다.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로도 해석된다. 이 시와 시인은 워낙 유명해서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조차 많이들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대학 때 수업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더더기 없는 좋은 시다.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를 부른다. 나는 아쉬워는 하나 후회는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택했거나 택하지 않은 길들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다. 다만 반백년 인생에 이르고 보니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때 좀더 치열하게 파고들 걸 하는 아쉬움은 정말로 크게 남는다. 허나 또하나 알겠는건, 사람이란 저마다 가진 역량이라는 것이 있어 저 열심히나 치열하게가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나란히 걷는 내 아이들은 어떤 길들을 택해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지금은 사람 많은 길을 좋아하는 저 아이들이 나중에는 다수가 잘 찾지 않는, 혹은 다수가 절대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택할까. 어떤 길이 되었건 그 길에서 나를 찾고 너를 찾고 ‘낙‘을
찾았으면 좋겠다.

번역은 고 장영희 선생님의 영미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에 수록된 것이다. 장영희 선생님은 내 은사님이었다. ‘이다‘가 아닌 ‘었다‘라고 쓰게 되다니 마음이 참 . . . 장영희 선생님의 번역은 아주 훌륭하다. 시 해석은 물론이거니와 운율을 아주 잘 살려놓았다. 이
시집은 고 김점선 화백의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소장용으로 그만이다. 나는 이 시집을 여기저기 선물도 꽤 했다.

봄날처럼 따스한 겨울날. 아이들과 산행을 하다 이 시를 떠올리고 장선생님의 책을 다시 펼쳐 볼 수 있어 기뻤다. 선생님의 글은 종종 선생님의 육성이 지원되는데, 그 높은 어조와 속도만큼은 지원 불가의 영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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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나무숲은 참 멋지네요! 멜랑꼴리한 서양 풍경화에 나왔을 법 한 분위기이네요!ㅎ 담주도 즐건 한주 되시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1:35   좋아요 2 | URL
그죠. 저기 뒷산의 오지인데 아이들 덕에 질퍽한 땅 밟고 내려가 찍었답니다^^ 막시무스님도 즐건 한주 만들어가세요~~~^^

미미 2021-01-24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것을 바꾸어놓았네

요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홍정욱 7막7장에서 어릴때 읽구요. 여태 앙드레지드라고 알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프로스트의 말이란걸 확인했어요. 어쨌거나 마음 한켠에 자리했던 좋은 말
또 제대로 보니 반갑습니다 사진도 멋짐^^♡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2:17   좋아요 1 | URL
어머. 그랬군요. 7막7장. 장안의 화제였던 책. 넘 샘이 나 멀리한 책. 어찌나 잘났던지. ㅋ 미미님께 추억을 떠올리게 해 기뻐요^^

2021-01-27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1-27 15:58   좋아요 1 | URL
아 장샘 애독자를 이리 만나니 넘 반가워요. 장샘이 하늘에서 미소 짓고 계실듯요. 장애와 무관하게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답니다^^

라로 2021-01-28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선생님을 은사로 두시다니!!! 책님 넘 부러워요!!! 제가 알라딘 공식 장영희 샘 마니아 1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분 책은 단 한 권 빼고 다 갖고 있는데 그 한 권 찾기가,,,이제는 거의 포기.ㅠㅠ 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저 시에 대한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그때 교수님이 가장 애정하는 시인이 프로스트 였는데, 자기가 어렸을 적에 어느 가정집에서 프로스트가 읽어주는 시를 들었었데요. 같은 동네 출신;;; 세상은 참 요지경 같은데도 질서가 있어요. 동향사랑, 뭐 이런.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럼 라로님이 저보다 장샘 책을 더 많이 소장하고 더 많이 보셨네요. 장샘이 살아계셔 제가 라로님 얘길 전해드렸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얘, 그런 애독자들 수두룩해. 너희들만 내 유명세를 몰라!!˝ ㅋㅋㅋ 정말로 제자들은 몰랐어요.^^;;; 프로스트가 직접 읊어주는 시를 듣는 행운을 누리셨다니, 그 교수님 와~~~ 근데요, 그 한 권이 뭘까요????

라로 2021-01-28 21:06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몰라요. ^^;; 한때 어마어마한 팬이었어요. 그 한 권은 <여자에게>라는 책이에요. 그분 뿐 아니라 다른 분도 함께 글을 쓰셨는데 이거 재발간 안 해주나 싶네요. ^^;

그런데 책님이 쓰신 그분의 말투는 제 생각처럼 넘 귀여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