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모자 장수와 요 임금


11. 송나라 사람이 예식 때 쓰는 모자를 잔뜩 가지고 월나라에 팔러 갔습니다. 그러나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을 해서 모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요 임금은 세상을 잘 다스려 나라가 태평해지자, 멀리 고야산에 사는 네 스승을 뵈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분 강 북쪽 기슭에 다다랐을 때, 망연자실해 자기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큰 박과 손 트는데 쓰는 약


12.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위 나라 임금이 준 큰 박씨를 심었더니 거기서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네. 거기다 물을 채웠더니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지.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없이 납작해서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는데 크기만 하고 달리 쓸모도 없어 깨뜨려 버렸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약을 손에 바르고 무명을 빨아서 바래는 일을 대대로 하였다네. 지나가던 길손이 그 말을 듣고, 금 백 냥을 줄터이니 약 만드는 비방을 팔라고 했지. 그 사람은 가족을 다 모아 놓고 의논하기를 ‘우리가 대대로 무명을 빨아 바래 왔지만 기껏 금 몇 냥 밖에 만져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약의 비방을 금 백 냥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팝시다’ 하였다네.


13. 그 길손은 오왕에게 가서 (그 약의 효험을) 설명했네. 마침 월왕이 싸움을 걸어오자, 오왕은 그 길손으로 수군 대장을 삼았다네. (그 약으로 수군들의 손이 트지 않도록 할 수 있었기에) 겨울에 수전(水戰)을 벌여 월을 대패시켰다지. 왕은 그 사람에게 땅을 떼어주고 영주로 삼았다네.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었는데,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 밖에 못했으니, 똑같은 것을 가지고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거나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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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길손처럼 살면 부자되겠다.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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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나무?


14.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네. 그 큰 줄기는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서 먹줄을 칠 수 없고, 작은 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 없을 정도지. 길가에 서 있지만 대목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이처럼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걸세.”

장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너구리나 살쾡이를 본 적이 없는가? 몸을 낮추고 엎드려 먹이를 노리다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이 뛰고 낮게 뛰다 결국 그물이나 덫에 걸려 죽고 마네. 이제 들소를 보게. 그 크기가 하늘에 뜬구름처럼 크지만 쥐 한 마리도 못 잡네. 이제 자네는 그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고을(無何有之鄕)’ 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주위를 ‘하는 일 없이(無爲)’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게.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 걸세. 쓸모 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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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는 위나라 재상을 지낸 사람이라고 하는데, 한번 장자에게 면박 받고 또 장자에게 저런 말을 해서 타박을 듣는다. 그런데 실은 둘이 말씨름하면서도 친한 사이였나보다. 혜자가 죽고 장자가 무덤을 찾아가 슬퍼했다고 한다. 장자도 저런 말싸움을 즐겼나보다.

해설은 혜자가 ‘박=물을 담는 것’ ‘나무=목재로 쓰는 것’ 이런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보았고 그 ‘쓸모’ 라는 틀에 얽매여 있었다면서 천박한 실리주의자라고 한다. 장자의 말이 멋지기는 더 멋지지만,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열의 아홉은 짱나고 열받고, 한번 정도는 신선하고 그럴 것 같다. 어쨌든 ‘無何有之鄕’이라는 말은 마음에 든다. 내 서재 이름이 텅빈 책꽂이인데 요새 책이 너무 많이 쌓였고, 책이 쌓이다보니깐 종이욕심이 나서 예전에 없앴던 것들이 간간이 아쉽고 그렇다. 無何有之架의 마음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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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벨라위의 아이들
나집 마흐푸즈 지음 / 하서출판사 / 1995년 2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는 왜 그런지 이 책의 표지가 없어, 한번 가보지도 않았던 예스24라는 곳에서 그림을 가져왔다)

소설을 멀리 하게 된 것이 좀 오래된 일이다. 재작년 한차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사 모으면서 다시 한번 소설의 세계로 빠져봐야지 했었지만 이게 또 쉽지 않은 일이어서, 몇 권 읽으며 감동했다가는 정신적 부담에 지레 눌려 포기했다. 소설을 멀리 하게 된 것은 내가 순전히 지식축적용으로, 지극히 목적지향적으로 책을 읽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결국 난 소설이 주는 그 무게감이 겁이 났던 것 같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어떤 넌픽션보다도 심각한 무게감을 준다. 차라리 현실의 일들, 내 것이 아니라고 맘편히 여길 수 있는 일들을 보는 게 낫지, 인간의 보편성을 건드리는 소설들은 너무 무섭단 말이다.


‘게벨라위의 아이들’은 처음 읽어본 이집트 소설이다. 국내에는 아마도 별로 팬이 없겠지만 명색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올해 아흔넷이 된 나지브 마흐푸즈(이집트식으로 읽으면 나기브 마흐푸즈)는 아랍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고 세계적인 문호이지만 역시나 이 나라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는 이 책이 두어 가지 버전으로 출간된 것 말고는 단행본이 번역돼 나온 것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1959년에 발표됐다는 이 소설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인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는 사막 주변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게벨라위라는 선조에게서 나온 이 마을은 여러 작은 마을들로 나뉘어있다. 제목에서 보이듯 그의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꾼의 이야기 등등이 꼬리를 문다.

첫 번째 ‘아드함’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이것이 장 지오노의 ‘폴란드의 풍차’ 같은 비극인 줄 알았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 때문에 증오하고 살해하는 한 가계(家系)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게벨’의 이야기는 영웅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주어진 행복을 버리고 민중을 구하러 나선 사나이! 세 번째 ‘리파’의 이야기는 수도승 같은 한 사람의 비폭력 투쟁을 그린 또 하나의 영웅담이었다. 그 다음 ‘캇셈’에 이르면 영웅의 무기는 힘(게벨)에서 사랑(리파)으로, 다시 지혜(캇셈)로 변한다. 캇셈은 초인적인 영웅이 아닌, 현실적인 영웅이 되어 줄줄이 이어지는 게벨라위네 마을의 해피 엔딩을 예고할 것만 같았다. 마지막 ‘아라파’에 이르러 결국 작가는 이 순진한 독자의 바람을 무너뜨린다.


마흐푸즈는 이 소설로 198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정작 신문에 한차례 연재됐던 이 소설은 이집트에서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이슬람권 최고의 종교교육기관인 알 아즈하르 성원(聖院) 측이 이 책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세 영웅이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 3대 유일신교의 창시자들을 빗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과학기술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간결한 묘사와 차분한 색조로 다루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소개글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들 세 종교의 신자가 아닌 내 눈에 이 소설은 종교가 아닌 권력의 메타포로 읽혔다. 권위의 근원이 있고, 그 우산을 쓰고 억압하는 통치자가 있다. 통치자 밑에는 속물적인 수장들이 민중을 갈취한다. 억압과 폭력, 아첨과 거짓말, 음모와 배신. 통치자는 교활하고 수장들은 욕심 많고 민중들은 나약하다. 영웅이 주도하는 평등·평화의 시대는 짧고, 고난과 핍박의 시기는 길다. 영웅의 도래와 함께 꿈이 피어오를 만 하면 이내 그 꿈은 반복되는 억압의 역사에 밀려 산산이 쪼개진다.

공화국 출범이래 지금까지 단 세 명의 국가원수만을 갖고 있는 나라 이집트. 독재는 반복된다. 이집트 사람들은 인간성들이 나쁘다. 사기 잘 치고 거짓말 잘 하고 관광객 등쳐먹기나 하고 역사유적조차 관리할 줄 모르고 정부는 썩었고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남자들이 나서서 매춘을 한다. 교활한 독재자와 썩은 관리들, 썩은 세상에 순응해 살고 있는 나약한 국민들. 이 소설이 이런 현실에 대한 질타가 아니고 무엇이랴. 결국 모든 반란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채 여전히 빈곤과 억압 속에 죽어지내야 하는 게벨라위 사람들. 책은 오래전에 쓰인 것이지만 이집트 정치상황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처럼 보였다.


몇 달 전에 마흐푸즈가 이 책이 이집트에서 출간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아즈하르 성원 앞에 머리를 숙였다는 외신기사를 읽었다. 이집트의 지식인들은 양심의 보루로 존경받았던 마흐푸즈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비판들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의 책을 자기네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늙은 작가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러니 소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권력과 인간성에 대한 마흐푸즈의 통찰력이 어디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 마을의 이야기는 힘과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영웅을 원하면서 추종적이고 비겁한 삶을 은근히 바라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간 손에서 놓지를 못했고, 다 읽고난 지금도 마음이 사막을 붕붕 떠다니는 것 같다. 사막의 모래와 물담배 연기냄새가 코끝을 맴도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또 하나의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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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7-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도적과 개들> 봤어요? 안 봤음, 나중에 바꿔보자. 내가 갖고 있는 책은 벽호에서 나온 <도적과 개들>이구요, 장편 <쉰다섯 개의 거울>도 수록되어 있어요.

딸기 2006-07-2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꿔보면 좋지! 안그래도, 좀 더 읽었으면... 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의 역사 히스토리아 문디 2
존 아일리프 지음, 이한규 외 옮김 / 이산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이브의 일곱 딸들’에서 넬슨 만델라까지 아프리카의 역사를 종으로 횡으로 엮은 이 책은 참 알차다. 맛뵈기 개론서로서 알찬 것은 좋은데, 책 읽는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머리 속에 들어와서 정신이 없었다. 세계 곳곳 낯설지 않은 땅이 어디 있으랴마는, 때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참 낯설었다. 낯선 고유명사들을 기억에 남기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머리 속이 복잡했던 것은 이 곳의 사정이란 것이 워낙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인지라 이해하고 외우기에 벅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내가 쥐꼬리의 털 하나만큼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과정이기도 했다.


책은 열 두 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는데, 인류의 선조들과 진화, 농경의 전래 등을 다룬 앞부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대사를 다룬 맨 뒷부분까지, 저자는 인구학적 분석을 중요한 틀로 삼고 있다. 1~3장은 인간의 출현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까지를 다룬 것이어서 그냥 슬렁슬렁 책장 넘기듯 읽었는데, 4장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부터는 허투루 넘기기가 어려웠다.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래 및 확산 과정은, 이들 종교가 탄생한 유라시아에서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간단히 정리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유일신앙들이 현지의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토착신앙과의 융합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것. 저자가 꾸준히 강조하는 것은, 어떤 역사적 과정도 ‘아프리카가 미개했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담담하게 ‘사실(史實)’들만 정리하는 것 같으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려 하는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교 부분을 지나 나오는 3개의 장(章)들은 아프리카를 북아프리카/서부 아프리카/동부아프리카로 나눠 지역별로 약사(略史)를 정리해놓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라고 했지만 오래되고 큰 대륙의 역사를 이렇게 한 권에 담으려니 복잡해 보인다. 아프리카가 유난히 부족이 많고 복잡하고 역사에 일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각 지역의 독자성보다 ‘아프리카’라는 덩어리를 놓고 보는 내 잘못된 시각 때문에 이 곳의 역사가 중구난방처럼 들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책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것은 7장 노예무역에서부터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시작되는 ‘노예사냥의 시대’와 서양 열강의 침략, 식민통치, ‘독립의 시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가면서(머리에 박히지 않는 부분들은 쓱쓱 지나갔다) 이 지역의 역사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놀랐다.

서양 열강이 아프리카를 침략했다, 노예들을 잡아갔다, 아프리카는 폐허가 됐다, 그러다가 독립을 했는데 식민지 폐해 때문에 여전히 못 살고 있다... 내 머리에 들어있던 아프리카의 역사는 이런 구도였다. 그런데 저자는 식민제국이 남긴 기록들과 인구학적 분석을 통해 이런 단순무식한 편견을 뒤집는다. 아프리카에는 원래부터 노예경제가 있었고, 포르투갈이 14~15세기 이후 이른바 상아해안 황금해안(기니만 일대)에 요새를 세우고 노예들을 사갔지만 노예밀매의 주축은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시작되면서 기니만 일대에 시류를 탄 여러 왕국들이 명멸했다. 서양만 나쁜 것도 아니었고, 아프리카인들이 피동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아프리카인들이라 해서 똑같은 흑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족이 있고 저런 왕국이 있고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었다.

정작 서양 열강이 아프리카 전역을 제멋대로 갈라 마구잡이 착취를 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아프리카가 오늘날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이 기근과 내전으로 갈라진 ‘절망의 대륙’이 된 것은 거의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로, 거기에는 식민지의 잔재들과 환경인구학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어느 것도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의 형태로 이뤄진 것은 없었다. 그것은 지구상 어떤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이고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예수출은 적어도 2세기 동안 서아프리카의 인구성장을 가로막았다. 노예무역은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조직형태가 생겨나도록 자극했고,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광범위한 노예 사용을 부추겼으며, 고통에 대해서 더욱 야만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치욕의 시기에 아프리카인은 가장 용감하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었다.” (230쪽)


요는, 아프리카는 농업하기 힘든 기후조건을 가진 곳이 많고 질병 같은 ‘자연의 도전’이 많아 현대에 들어서기까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프리카의 역사는 ‘머릿수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며,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구조였다. 그것이 서양 노예사냥꾼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면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노예상인들이 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이 노예로 다른 대륙에 끌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아프리카의 ‘인구재앙’을 가져올 정도의 숫자였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극소수일지라도,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택해 서양인들이 끝내 노예화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부족도 있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가 ‘당하는 대륙’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구만 가지고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사건들에 가려진 것들을 보게 해주는 효과는 있다. 인구학적인 역사 설명은 아마도 요사이 과학과 역사를 결합시켜 보는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방식인가 보다.

열 두 번째 챕터는 남아공을 비롯한 남부 아프리카 일대의 근대 이후 역사를 다루는데, 요사이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을 보고 있는지라 그것과 연관지어가며 흥미롭게 읽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역사가 ‘재미만 있는’ 역사는 결코 아닌지라 머리가 맑아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역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 때문인지도 몰라. 아프리카가 피동적으로 강자에게 당하고만 있던 대륙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그들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보다 앞선 물질적 문명을 갖고 있었다고도 하지만, 내 눈에 현.재. 비치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좌절스럽다. 시에라리온의 그 절망스런 거리, 폭력과 고통에 인이 박힌 불량스런 눈빛들, 재앙이 겹치고 겹쳐 희망의 싹을 찾아보기 힘든 그 땅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꾸려갈까. 내 일도 아닌데 내 머리가 아프다. 쉽사리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현실은 너무 무겁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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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사랑하는 부시 대통령....
쉐이야 근데 남의 나라에선 왜케 많이 죽이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결국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원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애초부터 거부 의사를 밝혀온 부시 대통령은 19일 재임 이래 처음으로 의회 입법안을 거부, 줄기세포 지원법안을 무산시켰다고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문제의 법안은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가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작년 하원 통과에 이어 전날 상원에서도 통과됐었다. 부시대통령의 비토 뒤 하원은 곧바로 다시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러나 찬성 235표, 반대 193표로 가결정족수에는 51표나 모자라 부결됐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한 뒤 "그 법안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고한 인간생명을 희생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도덕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냉동배아를 인공수정시켜 태어난 아기들과 부모 18가족을 백악관으로 초청, 사진을 찍으며 "이 아이들은 남을 위한 스페어(예비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줄기세포 연구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인공수정 아기들을 불러 `생명 홍보'를 하곤 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기독교적 생명윤리론에 대해서는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다. 각종 여론조사는 미국민들 중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거부권 행사는 다가올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 말했고,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이번 거부권에 밀려 법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갈라지고 있다. AP통신은 줄기세포 논란이 공화당을 분열시키고 있다면서 이라크전이나 경제문제 못잖게 이 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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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7-2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이드 인 미국이 아니면 부시에게는 생명으로 보이지도 않나 봅니다.ㅡ.ㅡ;;;

페일레스 2006-07-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고한 사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는데 말이죠. 열라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_-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미국을 위한 스페어가 아니다!!

딸기 2006-07-2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미국 상원이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원법안을 18일 통과시켰다. 기독교 윤리를 내세워 연구에 반대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 이래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원은 이날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표결에 부쳐 63대 37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미 지난해 하원에서 238대194로 가결됐지만 부시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가 되어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백악관은 이날 상원 통과 뒤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대통령이 집권 5년 동안 의회를 상대로 거부권 행사를 141차례나 경고했지만 실제로 비토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간단한 해답은 부시 대통령이 살인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라면서 부시 대통령이 "과학적 연구라는 목적을 위해" 생명을 박탈하는 법안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법안은 상·하 양원에서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입법화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의회가 이를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상원과 하원 양쪽에서 찬성표는 3분의2 가결정족수에 모자랐기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고 정국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거부권을 주고 있다. 거부권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조차도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수가 있다. 앞서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37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었다.

부시대통령 집권 이래 공화·민주 양당은 거센 당파 싸움을 벌였고, 당론이 표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러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놓고서는 공화당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상원에서는 19명, 하원에서는 50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부시대통령은 2001년 미국 내에 있는 기존 78개 줄기세포주 외에 신규 줄기세포주 배양에 대해서는 연방예산을 지원할 수 없도록 했고, 이후에도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들 70% 이상이 연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주지사는 부시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촉구했고, 알츠하이머를 앓다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 부인 낸시 여사도 줄기세포 연구 지원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들 간에 이 문제를 놓고 싸움이 벌어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공화당 차기 주자들 중 조지 앨런과 샘 브라운백, 척 헤이겔 의원은 법안에 반대한 반면 존 매케인의원과 빌 프리스트 상원 대표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프리스트 대표는 부시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게끔 법안을 수정해 제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며 `정면 승부'를 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지지율 급락으로 레임덕을 맞고 있는 부시대통령과 차기 주자들 간에 미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은 로마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배아가 아닌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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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7-1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시는 당연히 거부권 행사하겠죠? 물론 압력이야 거세겠지만서도...
솔직히 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나 별 차이 없어보이는데 말이죠. 흠흠.

딸기 2006-07-20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부권 행사했답니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