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씽 달려라 침대썰매 호호할머니의 기발한 이야기 3
사토 와키코 글.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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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좀 얌전하다. 아니, '많이' 얌전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할머니할아버지 귀여움 한껏 받으며 외동이로 자라는데도 응석받이가 아니고, 천성이 조심스럽고, 그러니 다치거나 부수거나 하는 일 별로 없고, 어디 데리고 나가면 다들 '너네 애는 어쩜 그렇게 얌전하니' 소리를 듣게 만들고, 백화점이건 호텔이건 레스토랑이건 다 끌고다녀도 말썽 한번 부린 일 없다. 장난감이니 뭐니 사달라고 조르다가도 엄마가 눈 부라리면 "나는 장난감이 많으니까 안 사주는 거지요, 다음에 사야 하지요, 집에 다른 거 있으니까요" 하면서 꼬리를 내린다. 울고불고 떼쓴 적이 한번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 그렇게 스스로 수긍하려 애쓴다.
집에 와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조잘조잘 떠드는 일도 없고, 유치원에서 기가 센 친구에게 쥐어뜯기고 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치원에 가면 늘 구석배기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그리거나 쏙닥쏙닥 가위질만 하고 있다. 요사이 그것 때문에 엄마의 심사는 많이 상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대신 완전히 방치된 채(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몇시간이고 쪼그리고 앉아서 디즈니 만화나 베끼고 있다가 엄마가 데리러오면 화들짝 놀라 감추려 한다. 그게 한심하고 미워서 지난주에는 애를 쥐잡듯 잡기도 했다.

왜 얌전할까?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적에 나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얘는 좋게 말하면 남 배려를 잘 해주고 신중하지만 안 좋게 말하면 영 기개가 없을 뿐더러 호기심도 도전정신도 없는 것만 같다. 내가 너무 기를 죽였나? 내가 너무 애를 '잡아서' 그런 걸까? 아니야, 엄마가 야단친다고 애들이 말 잘 듣는다면 세상에 골치 아플 엄마가 어딨어. 환경결정론과 유전자결정론 사이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그 중에 '환경' 부분에 대해서라면-- 내가 아이를 너무 억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맞벌이라는 핑계로 잘 안 놀아주고 야단치고 소리지르고 때론 정신병자처럼 발작까지 해대는 엄마이니깐;; 아이가 응석 부릴 여지를 별로 만들어주지 않았을 뿐더러, 응석은 커녕 마음껏 뛰노는 것조차 귀찮고 시끄러워서 못하게 막지 않았던가.

이 책을 보면서 엄마로서의 나에 대해서 많이 반성했다. 침대가 없으면 어때? 뭐가 부서지면 어때? 같이 신나게 잘 놀면 되지, 침대 없어 못 자는 사람 있나. 호호할머니가 동물 친구들과 놀아주듯 그렇게 놀아주면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 없을까. 엄마의 머리 속부터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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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10-3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기질의 문제에요. 아이들이 무언가를 자꾸 요구하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미리 엄마를 배려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좀더 요구했으면 하는데 그게 원래 안되는 아이들이요. 보통 직장맘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 많답니다.
외동에 딸인 경우에 더하죠. 조금 엄마가 받아준다는 것을 떼를 쓰면 들어준다는 것을 알면 좋은데 본능적으로 일찍 철이 들어요...아..이거참 요거 심리학적인 용어가
있는데 생각이 안나요. 조금더 스스로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특히 선생님들께
강하게 봐달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못하더라구요. 제딸도 그렇답니다.
아들도 사실 집에서만 좀 떼를 부리지 ..그런 성향이 강하구요. 속이 상하죠ㅠㅠ;;
자꾸 유도를 하긴 해야하고. 특히 선생님께 손을 탈 수 있도록 해줘야해요.
하다못해 선생님 머리핀이라도 들려보내서라두요. 선생님들도 사람인지라
많은 아이들 중에 그렇게 말잘듣는 아이들 있으면 손이 안가거든요.
노랑이가 손못타는 대표적인 아이예요. 또래에 비해 아주 크고, 말 잘듣고요.
거의 보모노릇을 하고 있으니 엄마입장에선 속이 타죠ㅠㅠ;;;
어쨌든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한 권리란 것을 가르쳐줘야죠. 그것도 필요한거니까. 아이가 너무 어른스러운것도 절대 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딸기 2006-10-31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런 거지요?
가끔씩, 아니 자주, 아이가 안쓰럽긴 해요. 저렇게 살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싶기도 하고요.
반딧불님, 고마워요. 어쩐지 마음의 위안이 되네요. :)

이네파벨 2006-10-3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질 쪽에 한 표요...
아이가 둘이지만 첫째랑 둘째랑 너무 다르답니다.
딸기님이나 반딧불님의 아이...
학교가면 선생님들께 사랑받을겁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딱 그런 아이..얌전하고 손 안가고 남 배려하고 조심성 있는 아이...너무 좋아하시거든요. 그러다보면 아이가 자연스레 더 기도 살고..밝아지고..자존감도 높아지고...차곡차곡 모범생의 길을 걸어갈거예요...^^
여섯살인 제 딸내미도 그런 꽈(얌전..모범..배려..)인데 여덟살인 아들내미는
천방지축, 눈치없고 목소리크고 친구들 사이에서 튀고싶어하고 까불대고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덜렁대고 칠칠맞아 (좋은 점도 있지요. 호기심 강하고, 긍정적이고, 너무ㅡ,.ㅡ 밝고..등등) 선생님의 미움을 한몸(까지는 아니겠지만)에 받고 있답니다.

선생님께 맨날 야단맞는 학부모로서...전 얌전..모범..스러운 아이들이 눈물나게 부럽답니다....

딸기님, 자책하지 마시구요...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시고..좋은 점을 살려주세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모든 육아서, 부모교육서들은 그렇게 말하죠. 아이의 좋은점을 살리고 나쁜점을 눈감아주라고..세모를 동그라미 틀에 넣으려고 억지로 모서리를 깎아내지 말라고..) 학교 선생님은 또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런..위로드린다고 들어와서 제 푸념만 늘어놓고 갑니다....

딸기 2006-10-3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맞아요, 아이의 좋은 점을 살리고 나쁜 점을 눈감아주고...
근데 그게 잘 안되니 말이지요. 그러는 엄마는 얼마나 잘나서? 훨씬 더 문제가 많으면서 맨날 엄마 기분 따라 애를 쥐고 흔들어대니... ㅠ.ㅠ
 
몸 사냥꾼 - 거대 제약회사의 추악한 얼굴
소니아 샤 지음, 정해영 옮김 / 마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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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들은 임상실험을 한다. 미 식품의약국(FDA)가 그걸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상실험이란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효과가 없고, 때로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인도로 간다’. 황우석 파동 때 난자 공여 문제를 둘러싸고 윤리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임상실험 문제도 같은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여기에는 부국과 빈국의 문제, 부자와 빈자의 문제, 그리고 때로는 인종문제 같은 것들이 얽혀 있어서 더 복잡하다.
비단 임상실험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저개발국 그리고 부국 내 빈자들의 건강 문제에는 참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져 있다.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난하고 아파도 치료 못 받는 사람들에게 거대제약회사들 혹은 그들의 대리인들이 다가와 제안을 한다. “이 약을 먹어볼래? 나으면 좋은 거고, 안 나으면 할 수 없지.” 때로는 이 과정에서 ‘설명’이나 ‘동의’가 빠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절차적인 문제, 그러나 어쩌면 핵심적일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제약회사들, 몇 년 전부터 아주 약간 관심이 있어서 외신 기사들을 눈여겨보곤 하는데, 분명 문제는 많다. 비아그라 만들어서 선진국 남자들 돈 후려내지 말고 저렴한 말라리아 약을 만들어라, 라고 하면 한쪽에선 “발기부전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데, 니가 걸려봤어?” 할지 모르겠다. 양쪽 다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제약회사들이 임상실험 안 하면 그럼 결국 어떻게 약을 만들어, 그거 막는 것도 다 님비 아니야? 하지만 병 걸려서 죽을 날 바라보는 사람한테 살려줄 듯 꾀어서 위약 먹이는 건 넘 잔인한 짓이야. 그게 뭐 그렇게 나빠, 죽을 사람인데, 좀 잔인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 되는 거잖아.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에서 어차피 치료도 못 받을 사람들인데 위약을 주건 뭘 주건, 몇 명이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냐? 하지만 나이지리아나 캄보디아 사람들 상대로 실험해서 만든 비싼 약 선진국 부자들한테만 팔 거잖아? 그러면 그 나라에서도 치료 안 해주는 사람들을 민간 기업더러 치료해주라는 거야?


책 표지는 영 우습다. ‘거대 제약회사의 추악한 얼굴’ ‘미국과 유럽의 제약회사가 벌이는 인체 실험은 나치와 일제의 실험보다 윤리적인가?’ 시커먼 표지에 이런 선동적인 문장들이 막 써있다. 책은 거대제약회사들의 인체 대상 임상실험이 치러지는 방식과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한국어판 표지의 선동적인 문장들이 주는 느낌과 달리, 저자는 매우 충격적인 사례들을 들고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사물화 한다는 것은 마땅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의 감성에 상처를 준다. 실험은 우리를 비인간화시킨다. 피험자는 더 이상 기분도 스타일도 습관도 생각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단지 너절한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너무 한가한 소리인가? 병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몸 팔아 제약업체에 인간모르모트 되어주고 연명해야 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는데. “그렇지만 의약품은 일용품이 아니라 사회재이며 의약품 개발은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실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약회사들과 의료계 종사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많아 옳다 그르다 잘라 말하기 힘든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책은 참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어떤 원리원칙보다는 케이스들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해 간다. 명확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읽을만했다. 윤리논란은 차치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무시 못 할 한 부분, ‘약과 몸’이라는 부분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떻게 관리되고 이용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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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조 - 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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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시공간의 초미세 구조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해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물론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를 규명하라고 하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 판이다.” (653쪽)

 

책 표지에 자랑스레 써있는 구절-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 그 저자 그 출판사 그 번역자, 내가 이 책을 사서 읽은 것도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제 ‘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 라고 돼 있는 것처럼 내용은 시공간의 실체에 관한 것이고, 주인공은 역시나 끈이론이다. 시공간의 실체에 관한 것이라고 하니, 좀 어폐가 있긴 하다. 시공간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시공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예의 그 재미난 비유로, 시공간을 빵 덩어리로 만들어서는 톱니 달린 빵칼로 쓱싹쓱싹 썰어 보인다. 이쪽으로 비스듬히 썰면 과거, 이렇게 비스듬히 썰면 타임머신 타는 거야, 어때, 2차원으로 그리니 감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해는 가지? 이렇게 중간 중간 되짚기도 하고 빗대기도 하고 농담도 던지면서 말이다. 요는, 원제의 Fabric 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우주에는 뭔가 씨실 날실 같은 ‘구성 성분’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고, 시공간의 구성성분이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인데 저자도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 초끈 이론이라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가 있겠냐고. 시간과 공간이란 정말 어렵다. 브라이언 그린조차도 저렇게 고백하는데 무지한 내게 차원, 그것도 ‘여분의 차원’은 정말 너무하다. 이 독자야말로, 그동안 과학책들 심심풀이로 읽으면서 얻은 쿼크만한 자신감도 줄어들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밌었다. 멋지지 않아? 홀로그램 같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니, 양자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어딘가에 이 우주와 비슷하지만 다른 평행우주라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 있다니, ‘웜홀’이라는 녀석은 공간의 터널이자 시간의 터널이 될 수 있다니, 클라크가 말한 것 같은 절대정신(자아), 혹은 쿠르드 신화에 나오는 것 같은 편재하는 신의 존재, 우주적 정신, 그런 비유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니!

 

저자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익숙한 세계관 익숙한 생각’으로 우주를 생각하고 시공간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라!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뉴턴물리학의 세계)을 기준으로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바라보면 안 된다,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상식을 버려야 한다! 브라이언 그린 식의 농담따먹기 때문이 아니라, ‘유년기의 끝’에 나오는 절대정신 같은 것을, 시공간의 빵칼을 상상하느라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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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10-3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멋진 서평...추천 꾸욱..

딸기 2006-11-0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제야 봤네.. 고마와요. :)

전자인간 2006-11-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이 책 서평을 써야지~~ 하면서 일년이 지났는데, 딸기님이 저 대신, 훨씬 재밌게 써 주셨네요. 감사 ^^

딸기 2006-11-03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전자인간님 리뷰 꼭 써주세요! 읽고싶어요! 아무래도 저하고는 생각이 다르실테니깐... 솔직히 저는 저 책 이해가 잘 안 가서 걍 쓱쓱 넘겼거든요.
 
미국시대의 종말 - 21세기 미국의 대외정책과 새로운 국제정세
찰스 A. 쿱찬 지음, 황지현 옮김 / 김영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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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국제관계 책들 보는 중에 ‘이론’에 대한 부분이 많아서 좀 지겨웠다. 일 때문에 어쩔수 없이 국제문제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종류가 있다면 아무래도 ‘현장’을 생생하게 다룬 것들, 내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읽는 재미도 있는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무슨무슨 주의니 이론이니 하는 것들은 미국이나 유럽인이나 아니면 서구화된 것 좋아하는 한국의 교수·학생들은 좋아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짜증나고 싫은데 이 책은 앞부분- 거의 3분의2 정도가 짜증나고 싫은 것들이었다.
저자는 너무나도 아메리칸스럽게도, 파워를 잃어가는 착한 미국을 염려하는데 그 염려의 양상이 참 가증스러웠다. 이런 종류의 책들 중에 김영사에서 나온 것들은 거개 그러하지만 이 책도 역시나 왜 읽어야할지 의심스러운 것들 중 하나였다(그냥 있으니깐 읽기 시작한 거였고 기대도 별로 안 했지만).

그런데! 무려 360쪽 정도 넘긴 후에 갑자기 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앞부분에서 저자는 지면을 쓸데없이 많이 할애해 건국 이래 미국의 역사와 외교적 고립주의를 강조하면서 미국 헤게모니 약화를 주장한다. 어떤 부분에선 이상주의에 가깝고, 미국 예찬에선 현실주의를 내건 보수파들 꼴통 주장에 가깝다. 소프트파워의 몰락? 저자는 한단계 더 나아가, 소프트 하드 안 가리고 암튼 미국의 시대가 끝날 처지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조지프 나이가 됐건 폴 케네디가 됐건 로버트 카플란이 됐건 미국 논자들이란 하나같이 ‘미국 망해가자나 큰일이야 안돼!’ 하는데 쿱찬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미국 망해가자나, 큰일이야, 이렇게 가면 안돼! 로마제국이 동로마 서로마 나뉘어 쌈박질하다가 망했는데 미국은 그러면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중국 무섭다 아시아가 뜬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당분간’(적어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 미국의 경쟁자는 유럽뿐이다, 통합된 유럽을 우습게 보지마라. 방법은 유럽에 파워를 자리를 내주는 거다!
태양은 영원할 것이라며 철모르고 방방 뜬 미국인들이여, 파워를 지키는 방법은 역설적이지만 평화롭게 파워를 내주고, 그럼으로써 ‘지는 대신 나눠 갖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입장은 다시 바뀌게 되어있다. 유럽은 통합되고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 미국이 물러나야 한다. 미합중국은 과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벌였던 권력과 영향력의 이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과거의) 권력 이동이 평화롭게 진행된 이유는 영국이 미국에 대해 전략적 억제를 실행함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종말이 영국과 미국의 평화적인 권력 이동처럼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과 같이 피로 얼룩질 것인지는 미국의 행동에 달려 있다. 1800년대 영국이 그랬듯이 미국이 이번에는 패권을 가지고 카드를 낼 차례이다.”(366~367쪽)

영국이 미국에 기꺼이, 현명하게 ‘패권국 자리를 내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략적 억제(strategic restraint)’라는 개념은 눈에 띈다. “전략적 억제의 실행이란 힘을 억제하고 양보하며, 다른 국가에도 활동의 여지를 주는 것이다.” 뒷줄에 “어떤 상황에서든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전략이다, 상대하기 곤란한 적에 대한 억제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으며 오히려 역이용당하기도 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적어도 유럽을 배신자 후보에 올려놓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와 터키가 친해지도록 도울 것, 터키를 유럽시장과 제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통합할 것(아쉽게도 유럽은 거부하고 있고 터키에서마저 반감이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를 남 보듯 하지 말고 유럽으로 끌어들이고 나토(NATO)에도 가입시킬 것(이 경우 나토의 성격 자체가 동반 변화해야 한다)
▲중국을 무조건 적대하며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사안들을 분류할 것, 중국에 ‘안 미워한다’ 메시지를 전해줄 것
▲동아시아의 화합을 위해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명확히 비판할 것
▲전쟁할 생각 말고 테러 막기 위해 개도국 지원부터 늘릴 것
▲중동 친미국가들의 독재·빈곤 등 정치적 실패에 책임을 물을 것, 이라크를 빨리 이라크인들에게 돌려줄 것
▲국제기구를 멸시하지 말고 강화하고 다자간 대화채널을 만들 것.


앞부분 적잖이 꼴사나운 우익적 진단들과 달리 저자가 내놓는 추천사항들은 그야말로 추천할만한 것들이다. 이 사람이 보기에도 부시가 하는 짓이 심하긴 심한 모양이다. 브레진스키, 키신저 같은 미국 ‘정통 보수’들이 부시네 하는 짓을 보면서 비판한 것과 어떤 면에선 맥락이 비슷하고 어떤 면에선 좀 다르다. 쿱찬은 좌와 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보수와 진보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미국 칭찬은 다소 우습고 극히 현실적인(‘현실주의적인’ 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문자 그대로 현실적인) 제안들은 들을만하다.
문제는 그렇다면, 미국이 이런 류의 제안을 들을 것인가 하는 점일 터인데, 이거야말로 세계 60억 인구의 고민 아닌가. “미국은 지배력의 보존보다는 평화의 유지가 주요 관심사라는 메시지를 다른 국가에 보내서 자신들의 우호적인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365쪽)
그런데 과연 미국의 의도는 세계 모든 잠재적 라이벌들에게 ‘우호적’인가?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지배력의 보존이 아닌 평화의 유지에 있나? 실제로 미국이 필요할 때가 많다. 속으로야 무슨 꿍꿍이가 있건 미국의 ‘선한 행동’에 기대야 할 일은 많다. 미국이 나쁜 짓 많이 하지만 미국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래저래 미국은 고민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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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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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눈에 경제학 교실은, 영화가 끝날 무렵엔 주인공이 승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영화관처럼 한가롭기 그지없는 장소로 비쳤다.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경제학 문제는 우아한 해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내 눈앞에는 가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조브라 마을은 내가 다닐 대학이고, 조브라 주민들은 나를 가르칠 교수들이 될 터였다. 나는 ‘땅 속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리라 작정했다. 현실을 보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더 잘보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치 땅벌레처럼, 길을 가다 장애를 만나면 장애를 둘러감으로써 결국 목표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분명 나는 여러 사람을 도울 수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근심이 누그러졌다.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나는 다시 힘을 냈다. 마침내 조브라 마을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다. 나의 앞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보였다.
(23~25쪽)

사회복지 전문가들이나 공동체 지도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본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였다.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나 의료지원, 직업 훈련, 교육, 주택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제도적 도움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나는 이런 반대 의견들이 선량한 의도에서 나왔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8년 동안 이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표명하는 소신이야말로 결코 그른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사회적 지원보다도 융자가 더욱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283쪽)

시장경제와 대량생산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개인에게 소액 융자를 제공함으로써 보잘것 없는 자립형 경제활동이나 조장한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해봐야 거시적으론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가난을 퇴치하려면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는, 포괄적이고 보다 심층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일 자체보다는 일과 연관된 자본에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아주 미미한 여유 자본만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296쪽)

나는 2050년이 되면 전세계가 마침내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란다. 그 때가 되면 ‘가난’이란 말은 의미를 상실하고, 다만 역사적 의미로만 존재했으면 하고 소망한다. 가난은 박물관에나 전시되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고,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박물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이 과거의 유물을 보면서 지난 시대에 창궐했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며 치를 떨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은 21세기 초두에 이르도록 조상들은 어째서 그런 처참한 불행을 그대로 방치하였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전세계적으로 가난이란 사실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다. 도한 가난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까닭은 우리가 가난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가난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방책으로 우리는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따름이다. (319쪽)

그 어떤 경제학자도 자립형 노동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보는 세계의 모습이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성년기에 이르러 열심히 일함으로써 고용주의 눈에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의 전초 단계로 파악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자들이 그리고 있듯이, 젊은이가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설명에 한마디로 역겨움을 느낀다. 내가 어릴 적 우리의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시집 잘 가려면 곱게 차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과거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고귀한 것이어서 취업시장에 나가기 위해, 또는 일생을 고용주를 위해 바치느라 허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325쪽)

나는 경제학을 통해서 돈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은행을 운영하면서 돈을 융자해 주고, 또 이 융자를 통해서 우리가 거두고 있는 성공이 바로 회원들의 손에 쥐어진 구겨진 돈 때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을 매개로, 돈으로써 이루어지는 우리의 소액 융자는 사실상 돈과는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소액융자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소액 융자는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써,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377쪽)


무하마드 유누스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덕택에 이 책도 잘 팔려나가게 생겼다. 이 책에 적혀 있는 유누스의 말과 생각과 실천에 대해 감히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는 방글라데시와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웠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학’을 실천하기 위해 ‘내려갔다’. 예수가 사랑을 실천하러 밑바닥으로 내려갔듯이,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빈민가로 내려갔듯이, 다니엘라가 탄광촌으로 내려갔듯이. 그곳에서 그는 진짜 경제학을 배웠다. 경제학은 왜 국가의 부와 고용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가난에 대해서, 스스로 일하는 자립형 노동과 소경영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마을)은행은 ‘다른 은행들과 반대로’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이 될 수 있었고, 세계은행을 가르치는 은행이 됐다. 유누스 본인의 말을 빌자면 그는 자본주의의 룰에 충실하려 애쓰는 인물이며 때론 미국 보수우익들의 주장과 상통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보조금 따위는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는 오늘날과 같은 경제학,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체제 안에서 밖을 지향하는’ 것이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의 싸움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지 말고 돈을 주어라, 인간은 누구나 먹고 살 능력이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작은 생산수단(돈)을 주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라, 그들은 살아나갈 것이다 - 그라민 은행을 놓고 좌니 우니 하는 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게으름 탓이 아니라 ‘자본을 쥔 이들’ 때문임을 인정한다면 ‘당장 한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서야 한다. 한 사람을 도우려 나선 어느 경제학 교수의 실천정신이 한 마을을 살리고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유누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소탈한 듯 하지만 사실은 본질을 꿰뚫고 있고, 그래서 (때론 순진해 보이기도 하지만) 희망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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