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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 달려라 침대썰매 ㅣ 호호할머니의 기발한 이야기 3
사토 와키코 글.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0년 1월
평점 :
내 딸은 좀 얌전하다. 아니, '많이' 얌전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할머니할아버지 귀여움 한껏 받으며 외동이로 자라는데도 응석받이가 아니고, 천성이 조심스럽고, 그러니 다치거나 부수거나 하는 일 별로 없고, 어디 데리고 나가면 다들 '너네 애는 어쩜 그렇게 얌전하니' 소리를 듣게 만들고, 백화점이건 호텔이건 레스토랑이건 다 끌고다녀도 말썽 한번 부린 일 없다. 장난감이니 뭐니 사달라고 조르다가도 엄마가 눈 부라리면 "나는 장난감이 많으니까 안 사주는 거지요, 다음에 사야 하지요, 집에 다른 거 있으니까요" 하면서 꼬리를 내린다. 울고불고 떼쓴 적이 한번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 그렇게 스스로 수긍하려 애쓴다.
집에 와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조잘조잘 떠드는 일도 없고, 유치원에서 기가 센 친구에게 쥐어뜯기고 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치원에 가면 늘 구석배기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그리거나 쏙닥쏙닥 가위질만 하고 있다. 요사이 그것 때문에 엄마의 심사는 많이 상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대신 완전히 방치된 채(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몇시간이고 쪼그리고 앉아서 디즈니 만화나 베끼고 있다가 엄마가 데리러오면 화들짝 놀라 감추려 한다. 그게 한심하고 미워서 지난주에는 애를 쥐잡듯 잡기도 했다.
왜 얌전할까?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적에 나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얘는 좋게 말하면 남 배려를 잘 해주고 신중하지만 안 좋게 말하면 영 기개가 없을 뿐더러 호기심도 도전정신도 없는 것만 같다. 내가 너무 기를 죽였나? 내가 너무 애를 '잡아서' 그런 걸까? 아니야, 엄마가 야단친다고 애들이 말 잘 듣는다면 세상에 골치 아플 엄마가 어딨어. 환경결정론과 유전자결정론 사이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그 중에 '환경' 부분에 대해서라면-- 내가 아이를 너무 억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맞벌이라는 핑계로 잘 안 놀아주고 야단치고 소리지르고 때론 정신병자처럼 발작까지 해대는 엄마이니깐;; 아이가 응석 부릴 여지를 별로 만들어주지 않았을 뿐더러, 응석은 커녕 마음껏 뛰노는 것조차 귀찮고 시끄러워서 못하게 막지 않았던가.
이 책을 보면서 엄마로서의 나에 대해서 많이 반성했다. 침대가 없으면 어때? 뭐가 부서지면 어때? 같이 신나게 잘 놀면 되지, 침대 없어 못 자는 사람 있나. 호호할머니가 동물 친구들과 놀아주듯 그렇게 놀아주면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 없을까. 엄마의 머리 속부터 바꿔야겠다.