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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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었다.

이런 종류, 잡학상식 역사책 즐겨보지 않을뿐더러 늘 평가절하해왔는데. 제임스 레스턴 ‘신의 전사들’에 이어 이번엔 칭기스칸 책을 읽게 됐다. 저자가 ‘야만과 문명 누가 승리하는가’의 잭 웨더포드이고 알라딘 서평들이 괜찮길래 덩달이처럼 사놓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처음엔 자리에 앉아 줄쳐가며 읽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 읽었다.

 

제목이 좀 과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칭기스칸이 잠든 유럽을 어떻게 깨웠을까? 왜 깨웠을까?

 

런 질문을 갖고 읽으면 ‘낚시질’에 속는 게 된다. 책 전반부는 칭키스칸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는 그 뒤의 몽골 왕조에 대한 약사(略史)로 돼 있다. 칭기스칸이 만들어놓은 세계제국이 이래저래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가 잠든 유럽을 깨웠다고 하면 참으로 결과론적인 해석이 된다.

아무튼 잘 몰랐던 칭기스칸 이야기 재미나게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 훗날 소련이 칭기스칸의 역사를 그렇게 지우려 애썼다는 것 전혀 모르고 있었고, 몽골 제국이 기독교 색채가 강했다는 것도 새로웠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마르코폴로와 쿠빌라이칸의 대화'를 읽은 이후 쿠빌라이에게 모종의 로망;;이 생겼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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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10-1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나름대로 대답을 하려고 애쓰는데, 그러기엔 책에 동어반복이 많고(더 압축적으로 더 많은 내용을 담았으면 좋았을텐데) 갖다붙이기 식으로 서술한 부분이 많아서 별점 깎였음. 재미는 있었는데 말야.
 
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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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읽은 지 한달 정도 지났다. 이 책에 대해서, 만델라 할아버지와 남아공이라는 나라,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치(精緻)하지 못한 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 마음 속에 정리해놓고 싶은 이야기,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힘겨운 투쟁에 바친 한 사람 앞에, 멀리 떨어진 서울이라는 곳에 사는 이 아줌마의 이야기가 그리 길어질 이유가 뭐 있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만델라라는 인물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델라는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몇 번을 갖다 붙여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시련을 이겨낸 투지와 용기만 해도 ‘위인전’ 거리가 되고도 남지만 만델라를 더 큰 인물로 만드는 것은 집권 이후에 보여준 능력이다. 만델라가 28년간의 수감생활 뒤 감옥에서 나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만델라에게 갖는 존경심은 ‘투쟁-승리’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만델라의 ‘능력’에는 집권 뒤 보여준 포용력, 관대함, 결단력, 사심 없음, 애국심, 진지함, 의리 같은 것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하지만 좀 많이 두꺼운) 이 자서전은 만델라 할아버지의 솔직하고 담담하고 진지한 인생이야기다. 투쟁과 고뇌와 슬픔과 실망과 용기와 동지와 사랑과 승리의 기록.

만델라 인생 첫 부분, 부족사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주 예스럽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한 이야기, 요하네스버그에 가서 변호사로 활동하기까지, 첫 결혼, 투쟁에 발을 담그게 된 과정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듯’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원주민 소년이 백인사회에서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길은 얼마나 험난했을까. 어린 시절, 젊은 시절, ANC 투쟁을 이끌던 시절, 감옥시절, 그 이후 집권까지 어느 한 시기, 힘들지 않은 시기라고는 없었다. 가족에 대한 부분들도 눈에 띈다. 딸 진드지의 첫 면회, 아들이 죽었을 때 담요 뒤집어쓰고 누운 이야기, 면회실에서 안아보게 된 갓난 손녀... 투쟁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비애.

전략·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고민은 책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산당과 ANC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무장투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부터, 집권 뒤 ‘진실과 화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원칙적이면서 또한 실용적인, 만델라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이런 논쟁거리들에 대한 설명들이다. 로벤 섬에 갇혀있던 만델라와 그 동지들은 ‘아프리카에 호랑이가 있었나 없었나’를 놓고서까지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감옥에서 괴어 썩지 않게 만들고 그들을 더 단련시켰던 기나긴 싸움은 무장투쟁 못지 않게 흥미롭다.


요사이 친해진 샐리라는 친구가 있다. 샐리는 남아공의 항구도시 더반 출신이다. 샐리의 친구는 대학시절 우편물 폭탄에 희생됐다고 한다. 반투 스티브 비코 일생을 담은 책에서도 그런 걸 느꼈지만, 흑백 차별 사회였다고 해도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책에서 만델라는 백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대신 백인 ‘동지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경의를 표한다. 남아공 백인들에 대한 부분에서는 특히 선입견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만난 남아공 사람들은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과오를 인정하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우리(백인들)는 나빴다. 하지만 만델라는 우리를 끌어안았다. 그래서 피로 물든 내전 없이 흑백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오로 점철됐던 나라이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흑백 관계없이 만델라를 존경한다.”

앞서 이 책은 아태재단에서 출판된 적 있는데 이번에 김대중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인생역정이 머리 속에 겹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생략.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부분은 요즘 내 관심사(아프리카)와 연관되어, 만델라의 동지들에 대한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내 조국과 국민들에게 깊고 오랜 상처를 남겼다. 우리 모두는 그 심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여러 세대 또는 적어도 여러 해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억압과 잔인함은 또 다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바로 억압과 잔인함이 우리 시대에 올리버 탐보, 월터 시술루, 추툴리 추장, 유서프 다두, 브람 피셔, 로버트 소부퀘와 같은 대단한 용기와 지혜와 관용을 지닌, 내가 다시는 알지 못할 그런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고귀한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토록 심한 억압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나의 조국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광물과 보석이 풍부하나, 나는 항상 우리 나라 최고의 재산은 순수한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훌륭하고 진실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897쪽)

 

이 에피소드를 비롯해 책 곳곳에 등장하는 고반-  월터 시술루 그리고 올리버 탐보와 함께 만델라 할아버지의 빼놓을 수 없는 동지였던 고반 음베키는 현재 남아공 대통령인 타보 음베키의 아버지이다. 만델라는 집권 뒤 백인정권 대통령이었던 데 클레르크(현지 발음으로는 데 클럭이라고 하던데;;)와 동지의 아들 타보 음베키를 나란히 부통령으로 앉혔다.

어떤 부분에서 책은 유머러스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스파이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만델라 할아버지가 로벤섬 감옥을 떠나 케이프타운에 갇혀 있으면서 백인 정권과 담판을 벌이는 부분은 진짜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힘겨운 투쟁, 모진 고초를 겪은 뒤 세상에서 '큰 뜻'을 펼치게 됐을 때 가지가지 방식으로 결국 주변을 실망시키고 마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만델라가 28년의 수감생활 뒤 대통령이 되어 정치에 죽을 쑤고 측근들 부패하고 정책 개판이고 우향우 좌향좌 왔다갔다 했다면, 아마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은 흰소리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책의 부록에 상세히 나와 있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대한 것이다. 요새는 '과거청산' '진상규명'이 희화화되고 비아냥거리가 된 느낌도 들지만, 남아공처럼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만델라의 생각은 분명했던 것 같다. "밝힐 것은 밝히자. 그러나 과거 때문에 미래를 희생시킬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데스먼드 투투 주교가 이끈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라는 것이다.


피부 색깔이나 가정 배경과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증오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에서 사랑은 그 반대보다 훨씬 더 본성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수감 시절에, 나의 동지들과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 나는 간수들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인간성을 보곤 했다. 아마도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간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고 유지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898쪽)


편집자(옮긴이?)는 "만델라의 용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믿음과 낙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다. 오랜 수감생활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더우기 감옥에서 그의 낙관적인 인간관이 악화되기보다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면. "만델라의 화해와 용서는 이런 도덕적 관점 말고도 정치전략적 측면에서도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아프리카너들에게 더 많이 더 멀리 손을 뻗칠수록 백인 세력은 더욱 더 분열되고 더 빨리 무장해제되었다." (938쪽)

그렇게 해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전세계 곳곳에서 과거 청산과 국가적 조직범죄 진상규명의 한 모델이 됐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곳곳에 이런 기구들이 생겨났다. 물론 책 부록에 설명돼있듯 피해자들의 반발도 많다.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준다? 화해는 없고 사면만 있다는 비판도 있다. 끔찍한 죄를 저질러놓고 “내가 그런 짓을 옛날에 했었지” 말만 하면 모두 용서해준다니. 그러나 그것이 만델라의 노선이었다. ‘망각하지 않는 용서(forgive without forgetting)’.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아공은 내전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었고, 훗날 ‘모두의 자산’이 될 백인정권의 성과물들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만델라는 그 함정을 피해갔다. 확신, 권위, 역사의식, 지혜, 책임감처럼 한 사람에게 한번에 구현되기 힘든 여러 덕목들이 만델라를 큰 길로 이끌었다. (다른 나라에서 진실과화해위원회가 실패했다면, 그것은 그 나라들에 만델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가 확고한 신념과 도덕적 권위, 미래를 위한 관대함 대신 형식논리와 정치적 명분과 눈치보기로 일관한다면 진실과의 조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중순에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을 방문했다. 남아공은 아직까지도 ‘두 개의 나라’다. 특히 한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백인들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들과 주로 접했던 나로선 더 거부감이 느껴진 측면도 있지만, 참 살고 싶지 않은 나라였다. 넓은 땅, 경치 좋고 날씨 좋고 자원 많고. 그런데 요하네스버그는 흑-백 두 구역으로 나뉘어, 흑인 구역은 강도가 무서워 돌아다닐 수도 없다. 케이프타운의 화려한 상가는 백인들 세상이다. 흑인들 내부에서도 집권세력 기득권층들의 잇속 챙기기가 심한 듯싶고. 2010년 월드컵 때까지 이 나라가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하지만 만델라의 나라는 언제고 희망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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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심이 느껴져요. 저도 존경해요. ^^
역자가 그 김대중이었군요. 호감도 마구 상승인데 이렇게 두꺼운 책이라니...;;;;

딸기 2006-10-1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 그렇게 압박을... 알았다구, 알았다구. ^^ 지금 당장 보낼께.
마노아님, 증말증말 좋은 책인데 사실 좀 너무 두껍긴 해요.

딸기 2006-10-1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엇, 주소가 엄떠... 주소 남겨줘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무크타르 마이 지음, 조은섭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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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타르 마이에 대해 뭔가를 쓴 적도 있고, 파키스탄 여성 문제에 대한 글을 쓸 때 무크타르 사건을 인용한 적도 있고 해서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해놨다. 마이는 이혼하고 친정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던 여성인데, 어린 남동생이 동네 유력한 집안 딸과 말을 했다는 이유로 '집단 성폭행'이라는 '징벌'을 당한다.

이 사건은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외신에서 유독 많이 다뤄진 것은 사건 자체의 끔찍함을 넘어 마이의 투쟁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에서 어느 집안 딸네미가 성폭행 당했다고 유력자들을 고소하고 법정투쟁을 벌이는 것은, 그것도 대법원까지 가는 가열한 싸움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이런저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게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겹쳐진 것 뿐인데, 그 여성들의 이름을 적어보자면 -- 김혜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잉그리드 베탄쿠르 (콜롬비아의 딸),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콘돌리자 라이스 (콘돌리자 라이스) 그리고 이 책이다. 콘돌리자 라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제3세계 여성의 투쟁에 대한 것이거나, 혹은 제3세계 여성·아이들에 대한 것(김혜자의 책)이다. 모두 재미있었고, 전문 저술가들의 것이 아닌 만큼 치밀함은 없었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있었다. 감동적이기도 했다.

 

마이 사건은 여성 할례 문제를 다룬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 같은 것에 비하면 보편적’인 것으로 보기엔 너무나 극단적이지만 파키스탄에서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특히 책에서 간단하게 다루고 있지만, 마이 사건은 인도-파키스탄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 부족 제도, 빈부 차이 등 다종다양한 신분상 차별 등 전근대적인 문제들과 연관돼 있다. 거기에 이슬람 전통을 내세운 꼴통들의 폭력성이 덧붙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집단 성폭행, 염산 테러처럼 약한 자들을 겨냥한 공격. 이슬람권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랍권보다는 변방 격인 터키나 파키스탄에서 유독 그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또한 그것의 치유책은 무엇일까. ‘테러와의 전쟁’ ‘문명의 충돌’로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인데, 참 암담하다.

 

(책은 밀도가 높지 않으나, 마이의 투쟁에 별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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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린 로너 엮음, 양희정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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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인 린 로너의 해설이 앞부분에 꽤 길게 들어가 있다. 그람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도움이 좀 됐다. 옥중수고가 그람시의 ‘사상’이라면 이 책은 그람시의 ‘냄새’다. 그람시라는 사람이 감옥에서 주변 사람들, 주로 처형인 타티아나와 아내 율리아, 어머니와 남동생 등에게 보낸 편지들이 엮여 있고 마지막 부분(그람시가 죽기 얼마전)은 아들 델리오에게 보낸 것들 중심으로 돼 있다.

 

그람시라는 ‘대륙’의 그림자, 냉철했던 그러나 불행했던 한 사상가의 인간적 면모를 보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는데 엮은이는 그람시의 편지들이 ‘문학’으로서도 매우 훌륭하다고 소개를 해놨다. 하지만 이따위 번역이라면-- 욕만 나옴. 요즘 사람들 글 쓰는 걸 보면, 잘 쓰나 못 쓰나 판가름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자신의’라는 말을 불필요하게 쓰는 사람은 글 못 쓰는 사람일뿐더러 아둔한 인물이다. 예를 들면 ‘조용필은 자신의 데뷔 **주년을 맞아 기념콘서트를 가졌다’ 당연히 조용필의 데뷔지 누구의 데뷔겠어? 이 책의 번역은 온통 그런 식이다.

헤게모니와 유기적 지식인에 대한 그람시 생각의 단초나마 엿볼수 있었던 몇 구절은 재미있었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갇힌 자의 신경질이 한껏 묻어나는 대목들은 마음이 아팠다. 엮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그람시는 “아이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 아동교육의 이론들을 만들어냈고, 독서 목록을 작성하였으며, 놀이들을 고안해 냈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책에 실린 몇몇 편지에 나와 있는 것들만 가지고는 ‘환상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들지만.

그람시는 크로체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역사가 자유의 역사, 달리 말해 자기 창조적 정신의 역사라면 왜 19세기의 유럽 역사만이 자유의 역사여야 하나요? 이 시기의 유럽 역사는 철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스스로를 인식해가고 지식인들을 위한 하나의 종교이자 하나의 미신으로 변형되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지식인들과 동일시하고 자신들이 정치적 ‘블럭’의 부분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미신입니다. 정작 정치적 블록의 기수들과 제사장들은 지식인들인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즉 하나의 실제적인 통치수단인 셈이지요.”

 

서문에 설명된 체포 당시의 그람시는 ‘5피트도 채 되지 않는 키, 구부러진 등뼈, 커다란 사자머리, 금속 빛의 푸른 눈을 가진’ 35세의 지쳐있는 정치인이었다. 꺼져가는 몸에서 타올랐던 통찰력과 지성, 의지의 불꽃은 너무 강렬하다. 시들어가는 몸과 미처 꽃피우지 못한 두뇌 사이에서 마치 산화하는 것처럼 타들어가는 정신을 지켜보는 것은, 편지를 읽는 이에게조차 버거운 일이다. 그람시를 연구하는 이들, 그람시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들은 어쩌면 채 익지도 못했던 그의 정신의 부스러기만을 잡고 씨름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뇌에 빠진 갇힌 영혼을 보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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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티는 못 말려!
프란체스코 토티 지음, 김효진 옮김, 황기홍 그림 / 펀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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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우리 집에서, 나와 내 남편 사이에는 '이런 토티같은 짓!' '이런 토티같으니!' 이런 말이 유행(?)을 했다. 토티는 아주 특별한 선수다. 이번 월컵에서는 별로 활약을 못했지만 그래도 아주리군단에 토티 빠지면 김 새지. 토티는, 그 정도로 뛰어난,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 중에 유일하게! 플레이를 더럽게 하는 인간이다. 지단님 박치기 하시고 나서 '성격 안 좋다'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 오가는 걸 봤지만 그건 진짜 터무니없는 소리이고, 성질 드러운 걸로 하자면 토티를 능가할 자 그 누구리요. 바티님이 AS로마에 계시던 시절(그리하여 내가 잠시 잠깐 로마의 팬을 자처하던 시절) 토티와 바티님이 나란히 경기장에 못 들어오고 관중석에 앉아 로마-밀란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적이 있다. 테레비 보면서 참 황당했다. 저 분과 저 녀석이 뭔 짓을 했길래? 그 전 경기에서 터키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을 두들겨 패고, 징계 받아 관중석 떨거지 신세가 된 거였다.

토티...라고 하면 좀 이상하고 그냥 부르자면 '또띠'인데, 암튼 이 작자는 언제나 싸우고 있다(한때 김남일이 '언제나 싸우고 있다'라는 평을 들었으나 진짜 이 말이 어울리는 건 토티다;;). 심판이 뭐라 하면 무조건 싸우고 대들고... 언제인가 이탈리아에서 토티한테 몰카를 찍었더란다. 테레비 쇼에서 연출한 건데, 어두운 카페에 데려가서 므흣~한 분위기를 연출한 뒤 사람들 내보내니깐 곧바로 자기를 유혹하던 웨이트리스에게 바지 내리고 달려들었다나. 순식간에 팬티를 하강시키는 바람에, 제작진이 화들짝 놀라(방송불가 받음 안되니깐) 몰카임을 밝히고 제지했다는 풍문??이 있다(진위는 확인 못함-- 이너넷에서 떠도는 소문만 읽었다). 다혈질에 단세포, 승질 드럽고 얼굴 각진 이 선수, 프란체스코 토티.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사실 처음 이 시리즈를 책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한 척했다. 하지만 마우리치오 콘스탄초(유명한 텔레비전 진행자)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계속 권했고, 결국에는 나를 놀려대는 말로 가득한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나 역시 한바탕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화를 내지도, 웃지도 않았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디오에 담고 찍어대려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계속 도망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농담거리의 소재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자, 여기 그렇게 되기를 자청한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들로 여러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많이 쓴 것 같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유니세프의 명예대사 활동에 대한 소식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토티는 못 말려>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걸 봤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도 금세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 앞머리에 토티가 쓴 ‘서문’이 들어있어 위에 옮겨놓았다.

토티, 그동안 숱하게 미워했건만-- 재미있는 걸. 특히 두 번째 문단. 토티는 아무래도 ‘말리면 안되겠다’. 유니세프 명예대사 활동 열심히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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